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편



1. 박사의 체스판과 최종목적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610720



2. 상대 기사의 체스판과 계략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641508



3. 명일방주의 주제와 아미야의 상징성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705389



4. 켈시의 의의와 체스의 종반전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821839



5. 성경과 명일방주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887414



6. 프리스티스와 마왕의 능력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931719



7. (짤막 분석)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978567






목차



上편



0. 제목없는 세계


1. 탈룰라 아트리아스


2. 이노


3. 아미야와 운명의 노예


3.5 바깥 세계?



下편



4. 해묘의 체스판


5. 유저의 체스판


6. 명일방주의 최종 결말







드디어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본인이 지금까지 분석해온 내용들을 총합해서 결말이 과연 어떤 형식일지,


그 과정은 또 어떨지 분석해보았다.




분량이 상당히 길어진 관계로 상, 하편으로 나누도록 하겠다.



되도록이면 이전편들을 숙지한 상태로 읽기를 권장하며,



이 글은 오직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므로 몇몇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해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린다.




요약은 있으나 자세한 내용과 본인이 독자에게 의도한 구성을 제대로 전달시키지 못하므로


되도록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기를 권장한다.









0. 제목없는 세계








"난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가고 싶어."




프로스트노바가 사망 직전 내뱉은 희대의 명대사.


어째서 그녀는 이전까지 로도스 아일랜드와 맞서 싸웠으면서 이런 상반되는 발언을 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이 프로스트노바의 개인적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명일방주에서는 굉장히 복잡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현실 세계를 은유하는 방식으로 여러 국가, 이념, 문화, 환경, 도덕, 단체들을 녹여내고 있는 것이 그것.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은 가지각색이지만 그런 인물들에게도 표면적인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욕망을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개인적 욕망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목적과 일치하여 조용히 내면에 숨어있을 수도,


혹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목적을 도저히 거스를 수 없어서 그와 상반되는 개인적 욕망을 표출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 중 프로스트노바는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결과적으로, 프로스트노바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불태운 설괴소대원들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대원들의 행동이 오히려 프로스트노바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끝내는 죽음로 몰아넣었다.




왜냐하면 이후 그녀는 대원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는 표면적인 목적을 내세우며 로도스 아일랜드와 맞서 싸웠지만,


실상은 그런 족쇄를 모두 벗어던지고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가고 싶다는, 그런 개인적 욕망을 가진 소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챕터 6은 굉장히 기념비적이다.



가히 비극이라 할 수 있는 프로스트노바의 서사운명, 개인적 욕망, 아이러니함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데,


이는 명일방주의 전반적인 서사에 깔려있는 핵심 요소들을 모두 적극적으로 드러낸 최초의 챕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에 아미야편에서 공존과 화합은 서로간의 대화에서 나온다는 식으로 언급했던 바가 있다.


프로스트노바가 박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 덕분에 자신이 바라던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으로서 죽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의미가 깊다.








비단 프로스트노바만이 아니다.






노골적이고 꽤 극적으로 밝혀진 두 예시를 들자면,




그녀의 아버지 패트리어트는 절대 함락되지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보여지지만,


실은 테라의 파멸에 일조하면서까지 딸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그런 개인적 욕망으로 자신의 오랜 신념과 대의마저 굽힌 아버지에 불과하다.





켈시는 많은 지식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서 로도스 아일랜드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비범한 존재로 보였지만,


실은 박사에게 원한을 품고 따로 복수를 하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을 가진 인물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이는 그 외 탈룰라, 첸, 메피스토, 로즈몬티스, W, 웨이옌우 작중 모든 이들에게도 적용되는 사항이다.



이들도 모두 개인적 욕망을 가지고 그걸 위해 움직이거나, 이룰 수 없는 것을 알아도 잊지못하고 마음 속에 계속 감춰둔다.











그렇다면 니어와 같은 괴리적인 분위기의 SD 모션도 그걸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이 괴리감마저 느껴지는 SD 모션이, 실은 그녀의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평소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쾌활한 면모


기사라는 족쇄때문에 억지로 감추고 있어야 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렇듯 굉장히 복잡한 세계인지라 한 가지 제목으로 정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런 세계 안에서도 한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국가, 이념, 도덕, 윤리, 선악 등



인간이 만든 껍데기 따윌 제외한 진정한 본질을 보면, 그 대상이 아무리 신이나 악마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로 보일지라도,


실상은 동심처럼 순수한 개인적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집착할 뿐인 지극히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무언가에 집착하고, 그 무언가에 속박되어 자유롭지 못할 운명이란 건,


어쩐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조차 그저 남일 같지가 않다.




그렇기에 혐오스럽거나 초월적인 존재로 보여지는 해사들도


그저 배고프면 먹고, 공격당하면 도망치거나 반격할뿐인 그런 평범한 생물체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미야가 가진 개인적 욕망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바이올린.


어쩌면 이것이 아미야의 개인적 욕망을 상징하는 물건일 수도 있다.


바이올린은 아미야를 옥죄는 족쇄들 중에서 가장 상관없어 보이는 물건이기에.




이것도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는 물건이긴 하겠지만,


결말까지 분석해본 결과 바이올린은 개인적 욕망보다는 다른 상징적인 장치로 쓰이기 위한 것이었으니 조금 애매하다.





그렇다면 그 이외에 개인적 욕망이라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박사님은 계속 저의 곁에 있어주시겠죠."




2부 PV의 숨겨진 암호들을 풀어나간 끝자락에서 들을 수 있는 아미야의 대사.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이 실린 듯한 목소리,


지금까지의 여러 대사를 통해 어쩌면 이것이 아미야의 개인적 욕망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미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무거운 족쇄들 뿐이지만,


그런 아미야에게도 박사와 함께하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만큼은 가지고 있다는 것.




프리스티스편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테레시아를 비롯해 아미야가 박사에게 가진 무한한 신뢰도, 사실 초대 계승자인 프리스티스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테레시아는 몰라도 적어도 아미야만큼은 능력을 계승받기 이전부터 박사에게 여러 가르침을 받았고,


그 순간을 기억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박사와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


프리스티스에 의한 것보다도 아미야만의 개인적 욕망이 더 컸을 가능성이 높다.





즉, 아미야는 공존과 화합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막강한 힘과 권력을 손에 쥔 비범한 존재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박사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한, 그런 순수한 개인적 욕망을 가진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미야에게 있어 모든 것을 해내는 박사는 분명 특별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자신을 끔찍한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구세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박사는 아미야가 집착하는 것이 이해될 정도로 정말 특별해 보인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모두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으며, 훌륭한 지도자의 모범으로 보일 정도로.




실상은 그런 박사조차도 과거에 얽매어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고 싶다는,



게다가 그 너머에 존재하는 우리들 유저조차도 그저 유희를 즐기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싶다는,


그런 개인적 욕망을 가진 평범한 존재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래도 아미야에게 자신만이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또 한편으론 씁쓸하다.



왜냐하면 탈룰라가 그랬던 것처럼, 아미야의 미래에 일어날 끔찍한 참사가 사실은 아미야의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1. 탈룰라 아트리아스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명일방주 1부에서의 최종보스이자 아미야의 거울이라는 위치에 서 있는 인물.



즉, 아미야가 중심이 되는 주제곡에서의 서브 주인공에 해당한다.





카셰이에 의해 그 밑에서 강제로 길러진 탈룰라는 그에게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만들어낸다.




그 신념에 반하는 카셰이를 개인적으로 용서할 수 없었기에,


탈룰라는 스스로 감염자가 되어 그를 살해하는 업보를 짊어지고, 본격적으로 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리유니온이라는 감염자들을 위한 조직을 창설하고 그녀보다도 강한 무력을 휘하에 두는 등 주변에는 점차 사람이 모여든다.



확실한 비전이 있었고 그만한 카리스마와 리더쉽이 있었기에 가능한 업적.




분명히 탈룰라는 훌륭한 지도자이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것은 감염자를 위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에 있다.



그 신념이 탈룰라를 리유니온의 리더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탈룰라를 무너뜨린 것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신념이었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더 쉽게 타락해버린다."





첸 더 홀룽데이의 대원 상세 기록에서 등장한 호시구마의 한 마디.



이를 탈룰라에게 대입해보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 되긴 하지만,


줄기가 굳셀수록 버틸 수 없는 일정 이상의 충격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잘 휘어지는 연한 수풀보다도 단단한 나무가 강한 바람에 더 쉽게 부러지는 것처럼.





탈룰라가 카셰이를 살해한 것은 자신의 신념에 반하기 때문이었고,


작품의 주제를 생각해보면 신념과는 별개로 원한이라는 개인적 욕망이 작용하여 우발적으로 행한 것일 가능성도 크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이것은 업보라는 형태로 다시 돌아와 탈룰라를 크게 상처입힌 것은 분명하다.





탈룰라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일절의 의심도 없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잠깐 흔들리고만 마음의 틈을 이용해 카셰이가 힘을 행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손쓸 방도가 없었다.




탈룰라가 진심으로 카셰이를 막고자 했다면 괜찮았을 것이란 아미야의 발언은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 진심이란, 탈룰라가 가진 올곧은 신념에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은 상태를 뜻한 것이었으니까.





그야 당연하다.


정말로 탈룰라가 그러한 참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의로 일으킨 것이라면


탈룰라가 체르노보그를 멈출 열쇠를 온전하게 보전한 것과, 카셰이가 그런 탈룰라의 의지를 완전히 없애려고 하진 않았을테니까.





그러나 만약 탈룰라가 자신의 신념을 내세워 카셰이를 살해하지 않았다면, 체르노보그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카셰이에게 끌려온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겠지만, 카셰이를 살해한 것은 분명 자신의 의지였다.




심지어 자신의 신념으로 일구어낸 리유니온이라는 집단은 그저 체르노보그를 습격한 테러 조직으로 전락하면서


그 조직이 끝내는 감염자를 향한 증오를 더욱 부추겼다는 점은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결과적으로 감염자를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신념이, 사실은 감염자를 더욱 배척시키는데에 일조한 것이었다는,


그런 씁쓸하고 아이러니한 결론으로 리유니온 리더로서의 탈룰라는 매듭지어진다.





즉, 탈룰라는 명일방주의 시작부터 무언가 거대한 악이나 숙적과 같은 거창한 존재로 보여졌지만,


실상은 그저 자신의 신념에 스스로 무너져 카셰이에 의해 타락하고만, 그런 흔한 몽상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탈룰라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다행히 로도스 아일랜드가 우연히 마주쳐 해결해주었기 때문에 감염자를 향한 증오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심해지진 않았고,


원래라면 첸만 왔어야할 자리에 아미야가 와준 덕분에 첸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간신히 자신의 신념에 다시금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자신의 신념 혹은 개인적 욕망에 배신당해 지금껏 세상을 향해 태워온 불꽃은 재가 되어버리고,


남은 것이라곤 스스로 감염자가 된 자신의 더러운 몸뚱어리와, 그런 자신을 향한 온갖 멸시뿐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었지만.




신념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지만, 동시에 삶을 척박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탈룰라는 신념 자체를 품지 말아야했던 것일까?




탈룰라는 그저 이룰 수 없는 헛된 신념을 자신의 삶으로 허비한 것에 불과했을까?













"



아미야, 위대한 영웅들의 죽음은 마치 산사태와 같다.


그들이 무너지면서 남긴 것들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이미 타락했거나, 반드시 쇠망할 것이다.


아미야, 난 허울뿐인 것들은 믿지 않아.


고상한 몸뚱어리 안에서 비열한 심장이 뛰고 있고 졸렬한 거짓 아래 풀지 못한 난제들이 묻혀있다.


아미야,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될 운명이다.


우리의 운명과 상처는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고, 이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이다.


아미야, 지키는 자는 해를 끼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얻는 것은 본래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해가 되는 것을 피하고, 이익이 되는 것을 쫒아간다.


생명은 이기적이고 무정하다.


아미야, 시련, 공허함, 좌절은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한평생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자들이다. 해왔던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


아미야, 누군가를 바꾸려면, 그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믿음을 주고, 그 믿음을 파괴해버린다면, 이런 자는 무엇으로도 구해낼 수 없다.


다만, 아미야, 내가 말한 이 모든 것들...... 너라면 모두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몰라.


예측하고, 준비하고, 견뎌낼 수 있다면, 불행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미야, 이 세상에 '운명'이란 건 본래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다.




"




확신은 하지 않지만, 나는 이것이 탈룰라가 아미야에게 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셰이의 그늘에 가려진 채 빛을 보지 못할 운명이었던 탈룰라를 구해준 것은 아미야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미야는 운명을 이겨낼 수 있는 무언가 거창한 존재로 보였을 것이고.



그렇기에 운명에 굴복한 자신과는 달리, 아미야라면 다가올 운명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로 탈룰라의 행보는 아미야의 행보와 굉장히 유사하며,


PV에서 탈룰라가 겪어온 삶과 함께 등장하는 이 대사는 마치 겪어본 자가 이제 겪어볼 자에게 조언하는 듯한 구도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대사가 탈룰라가 맞다는 가정 하에 알 수 있는 그녀의 생각은,


자신의 실패한 삶이 아미야에게는 반면교사가 되어 부디 끝까지 운명에 굴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욕망이라는 작품의 핵심을 통해 본질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이는 자신의 삶이 누군가가 딛고 올라갈 발판으로라도 큰 가치가 있었으니 자신은 성공한 삶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은,


그런 자기합리화로 범벅된 개인적 욕망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탈룰라도, 거기에 W도 그렇고, 테레시아와 켈시까지,


모두들 아미야를 대단한 존재로 인식하거나, 반드시 대단한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큰 기대를 건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지 않은가.




아미야도 결국은 그 나이에 걸맞는 개인적 욕망을 가졌지만,


원치않게 큰 힘과 책임을 짊어져버린 평범한 여자아이에 불과하다고.







2. 이노








"갈등이란 양쪽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절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해묘가 설계한 서사의 예시를 하나 더 보여주자면, 메피스토가 있다.





메피스토의 전반적인 서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주제




폭력이 평범했던 한 사람을 얼마나 잔인한 존재로 뒤틀어버릴 수 있는가이다.




그렇게 탄생한 악마와도 같은 메피스토조차도 실상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환경으로부터 정립된 개인적 욕망으로 움직이는 평범한 존재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보자.




우선 메피스토는 기억상실된 범죄자라는 소재를 통해 여러 찬반양론이 오갈 수 있으며,


이는 유저들이 켈시의 입장을 이해해볼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다.





해묘는 우르수스의 아이들을 통해 의도적으로 메피스토에게 증오를 느끼게끔 구성하고서


8 챕터에서 켈시가 박사에게 기억상실된 메피스토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묻는 장면을 삽입하였다.




이는 켈시 입장에서는 과거에 만행을 저지르고 기억을 잃은 현재의 박사에게,


"박사, 내가 널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라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메피스토와 박사는 과거가 어두운 기억상실자라는 같은 처지이며,


유저들이 메피스토에게 느끼는 증오켈시가 박사에게 느끼는 증오와 다를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켈시는 지금의 박사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하고 있다.



애쉬가 말하지 않았던가, 갈등이란 양쪽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절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아이러니하게도 메피스토는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공존과 화합이라는 작품의 주제와는 동떨어져 있었지만,


마지막에 와선 박사와 켈시의 공존과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존재로서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동시에 메피스토의 존재는 아미야의 사상과 작품의 주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보여준다.




아미야의 사상과 작품의 주제대로 정말 공존과 화합을 위한다면 증오를 거두고 메피스토조차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미야와 켈시를 제외하고서 과연 몇이나 될까?




이는 작품의 주제인 공존과 화합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 것인지 메피스토의 서사를 통해 보여준 셈이다.



거기에 이후 켈시의 대사로 자신들도 또다른 악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덤.




결론적으로 메피스토는 테라인의 기원에 대한 떡밥, 켈시가 박사를 바라보는 시선, 증오의 연쇄, 공존과 화합,


그리고 아미야를 필두로 한 로도스 아일랜드의 현실적인 한계와 모순 등을 표현하고 상징한다.





한 캐릭터로 수 마리의 토끼를 잡아낸, 그야말로 서사적인 측면에서 최고의 활약을 한 캐릭터중 하나로,


탈룰라와 함께 유이하게 1, 2페이즈의 OST가 다르고, 유일하게 인게임에 전용 보컬곡이 들어간 캐릭터이기도 하다.





비록 유저들에겐 온갖 증오를 한몸에 받았지만, 작가 입장인 해묘에겐 더할나위없이 많은 사랑을 받은 셈.





마지막까지 훌륭한 활약을 하고 해묘의 체스말로서 농락당한 이노에게 찬사와 더불어 애도를 표한다.






3. 아미야와 운명의 노예









아미야의 서사.


니엔 자매의 서사.


스카디의 서사.





작중에서 가장 유구하고 오랫동안 공들인 세 가지의 서사를 꼽으라면 이렇게 들 수 있다.





해묘가 메인 스토리를 주제곡으로 표현한 것을 통해 설명하자면,



아미야의 서사는 주인공답게 메인 스토리 그 자체이니 주제곡이고,


주제곡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방식의 차이만 있는 니엔 자매와 스카디의 서사는 변주곡,


나머지 사이드 스토리들은 이들을 보다 돋보이게 해주는 장식음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곡과 변주곡에 해당하는 이들에겐 대체 무슨 연관이 있길래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일까?





우선 잘 살펴보면 이 서사들에는 분명한 한 가지, 운명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아미야는 미래에 마왕이 되어 자신이 추구하던 사상과 정반대로, 테라를 파멸시키는 운명.


니엔 자매들은 언젠가 신의 부활로 테라를 파멸시키는 미래를 예상하고, 온갖 근심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


스카디는 타락하여 이후, 테라를 파멸시킬 해사에게 동화되어버리는 운명.




이렇듯 어느 쪽이 되었든 테라의 파멸이라는 운명이 주요 서사들 사이에 뿌리깊게 내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명일방주는 단순히 광석병의 치료를 통한 감염자의 구제가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로는 광석병을 포함한 모든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니엔 자매와 스카디 서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들의 비극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박사와 아미야가 있는 로도스 아일랜드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희망을 품고 의탁하는 로도스 아일랜드에게도,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별 수 없는 것이 명일방주에서 가장 거대한 운명은 다름아닌 박사와 상대 기사가 쥐고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자세하게 봤거나 이전편들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명일방주의 가장 거시적인 관점은 박사와 상대 기사간의 체스 대국이고, 테라라는 무대는 체스판에 해당한다.


아미야와 탈룰라를 포함해 작품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체스말로 묘사되며 박사는 그중에서도 체스 기사이다.




체스판 위의 체스말들은 모두 체스 기사의 의지에 따라 그 귀추가 정해지며, 체스판은 이들을 옥죄는 거대한 족쇄이다.




체스말들은 두 체스 기사의 유희에 농락당하고 승패여부를 가르는 결말이 되던가,


혹은 두 체스 기사의 의지에 따라 다시 처음부터 대국을 시작하는 결말이 남는다.




명일방주가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라면 필히 그 이겨내야할 가장 거대한 운명이란,


테라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지배하는 체스판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운명에 맞서기 위해 그 중심에 서있는 아미야는 분명 박사에게서나, 작품 자체에서나 가장 중요한 체스말이다.





우선 이전편들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아미야는 모두의 위에 서게될 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운명에 속박되어 있는 노예에 불과하다.




원치않게 살카즈의 왕위를 계승받고, 원치않게 공존과 화합이라는 사상을 물려받았으며,


원치않게 키메라라는 괴물로 만들어졌고, 그로인해 원치않게 싸움을 이어나가며,



종국에는 어느 것도 보답받지 못한 채, 스스로 테라를 파멸시키는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미야뿐만 아니라 역대 마왕들 모두가 그러하다.





프리스티스로부터 창조된 마왕의 능력공존과 화합이라는 마음을 후대에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 아미야까지 이어졌지만,


그로인해 모든 계승자들은 프리스티스의 사상에 속박된 채, 그저 예언에 따라 마왕의 능력을 아미야까지 전달해주기 위한 노예나 다름없게 되었다.





특히, 예언의 당사자로서 태어나기 이전부터 운명에 속박되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아미야야말로


분명 누구보다도 운명의 노예에 가장 어울리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 아미야가 명일방주에서 가지는 의미는 그 외에도 많다.





마왕의 능력은 프리스티스로부터 시작되어 공존과 화합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그 안에 담겨졌다.



이후, 수많은 시대의 온갖 군왕들을 거친 끝에 아미야에게 도달하였고, 선대 계승자들의 기억과 감정 같은 것들이 끝없이 축적되어왔다.


아미야는 감정 흡수로 축적된 기억과 감정을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며, 어쩌면 이 감정 흡수는 역대 마왕들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기억이 축적될수록 후대의 계승자들에게 더욱 많은 지식과 경험을 물려줄 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 이 능력의 형상인 검은 왕관은 문명의 존속이라 불리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프리스티스부터 아미야까지 이어진 마왕의 능력이 실제 문명의 발전 과정을 은유하고 있다는 것.





지식의 축적은 현실 문명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지금의 문명은 초창기 아무것도 모르던 인류가 언어와 문자를 발명해


끝없이 지식을 축적하고 후대로 전해주었기에 가능했으니까.





마왕의 능력은 분명 선대 계승자의 기억을 후대로 물려주는 것이 가능하다. 당대의 시대상과 지식들이 끊임없이 축적되어 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프리스티스로부터 이어진 공존과 화합을 추구하는 마음은 정황상 역대 마왕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공존과 화합 또한 인류 문명이 존속하는 것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이다.






즉, 문명의 존속은 공존과 화합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담긴 마왕의 능력을 잘 표현해주는 명칭이며,


마왕의 능력이 상징하는 것은 테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서 미래로 전하는 내일의 방주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마왕의 능력을 가진 아미야가 박사를 믿고 따르는 모습은 마치 노아의 방주와 그 방주의 항로를 결정하는 노아를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공교롭게도 노아와 박사 모두 인간이다.






결론적으로 아미야는 개인적 욕망, 운명의 노예, 공존과 화합, 명일방주라는 제목의 의미 등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있는,



사실상 명일방주 그 자체나 다름없다.








3.5 바깥 세계?








명일방주는 인류 역사에서 실존했던 여러 음악, 철학, 국가, 문화 전반, 신화, 종교, 게임 등 많은 것들을 세계관에 무차별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어찌보면 작품 자체가 하나의 방주로 봐도 무방하며, 메타픽션 장르라 치고 함께 보면 그럴 의도가 다분하다.





거기에 레인보우 식스 대원들이 테라에 떨어진 것도 아예 메타픽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떡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명일방주가 메타픽션일 가능성이 높은 이상, 테라에서 말하는 바깥 세계라는 것이 어쩌면 명일방주와 동등한 창작물


즉,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진 또다른 픽션 세계를 일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경우 명일방주 세계관에서는 다른 모든 창작물들의 세계관이 실제 설정상 존재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세계관을 창작하여 작품으로 내세우기만 해도 그 작품은 명일방주 세계관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해묘의 자캐인 12F가 바깥 세계에서 왔다고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미 프리스티스편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의미와 12F의 손에 들고 있는 물건스마트폰일 것 같다는 추측을 했었고,


그가 8챕터에서 박사에게 앞으론 선택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라고 조언한 것도 그러하다.



이 녀석은 설정상 해묘의 서신을 전하는 이른바 신의 사자일 것 같단 생각이 들기에.




결론적으로, 바깥 세계는 콜라보를 염두해둔 의도적인 설정이라는 것이 추측이다.


동시에 이전부터 의심되었던 메타픽션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대체 왜 조금씩 메타픽션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혹시 이게 결말에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조각이라도 되는 것일까?








요약



0. 제목없는 세계



작품 내 모든 이들이 아무리 거창한 존재처럼 보인다 해도 실제론 개인적 욕망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다.




1. 탈룰라 아트리아스



탈룰라는 작품 전체의 또다른 주인공이며, 아미야를 비추는 거울이다.


탈룰라가 가진 신념이 스스로를 옥죄어 현재의 파멸적인 결과로 이어졌으며, 그녀도 결국은 개인적 욕망을 가진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다.


또한 이는 호시구마의 편지에 등장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더 쉽게 타락한다는 내용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2. 이노



메피스토는 폭력이 평범했던 한 사람을 얼마나 뒤틀어버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메피스토는 공존과 화합이라는 주제와 동떨어져 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에 와선 공존과 화합을 이끌어내는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3. 아미야와 운명의 노예



아미야 서사, 니엔 형제 자매의 서사, 에기르 서사까지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운명이다.


그중 아미야는 작중 그 누구보다도 운명에 속박되어 있는, 운명의 노예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존재이다.


작품의 가장 거대한 운명은 체스판이며, 박사와 상대 기사의 대국은 작품에서 가장 거시적인 관점이다.


마왕의 능력은 명일방주라는 제목을 상징하며, 아미야는 명일방주라는 작품 그 자체이다.




3.5 바깥 세계?



명일방주에서 바깥 세계라는 설정은 콜라보를 염두해둔 의도적인 설정이다.


명일방주가 메타픽션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설정은 여타 모든 작품들이 명일방주의 세계관에 설정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편은 씼고나서 올리던가 할텐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진짜 만약 오늘 내에 못 올라가면 다음 주 주말에 올리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