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궁했던 대학생 민호는 오랜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었다. 괜찮은 조건의 집은 보증금이 너무 높았고, 싼 집은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러다 마치 기적처럼 완벽한 원룸을 발견했다.
넓은 방, 최신 리모델링, 세련된 인테리어에 심지어 샤워실도 새것이었다.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저렴했다.

“해외 출장이 2년 이상이라 급하게 내놓은 겁니다.”
집주인은 중년 여성으로, 얼굴을 보니 어딘가 피곤하고 말이 적었다.

“한 가지, 꼭 지켜주셔야 할 게 있어요.”
민호는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집 안에서 누가 ‘박씨!’ 하고 부르면, 꼭 ‘네!’ 라고 대답해주세요. 그거 하나입니다.”

이상했지만 민호는 계약했다. 조건이 너무나 완벽했으니까.

이사 후 일주일쯤 지나 샤워 중에 들렸다.
“박씨!”
여자 목소리였다. 벽 너머에서 들리는 듯한. 민호는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식사할 때도, 늦은 밤 게임을 할 때도 가끔씩 “박씨!” 하고 불리는 일이 있었다.
민호는 습관처럼 “네!” 하고 대답했고, 그럴 때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조건에 이 정도 수고쯤이야.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어느 금요일 밤.
민호는 친구 넷을 초대했다. 모두 집을 부러워하며 떠들고 웃고,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맥주가 떨어져 민호는 근처 편의점에 다녀왔다.

돌아오자 친구들이 창백한 얼굴로 짐을 챙기고 있었다.
“야, 뭐 하는 거야?”
“이 집... 안에 누가 있어... 누가 우리 뒤에서 계속...”

그제야 민호는 알았다. 오늘이 딱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 그거 그냥 이름 부르는 소리야. 내가 대답하면 돼.”

그때였다.
“박씨!”
익숙한 목소리였다.

민호는 술기운에 짜증이 올라와 대답하지 않았다.
“박씨!”
또 들렸다.
“아, 시끄러워... 왜 맨날 부르는 건데...”

그 순간, 불이 꺼졌다.
그리고 방 안 어딘가에서 천천히...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민호는 몸이 얼어붙었다.
“박씨...”
그 목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렸다.

돌아본 민호는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었다.

그 ‘존재’는 키가 천장까지 닿아 있었고, 흰자투성이의 눈으로 민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긴 팔이 천천히 민호에게 뻗쳐왔다.

“왜... 대답 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