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실화~

많은 가정들이 그렇듯,
우리집안도 사연이 있다.
아버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주물공장을 하셨는데 공장이 망해갈무렵,
어머니와 성인이었던 누나를 보증인으로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렸었고,
공장이 망하자 잠적해버렸다.

그덕에 나의 어린시절은 궁상 그자체.
누나와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시고 나도 고등학교때부터
소질없는 공부를 뒤로밀고 배달을하며 가세에 보탯고,
우리는 어느정도의 현금을 마련해서
인천모처로 이사를 가게 됐다.

약 2년을 살았던 그집.
반지하였지만 큰방이두개있었고,보증금이나 월세가
주변에 비해 굉장히 낮았다.
이사를 간 첫날 그집에 대한 나의 느낌은
굉장히 시원하다는 느낌???
이삿짐을 대충 풀어놓고 정리를 멈춘채,
음식을 시켜먹으며 나는 연고도없는 곳이지만
가족이 새로운 출발을 할수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우리가족 늙은시츄한마리를 길렀는데,
희한하게 이놈이 밤만되면 천장을 노려보며
꼬리를 가랑이에 말아넣고 끙끙거리며 사람품에 파고들며
귀찮게 굴었었다.늙었으니 치매가 온건가 여겼었고.
개는 이사온지 두달정도만에 복수가차서 죽어버렸다.

그뒤로는 누나와 어머니는 자꾸 가위에 눌리는 일이 생긴다.
나와 방을 바꿔서자도 마찬가지.
나는 딱히 가위같은게 눌리지는 않았지만.
그러다가 어느날, 누나는 차사고가 나서 골절되고,
그주에 어머니는 자궁에 혹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는다.

두양반이 모두 입원하고 갓 스물이였던 나는
혼자서 지내며 배달을 하며 약 일주일정도를 지냇다.
그러던중 꿈을 꿨는데 꿈이 너무 생생한기라.
회색깔 낡은 원피스를 입은 젊은여자가
눈에 핏발이 서서 마루에서 나를 쳐다보는 꿈.
눈이 실핏줄이 다터져서 뻘개져가지고 쳐다보며
계속 웅얼웅얼 거리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와장창 소리에 놀라서 깻는데 부엌찬장이 썩었는지
무너져내려버린 소리였다.
씨발 씨발 거리며 깨진그릇이며 쟁반등을 치우고
정리하고 쓸고닦고 하느라 그다음날 배달하다 사고날뻔.

그뒤로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어머니도 수술을 잘마치셨고,누나도 이상없고.
간간히 두양반이 가위를 눌리긴했지만.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보인다는 말을 했지만
내가 꾼꿈은 그냥 얘기하지 않았었다.

무난히 살다가 또 꿈을 꿨다.
눈이 시뻘건여자가 또 나와서 나를 노려보는.
근데 이번에는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가 잘 들렸다.

데려가?데려가?데려가?데려가?
데려가?데려가?데려가?데려가?

계속 이러는데 거기다 대고 욕을 퍼부었다.
온갖욕을 다하다가 어머니와 누나가 깨우길래 깼고,
두양반은 나에게 뭔욕을 그리하냐며 핀잔을 줬다.
별다른 일은 없었고,나는 7개월정도 뒤에 입대를 했다.
본인은 나이가 적은편은 아니고 흔히말하는 틀딱이라,
2년2개월의 군생활을 했었다.
훈련소의 빡센 훈련과 생활은 아무것도 생각치 않게했고,
자대배치후에는 악폐습과 구타를 견디며 버텼다.
일주일에 두어번 집에 전화하며 지내던중,
부대로 전화가 오고 비보를 듣게 되는데,
누나가 뺑소니사고로 사망한것.
백일휴가를 청원으로 사용해서 비통한심정으로 나가게됐고,
집에가는 새마을호에서 자꾸 눈이 빨간 그여자가 생각나더라.

누나의 장례를 마치고 그 슬픈와중에어머니는 도저히
혼자서 그집에서 못지내겠다고 성토하시며
부천쪽 이모님댁에서 지내시다가
아예 부천쪽으로 이사를 가셨다.
난 별일없이 전역을 했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 몇년전 동인천에 있는
단골중국요리집을 들렀다가 그집이 생각나서
지나가다가 들러본적이 있었는데,
이미 다 헐리고 빌라가 들어서있더라.
그 씨발년이 누나를 데리고 간건지
아니면 누나의 팔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누나생각이 많이 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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