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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클로드 엘레나의 후계자, 크리스틴 나겔은 어떻게 향수를 만들노? 2021년 디 엣지에 실린 인터뷰를 보자. H24를 막 출시했을 때였다.




ㅇ 어쩌다 조향사가 됐음?

나는 이탈리아인 어머니를 둔 스위스인이야. 그라스 출신도 아니고 향수계와 상관 없이 자랐어. 제네바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하고 취직한 첫 직장이 페르메니히였어. 물질을 크로마토그래피 분석기에 돌려 분자 구조를 분석하는 직업이었지.

그런데 그 회사의 향기 부서에 골 때리는 아저씨가 있었어. 늘 젊은 여직원들에게 자기가 만든 시범작을 맡아보라고 하고 다녔지. 그런데 그 여직원들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고, 연구실 창문 안에서 지켜보던 나까지 기뻤어. 그때 난 알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저 직업이 나한테 맞겠다고 확신했어.

그때부터 조향사가 되기 위해 계속 배우고, 실험하고, 지식을 쌓았어. 회사 다니면서 공부를 따로 했으니까 정말 열심히 했다고. 창문 밖 멀리에 보인 그 멋진 순간이 내 인생에 영향을 줬지. 그 골 때리는 아저씨는 알베르토 모리야스였어.




ㅇ 네가 만든 남자향수는 다 좋더라. 여성 조향사라서 더 유리한가?

당연히 아님. 조향사에게 성별 차이는 없고 단지 감수성과 스타일, 시그니쳐의 차이만 있어. 조향사마다 특유의 질감이 있는 뭔가가 있잖아. 그게 시그니쳐야. 특히 나는 천연 원료를 거의 안 쓰거든. 분자 수준까지 분해한 에센스를 가지고 미니멀한 향수를 만들어. 거기서 나온 게 남자향수인지 여자향수인지 나는 그런 식의 구분을 안 해.




ㅇ 조향할 때의 과정과 단계를 알려줄 수 있음? 마늘이나 고추 같은 강한 맛의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트루임?

창작은 정해진 과정을 따르는 일이 아냐. 오히려 필요에 의해 나오는 거야.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형태를 부여하고 싶어지지 않겠어? 아이디어는 책을 읽거나 뭔가를 보거나 하면서 얻곤 해. 아이디어는 어디서든 얻을 수 있어.

난 2014년부터 에르메스에서 일했어. 여기가 좋은 점은 아이디어를 아무렇게나 떠올릴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는 거야. 또 풍부한 역사가 있기에,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소스가 무한히 널려있지. 그 아이디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오히려 힘들 정도야.

일단 아이디어 하나를 확정하면, 향기의 형태를 만들고, 후각적 구성표를 만들어. 개인 작업으로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거지. 그 다음엔 이곳 사람들과 공유하고 지지를 얻어. 에르메스는 인간적인 공유를 매우 중시하는 회사야. 그래서 좋지.

그리고 마늘과 고추는, 후각에 미치는 효과가 일시적이야.




ㅇ H24 여자가 써도 됨? 너무 빡세지 않을까?

물론이지. 누구나 어떤 향수든 대담하게, 스스로를 믿고 쓰면 돼. 다만 하루나 일년 중 특정한 시간에 필요한 향기를 잘 고를 필요가 있고, 개인적 또는 직업적으로 어울리는 향기인지는 고려해 봐야 해.




ㅇ 합성향인 스클라렌을 넣었던데, 요즘 트랜드가 합성향인가?

천연과 합성의 차이 문제는 아냐. 직물에 비유할 수 있겠네. 실크, 울, 리넨, 면만 사용하는 재봉사가 있다고 치자. 다 천연 소재지. 소재에 따라 옷의 홀드감, 볼륨, 라인이 다를 거야. 한편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 소재는 또 다른 리듬, 진정한 현대성, 천연과 다른 드레이프와 느낌을 주지.

그냥 그런 차이일 뿐야. 향수계도 새로운 원료를 추출하는 기술과 새로운 향기 분자, 새로운 지식과 분석 설비로써 향기를 디자인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어. 이게 트랜드냐고? 트랜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ㅇ 그렇지만... 향기는 언제나 기억을 자극하잖아? 스클라렌 외에, 개인적인 기억의 향기를 쓰진 않음?

조향이 내 직업이니까, 난 하루 종일 향기를 맡아. 그래서 향기와 관련된 기억이 많은 건 당연하지. 그 중 행복한 추억을 뽑아 쓰고 있어.

어린 시절에 나는 이탈리아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쓰는 보로탈코 파우더 냄새를 좋아했어. 그게 내 기억에 새겨진 최초의 냄새 중 하나야. 더 기억에 남는 건 할머니가 핸드백을 열었을 때 풍겨 나오던 향이야. 파우더 같은 달콤한 향이었어. 그 당시 모든 여성들은 파우더를 사용했지.

에르메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에르메스의 첫 여성 향수인 오 데르메스가 똑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됐다는 걸 알게 됐어. 그 전설적인 향수도 여성용 핸드백 안쪽의 향에서 영감을 얻었다더라.



ㅇ 에르메스의 전임 수석조향사이자 선배인 장 클로드 엘레나로부터는 뭘 배웠음?

시간을 내는 것. 향기를 맡고, 선택하고, 느긋이 생각하고, 창작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 이 시간은 에르메스가 우리에게 너무나 관대하게 준 것이기도 해. 매일 감사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놀라운 사치이지. (*태우의 주석- 에르메스의 조향사와 디자이너들은 근무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음. 한 달 내내 출근 안 해도 월급 받음)




ㅇ 에르메스가 너한테 준 직함은 향기의 화가잖아. 향기를 어떻게 그리나?

향기 자체는 그저 냄새일 뿐이야. 완전히 향기가 되려면 다른 노트가 주는 대조와 뉘앙스가 있어야 해. 나는 서로 다른 노트들이 서로를 풍요롭게 해주는 향기를 연출해. 나는 내가 만드는 각각의 향기로 인생을 그린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그림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 나는 조향사의 코를 팔레트라고 생각해. 그리고 향수 원료를 재료로 보지 않고 물감이라고 생각하지.



ㅇ 조향사가 되지 않았으면 뭐 했을 거 같음?

내가 비록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지금과 다른 곳에 있는 건 상상할 수가 없네. 이 직업을 가지고 이 하우스에 있는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올바른 자리에 있는 거라고 강하게 느껴서, 내가 다른 일을 한다는 상상은 할 수가 없어.




ㅇ 다음 향수에 대해 이미 생각해둔 게 있어? 힌트 좀 줄 수 있음?

다시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내 연구실은 스케치와 데생으로 가득한 화가의 아뜰리에와 같아. 내 향수는 나중에 구체화하기 위해 이미 모두 준비되어 있지. 하지만 힌트를 줄 수는 없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달콤해지면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