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외할머니께 연락이 왔다.


밤마다 집 지붕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다락방에 고양이가 들어와 눌러앉은 듯했다.


그 연세에 직접 다락방에 올라가시기에는 무리가 있어, 내가 대신 올라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외할머니댁을 찾았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보기 좋게 낚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직접 오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하신 듯, 이미 사다리와 마스크, 목장갑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마스크와 장갑을 챙겨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장장 십수 년이 넘게 방치된 탓에 다락방에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어찌나 먼지가 많은지, 마스크를 쓰고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마스크를 버려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일단 손전등을 들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방에 고양이 분변과 털뭉치가 널려있었고, 방치된 짐과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짐 더미를 헤집어가며 고양이가 들어올 만한 구멍을 찾던 중, 나는 다락방 구석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진열장과 TV였다.


아래는 비디오 진열장, 위의 선반에는 TV가 들어있는, 무려 30년 전부터 쓰던 TV 세트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난데없이 사라져버려 의아하게 생각했던 그 진열장이, 다락방에 놓여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나는 그 TV를 보자마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 TV의 이야기를 하려면 내 어린 시절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갓집에서 자랐고, 아버지 역시 외갓집에서 지냈다.


우리 아버지는 데릴사위였던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같이 살게 된 우리 가족을 위해 두 칸짜리 방을 내주셨고,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쭉 그곳에서 자랐다.


두 칸짜리 방 중 한쪽 방은 작은 창문이 나 있는 바깥쪽 방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방에 커다란 침대를 넣어 침실로 썼다.


이쪽 창문에 있었던 기이한 일이 있었지만, 이건 나중에 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남은 한쪽 방에는 TV와 탁자, 옷장을 놓고 거실처럼 썼다.


그 방에 놓여있던 TV가 바로 다락방에서 본 그것이었다.




우리 가족 중 그 TV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나일 것이다.


무료로 보여주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나 프로그램도 재미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비디오를 훨씬 더 많이 돌려보았다.


디즈니 만화영화, 패트와 매트, 핑구, 그 외 이름 모를 다른 애니메이션과 전래동화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진열장에는 수십 개의 비디오가 들어있었다.


그 비디오를 구해오는 장소는 동네 비디오 가게 한 군데였지만, 비디오를 가져오는 사람은 여러 명이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비디오를 가져오실 때도 있었고, 아버지가 가져오실 때도 있었다.


삼촌이나 이모, 심지어 할아버지까지 비디오를 챙겨주시곤 했다.


대부분은 정식으로 발매된 비디오가 아니었다.


새까만 비디오에 새하얀 스티커를 붙이고 투박하게 ‘밤비’, ‘토드와 코퍼’ 따위를 매직으로 적어놓은 불법 비디오들이었지만, 동네 비디오 가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들을 팔았다.


5개 묶음에 3000원, 4000원, 이런 식으로 안 팔리는 비디오를 끼워파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6살 때 내가 보았던 그 비디오도 아마 그런 식으로 우리집에 흘러들어왔으리라 생각한다.


여하튼 누가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디오는 분명 진열장에 있었다.




6살 무렵이었다.


난 그때부터 한글을 떼고 자막을 읽을 수 있었다.


비록 더듬거리긴 했지만 일상적인 문장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부모님은 공부 시간이 다 끝나고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했지만, 두 분 다 계시지 않을 때에는 그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그날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


나는 진열장을 열고 한 번도 보지 못한 비디오를 찾아보다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새하얀 비디오를 찾아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누가 가져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에 곧바로 비디오를 넣고 재생해보았다.




불법 복제를 경고하는 영상조차 없이 곧바로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술이 달린 조악한 빨간 커튼이었다.


리코더를 불어서 낸 듯한 음악이 끝나자, 커튼이 열렸다.


나무 바닥에 원형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다섯 개의 의자와 탁자가 카페트 위에 놓여있었다.


보라색,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검은색 양말 인형 같은 것이 각각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느 순간, 카메라가 카페트를 줌했다.


카페트에는 의자를 꼭지점으로 삼아 뒤집어진 오망성이 검은색 줄로 그려져 있었다.


줌이 되어있는 그 상태로 낮게 깔린 음성이 들려왔다.


문장 전체를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파티’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막에도 ‘파티를 시작하자’라고 적혀있었다.


다음 순간, 아까는 그저 인형처럼 앉아있던 양말 인형들이 한 커트씩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솜을 채워넣은 것처럼 보이던 양말들이, 어느새 뚜렷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마치 골격이 생긴 것처럼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했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손에 양말을 씌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그런 장난을 많이 해본 탓에 형태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인형들은 각각 눈알과 입이 달려있었는데,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인형의 눈알은 모두 투명한 플라스틱 껍데기 속에 동그랗게 오린 검은 종이가 들어간 가짜 눈알이었다.


그리고 저마다 입이 달려있었다.


보라색 인형은 눈알과 입이 평범하게 달려있었다.


초록색 인형은 눈알은 평범했지만 입이 이상할 정도로 컸다.


노란색 인형은 미간이 넓고 양 눈의 높낮이가 달랐다. 입 또한 붉은 실로 꿰어있었다.


빨간색 인형은 간격이 없을 정도로 눈알끼리 딱 붙어있었고, 입도 작았다.


마지막으로 검은색 인형은 눈알의 플라스틱 껍데기를 뜯어낸 흔적이 있었고, 안에 들어있는 검은 종이가 없었다. 마치 눈을 치켜뜬 것처럼 두 눈이 그저 새하얗기만 했다. 입 또한 눈알 크기로 동그랗고 새하얘서, 언뜻 보기에는 눈알이 세 개 달린 것 같았다.


인형들은 절대 두 개가 한 커트에 잡히는 법이 없었다.


한 인형이 말을 하면 카메라는 그 인형만을 잡았다.


뭐라 떠드는 소리와 함께 아래에 노란색으로 자막이 올라왔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는 탓에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어떤 여섯 살짜리 아이가 자막을 일일이 멈추고 읽어보는 끈기가 있겠는가?


나는 다른 영어 비디오처럼 그저 분위기만을 느끼며 화면을 응시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조악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저 독특한 인형극인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멍하니 지켜보던 그때, 무미건조하던 영상에 변화가 생겼다.


초록색 인형과 보라색 인형이 자주 카메라 커트에 잡히기 시작했다.


서로 나누는 대화의 목소리도 점점 커져서, 마치 싸우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커트에 두 인형이 잡혔다.


초록색 인형이 큰 목소리로 뭐라 외치더니, 입을 벌려 보라색 인형을 물고 잡아 뜯었다.


보라색 인형은 어느새 첫 커트에 나왔던 그 인형의 모습이 되어 새하얀 솜을 토해냈는데, 카메라는 난데없이 바닥에 있는 카페트를 줌했다.


카페트에 그려져 있던 선이 노란색으로 변해있었고, 그 위에 하얀 솜이 불규칙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혹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꼈다.


일단 웃기기는 한데 갑자기 머리를 뜯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다시 영상을 돌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자막을 읽어보니, 보라색 인형이 초록색 인형을 향해 ‘토니는 마치 식중독에 걸린 것처럼 초록색이다’며 조롱하는 자막이 적혀있었다.


초록색 인형은 그 말을 듣자마자 ‘널 보라색 시체로 만들겠다’며 물어뜯었다.


식중독이나 시체라는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일시정지를 풀고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빨간 인형이 커트에 잡혔다.


인형은 발작하듯 흔들리고 있었다.


곧이어 숨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마치 여러 명이 겹쳐서 녹음한 듯 깔깔거리는 소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마치 수십 명이 모인 듯 비명처럼 웃어대는 소리를 듣자, 가슴이 철렁하고 숨이 막혔다.


나는 그 장면을 보자마자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당장 비디오를 뽑아버리고,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쥐고 공부하는 척을 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뛰어서,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방에 들어올까 봐 무서워서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빨간 인형과 웃음소리가 너무도 두려워서였다.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나는 뽑아낸 비디오를 진열장 제일 뒤편에 쑤셔 넣었다.


다시는 실수로라도 꺼내지 못하도록, 평소에 손도 대지 않던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비디오를 덮어 보이지 않게 해놓은 뒤, 진열장을 닫아버렸다.


그 충격적인 사건 이후 한동안 비디오에는 손조차 대지 않았다.


가끔 부모님이 틀어주는 비디오 말고는 직접 틀어서 본 기억이 없다.


가끔 그 빨간 인형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꿈을 꾼 적도 있었고, 조롱하듯 웃어대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세 가족이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트라우마를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8살이 되었을 때, 진열장과 TV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게다가 학교 근처의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되는 바람에 그 TV와 비디오의 행방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때 겪었던 공포도 한결 가라앉아, 꿈에서 인형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 비디오의 내용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도 많이 얘기하고 다닌 탓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친구들은 그 비디오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을 정도였고, 대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 몇 명도 이 이야기를 알 정도니까.


그만큼 내가 겪었던 그 경험은 너무도 끔찍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도 깊이 생각하는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난 다음부터는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몇몇 생겼다.


나는 그들의 도움 덕에 기억에 남은 장면들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보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미처 기억하지 못한 것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적어낼 이야기는 전적으로 세 친구의 도움으로 얻은 정보와 추측이다.




친구들은 먼저 영상이 만들어진 곳을 알아내려 노력했다.


영어의 억양이 어땠냐고 물었지만,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water의 발음이었다.


빨간 인형이 검은 인형에게 물을 따라주는 장면에서 나레이션의 발음은 분명 ‘우어타’였다.


오직 그 한 단어만을 알아듣고 기뻐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물론 그 억양만으로 비디오가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한 친구가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그 인형들의 모티브가 ‘텔레토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보라색,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이 일치하는데다, 영국산이며, 만들어진 시기 또한 묘하게 일치했다.


우리는 결국 그 비디오가 영국산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그런 비디오가 어떻게 자막까지 붙어 유통되게 되었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유아용 프로그램을 사칭한 탓에 자막을 단 사람도 속았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공범일지도 몰랐다.


안타깝게도 더 이상의 정보가 없어서 그 이상의 논의는 이어나갈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집중한 것은 역 오망성이었다.


오망성은 예수가 입은 다섯 개의 성흔을 뜻하는데, 이는 십자가의 상징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은데다 줌인까지 했다는 것은, 노골적으로 역십자가를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보라색 인형이 죽으면서 오망성의 색이 변했다는 것은, 마치 인신공양의 과정과도 같았다.


그리고 남은 네 명이 어떤 방식으로든 죽게 되면 최종적으로 뭔가가 나타날 것이고, 그 내용이 비디오 뒷부분에 담겨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노란색 인형은 초점도 맞지 않았고, 미간도 넓은데다, 입이 꿰여 끝까지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것은 강제로 납치해온 희생자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초록색 인형은 ‘토니’라고 불린 것에 주목했다.


입이 넓고 다른 인형을 물어뜯었다는 점에서 가톨릭 칠죄종 중 식욕을 뜻하는 gluttony가 아니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검은색 인형은 영상 내내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르륵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빨간 인형은 마치 다 알아들었다는 듯 물을 따라주거나, 먹을 것을 건네는 장면이 있었다.


친구들은 검은 인형이 눈동자가 없고 전체적으로 비정상적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아마 이미 사탄에 빙의된 상태를 상징하고, 더 나아가 그 말을 알아듣는 빨간 인형은 최소한 사탄과 관련이 있는 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다른 인형의 죽음을 보고 웃는 장면은 그러한 추측에 쐐기를 박았다.




문제는 이런 영상을 대체 무슨 의도로 만들겠냐는 것이었다.


금전적인 이득을 크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딱히 만들 이유가 없는 비디오였던 것이다.




논의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면 역시 원본 비디오를 찾아야만 했는데, TV와 진열장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내가 끝까지 그 영상을 봤어야 했다며 아까워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실언이라는 것을 깨닫고 곧장 가벼운 사과를 했다.


나도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한동안 그 일에 대해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그 TV와 진열장이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어린 시절, 끔찍한 공포를 주었던 그것을 다시 한 번 볼 자신이 없었다.


무작정 손을 뻗기에는 그것은 너무나 두려운 기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끝까지 다 보면 분명 뭔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친구들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친구들과 쌓아왔던 그 모든 추측들, 무엇보다도 내 기억을 증명할 수 있는 그 원본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결국 진열장에 손을 뻗고 말았다.


외할머니께서 아래층에 있다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는, 유리에 달린 쇠고리를 잡아당겼다.


쇠 경첩이 녹슬었는지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뿌연 유리 속에는 피노키오, 덤보, 밤비, 토드와 코퍼... 이제는 겨우 이름만 기억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빼내어 뒤쪽에 있는 공간을 확인했다.


두 번째 선반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세 번째 선반에서 마침내 구석에 처박힌 비디오 몇 개를 찾아냈다.


하나는 신데렐라였고, 다른 하나는 백설공주였다.


그게 전부였다.


백설공주 밑에 깔려있어야 할 그 비디오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넋이 나간 채 바닥에 쏟아놓은 비디오를 일일이 뒤집어가며 확인했다.


분명 이름이 없는 비디오가 남아있어야 할 텐데, 그런 비디오는 없었다.




그것을 깨닫자, 십수 년 동안 묻어두었던 두려움이 일순간 되살아났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락방에서 내려왔다.


구멍을 잘 막았느냐는 외할머니의 물음에, 횡설수설하며 물음으로 답했다.




“할머니, 저희 TV 기억나세요?”


“무슨 테레비?”


“안방에 있는 그 텔레비전이요, 저 어릴 때 보던 그거요.”


“그거? 인제는 없지, 갖다 버렸지.”


“그게 지금 다락방에 있거든요.”


“그게 거기 있었어? 못써, 지금은.”


“쓰려는 게 아니라요, 거기 있는 비디오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그런 건 모르지.”


“그럼 할아버지가 혹시 가져가셨을까요?”


“너희 할아버지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니. 비디오 감는 것도 잘 몰랐는데.”




나는 다시 다락에 올라가 널빤지로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께 비디오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옛날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것이었다.


똑똑히 기억한다는 내 항변에, 두 분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 비디오가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일을 겪은 뒤로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키워드를 유튜브에 검색해보았다.


때로는 구글을 뒤져보기도 했다.


demonic, socks, doll, satanism, sacrifice, reverse pentagram, 그 밖에도 온갖 키워드를 모조리 넣어보았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영상과 비슷한 것은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분명히 그 비디오의 촉감을 기억한다.


하얀 스티커를 만졌을 때의 그 매끈한 촉감, 비디오를 넣을 때의 그 느낌, 색깔 입힌 양말 인형, 히스테릭한 웃음소리와 아나운서의 목소리, 조잡하게 낸 리코더 음악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도 너무도 생생하다.


그러나 텅 빈 진열장을 본 뒤로는 정말 그 모든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조차 확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이 꿈이 아니라면.


정말 그 비디오가 진열장에 있었다면.


그걸 가져다 놓고, 다시 가져간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빨간 인형의 웃음소리 뒤에 어떤 영상이 이어지고, 무엇이 불려왔을까?


대체 누가, 무슨 의도로 그런 영상을 만들어서 배포한 것일까?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미치도록 초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