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금요일 밤.
퇴근 후 친구들과의 약속까지 깨져버린 서진은, 괜히 차를 몰고 혼자 서울 외곽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요즘 유난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회사에선 부서 이동이 꼬였고, 얼마 전엔 이별도 겪었다.
마음 정리도 안 되는데 빗소리마저 감정의 구멍을 더 크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차 안에선 라디오가 흐르고 있었지만, 집중되지 않았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무심하게 말했다.
“서울 서부와 경기도 일대에서, 단독 운전 중인 여성 운전자를 노리는 수상한 범죄자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차량 도어 잠금과 주변 확인에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서진은 라디오를 껐다.
그리고 무심코 백미러를 한 번 봤다.
뒷좌석은 당연히 비어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계속 거슬렸다.
왠지 ‘거기에 무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기분.
비는 점점 거세졌고, 연료 경고등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외딴 도로변에 작은 셀프 주유소가 하나 보였다.
LED 간판에 ‘24시간 무인 운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변은 텅 비어 있었고, 거리 조명도 희미했다.
서진은 조심스럽게 차를 세웠다.
기름을 넣는 동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백미러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엔 희미하게 뒷좌석 창문에 ‘무언가’의 실루엣이 비친 듯했다.
빗물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 순간—
주유기 옆 모니터에서 갑자기 안내 음성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화면을 터치해 주세요.”
놀란 서진은 모니터에 터치했고, 결제를 마친 후 주유를 마쳤다.
그때, 주유소 안쪽 사무실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비옷을 입은 중년 남자, 아마도 주유소 관리인이겠지 싶었다.
그 남자는 뭔가 급하게 손짓을 하며 다가왔다.
입모양으로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세요… 안으로 오세요…”
서진은 당황했다.
왜 굳이? 그냥 기름 넣고 가면 되는데?
표정도 이상했다. 무표정인데 눈이 절박해 보였다.
그 남자가 점점 가까이 오더니,
갑자기 서진의 운전석 문을 벌컥 열고, 팔을 덥석 잡았다.
“이봐요! 차에서 내리세요! 지금 당장—”
서진은 비명을 지르며 그를 뿌리쳤다.
문을 닫고 미친 듯이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타이어가 물웅덩이를 튀기며 튀어 올랐다.
백미러로 보니 그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주유소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서진은 입술을 깨물며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숨이 가빴다.
방금 일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운전 중 옆 유리창에 무심코 시선을 돌렸을 때—
비친 창문 안, 뒤쪽.
흐릿한 얼굴 하나가,
차 안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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