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저에게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강한 한파? 냉기가 존재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 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전조증상이었는지.......사실 작은 사건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
요즘 10대분들은 잘 모르실 수 도 있는데요. 제가 아주 어렸을 적, 서울의 각 지역 개발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동네마다 어느정도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바로 거지와 바보에요.
무슨 서울에 바보랑 거지가 있냐고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멀리 갈 것 없이 부모님께
어렸을 때 혹시 동네에 바보나 거지가 있었냐고 물어보신다면 답변을 들으실 수 있을겁니다.
당시에 저희 동네에 거지가 하나 있었는데 행동반경이 꽤나 넓어서 아현동 일대와 충정로 / 만리동 경계라인, 공덕동을 왔다갔다 하는
모자란 거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리적으로는 서울역과 꽤나 가까우니 이리저리 싸돌아 다니기 괜찮았던듯 싶어요.
아마도 일요일 오전이었을겁니다. 아버지께서는 약속이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가셨고 엄마는 밥을 하려고 준비중이셨어요.
제가 이렇게 기억하는게 어렸을 적 주말 아침에는 '디즈니 만화동산'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었기에 그날 아침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빌라 건물 주변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 부산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몇분 뒤 저희 빌라 반지하집 현관문을 쿵쿵쿵쿵쿵쿵쿵쿵 연속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뭘 놓고 갔는지 급하게 되돌아 온 줄 알고 현관문을 그냥 열어줬고,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거지가 열린 현관문 사이에 몸을 비집어 넣고 동공은 풀린 상태로 머리를 휘휘 저으며
"밥 좀 주세요" 라고 말하는겁니다. "밥 좀 주세요, 밥 좀 주세요, 밥 좀 주세요"
아버지가 부재중인 상태로 어머니와 저, 그리고 형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찌린내에 쉰내나는데다가 손톱과 손은 다 터져 일그러지고 운동화는 다 너덜거리는 상태로
계속 "밥 좀 주세요, 밥 좀 주세요, 밥 좀 주세요" 이 말과 함께 뭐라 스스로 웅얼거리는 와중에
저와 형은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인 엄마도 당연히 무서웠겠지요.
그러나 모성은 공포를 이겨낸다고 하던가요.
어린 자식들을 보호하고자 어머니께서는 당당하게 [지금 아침밥을 새로 짓는 중이니 문 밖으로 나가 기다려달라] 말을 했습니다.
거지는 저희를 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주방과 연결된 창고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그대로 현관문을 닫고 밖에서 웅얼거리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형제를 안심시키며 방으로 들어가라고 말을 했고
밥이 다 완성되자마자 뜸을 들이지도 않고 한그릇 가득 흰 쌀밥과 깍두기를 봉지에 담아 거지에게 줬습니다.
거지는 감사하는 말도 없이 갓지은 밥봉지를 들고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뭐라뭐라 중얼거리고는 집을 떠났습니다.
거지의 동냥질이 끝난 직후 현관문을 3중으로 걸어잠근 그때서야 긴장이 풀린 어머니께서 한숨을 크게 내쉬고 탁자에 앉으셨습니다.
어린 저는 엄마한테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습니다.
거지가 웅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말할 하는건지 누구와 대화를 하는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거지가 웅얼거리는 말이 누구와 대화를 하듯 이런식이었답니다.
["니 말이 맞아 여기로 가면 밥이 있네. 니 말이 맞다. 너는 안먹어? 너는 어디에 있는데? 저기 창고에 있다고?"]
무서워진 저희는 어머니와 같이 붙어 청계천에 다녀오시는 아버지를 손에 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핸드폰은 커녕 삐삐도 PCS폰도 없었습니다. PCS나 삐삐는 나중에 보급됐죠.)
오후에 집에 오신 아버지께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쭉 말했고 아버지는 현관문 이상이 있나 확인해보시고
빠루를 들고 빌라 주변을 순찰 하신 것으로 그날일은 마무리가 됐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좀 불편하신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30~40년 전쯤만 하더라도 개차반으로 못살았기 때문에 '언더도그마'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일단 동네 바보가 병신짓을 했다. 하면 그대로 동네 아저씨들이 냉수 붓고 빗자루나 빠따, 머리없는 곡괭이나 삽으로 반병신될 떄 까지 팼습니다.
동네 바보의 부모가 오면 그때서야 상황이 정리되긴 합니다만....일례로 어린 여자아이를 성추행했던 동네 바보가 진짜 당시 동네 청년들에게 걸려
코가 옆으로 휘고 이빨이 몇개 나갈 떄까지 두들겨 맞던게 생각납니다. 그리고 나선 이사를 했는지 보이지는 않더라구요.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너무 걱정 말라하고, 저희 형제에게 너희들이 남자니까 아버지가 없을 때는 반드시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며
없는 살림에서도 형아에겐 태권도장을 저에겐 검도를 권유하시고 운동을 시키 주셨습니다. 그때 난생 처음 태권도장이나 검도장 구경을 갔던 기억이 나네요.
다만 그 당시 찜찜했던게 거지가 저희집의 어두운 창고를 보며 계속 중얼거리던게 상당히 불편했고,
심지어 며칠 뒤에 창고쪽에 실제 도둑이 들었던 일이 있습니다. 이 거지가 침입을 한 것인지, 아니면 동네 학생들이 장난삼아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때 어머니께서 "도둑이야!!" 소리 치시고 경찰을 부른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소리치자마자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이 창고에서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 이후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불러 창고 출입문에 철문을 보강해서 방범시공까지 하게 됩니다.
제가 무엇인가를 본 이후 발생한 이런 사건들로 인해 점점 더 불안해졌고 그 후 제가 손가락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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