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 편돌이다. 도시 외곽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나는 일자리 찾는 데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왕이면 하던 일을 하고싶어 편의점 알바를 찾아보다가 지원해 합격한 곳이 이곳이다. 주변은 시내버스 종점 터미널과 군부대가 있었는데, 사람도 없어 일도 널널해 보였다. 물론 버스를 조금 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그 단점을 상쇄해 준 것이 월급이었다.
종점에 오자 버스엔 나만 남았다. 멀리 동떨어져 있는 커다란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다. 걸어도 걸어도 도무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람도 없고, 간혹 버스나 자가용이 왔다갔다 했지만 그 외에는 조용했다.
‘왜 이렇게 외딴 데에다 지어놓은 거야?’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나는 유행가가 들렸다. 이상하게 카운터가 비어 있었다.
“계세요?”
인기척은 없었다. 점장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그때 카운터에 놓여있는 쪽지와 업무복과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단 옷을 갈아입고 쪽지를 집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면접 진행했던 점장입니다. 급한 일이 생겨 오늘부로 편의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민찬씨 교육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그래도 편의점 알바를 여러군데에서 오래 하셨으니 어려운 점은 없을 거예요. 아시다시피 저희 편의점 근처엔 군부대와 허허벌판 밖에 없습니다. 민찬씨가 일할 야간 시간대에는 손님이 거의 없으니 한가할 땐 원하는 것을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주의하실 점 몇 가지가 있는데요. 서랍에 안전 수칙 지침서가 있는데, 반드시 숙지 후 근무해주세요.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모든 수칙을 지키기만 하면 무사히 퇴근할 수 있습니다. 익숙해지다보면 괜찮아질겁니다. 이만한 일도 없어요.’
하마 편의점 안전 수칙 지침서
1. 김밥과 우유 한 컵을 반드시 먹고 근무를 시작해 주세요. 속이 좋지 않더라도 드셔야 합니다. 한 입이라도 먹어야 합니다.
2. 단 한 순간도 졸아선 안 됩니다. 졸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미 늦었습니다.
3. 우리 매장에는 단종된 물건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포스기로 재고 확인 시 0이 뜨는 것이 정상입니다.
4. 붉은 막대 아이스크림이 가득 찬 냉동고는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해 주십시오. 냉동고에서 악취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착각이니 무시하십시오.
5. 옛날 군복 복장의 군인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맡긴 물건 찾으러 왔다고 할 겁니다. 그때, 붉은 아이스크림이 가득 찬 냉동고에서 검정색 봉투를 찾아 건네세요.
6. 저녁에 공병을 팔러오는 군인이 있습니다. 반드시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그는 항상 마스크를 낍니다. 마스크가 피로 물드는 것을 목격할 경우 눈을 감고 숨을 참으십시오.
7. 물류는 새벽 4시에 들어옵니다. 외부 CCTV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물류 차량은 하얀색입니다. 만약 까만색 트럭일 경우, 바로 매장 문을 잠그십시오. 까만 옷을 입은 기사님께서 아무리 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무시하십시오.
8. 퇴근 전, 카운터 왼쪽에 있는 거울을 보십시오. 거울 속 당신이 기괴하게 웃거나 울 경우 거울을 깨트린 후 포스기 아래에 있는 버튼을 네 번 누른 후, 엎드린 채 기다리십시오.
위 규칙만 잘 지킬 경우, 아무런 문제없이 근무할 수 있습니다.
‘별 희한한 걸 다 보네….’
배가 고프긴 한데 별로 당기진 않는다. 이따 먹기로 하고 일단 빈 물건들을 채우려 매장을 한번 쓱 훑어봤다.
정말 예전에나 팔았을 법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우주선 라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사과 맛 뻥튀기 과자….’
비어 있는 상품을 포스기에 찍었다. 이상했다. 라면 두 개는 재고 0이 뜨는데, 과자는 999+가 뜬다.
안전 수칙 지침서를 꺼냈다.
‘포스기로 재고 확인 시 0이 뜨는 것이 정상입니다.’
재고들이 쌓여있을 창고로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우주선 라면이었다.
분명 재고가 없었는데….
어디를 찾아봐도 뻥튀기 과자는 보이지 않았다. 과자를 들고 아까 갔던 코너로 향했다. 그런데 사과 뻥튀기가 있던 자리가 사라졌다.
분명 와클 과자 옆에 있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지?
‘딸랑’
첫 손님이다.
“어서오세요!”
인사를 하자마자 나는 헛구역질을 할 뻔 했다. 썩은내가 코를 찔렀다.
일단 카운터로 달려갔다.
카키색 옛 군복 차림의 군인이 서 있었다.
씻지 않았는지 머리는 잔뜩 떡이 졌고, 어린 티가 나는 뺨엔 코피가 말라붙은 자국이 있었다.
“물건 찾으러 왔는데요.”
군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내 지침서 속 그 군인인 듯 하다. 냉동고로 가야했다.
붉은 막대 아이스크림은 빽빽하게 냉동고를 채우고 있었다. 뒤적거리자 바스락 소리가 났다.
까만 봉투를 건네자 그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딸랑’
손님인가 했지만 사람은 없었다. 문득 한기가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지금은 6월이다.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달려있던 종이 춤추듯이 흔들렸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 앞에 있던 볼록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나와, 아까까지 없던 존재들이 서 있었다.
카운터로 달려가 포스기 아래에 있는 버튼을 네 번 눌렀다. 거울 속 내가 웃거나 울면 그렇게 하라는 지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저기요, 계산 좀 해 주세요.”
귀는 막았지만, 사람 목소리는 들렸다. 나는 안도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아직 김밥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