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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上편



0. 제목없는 세계


1. 탈룰라 아트리아스


2. 이노


3. 아미야와 운명의 노예


3.5 바깥 세계?




中편



4. 해묘의 체스판




下편



5. 유저의 체스판


6. 명일방주의 최종 결말







드디어 마지막이다.


길게 할 말은 없으니 빠르게 넘어가자.



상, 중편, 예전 분석글들까지 모두 읽고 오는 것을 추천하며,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그저 개인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선 너무 복잡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냥 글쓴이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러하다 정도로만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5. 유저의 체스판









이전에 명일방주의 거시적인 관점이 박사와 상대 기사의 대국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리고 또한 명일방주가 메타픽션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었다.




이 둘을 취합해보면 박사와 상대 기사의 대국은 구도상 우리들 유저와 해묘 간의 대국으로 이어진다.




이전의 상대 기사편에서 처음 언급했던 사항이지만, 당시엔 그저 비약적이라고만 생각했다.


허나 여러 조건들이 맞춰진 지금에 와서는 도저히 억측이라고 보기 힘들다.




최근의 미니 이벤트 Vigilo조차도 메타픽션을 연상케 하는 요소가 드러난데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분석한 것들을 모아보면, 


아무리 봐도 명일방주라는 게임은 대놓고 유저와 해묘의 체스판으로 기능한다고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묘는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와 게임을 제작하는 자신의 대국을 상징하기 위해 메타픽션을 접목시킨 것일까?




그래도 지금껏 꾸준히 빌드업해온 만큼 이걸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을까?


그리고 상편 마지막에 언급했던대로 이것이 결말에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조각이 되지 않을까?















박사와 상대 기사의 대국은 지금 와서는 유저와 해묘의 대국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못해도 그 구도를 은유하는 정도로는 분명하게 들어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는 우리가 게임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 그러니까 아미야가 박사를 구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명일방주는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명일방주에서 가장 거대한 운명은 분명 체스판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해묘의 체스판에서 이루어지는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메인 스토리의 최종목표가 된다.





그리고 이전의 짤막 분석에서 언급했었는데,



아미야가 가진 마왕의 능력이 성경에서의 신과 소통하는 힘을 가진 방언에 대응된다면,


메타픽션인 명일방주에서는 그 마왕의 능력으로, 신에 해당하는 우리들 유저를 박사에게 연결시킨 것이 된다.


공교롭게도 성경에서 바벨의 목적신에게 닿기 위함이라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이 추측에 상당한 조건이 충족되기까지 한다.









"언젠가 박사님께서 저의 선택을 이해하실 수 있기를...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아미야는 박사에게 무언가를 했다.


그 무언가가 바로 우리들 유저를 박사에게 연결시킴으로써, 해묘의 상대편 체스 기사로 의자에 앉게 한 것이었을 뿐.


위의 대사가 이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어져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우리들 유저의 역할은 해묘의 맞은 편에 앉아서 어떻게든 대국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탈룰라가 카셰이를 처치해 아미야의 타락을 방지할 수 있도록 조정해주고,


그 결과 아미야가 니엔 남매와 스카디의 운명을 깨부수는데에 전념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테레시아와 아미야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해묘의 상대가 되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작품이 메타픽션이라는 점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었다.




테라는 거대한 체스판이고 당연히 그 테라에 거주하고 있는 작품 내 모든 인물들은 그저 체스말에 불과하다. 


그런 체스말이 상위 세계 즉, 현실에 존재하는 체스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리 만무한데




그렇다면 체스 기사와 동등한 또 다른 체스 기사 즉, 유저를 테라에 데려오면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바벨은 유저를 불러들이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고 꾸준히 등장하던 메타픽션 요소도 이에 신빙성을 줌으로써, 


우리들 유저를 참여시켜 작품 내에서 활약하게 만들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3차 PV에서 등장한 위의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유추가 가능하다.


프리스티스편에서 언급했지만, 바벨은 원래 'Bab-ili'라는 아카드어에서 시작되었다. 직역하면 신들의 문.




그리고 3차 PV에서 아미야가 마왕의 능력을 계승받으면서 동시에 이 신들의 문이 서서히 열리는 연출이 등장하였는데,


마왕의 능력이 신과 소통하기 위한 힘이고, 작품이 메타픽션이라는 것을 통해 바벨의 목적이 유저를 테라에 끌어들이는 것이었음을 상기해보라.



그렇다면 이 장면은 우리들 유저가 테라에 접속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거기다 이전에 신과의 연결성을 상징하는 것이라 추측한 마름모 도형이 이 신들의 문에도 그려져 있는 것은 덤.






여담으로 해묘의 자캐인 12F가 8챕터에서 박사를 향해 앞으로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했었는데,


이는 사실상 해묘가 우리들 유저를 도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디 얼마나 체스말을 잘 두는지 봐보자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셈.















그러나 현 시점에서 결말까지 아주 정확히 어떤 과정이 이어지게 될지는 모른다.





아예 앞으로의 선택이 예언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예언은 틀린 것이었다는 전개로 가서 평범하게 해피엔딩에 도달하게 만들지.





한 차례 테라가 파멸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어 배드엔딩으로 만들고 난 후, 


유저와 해묘간의 재대국으로 테라 #1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전개로 가서 끝내는 해피엔딩에 도달하게 만들지.





혹은 우리들 유저가 승리하는 결과마저 결국은 운명이기에 아예 대국을 하지 못하게 체스판을 통째로 뒤엎어버리던가,




그것도 아니면 위의 세 가지 모두 포함되는 방식이 될지.



그것은 너무 먼 미래라 확실하게 말하기가 힘들다.





다만, 어느 쪽으로 가든 아미야 입장에서는 분명한 해피엔딩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아미야의 바이올린에 있다.














이전부터 아미야의 바이올린을 두고 떠올린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빌드업해온 해묘의 설계와 특유의 센스대로 이 바이올린이 의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석해보자면, 




결말 부분에서는 카덴차(Cadenza)라는 것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카덴차는 고전적인 의미로는 악곡의 종막 부분에서 독주자가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부분을 일컫는 용어이며, 


이러한 최후의 화려한 독주곡에 쓰이는 대표적인 악기 중 하나가 바로 바이올린이다.




이를 아미야에 대입할 경우, 즉흥적으로 연주한다는 부분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기존의 악보라는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악보를 만들어간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명일방주는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운명에 속박되어 있는 아미야가, 종막에는 운명에서 벗어나 현란하게 연주하는 카덴차라니.




이는 실로 해묘다운 피날레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인게임에서 메인 스토리를 주제곡이라 표기한 것과, 아미야가 들고있는 바이올린을 포함해서 


모든 음악 관련 설정들은 바로 이러한 피날레를 완성하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정확히 어떤 형태로 결말이 이루어질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작품에 메타픽션 요소를 부가하는 것으로 인해


우리들 유저가 상대 기사인 해묘의 체스판을 뒤엎는 결정적인 역할을 통해, 해피엔딩으로 나아가도록 빌드업되어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렇기에 해묘의 자캐인 12F가 우리에게 앞으로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고.














이렇게 보면 석관 이전의 박사와 프리스티스의 행보는 지금의 박사와 아미야를 만들어내기 위한 큰 그림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일시적으로 기억은 잃었으나 마왕의 능력에 의해 유저가 연결된 채로 신체만은 온전히 존재하는 박사와,


신체는 아미야로 대신하고 있지만 그 안에 마왕의 능력으로 기억과 감정만은 온전히 존재하는 프리스티스.



결국 이 둘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품이 해피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초석을 닦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






"절망이 강할수록 다가올 희망은 그만큼 웅장하다."



그렇기에 박사가 아미야에게 한 이 대사가 지금에 와서는 상당히 의미깊게 다가온다.






결론적으로, 프리스티스부터 시작되어 아미야까지 평화를 위해 나아간 역대 마왕


체르노보그에서 박사를 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아미야와 그 뒤를 따르던 수많은 대원들의 희생 등 모든 것들은


우리들 유저를 테라에 끌어들이기 위한 초석으로서 결코 헛되지도, 잘못되지도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것도 어찌보면 작품의 주제인 공존과 화합을 아예 유저까지 끌어들여 이루어낸 최적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는 셈.










이렇게 보면 상당히 희망적이고 또 그런 결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결말은 절대 있을 수 없다.






















6. 명일방주의 최종 결말









사실 명일방주는 그 너머에 진짜 엔딩을 숨겨두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전부 알고 있는 굉장히 단순하고 뻔한 결론이어서 헛웃음마저 나올 지경이다.





1. 명일방주는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이다.



2. 명일방주는 꾸준하게 메타픽션 요소를 노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최근까지 드러난 이 두 가지를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최종적인 결말의 유추가 가능한데,






이것은 그 어느 누구도, 절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결론은 아무리 내적으로 명일방주가 해피엔딩이 되더라도 무조건 찬물을 끼얹게 되는데, 




가장 거대한 운명이었던 체스판은 아미야와 우리들 유저에 의해 파괴되어 작품 내적으로는 해피엔딩에 가깝게 되지만, 


이는 그런 결말이 되도록 이야기가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명일방주가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내세운 상황에서 메타픽션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진 이상,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내에서 운명에 저항해 이겨낸 것 자체가 실은 해묘가 준비해놓은 또 다른 운명에 불과했다는 허무한 결론이 내려지는 것.






우리들 유저에겐 위의 간단한 조합으로 알 수 있기에 거창할 것 없는 결론이지만, 그렇기에 두 가지의 의미가 생겨난다.






첫 번째로 이 거창할 것 없다는 점이 중요한데, 



명일방주라는 작품이 뭔가 있어보이고 거창한 결말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뻔하고 단순한 결말이 준비되어 있는 평범한 창작물에 불과했다고 스스로 밝히기 때문이다.




우린 이미 작품 내에서 무언가 거창할 것 같던 인물이 실은 개인적 욕망을 가진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단 것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 주제를 아예 명일방주라는 작품 그 자체가 실천하게 된 셈이며, 


지금껏 거창한 것처럼 묘사하던 설정이나 대사들은 전부 이를 위한 빌드업이라 생각해도 어째 어색함이 없다.






두 번째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체스 기사 즉, 유저마저도 그저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의 노예에 불과하단 사실을 확실하게 명시해버린다는 것에 있다.





우리가 이 작품이 픽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채로 플레이에 임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결코 픽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처음부터 알고 있다. 




아미야가 바이올린으로 카덴차를 연주하고 웃으면서 운명을 이겨냈다고 우리에게 말해도, 


명일방주가 메타픽션인 이상 궁극적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린 처음부터 알고 있다.

 




작품 내적으론 해피엔딩이 되더라도, 오히려 그 탓에 유저 혼자만이 해피엔딩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게다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바벨 당시의 박사를 조종한 존재가 누구였는지도 이젠 알 것 같다.





예전 분석글을 읽었다면 정황상 테레시아는 타 종족인 박사를 조종할 수 없었을 것이고, 


키메라인 아미야는 당시 마왕의 능력이 없었으니 목록에서 제외시켰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모티프가 된 성경대로라면 박사에게 깃들어 바벨을 무너뜨린 이 정체불명의 존재는 에 해당할 것이라 추측했었고, 



작품이 메타픽션이라면 체스판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 유저해묘가 될 것이다.



유저는 박사가 석관에서 눈을 뜬 시점에서야 테라에 접속해 그제서야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으니 제외.





그럴 경우 소거법으로, 당시의 박사를 조종해 바벨을 무너뜨린 존재는 


상대 기사 즉, 해묘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이전엔 의심하는 정도에 그쳐서 좀 더 분석해보려고 성경편에서 그게 누구였는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명일방주라는 게임에서 마왕의 능력을 이용해 현실 세계에서 아미야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홍보한 후, 


게임에 혹한 유저를 테라의 박사에게 연결시키도록 유도한 존재는 해묘다.




해묘가 명일방주의 총괄 프로듀서라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바벨에서의 구도 자체는 현실에서 게임을 홍보하고 유입되는 과정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 더욱 설득력을 높인다.





즉, 바벨이라는 조직이 작가인 해묘에게 대항하기 위해 유저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것마저 작가의 의도에 불과한 것처럼, 



해묘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박사를 조종해서 이 모든걸 유도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번 9챕터에서 아웃캐스트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이미 여러 단서를 통해 아웃캐스트가 사망할 것이란 걸 우리는 진작에 알고 있다.



그 운명을 처음부터 알고 있음에도 아웃캐스트가 사망하는 광경을 그저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내세우는 이 작품의 의도적인 설계라고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을 미리 유저에게 체험시키기 위한 악질적인 장치인 셈.









결국, 정해진 결과를 알고 있는 채 무조건 그 길을 따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누구보다도 운명의 노예에 가까운 존재는 사실 아미야가 아닌 우리들 유저였던 것이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면,



우리는 작품의 모든 이들보다도 상위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운명의 노예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존재이고,


메타픽션 덕분에 작품이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메타픽션으로 인해 해피엔딩을 부정하게 되는 결말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도 명일방주는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그런 아이러니함의 결정체였다.














결론적으로, 명일방주는 유저를 포함한 모두가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매듭지어진다.




이것은 상술했듯 명일방주가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내세우고 거기에 메타픽션 요소가 더해졌기에 가능한 무적의 논리인데, 



이는 설령 중간에 유저가 게임을 접더라도 언젠가는 유저의 이탈로 계정이 동결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말이,


게임이 아예 섭종하게 되더라도 이조차 섭종이라는 모바일 게임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말이 성립된다.


 


결국, 명일방주가 이후에 어떤 행보를 이어가게 되더라도 이것만큼은 절대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즉, 해묘는 이겨놓고 싸운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체크메이트를 시켜놓고 허울뿐인 대국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무리 체스판을 뒤엎어 대국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승리했다는 운명은 절대 뒤집을 수 없도록,


그리고 우리들 유저가 처음부터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스스로 통감하도록 말이다.




결국 운명은 절대 뒤집을 수 없는 필연이기에 운명이라 불리운다.


요컨대, 우린 그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란 것이다.








그런데 이는 관점을 달리하면 그런 해묘조차도 자신이 승리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명일방주가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임을 생각해보면, 결국 어느 누구도 이를 충족하지 못한 승자없는 결말이 되는 셈.




메인 스토리 1부를 비롯한 여러 스토리들이 어느 누구도 웃지 못하거나 결론이 없는 허무한 결말이 된 것을 통해,


어쩌면 진작에 이러한 결말은 예고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결말 자체만 보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어찌보면 뻔하고 허무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그 점을 아예 작품의 일부로 녹여내려 했다는 것과,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빌드업이 너무나도 소름끼쳐서 그저 아방가르드하다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요약





유저의 체스판



1. 명일방주는 메타픽션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바벨의 목적은 유저를 테라에 끌어들여 상대 기사인 해묘에게 맞서기 위한 것이 된다.


2. 3차 PV에서 등장한 신들의 문은 마왕의 능력에 의해 유저가 테라에 접속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3. 아미야의 바이올린은 카덴차(Cadenza)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적인 물건이며, 작품의 음악 관련 설정들은 모두 이를 위한 빌드업이다.


4. 프리스티스부터 시작해서 아미야까지, 그간의 모든 희생들 덕분에 유저가 테라에 접속해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도, 잘못되지도 않았다.





명일방주의 최종 결말



1. 명일방주는 최종적으론 유저를 포함한 모두가 결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뻔할 수 있는 결론이 내려진다.


2. 명일방주는 겉으로는 거창해보이는 설정이나 대사들과는 달리 그저 단순한 결말이 준비된 지극히 평범한 작품에 불과하다.


3. 바벨 당시 박사를 조종해 바벨을 무너뜨리고 유저를 테라에 접속하도록 유도한 존재는 상대 기사 즉, 해묘가 된다.


4. 우리들 유저야말로 실은 아미야보다도 더욱 운명의 노예에 가까운 아이러니한 존재에 불과했으며, 

   이는 아웃캐스트의 예시를 통해 그 편린을 느껴볼 수 있다.


5. 이 같은 사실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으로, 해묘는 처음부터 자신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대미문의 체스판을 설계해 두었다. 


6. 그런데 관점을 달리하면 그런 해묘조차도 운명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말이 되며, 결국 누구도 웃지 못할 승자없는 결말이 완성된다.
















최대한 내 생각을 재미있게 잘 전달해보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부디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밝혀본 명일방주의 세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서사는 여러 의미로 정말 특출난 것처럼 보이는데,


해묘가 없는 명일방주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특유의 색이 강한 독창적인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만약 해묘와 만남을 가지고서 원할하게 소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공유해보고 싶고, 


아예 같이 제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여담으로, 적지않은 유저들이 지금까지 해묘에게 환상을 품고서 그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최근 한정캐 '첸 더 홀룽데이'로 인해 사실 해묘는 여타 개발자들과 다를 것 없었다고 말하는 씁쓸한 상황.




여기서 재밌는 점은 작품에서 말하는 핵심 주제와 유저들이 생각하는 해묘에 대한 인식이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유저들이 느낀 것을 작품에서 말하는 주제대로 이 상황을 표현하자면,



해묘는 내게 있어선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하기에 과장 좀 보태서 신과 같은 존재이고, 또 누군가에겐 증오스러운 악마와 같은 존재일테지만, 


사실은 개인적인 욕망을 가지고서 그걸 충족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스갯소리로 해묘가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게임을 만든 것이 만약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이 분석 시리즈를 집필한 것은 따로 거창하고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시작한 것이 아닌, 


그저 타인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치켜세워지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보잘것 없고 이기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