이 글을 보고 있는 갤럼들은 이미 공이갤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저주받은 인형이나 인형 괴담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히 익숙할 것이다.

식상하다고 느끼는 친구도 있을 것이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먼저 이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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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제임스 완씨의 놀라운 수완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것 같은 애너벨 인형이다.

이 아저씨,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디자인의 인형을 생각해 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애너벨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화 컨저링부터 시작해서 계속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강조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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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으로 찾은 이 사진의 인형이 실제 애너벨이다. 평범한 봉제인형으로 이건 이것대로 공포스럽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애너벨같은 인위적인 공포감이 아닌 진짜 공포를 느낀다. 진짜 나는 얘가 무섭다.

아무튼 이 애너벨이 흔히 말하는 저주받은 인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근데 저주받은 인형이라는 게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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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계에서도 굉장히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처키 시리즈. 한국에서는 사탄의 인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영화를 한번 떠올려 보자. 좀 옛날 영화라 공이갤의 갤럼들 중 안본 사람도 있을 것이니 정말 간단히 설명을 하면,

이 처키라고 하는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보통 저주받은 인형이라 하면 떠올리는 모습이 아마 이 처키와 비슷할 것이다.

움직일리 없는 인형이 스스로 움직여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


여기서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보자.

밤에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

길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가로등도 만족스럽게 길을 비춰주지 못하고 있었다.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앞에서 라이트를 킨 차가 한데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다행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있구나.

안심하면서 차의 운전석을 바라보는데, 뭘까. 아무도 없네?

그렇게 생각하자 마자 차가 멈춰서고 차의 라이트가 꺼졌다.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 자동차에는 자동 운전기능이 탑재되어 있는거야!"라고 안심할까?

정말 상식적인 선에서 이 대답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마 공포감은 줄지 않을 것이다.

움직일리 없는 것이 움직이는 공포. 이것은 꽤 유서 깊은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처키 역시 그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공포이다.

심지어 처키는 사람을 죽인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더해진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것이 저주받은 인형이 무서운 이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애너벨의 경우 처키나 다른 일반적인 사물과 같이 움직일리 없는 것이 움직이는 공포,

또는 죽음에 대한 공포 둘 다 해당이 되긴 하지만, 뭔가 순수하게 그렇기 때문에 무섭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왜냐하면 인형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애너벨의 경우 인형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공포가 더 강한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인형에 영이 깃든다는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형에 영이 깃든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 봤을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인형 관련 괴담이 진짜로 다루려는 것은 인형이 아니라,

그 '영'이라는 것을 갤럼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영혼의 유무에 관한 것은 접어두자.

사실 실제로 어떤지 글쓴이는 판단을 못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신 저주받은 인형에 대한 현상,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서 이해해 보려고 한다.

애너벨 말고도, 실제 저주인형에 관한 기록은 많다.

곰 인형 바론. 로버트의 저주 받은 인형. 맨디 인형. 등등 찾아보면 굉장히 많다.

이 인형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만 지금은 넘어가자.

먼저 이런 인형들을 통틀어서 영어로 'Haunted doll'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실 저주받았다기 보다는 씌었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다.

이 씌었다는 단어가 주는 늬앙스를 느껴보자. 즉, 어떤 존재가 인형을 조종한다는 느낌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 인형들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어떤 인격체나 의지가 그 인형을 간섭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인형을 움직이는 이 인격체가 저주받은 인형 괴담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 이제 인형 괴담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형에 영이 깃든다는 것인데, 일반적인 괴담에서 다루는 범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영이 인형 안에 있는 것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뭔가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아니 왜냐면 일반적인 영보다 인형에 씌인 영 괴담이 뭔가 더 무섭거든.

내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살펴본 바로는

인형이라는 게 어디에나 있는 익숙한 물건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인형의 생김세를 중심으로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관련짓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인형 괴담이 일반적인 괴담보다 더 무서워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영이라고 하는 것, 즉 귀신이 눈 앞에 있는 게 더 무섭지 않을까?

(물리적 간섭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귀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문뜩 깨달은게 있었다.

그것은 '인형이라는 게 원래 주술적인 일을 행하기 위한 도구라서 그런게 아닐까?'라는 것이다.


뜬금 없는 이 의문을 단순히 이해하면 잘 느낌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인형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담론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인형(人形)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보자. 직역하면 사람의 형태이다.

사람의 모습을 본땄으니 그런 이름이겠지. 하고 단순히 생각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형形이라는 문자에 주목하자.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인형이다. 나무나 금속으로 된 인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불상(佛狀)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이런 류의 단어들은 모두 상狀이라는 문자를 사용한다.

글쓴이의 어휘력이 부족하여 이러한 사물 중에서 인형 외에 형이라는 단어로 끝나는 단어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떠올릴 수 있는 단어는 도형과 모형정도 있다.

도형은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것이며, 모형이 인형과 비슷한 느낌을 주긴하지만 따로 특정한 것을 본딴 것에 형자를 붙이지 않는다.

물론 '무슨무슨 형'이라는 형용사로 쓰이긴 하지만 그 단어만으로 완결되는 명사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튼 인형이라고 하는 것이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단어에 대한 고찰이었다만,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인형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인형이 사람을 본따서 만들었다는데, 사실만 놓고 봤을 때 사람의 어디를 본땄다는 말인가?

저주 인형을 생각해 보자. 일본의 볏짚인형이나, 중국 도교의 인형, 서양 부두교의 인형들을 보자.

이 인형들에서 머리, 몸, 팔, 다리 외에 생각나는 부위를 대보자. 별로 없어 보인다.

더 나아가서 음양도에서 나오는 나무 판자로 만든 인형을 생각해 보자. 이건 팔다리조차 없는 경우가 있다.

근데 인형이라고? 사람을 본땄다고? 이상하다.

무지한 내가 생각하기에 인형이 사람으로부터 본딴 모습은 겉모습이 아닌것 같다.

그렇다면 어디인가? 확신할 순 없지만, 인간만이 갖고있는 무언가를 본딴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인형'이라는 단어 자체가 의문이다.

자 여기서 인형이 고대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고대 시대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뭐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 '영혼' 이 아닐까?

물론 동물의 영을 다루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뭔가 특별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다시 모형이라는 단어로 돌아와 보면, 모형이 하는 일은 언제나 원 사물에 대한 대체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인형도 비슷할까? 인형이라는 것은 사람에 대한 대체물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인형이라는 것은 인간처럼 영혼이 깃드는 것을 전재로 개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오해하지 말자, 그렇다고 인형에 실제로 영혼이 깃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단지 그런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일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형에 대한 괴담이나 혹은 옛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땅을 밟아도 그 문화권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인형이 있다.

이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한 인형에 대한 담론은 정말이지 어떤 분야의 과학이 다루지 않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것은 심령연구의 분야이다만, 이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해보면.


인형의 이러한 본질들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형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경외감이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저주받은 인형을 두려워 하는 것은 인형과 인간의 몸을 기본적으로, 본능적으로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딱히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형 괴담을 이런 관점으로 재고해 보면 재밌는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