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7월 말, 평일날 휴가를 낸다.
사람이 적은 바닷가에 혼자 다녀오는 게 내 나름의 여름 의식이다.

보통 강릉이나 양양 근처를 돌았지만, 올해는 좀 더 조용한 곳을 찾고 싶어서 삼척의 소을해변으로 향했다.
삼척역에서 내려 바닷가까지 이어진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식당들과 잡화점이 줄지어 있다.

그중 하나, 작고 조용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회덮밥을 시켰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다. 방학이 시작돼서 그런지 학생들도 꽤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한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과 초등학생쯤 되는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딱 보기에도 모녀 같았다.

별로 엿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아이 목소리가 또렷해서 귀에 다 들어왔다.

“엄마, 아빠랑 떨어진 지 얼마나 됐어?”

“…벌써 4년이지…”

여자아이는 잠시 말이 없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아빠, 외롭지 않을까? 나랑 엄마랑 계속 떨어져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대화였다.
아마 부모가 이혼했거나, 단신 근무 중인 듯했다.

나는 회덮밥에 다시마국을 떠먹으며,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계산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근데 엄마, 아빠는 저세상에서도 담배 안 끊었을까?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글쎄… 그래도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 즐거움은 있어도.”

저세상.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영수증이 바람에 날려도 줍지 못했다.
그제야 아, 이미 세상을 떠났구나 하고 알아챘다.

다 잊고 싶어 바닷가로 향했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샀다.

백사장 한가운데 파라솔을 펴고 앉아, 캔을 따고 첫 모금을 넘기며 생각했다.

“역시 바다, 좋다…”

그러고는 금세 아까 그 모녀 이야기는 잊었다.
파도 소리, 햇빛, 짠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문득 옆을 봤는데,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아까 그 모녀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녀 옆에는 낯선 중년 남자가 같이 있었다.
분명 식당에선 둘뿐이었는데…

‘재혼했나…? 아니면 그냥 친척?’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셋은 보기 좋게 웃고 있었다.
정말, 딱 가족처럼.


모녀는 손을 잡고 튜브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

백사장엔 중년남자 혼자만 남아 있었다.

보고있자니 돌연 이상한 상상이 들었다.
그러자 강렬한 햇빛에도 불구하고 오한이 나고 소름이 돋았다.

'호... 혹시 이 남자...
죽은 남편인가?'

나는 조심스레 곁의 남자를 보았다.
남자도 내쪽을 보고 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무심코 소리를 냈다.
눈앞의 그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포복 자세로 모래 위를 기어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와… 오지 마… 제발…’

속으로 아무리 빌어도, 남자는 멈추지 않고 내 앞까지 기어왔다.
내 심장은 곧 터질 듯 뛰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불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뭐?

나는 얼떨떨한 채로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살도 있고, 땀도 흘리고 있었다. 유령처럼 투명하거나, 썩은 기운은 없었다.

나는 지포 라이터를 꺼내 담배 끝에 불을 붙여주었다.
남자는 담배를 깊게 빨고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긴장이 풀리자, 우리는 어색한 잡담을 주고받게 됐다.

“이렇게 혼자 바다에서 쉬는 거, 참 좋네요.”



“그렇죠. 뭐… 편하긴 한데, 가끔은 친구들이랑 함께 왔으면 싶기도 해요. 아, 근데 그쪽은 가족이랑 같이 오셨나 봐요? 부럽네요.”



남자는 갑자기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표정이 바뀌었다.
눈이 점점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는, 기어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과 함께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장난이라면 불쾌하군요. 아내와 딸은 죽었습니다. 딱 4년 전 오늘, 이 해변에서요.”



심장이 뚝,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야. 분명 방금 전까진… 곁에…’

그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남자가 앉아 있는 모래밭 아래 깔려 있던 돗자리가 사라져 있었다.
가방도, 파우치도, 파라솔도 없다.

오직, 남자 혼자만 모래 위에 맨 엉덩이로 앉아 있다.

그 눈동자가, 아직도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던 몸을 급히 일으키고,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모녀… 어디 간 거지?’

백사장에는 가족 단위로 물놀이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모녀만 따로 떨어져 헤엄치고 있는 가족은 없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 남자 쪽을 바라봤다.
없었다.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눌린 자국과 담배 꽁초 한 개만 남아 있었다.

설마, 그 모녀가 귀신이었던 걸까?
아니야, 내가 대화를 들었다.
생생하게. 거짓이 아니다. 귀신이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맥주를 다시 들었다.
그러다, 정신없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일주일 후,
그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삼척시립도서관에 가서 4년 전 지역 신문을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뭔가 확인하고 싶었다.

바닷가에서 사고가 났는지, 교통사고였는지, 단순 익사인지…

하지만 예상 밖의 기사 한 줄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201X년 7월 26일자 삼척일보 / 사회면]

"모녀, 해수욕장 근처 민박집서 식칼에 찔려 잔혹하게 살해…
현장 인근 나무에선 남편의 목을 맨 시신 발견.
경찰은 사건의 동기와 가정폭력 여부 등 조사 중…"


기사 옆에는,
어김없이 세 사람의 증명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바로 그들이었다.
내가 식당에서, 바닷가에서 마주친 그 사람들.

나는 본능적으로 사진 위에 손을 얹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부터는 소을해변엔, 절대… 가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