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과 민석은 같은 동네에 사는 단짝이었다. 둘은 방과 후면 집 근처 골목을 누비며 장난치고, 가끔은 ‘담력 시험’ 같은 것도 즐겼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폐가가 있었다. 수년 전 불이 나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도, 여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도 있었다. 대문 앞에는 대충 엑스자로 쳐놓은 나무 작대기들이 입구를 막고 있었지만, 형식적인 막음이었다.
“야, 한 번 들어가 보자. 겁도 없냐?”
“들어가자고? 뭐가 있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민석도 흥미가 없진 않았다. 결국 둘은 웃으며 대문을 넘었다. 현관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고, 집안은 먼지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어두운 느낌이었지만, 대낮이라 그런지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이 방엔 뭐 있냐?”
“별거 없네. 쓰레기뿐이야.”
그러다 다른 방에서 그을린 수건을 발견했다. 민석이 물었다.
“이거... 누가 불을 낸 거야?”
지훈이 대답했다.
“그 여자. 세상을 떠난 여자라며? 그 여자가 남긴 흔적일 거야.”
순간 민석은 눈이 커졌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문 쪽을 돌아봤을 때,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문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들을 내려다봤다. 두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집을 뛰쳐나왔다. 폐가를 넘고, 달리고 또 달려 어느 골목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야… 그거 뭐야?” 지훈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몰라…” 민석이 답했다.
“이상한 냄새 안 났냐?”
“…응. 났어. 탄내.”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그 냄새가 그 여자의 정체를 말해주는 단서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민석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겨우 잠이 들었을 땐, 악몽을 꿨다. 그 폐가에 불이 나고 있었고,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그 불 속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 탄내가 퍼졌다.
며칠 후, 학교. 방과 후 지훈과 민석은 복도를 함께 걷고 있었다.
“야, 나 교실에 두고 온 거 있어서 금방 다녀올게.” 지훈이 말했다.
민석은 혼자 복도에 서 있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교실 쪽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아! 뭐 하는 짓이야?!”
학생들이 몰려가자, 그곳엔 지훈이 교실 쓰레기통에 불을 붙이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선생님은 놀라며 급히 불을 껐다. 아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지훈은 울며 말했다.
“그 여자가… 자꾸… 자꾸 불을 붙이라고 해… 붉은 옷 입은 여자가 말이야…”
그날 지훈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며칠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며칠 후, 민석은 지훈이 할머니 댁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던 민석은 등 뒤에서 시선을 느꼈다.
돌아보니,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인터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문 열어주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다시 돌아보니 그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모처럼 회를 먹었다.
“엄마, 탄내 나.”
“기분 탓이야.”
“아니, 진짜야. 탄내가 난다니까.”
그때 전화가 울렸다. 엄마가 받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여보, 어머님 댁에 불이 났대요.”
다행히 큰불은 아니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무사했지만, 민석은 확신했다. 다음은… 나일지도 모른다.
며칠 후, 민석은 밤늦게 만화책을 보다가 기지개를 켰다. 베란다 문을 열고 바람을 쐬려던 순간,
그 여자가 있었다. 거리 건너에서,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을 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탄내가 다시 풍겨왔다.
민석이 식당으로 달려가 보자, 가스레인지 근처에서 불꽃이 일고 있었다.
부모님을 깨우고, 119에 신고했다. 소방차가 와서 겨우 불을 껐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밖에 나와 구경하고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그때 민석은 다시 느꼈다.
시선.
사람들 사이, 그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또 서 있었다.
민석은 무작정 그녀에게 달려갔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아갔지만—
그녀는 없었다.
민석은 문득 생각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 불이 나는 걸 보고 웃고 있지? 남의 집이 타는 게 그렇게 재밌나?’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자신도 그랬다.
폐가에 들어가고, 웃고, 장난처럼 여겼다. 그녀의 아픔을, 고통을, 비극을.
이제서야 민석은 그녀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붉은 옷을 입은 여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