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일 때 겪었던 일이야.
내가 다녔던 태권도 도장은
매 년 여름이면 합숙이라는 걸 했었어
주말이면 체육관에서 저녁까지 자유롭게 활동하다가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이면 공포영화 몇 편 때린 뒤
자정이 지나면 만월산이라는 곳으로 담력훈련을 가곤했어.
대충 기억나는 대로 코스를 설명하자면
이런 코스였어
배드민턴장에서 등산로를 따라 정상(납골당 화장터)까지 올라가는 루트였는데
등산로 자체는 길진 않았지만, 가로등 하나 없는 비좁은 산길이고
가드레일같은 안전장치도 없는 그냥 산길이라 위험하기도 했던터라
항상 등산로 중간즈음 어느정도 짬이 되는 아이로 보초를 세워두곤 했는데
그게 나였어
아이 혼자 등산로를 올라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지
당시 대충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을 찾아보자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다.
오른쪽으로는 제법 가파른 언덕이었고
가로등하나 없는 산길이었어
늦은 밤이었지만 다행이 달이 워낙 밝게 떠 있었던지라 그리 어둡진 않았던걸로 기억해
아무튼
자정부터 시작된 담력훈련이 어느정도 지났을 무렵
중간 순번의 아이가 막 지나갔을 무렵이었을까
멀리서 두 사람의 형체가 가까이 오고있는게 보이더라
근데 그게
배드민턴장에서 올라오는게 아니라 납골당에서 내려오는 사람이었던거야
이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라는 생각조차 없이
그냥 숨죽인 채로 그 두 사람만을 뚫어져라 쳐다봤어
어느정도 거리가 가까워지니까 그 두 사람이 제대로 보이더라
한 쌍의 노부부셨는데
이상했던건
등산복 차림이 아니라
할아버지께서는 멀끔한 정장 차림이셨고
할머니께서는 검은 블라우스?를 입고계셨어
이윽고 그 둘이 내 바로앞을 지나가는데
내가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본 것 처럼
그들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내려가더라
그 때 까지만 하더라도
정상에 납골당도 있으니
먼저 보낸 가족을 만나러 왔겠거니 생각했지
그 것 말곤 뭐 납득이 가질 않더라
아무튼
그렇게 나머지 인원들도 정상으로 올라가는걸 확인한 뒤
나는 마지막으로 올라오신 사범님이랑 같이 정상으로 올라갔어
정상에서 인원체크, 환자여부 확인 같은 걸 끝내고 하산하는 길에
배드민턴장에 계셨던 사범님께 그 노부부에 대해 얘기했어
그랬더니
사범님께서는 그 얘기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면서
그 늦은 시간에 누가 납골당을 가겠냐며 니 말이 진짜든 거짓말이던
너가 그 얘기 떠벌리고 다니면 앞으론 담력훈련 못한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담력훈련은 무사히 끝냈지만
지금도 궁금해
늦은 새벽 납골당에서 내려오던 그 노부부는 과연 뭐였을까
뭐긴 뭐야 기일이라 멀리서 버스타고 온사람들이지
머긴뭐야 새벽 등산 하는 아줌씨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