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꾼 꿈인데 별로 안 무섭다고 느낄 애들도 많을 거다. 무서운 꿈이라기보다는 기이한 느낌이라 그럴 수 있지만 나한텐 진짜 생생했고 해석의 여지가 어느 정도 있는 거 같아서 한 번 올려본다. 일단 미리 알아야 할 건 꿈이 그 인셉션에 나오는 꿈 속의 꿈 알지? 딱 그 구조를 하고 있다. 그럼 시작함.

 꿈을 꾸기 시작해서 가장 처음 기억하는 장면은 내가 한 낯선 외국 소도시의 광장 한복판에 서있었던 거다. 정오에 가까운 환한 대낮이었고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아도 적당히 돌아다니는 데다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라 그 때까지만 해도 도저히 이게 으스스한 꿈일 거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낮은 상가 건물들이 레고 블록처럼 듬성듬성, 그러나 나름 질서있게 배치된 마을 한복판에 정사각형의 형태로 적당히 넓은 광장이 나 있었고 나는 그 정중앙에 서있었다.

 일반적인 꿈이 으레 그렇듯이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이상한 점 하나 느끼지 못한 채 그 곳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처음으로 이상하다 여긴 것은 별 볼 일 없는 광장 정중앙에 크기가 상당한 ATM 기계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더라는 거다. 나는 왜인지 그 앞에 서있었고 당연히 ATM기에 볼 일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런 생각보다 먼저 스치는 건 알 수 없는 위화감이었다.

 그 묘한 기분을 곱씹고있던 찰나 내 왼쪽에서 내가 모르는 여자가 한 명 내쪽으로 다가오더라. 배경이 외국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녀는 외국인 여성이었는데 굉장히 사교적이고 활기찬 말투로 내게 인사를 건네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서 말 걸고 그러는 편은 아니라 좀 당황스러웠는데 되게 친화력있고 목소리도 매력적인 분이라 기분이 좋아 얼떨결에 대답을 했고 어쩌다보니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처음엔 좀 부끄러워서 대답을 잘 않다가 한 번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니까 나는 어느새 신나서 대화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이름은 무엇이고 취미나 내가 잘 하는 것 등 나라는 사람에 대해 줄줄 읊기 시작했다. 원래 막 신나서 떠드는 성격은 아니긴 한데 이 여성분은 뭐랄까 이야기를 굉장히 잘 들어주시더라. 내가 뭔가 이야기할 때마다 맞장구를 치면서 반응을 하는데 내 말을 결코 흘려듣지도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이야기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서 계속 이야기하게 만든다고 해야되나? 그런 마력이 있더라.

 나는 높아진 텐션을 유지하려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떠들어댔고 그녀가 그 때마다 좋은 반응을 해주자 점점 내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꿈이라서 확실치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쉬지도 않고 30분 가까이는 떠들었던 것 같다. 급기야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않을 마음 속 깊은 비밀까지 털어놓았고 나는 만난지 한 시간도 채 되지않은 이 여성에게 마치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알고 지내던 죽마고우처럼 끈끈한 친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신나서 떠들고 있는데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녀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하는 동시에 무안함과 부끄러움을 크게 느껴서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말이 뭐랄까 나의 정곡을 쿡 찌르는 그런 말이었기 때문인데 섬찟한 것은 아직까지도 그 말의 문장과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내용이 뭔진 기억나지 않으나 추측컨대 내 마음속 가장 깊은 비밀, 내가 내 주위 모두에게 숨기고픈 나의 트라우마를 겨냥한 그런 말이었던 거 같다. 내가 내 주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을 그런 내용인데 아무리 나와 친근해졌다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나라는 인간을 분석하고 파악한 것도 모자라 그것을 그리 거리낌 없이 내 앞에서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하자 신나서 떠들고 있던 나는 굉장한 당혹감을 느꼈고 동시에 한 편으로는 “어떻게 알았지?”하는 신기함과 소름 돋음, 부끄러움, 무안함이 한 데 뒤섞여 그만 크게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 뿜어져나오는 웃음이 정말 1분 가까이 끊이지 않더라는 것이고 소름 돋게도 그녀는 옆에서 조용히 나의 폭소가 그치기를 묵묵히 기다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곳에 서있었다.

 내 웃음이 마침내 잦아들어갈 때 즈음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나는 한참을 웃느라 가빠진 숨을 들이키며,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헉헉대며 “네네… 뭐든 물어보세요.” 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에게서 돌아온 질문은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거에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음이 되었다. 웃음기가 싹 가시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녀와 한 시간 가까이 온갖 대화를 나눴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알아차린 사실은 내 시선이 그녀와 대화하기 전부터 바로 이 순간까지 앞서 말한 ATM기에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내 왼쪽에서 다가와 내게 인사를 건넸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그녀와 즐겁게 대화를 나눴으며 친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할 온갖 비밀을 다 털어놓았지만 단 한 번도 그녀가 있는 쪽을 돌아보지 않았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녀는 나와 친한 척 굴며 내게 질문을 해서 내 비밀을 모두 캐갔지만 내가 신나서 떠드는 동안 그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녀의 이름조차도. 나 역시 그녀에게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내 이야기만 했지만 그저 홀린 듯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한 채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에게 나에 대한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찰나의 순간에 깨닫고 나자 다시 한 번 소름이 돋고 두려움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고개를 완쪽으로 돌리는 순간 모든 배경이 암전되어 나는 꿈에서 깨고 그 곳은 또 다른 꿈이었다.

 배경은 밤이었고 내가 사는 아파트의 내 방이었는데 나는 내 컴퓨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앉아서 졸던 위치 왼쪽에는 창문이 하나 뚫려있다. 방금 꾼 꿈을 떠올리는데 왼쪽에 그 여자가 있었으니까 이끌리듯이 몸을 왼쪽으로 틀어 창문을 열고 반대편에 있는 아파트를 응시했다. 아파트의 옆 면(보통 동수가 적혀있는)이 내 시야에 들어왔고 그 옆면에는 현실이라면 그 위치에 존재하지 않을, 정확히 나와 같은 층 높이에 창문이 하나 나있더라. 창문은 불투명해서 안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안에는 오렌지색 전등이 켜져있었고, 어떤 형체의 실루엣 하나가 불투명 창문에 그림자로 모양을 드리우며 내 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긴 생머리의 여성의 형상이었는데 기이한 것은 사람이라기엔 두 팔이 무릎 아래까지 닿을 정도로 너무 길었고 손가락도 모양이 뒤틀려 있었으며 지나치게 뾰족했다. 그 형상은 내가 바라보자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3초 정도 나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창문의 시야 밖으로(정확히는 내 기준 왼쪽으로) 사라졌다. 곧 내가 보고 있던 그 방의 오렌지색 전등이 암전하더니 이내 나는 꿈에서 완전히 깨었다.

 고2 때 꾼 꿈인데 평생 살면서 꾼 꿈 중에 제일 생생했던 꿈이다. 깨고 나서 하루종일 이 꿈 밖에 생각 안 났을 정도로… 꿈이랑 해몽 같은 걸 딱히 믿는 편도 아니지만 꿈은 내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하니까 내 나름대로 생각도 해보고 해석도 해보고 그랬었다. 옛날에 괴담 갤러리인가 거기도 올렸었는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여기 갤에도 한 번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