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창백한가?

완전 귀신처럼 보이겠군.

피를 10L는 흘린거 같네...

뭐? 아니, 다친건 아니야.

쓸데없는 소리해서 미안하네.

단지... 뭐랄까...

유체이탈.

그 정도로 이상한 느낌이야.

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딱 이 나이 즈음에 겪을거라곤 예상했어.

말도 안되는 일이지.

선 하나만 잘라내면 당장이라도 내 영혼이 날아갈 것 같아.


범죄현장은 봤나?

보지 마.

사진 파일은 절대 보면 안돼.

건드리지도 마.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거야.


다리가 떨리는걸 멈출 수가 없군.

그래서 자네가 커피를 그렇게 쥐고 있는건가?

내가 테이블을 흔들고 있군.

미안하네, 의자 좀 뒤로 빼겠네.

아, 좀 나아졌군.



취조관: 홉 형사님, 이제 공식적으로 취조 들어가야 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변호인은 관심 없어...

아니, 내말은, 넘겨야지.

미안하네.

이래보여도 제정신이라고.



취조관: 확실하십니까?



그래.



취조관: 홉슨 밀게이트 전 형사는 변호인에게 모든 권리를 이양했습니다.



검사놈이 헛구역질 좀 멈추고 사건을 공론화 시킬 수 있다면 변호인은 필요 없을텐데.

배심원단에게 보여줄 생각이 없더라고.



취조관: 시작할 준비 됐습니까?



아니, 그래도 해야겠지.



취조관: 그날 밤, 범죄 현장엔 어떻게 가게 됐나요?



잠시 시간이 필요해.

생각을 좀 정리해야 되겠네.

취조실에서 이 쪽 테이블에 앉아본 적은 처음이거든.



그 기자로부터 시작됐지. 이름은 바머.

그녀가 일주일 전에 나에게 메일을 보냈어.

자기가 드리스콜 일가족 실종사건의 정보를 갖고 있다더군.

내가 당시 사건 조사반장이었어. 그 사건은 20년 동안 미제였지.

사건 자체가 얼어붙은듯 했네.



처음엔, 그냥 개소리라 생각했어.

어떤 식인지 알잖아. 걔네는 자기가 이 사건을 풀 열쇠라도 찾은줄 알아.

이론은 쉬워, 문제는 증거지.

드리스콜 사건때매 한 때 전국이 난리였잖아.

시덥잖은 이론들만 수백개는 들었을거야.



내가 은퇴했을 때, 캐롤 형사한테 사건을 넘겨줬지만,

그를 이걸로 귀찮게 하긴 싫더군.

최근에 지역 갱들 때문에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니.

예의상 내가 기자를 만나기로 했어. 애초에 중요한 일도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부근의 한 카페에서 점심이나 같이 먹기로 했지.



흔해빠진 음모론자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예쁘게 생긴 금발에, 꽤나 전문적인 기자처럼 보였어.

그렇다고 내가 관상을 믿는건 아니야.

그냥 살인사건이라면 환장하는 여자일 수도 있지.

그런 애들도 겪어봐서 알거든.

그녀가 나를 속이려하거나, 그녀 또한 거짓 정보에 속았을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파일을 보여주더군.

꽤 그럴싸했어.

안에는 드리스콜 씨의 자백이 있었네.

근데...그가 살인자는 아니지 않나?

물론 나는 그가 살인자이길 간절히 바라긴 했지.

그랬다면 일이 훨씬 쉬웠을테니까.



취조관: 드리스콜 일가족 실종사건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보자, 20년 전이지.

20년이라니, 씨발.



취조관: 천천히 하세요.



고맙네.


[목 가다듬는 소리]


드리스콜 가족은 총 6명으로, 교외에 살고 있었어.

중산층에, 드리스콜 씨는 변호사였고, 그의 아내는 도자기를 만들어 팔았지.

4명의 아이들은 모두 중고등학생이었어.

사고치는 애들도 아니었고, 끽해야 장남이 학교에서 마리화나 피우다가 걸린게 다였어.

그런 평범한 가족이었지.


그들은 1994년 10월 13일에 실종 됐어.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네.

할로윈이 얼마 안남은 시점이라 언론들이 난리였지.

요즘도 미스테리 쇼에서 가끔 나오더라고. 일가족이 목격자도 없이 통째로 증발해버렸다니...


이웃이 소음 문제로 신고하고 나서야, 우리가 그들이 사라졌다는걸 알았지.

경보기가 하루종일 울려대서 누군가 무단침입을 했다고 신고를 한거지.

순찰차 한 대를 보냈고,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서 문을 따고 들어갔어.

막내딸 방에서 명백한 저항의 흔적이 보이더군.

침대는 뒤집어졌고, 시트는 다 찢겨있었어.

경보기는 일산화탄소 경보기였네.

막내딸의 침대를 제외한 모든 침대에서 기준치보다 높은 일산화탄소가 발견됐어.

경보기가 아니었다면 일산화탄소 수치를 조사할 생각조차 못했을거야.


이웃이 말하길 경보기가 밤새 울렸다는군.

문을 몇 번이나 두드렸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해.

우리는 몇 블록 떨어진 골목에서 알루미늄 캔이랑 호스를 찾았어.

때문에 드리스콜네는 가스에 취해 납치당했다 생각했지.

막판에 깨어난 막내딸을 제외하고.

하지만 조사는 거기서 진전이 없었네.


처음엔 드리스콜 씨를 용의자로 뒀어.

그런데 화목한 가정에서 그럴 일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지.

아내도 마찬가지였고, 남은 자식들도 모두.

그가 이혼 전문 변호사였기 때문에, 고객 중에 누군가 원한을 품었다 생각도 해봤는데,

그 누구도 이렇게 깔끔하게 가족 전부를 납치할 능력은 없었어.


세 블록 옆에 화학 선생이 하나 있어서 조사도 해봤는데, 알리바이가 확실했지.

근처에 사는 치과의사도 마찬가지였어.

아내가 온라인으로 누군가와 바람을 피긴했는데, 그 사람은 당시 해외에 있었네.


자연스레 우리는 이 사건을 우발적인 묻지마 범행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어.

이런 식으로 어떠한 패턴도 없을 때의 수사가 가장 힘든 법이거든.

어떻게든 실마리를 찾으려는데,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단서조차 안나오더군.

그 알루미늄 캔들도 조사는 해봤지.

10마일 정도 떨어진 연구소에서 나온거였네.

안타깝게도 CCTV는 없었어.

그렇게 수사는 미제 사건으로 확정됐지.

드리스콜네는 기절한 뒤 납치당한거야.

말했듯이, 시신조차 못찾았거든.

절대 그들이 야반도주한건 아니었어.

근데 지금, 음, 한 번만 말하는게 낫겠지.



취조관: 그래서 그 바머라는 기자가 드리스콜 씨의 자백을 어떻게 입수했다던가요?



그녀는 그 사건을 몇 년째 조사했다했어.

말했듯이, 그 사건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잖나.

평범한 일반인들조차 그 사건이 귀신이나 외계인의 짓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바머는 사건 20주년을 맞아 회고 기사를 하나 썼더군.

나는 여전히 증거없는 잡설이라 생각했기에 관심을 끄고 있었는데,

그녀가 내 말을 인용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더라고.

그렇게 점심에 만나게 된거였어.


기사를 낸 후, 바머 앞으로 파일이 하나 왔다네.

그녀는 내가 이 파일의 진위여부를 가려주길 원했지.

가장 관련성 높은 부분이 자백 파트였어.

나는 그녀에게 이런 오래된 사건에서 가짜 파일은 흔하다고 말했고,

나는 여태까지 20건이 넘는 자백을 들어왔다고 말해줬지.

그래도 그녀는 고집이 셌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거나, 살인사건 마니아라는 생각이 사라지, 다음 미팅 약속을 잡았어.

바머는 그 자백 파일이 점심 때 들고온 봉투에 그대로 담겨 우편으로 왔다고 했어.



취조관: 그 파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내 조사를 시간 순으로 정리한 옛 기사들이었어.

워낙 오래된거라 누렇게 변해있어서,

범인이 트로피마냥 스크랩해뒀던거라 생각했지.

거기엔 그들이 납치된 장소의 사진도 들어있었어...

이거 봐.

내 손 떨리는거 보이나?

안떨려고 노력 중인데, 진술 끝나면 의무관한테 진정제라도 받아야될까봐.

오늘 밤 잠자기는 글렀네.

아니야, 지금 당장은 필요없어.

괜히 내 기억만 흐려질거 같아서.

미안하네, 다시 집중하자고.


그건 드리스콜 가족들 사진이었어.

근데 그 땐 몰랐지.

사진은 너무 오래되어 변색된지 오래였고,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었거든.

그래도, 워낙 정교한 파일들이라 더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긴 했지.


그 자백 파일은, 좀 간략했어.

주소 한 줄.

그게 가장 먼저 보이더군. 워낙 오래된 주소라, 지도 상엔 나오지도 않더군.

그 밑엔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아침 식사 준비가 늦어지는거 뿐이야. 거짓말은 그만 뽑아내' 라고 써있었지.


그러고보니 그들이 실종되고 한 달 뒤에 어떤 음식 사진을 받았었네!

누군가 팬케이크 위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쳐놨더라고.

그 사진에도 '그들은 죽지 않았어, 그들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야!' 라 써있었네.

그 땐 누군가 장난치는줄 알고, 그냥 버렸어.

젠장.



취조관: 조금 쉬었다 갈까요, 형사님?



젠장할...

왜... 왜 몰랐을까?

우리는 그 팬케이크를 추적해봤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

적어도 이 부근에서 나온건 아니었어.

확실한 정보가 없었기에, 우리는 더 이상 뭘 할 수가 없었네.

나는 그저...



취조관: 그래서, 그 자백 편지에 쓰여진 장소에 대해 조사하게 된 계기는 뭡니까?



그게 가짜 정보가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했네.

여전히 확신이 안섰거든.

20년 째 나는 그런 가짜 증거들을 받아왔지.

나는 언젠가는 내가 '반짝!'하고 이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풀게 될거라고 상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내 눈 앞에 가져다줄거라곤 절대 생각 안했어.

그렇기에, 더욱 더 나는 이 정보를 내 두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네.

그렇게 바머 양과는 다음 날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했어.



취조관: 범죄현장에 대해 서술해주세요.



그래.

그 건물은, 공업용 건물이었어. 한 5~60평 정도?

목조건물이었고, 건물의 외벽이 최근 들어 수리된 흔적이 있더군.

입구에는 쇠사슬에 자물쇠가 걸려있었어.

난 거기가 판금 공장인줄 알았어.

적어도...


미안한데 쓰레기통 좀 주겠나?

토할거 같군.

고맙네.


[토하는 소리]


미안하네.

나도 빨리 끝내고 진정제나 맞고 싶어.


건물 내부에선 악취가 났어.

아주 희미했는데, 그래도 안으로 들어갈 이유는 충분했어.

자네도 알다시피, 시체 썩는 냄새는 한 번 맡으면 잊혀지지 않거든.

거의...그 정도로 안좋은 냄새였네.

거의 몇 년만인데, 자물쇠 따는건 아주 쉬웠지.

있잖아,

나는 차라리 그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이길 바랬어.

차라리 연쇄 살인마의 짓이길 간절히 바랬지.



취조관: 건물 내부를 묘사해주시겠습니까?



근방에 의무관은 있는가? 진정제는 준비돼있고?


다행이군.


그 건물은 첫인상과 달리 그리 오래된 건물은 아니었어.

내부는 긴 복도 하나와 6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지.

외부는 엄청나게 낡은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그와 대비되게 엄청난 신식이었어.

각 방마다 방음벽이 있었는데 창문은 하나도 없었지. 유일한 통로는 복도를 통한 문이 전부였어.


거기서 바머 양을 돌려보내려 했어.

말했듯이, 그 냄새가... 깊이 들어갈수록 심해졌거든.

그 냄새. 코에 박히다 못해, 피부 사이사이 박힌 느낌이었어.


방에는, 어, 방에 프레스가 있었어. 수압 프레스.

1.2m x 2.4m 정도의 커스텀 프레스였지.

처음엔 뭔지 못알아봤어. IV백이랑 기타 의료기기들이 많았거든.

그걸 이용해서 그들을 그렇게 긴 시간동안 살려뒀던거야.

눈 앞이 깜깜해지는거 같아...



취조관: 쉬었다 갈까요?



쉬었다 또 시작하느니 한 번에 끝내는게 낫겠소.



취조관: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그 건물은 범죄 현장이었어.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

나는 연쇄 살인마로 추정되는 놈의 소굴에 들어간거야.

바머 양에겐 돌아가라고 몇 번이고 말했네.

그녀는 나를 혼자두고 가는게 내키지 않았나봐.

더 이상 그녀와 왈가왈부 할 시간은 없었지.

그녀는 좀 말이 많긴 했지만, 방해되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나는 여기서

절대 불가능하지만,

혹시 살아있을 수도 있는 가족들을 위해 조용히 들어가야할지,

아니면 나가서 지원요청을 할 지 고민했어.

건물 안에선 신호가 터지지 않더군.

만약을 대비해 내 아내에게 위치를 알려줬기 때문에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내가 신고해주리라 생각했어.


그 때, '헉' 소리를 들었네.

비슷하긴 했지만 쉽게 묘사하기 힘든 소리였어.

아무튼 소리를 듣고, 바로 움직여야만 했어.

건물 안쪽에는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었어.

바머 양에겐 내 뒤에서 대기하라 했고, 나는 리볼버와 플래시를 꺼내 들었지.

지하는 마치 직접 판 듯했어.

어쩌면 20년 동안 파내 완성한거 같았네.

바닭은 흙이었고, 터널엔 일정한 간격으로 버팀목이 있었어.


그 때, 내 플래시가 어떤 무더기를 비췄어.

그들이 죽어있길 바랬어...

그 놈이 연쇄 살인마이길 바랬어...



취조관: 천천히 하세요.



그 무더기를 본 후 첫 생각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전부 죽었군요.' 였어.


[헛구역질]


내 나이가 벌써 64살이네.

더 이상 좋은거만 기억하고 나쁜건 쉽게 잊는 젊은이가 아니야...

뭘 잘했다고 질질 짜는건지,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찾았어야만 했어.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취조관: 형사님, 죄송하지만 그 현장을 자세히 묘사해주세요.



그래.


[헛구역질]


해줄게.

처음엔 내가 뭘 보고있는지도 몰랐어.

그건... 60cm 정도 높이의 무더기였어.

냄새랑 색깔로 봐서는, 분명 살더미였어.

처음엔 그 새끼가 드리스콜 가족 전부를 조각내서 쌓아둔줄 알았어.

그것만 해도 충분히 나쁜 이야기지.


근데, 나에게 진실을 알려준 첫번째는... 눈알이었네.

그 더미 위에는 완벽하게 살아있는 눈알이 있었어.

눈구멍 중앙에, 접시 마냥 타원형으로 눌려있었지.

그제서야 난 내가 보고있는게 뭔지 알았어...


씨발, 20년 동안 이어진 고문이라는 것.

그 새끼는 드리스콜 가족 전부를 그 수압 프레스 밑에 20년 동안 놔둔거야.

IV백으로 정맥에 수액을 투여해 간신히 살아있게 했지.

그들의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아주 느린 속도로 압력을 높였겠지.

마치 그들이... 그래, '팬케이크'마냥 납작해지게.


그는 20년 동안 매년 0.5cm씩 그들을 뭉개왔던거야.

하루에 0.01mm라고. 상상이나 가나?

그러고 온 가족들이 거의 죽기 직전에 다다르자, 하나씩 꺼내서 쌓아둔거였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가늠조차 안됐어.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아.

그 때만 해도 나는 그들이 모두 죽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

그 순간, 그 중 하나가 얕은 숨소리를 내더군.



취조관: 뭐라고 말을 했나요?



아니. 도움없이 말하는건 불가능했어.

아마도... 그건 애버리 드리스콜이었던거 같아.

나이나 성별을 알아보는건 불가능했지만, 머리 색을 보면 알 수 있었지.

머리는 상처투성이었어.

나는 그 새끼가 두개골이라도 제거 한 줄 알았어.

그게 아니면 말이 안되는 수준으로 납작했거든.

10cm라고. 이게 말이 되는건가?

다른 신체부위에 비해 덜 납작하긴 했지만...그들의 뇌는 어떻게 버틴걸까.

프레스는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이후 입술을 터트리고, 치아를 박살내버렸어.

애버리 드리스콜은... 실종 당시 14살이었어.

정말 인체의 신비 그 자체 아닌가?


또 뭐가 있더라.

기계가 있었어, 펌프같은.

플래시로 호스를 따라가니까 한 명씩 펌프에 연결돼있는거야.

분명 호흡이 불가능했겠지. 폐가 부풀 공간조차 없었으니까.

가슴엔 호흡을 위한 구멍이 뚫려있었어.

펌프에 스위치가 달려 있었고, 나는...

패닉에 빠졌던걸까.

마치 그 스위치를 누르면 만화마냥 그들이 부풀어 올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했어.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산소량이 최대로 늘어나는 소리가 들렸지.


그리고 그 순간, 에버리 드리스콜이 소리를 질렀어.

그는 자기를 죽여주길 바랬어.

'다른 것'들도 같이 말이야.

그의 말이 또렷하진 않았는데, 계속 '바오애어'라고 소리를 질렀어.

'가족' 어쩌고 저쩌고 하기도 했지.

알아들을 순 없었는데, 확실한건 그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가 차라리 정신이 나갔기를 바랬지.



취조관: 하, 세상에...



그래.

뭐부터 해야될지 감조차 안잡히더군.

아마 내가 범인인줄 알았던 모양이야.

그의 눈을 보니 그냥 찌그러진 하얀 뭉텅이에 불과했어.

이미 실명한 상태였지.

예전에 화상 사고 피해자랑 면담한 적이 있어.

그는 시간이 흐르고 다시 살아야 될 동기와 목적을 찾았다고 말해줬지.

드리스콜 가족이 그럴 수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네.

나는 내 이름을 말해주었네,

내가 형사였단 것도. 그들을 도와주러 왔다했지.

그들이 알아들을 때까지 수없이 말했는데,

사실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걸 알고있었어.


그 때 바머 양이 소리를 듣고 내려왔어.

내 비명 소리를 듣고 도와주러 내려왔다더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비명을 지른거 같진 않네...

아무튼, 그녀는 그 '팬케이크' 더미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어.

하지만 나는 애버리 드리스콜에게 집중한 상태였지.


그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말을 했거든.

정확히 알아듣긴 힘들었지만,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거야.


"죽여주세요. 너무 아파요.

괴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저를 죽이고 제 가족들에게는 제가 오래 전에 죽었다고 해주세요...

그들이 저를 아직도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저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죽여주세요..."


그는 여전히 눈물을 흘릴 수 있더군, 눈물샘조차 납작해진 상황에서도.

나는 바머 양을 당장 내보내야 됐어.

20년 전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것보다, 그 때 당장 바머를 못내보낸게 더 후회가 되네.

바머 양의 정신 상태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녀의 다음 행동 때문에.

만약 그 가족들에게 작정하고 정신적인 상처를 남겨주려해도,

그녀가 한 행동보다 더하진 못했을거야.

그들의 마지막 안정마저 앗아간거지...


그들은, 20년 동안 서로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였어.

근데 바머가... 말한거지.


"여기 전부 다 있는거죠? 드리스콜 가족 전부... 모두 살아서, 모든 가족이."


20년 동안, 드리스콜 가족은 함께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란 사실은 몰랐어.

20년 동안, 그들은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거야.

그래도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만큼은, 바깥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기를.

20년 동안 압축되어 10cm 높이 되는 사람 차곡차곡 쌓여 비명을 지르면 무슨 소리가 나는지 아는가?

마치 지옥문이 열린거 같다네.



취조관: 이쯤하면 된거 같습니다, 형사님.



아니.

내 실수야.

내가 찾았어야 했는데.

좀 더 노력하고, 좀 더 열심히 했어야 됐는데.

어쩌면 그들이 소리지르는 것들이 그게 아닐까 싶어.

내 잘못이라고.

나 때문이라고.


난 그들을 쐈어.

용서는 어렵고, 난 그들에게 빚을 진 셈이지.

결국 난 그들을 구하지 못한거야.

총알 한 발이면 모두를 관통하기에 충분했지.

하지만 나는 내 탄창을 비웠네.

그들이 살아있지 않기를 빌면서.

그들에게 최후의 안식을 주기 위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어.


그 후에야 현장을 나와서 지원 요청을 했어.

나도, 바머 양도,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어.

조사관들이 나랑 같이 들어가길 원했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었어.

그들 중 한명이 현장을 확인하고 뛰쳐나와 속을 게워내곤,

아무도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지.


이제 진정제 좀 맞아도 되겠나?



취조관: 네, 네... 당연하죠.



고맙네.

아, 바머 양도 챙겨주길 바라네.

아마 나보다 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거야.

그녀는 토하거나 울기조차 힘들어 보였어.



취조관: 물론입니다. 근데 혹시 바머 양이 지금 어딨는지 아시나요? 현장에서 반장님에게 집에 간다고 하고 갔는데, 그 뒤로 연락이 안됩니다.



언론사에 연락해봤나?



취조관: 어느 언론사 말이죠?



데일리 월드.



취조관: 확실합니까? 이미 모든 언론사를 조사해봤는데, 데일리 월드엔 바머라는 성을 가진 기자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