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송강 정철이 이야기 - 전하, 신 정철옵니다 1 - 공포이야기 갤러리 (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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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나는 무섭다기보다는 그 목소리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화가 났다. 
마침 그때 내 방에는 보검이 있었다. 
용상에서 나와 보검을 꺼낸 뒤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미친듯이 칼질을 하면서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퍼부었다.
아마도 장난을 친 누군가에게(그게 사람이건 귀신이건 괴력난신이건)저주를 퍼붓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허공에 대고 칼을 휘둘렀을까,
문득 엄청나게 치밀어 올랐던 화가 사라지고 다시 공포가 밀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보왔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저 복도의 적막한 어둠만이 나를 삼키려는 듯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다시 헉헉거리다가 문을 세게 닫고 잠갔다. 그리고 보검을 손에 꼭 쥔체 용상에 앉아서 잠겨진 문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다시 올 것이라는 두려움과 무서움. 그리고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했던 일종의 악과 깡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은 알겠다.

여전히 승정원 승지와 내관은 도착하지 않았고, 나는 그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여전히 보검을 든 채 용상 위에서 덜덜 떨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로 그 때, 밖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후...



"전하!! 전하아아아아!!!!"



내관과 승정원 승지 정철의 목소리였다. 정철만이 아니라 내관의 목소리까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 이상한 목소리가 아닌 게 틀림없었다.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혹시 몰라 보검을 손에 움켜쥐고 달려나가 문을 확 연 나는 복도 끝에서 놀라서 주저 앉아있는 정철과 놀란 표정으로 덜덜 떠는 내관들, 그리고 무기를 앞세운 병졸들을 볼 수 있었다. 순간 눈물이 날만큼 반가움이 일었다.

 


"왜 이제야 왔느냐!! 너무 늦었지 않느냐!!!"

 


그러자 그때 주저 앉아있던 승정원 승지 정철이 갑자기 나한테 달려와서 내 뒤에 오더니 나를 끌고 궁궐 바깥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병졸들과 내관 역시 정철과 행동을 함께 하였다. 

다소 속절 없이 밖으로 끌려나온 나는 산 너머에서 솟아 오르는 해를 보고는 완전히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 모습에 날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게 한 정철과 내관, 병졸들도 내 뒤에서 털썩 주저 앉았다.

나는 그제야 내관과 정철에게 이야기를 건낼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전하! 당장 경복궁으로 가시옵소서!"


"... ...그대들도 봤는가? 뭘 보았는가?!"

 

 


직감적으로 신하들이 어떤 것을 본 것을 알았다. 정철은 보채는 내 목소리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온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 했다.

 

 

 

 


승정원에서 야근하던 정철은 내 명을 받고 내관을 따라 창덕궁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창덕궁 마당에 들어오자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냉기가 자신과 내관을 감쌌다고 한다.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탓인지 정철은 창덕궁의 병사들을 불러모아 내가 있던 방으로 황급히 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내 방 앞에 도착했고.... 


 

 

 ...거기서 봤다고 한다.


내 방문 바로 앞에서 떠있는 목을.

 

 


몸통도 없이 오로지 목만이 밑에 피를 뚝뚝 흘린 채 내 방문 앞에서 둥둥 떠있는 것을.

그리고 정철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얼마 뒤 문이 열리며 내가 뛰쳐나왔었다.

자기에게 소리 지르는 나를 바라보던 정철과 내관, 병사들의 눈에 둥둥 떠있던 목이 스르륵 움직여서

내가 있던 방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그래서 황급히 신하들은 나를 밖으로 끌고 나왔다고 한다. 

 






한동안 창덕궁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경복궁에 틀어 박혀 있었다.

신하들도 간만에 내가 정궁인 경복궁에 많이 기거하는 것에 대해 꽤나 반기는 눈치였다.

참으로 참담하게도 한 달이 넘게 창덕궁으로 무당들을 불러와 굿을 해야 했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괴력난신에는 괴력난신으로 극복할 수 밖에 없다면서 신하들이 제안했기에

결국 무당들을 궁궐 내에 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한 달이 지난 후 나는 창덕궁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내가 공포를 떨던 그 방의 문을 열어보았다.

 


내가 뛰쳐나오기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난 부리나케 신하들과 함께 용상을 가지고 도망치듯 나와서 창덕궁 내의 다른 방을 잡았다.



그 뒤로 왜놈들의 침입 때 창덕궁이 불탈 때까지 나는 그 방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말이지만 왜놈들의 침입 당시 창덕궁이 불탔을 때 그 방 역시 같이 불탄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 중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창덕궁 중건에 대해서도 그 방 만큼은 절대 복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 그건 뭐였을까?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지만,
궁금증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