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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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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잭."


"왜."


"꼭 가야 돼?"


"간다고 했잖아."


"편집장이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가고 싶어서 신청 내고 가는 거라고 했잖아,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


"나 간다. 여덟 시 배라서 바빠."


"잭."


"아 왜."


"죽지 마."


"노력해 볼게."


"선물 사 와."


"뭘로."


"고량주."


"병신알콜중독새끼. 안 까먹었으면 새해 선물로 사 올게."


"그렇네, 내년 돼야 돌아오겠네. 해피 뉴 이어."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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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체르노보그, 우르수스 - (1)




리유니온의 지휘관을 만났다.



어제 저녁 일지를 클라우드에 올린 후 잠을 청한 지 두 시간이 지났을 즈음 차창 밖에서 리유니온 대원들이 나를 깨웠다. 그들의 지휘관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들도 자세한 용건은 모른다고 했지만, 해를 가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잔뜩 긴장한 나를 보고 그들은 나는 여전히 '동포'라면서 웃어 주었다. 하지만 마스크 밑에 가려진 그들의 표정을 나는 볼 수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떨치고 일어났지만 아직 세상의 이목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다른 도리도 없이 그들을 따라 리유니온의 거점으로 발을 옮기며,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감염자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었다.



리유니온의 주둔지는 난민촌과 야전 병원이 섞여 있는 모습에 가까웠다. 환자들의 신음소리를 지나쳐 목적지에 도착한 뒤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고, 지휘관이 아직 회의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대기 명령을 받은 나는 잠시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시립 종합체육관을 둘러볼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체육관 안은 이가 덜덜 떨리도록 추웠다. 체르노보그에는 체육관 전체의 난방을 가동시킬 만큼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도시 전체에서 징발해 온 것 같은 전기 난로나 라디에이터가 병상 사이사이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병상 위에서 포도당 주사를 맞고 있는 환자들은 온 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간 듯한 행색이었지만,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저마다 창고에서 빼내 온 위스키나 주스를 한 병씩 손에 쥐고 행복한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새해가 찾아 왔다.




[첨부 영상 5]


"이봐 기자 양반! 해피 뉴 이어!!"


"네, 해피 뉴 이어."


"빵 먹을래? 맛은 좀 퍽퍽하지만 케이크 대신이여."


"네, 조금만 받을게요."


"읏차... 옛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음식을 손으로 들고 드시는데, 손은 씻으신 건가요?"


"손? 하하 이 사람아, 그럴 물이 있으면 진작 뱃속으로 들어갔겠지, 뭔 소릴 하는거여?"


"그렇네요."


"위스키도 있는데, 한잔 하실랑가?"


"일하는 중이라서요, 주스 있나요?


"하하! 기집애 같은 놈이구만."


"그렇네요..."


"옛다. 좀 멍해 보이는데, 삐졌나?"


"아뇨, 병원 환자들이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건 처음 봤어요."


"그거야 뭐, 몸은 아파도 자유를 얻었으니까?"


"자유..."


"탈룰라가 말이야, 가축으로 사는 것보다 인간으로 죽는 것이 낫다고 그랬어. 당최 무슨 소린가 했는데 말이야. 이젠 알 거 같아."


"저도 이해해요. 그래도 죽으시면 안 돼요."


"하, 난 팔팔해 이 사람아. 그런 말은 저 쪽에 중환자들한테나 가서 해 주든가."


"가 볼게요. 손 잘 씻으시고요, 목이 말라도 물은 지급되는 생수 외에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하세요."




"장례미사를 촬영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신부님.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찍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해야 하니 기기로 인해 소음이 나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리유니온 분들에게도 허락을 받으


셔야 할 거예요."


"그건 이미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신부님."


"허허, 제가 더 고맙지요. 이전에 이런 식으로 병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의무병으로 근무했어요. 3년 정도... 그리고는 더 부대에 있을 수 없게 되어서요."


"감염 때문인가요?"


"뭐 그렇죠."


"컬럼비아에서도 그런 일이 있군요..."


"미사를 새벽에 합동으로 진행하신다고 들었는데 여기에도 신자 분들이 많이 계시나요?"


"많죠. 산 사람도, 죽은 사람 중에도. 하루에도 수십 명이라 놓으니 아무래도 한 분 한 분 해 드리기는 너무 힘이 듭니다."


"외상 때문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나요?"


"다양하지요. 운석 때문에 광석병도 더 심하게 진행되고 있고요. 콜레라나 패혈증도 하나둘씩 보이고 있어요. 소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절대적인 영양 섭취가 부족하면 어쩔 수 없어요. 신부님께서 자책하실 일이 아니에요."


"허, 영양분이라... 일단 물이 없어요. 마실 것도 없고, 몸을 씻을 수도 없고, 화장실 물도 내릴 수가 없고. 물이 없습니다."


"......"


"...저기 신부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잠시 기자분을 데려가도 될까요? 저희 지휘관님께서 찾고 계셔서요."


"아 네. 괜찮습니다. 좋아요. 가시는 김에 지휘관님께도 인사 전해 주세요."


"물론이죠, 신부님. 해피 뉴 이어."


"해피 뉴 이어. 그리고 톰슨 씨?"


"네?"


"미사는 여섯 시부터 진행될 예정이니까요. 톰슨 씨도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릴게요."




지휘실로 사용되는 텐트 안에는 사슴 마스크를 쓴 남자가 앉아 있었다. 살카즈의 것으로 보이는 뿔이 삐져나와 있었고, 우르수스의 것으로 보이는 갑주로 온 몸을 두르고 있었다. 단속적으로 끊어지는 목소리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온화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가면 속에서 그의 눈은 붉게 빛을 내고 있었다.


인터뷰 형식으로 촬영을 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카메라를 꺼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 배터리를 갈아끼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첨부 영상 6]


"그렇게, 떨 필요 없다."


"...죄송합니다."


"난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 당신은, 평민이다. 그리고, 내 병사들을 돌봐 줬지. 그 우르수스 병사에게, 그랬듯이."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그 저격수가 있는 곳을, 어떻게 찾아내신 거죠?"


"위안을 얻고 싶나? 그 병사가 죽은 것이, 너의 탓이 아니라는?"


"...그렇습니다."


"네 짐작이, 맞다. 내 병사들이, 수상한 기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내게 보고했다. 두어 명을 뒤에 붙였지. 그랬더니, 예상 못한 수확을 거두었다."


"......"


"하지만, 당신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에겐 퇴로가 없었다. 늦든 빠르든 결국, 죽을 운명이었지. 죽음은 모든 전사들의, 운명이다."


"...전사......"


"원하는 답을, 주었으면 좋겠군. 내 대답이. 이 도시가."


"잘 모르겠습니다.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기자가 되었나? 컬럼비아라 해도, 감염자가 전문직을 얻기는, 힘들텐데."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친한 친구가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어서요. 빽을 좀 썼죠."


"잭 콘래드 톰슨. CBN 사회부 기자. 컬럼비아 중부 팜벨트, 지역의 오리지늄 오염 취재.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감염자 실태 취재. 라인연구소의, 생체실험 의혹에 관한, 고발 취재."


"마지막은, 기사로 내지 못하고 묻혔을텐데요."


"당신이, 이 곳에서 자유롭게, 취재를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당신이 감염자라는, 그 이유 하나 뿐이라, 생각하나?"


"......"


"제국의 어용기자들보다는, 좀 나은 보도를, 기대할 수 있겠지."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전 그저 보고 들은 대로 찍어서 가져갈 뿐입니다. 리유니온이 벌인 살상과 파괴도 함께 보도될 지도 모릅니다."


"그걸로 좋다. 공평하게 보도해라. 리유니온은, 감염자와 일반인을, 평등하게 대할 것이다."


"입사할 때 빽을 쓴 건 사실입니다. 집안 대대로 물려받았던 농장이 오리지늄 범벅이 되고 나니 선택지가 없었죠.


군에 있을 때, 볼리바르 국경에서 근무할 때, 그 때는 매일같이 사람이 죽는 걸 봤어요. 전부 난민이었어요. 잡아서 돌려세우고, 저항하면 죽이는 겁니다. 그래도 다 잡아낼 수는 없어요."


"어차피, 식량난으로 죽고, 내전으로 죽을 바에, 한 번 걸어보자는 거겠지."


"지긋지긋했습니다. 감염 때문에 강제전역을 당하고 나니까, 이젠 좀 살아있는 사람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부로 갔죠. 건설현장도 돌고, 파업 시위도 나가고, 환경팀 취재도.


감염 위험이 높은 오염 현장이나 공장 노동자 취재는 그냥 제가 도맡다시피 했어요. 어차피 이미 감염돼 있으니까. 제가 무슨 기자 정신으로 그 현장을 다 나간 게 아닙니다.


3년을 그렇게 지역언론사에서 보내고 지금 회사로 오면서 생각을 좀 했어요. 내가 이런 걸 보려고 온 게 아닌데. 농장은 이상 기후에 토지오염으로 줄줄이 문을 닫고, 공단 노동자들은 감염되고 쫓겨나면 갈 곳도 없이 슬럼에서 죽어가고. 이게 무슨 삶인가.


생각할 수록 화가 나는 겁니다. 평생 오렌지 키우는 것밖에 모르고 사셨는데, 하루아침에 광석병 3기 판정 받고 약 한 번 못 타 드시고 돌아가신 아버지..."


"......"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이걸로 대답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도, 싸우는 이유가 있군."


"싸운다...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전 전사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저격수도... 전사는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지금 리유니온에서, 전투원들이 일반 시민에 비해 1.5배의 배급을 받는 것으로 들었는데 맞나요?"


"그렇다. 탈룰라가 결정하고, 내가 동의한 사항이다."


"닷새 전 봉기 후에, 가족들이 먹을 빵과 물을 위해 생업을 내려놓고 X자 완장을 찬 사람들. 그 분들도 전사입니까?"


"지금과 같은 세계에선, 그 정도의 사정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일단 무기를 들고 전장에 섰다면, 전쟁은 그런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지."


"탈룰라 씨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축으로 살기보다 인간으로 죽겠노라고. 리유니온은 감염자들이 죽음으로써 권리를 되찾기를 주장하는 건가요?"


"분명,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선전 문구다. 내 목표는 조금 다르다.


물론 우리는 죽을 것이다. 전사이고, 더불어 감염자니까. 난 그저, 가치있게 죽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죽음으로, 평민 형제들에게 삶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들은, 인간으로 살게 될 것이다."


"......"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우르수스의 감염자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두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말해 봐라."


"지휘관님께선 민간인들을 최우선으로 보호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리유니온이, 감염자가 비감염자 민간인을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사흘 전 중앙 광장의, 민가 방화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 중이다. 원한으로 인해, 비슷한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내 권한으로, 최선을 다해 막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현재 도시 내의 물, 영양 부족이 심각해 보이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도 아직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대로는 식수 부족과 위생 불량 때문에 전염병이 퍼질 겁니다. 로도스 아일랜드 같은 제3자의 중재로 구호 요청을 하는 방법도 있고요."


"로도스라. 그 방법은 탈룰라도, 내 머리 속에도, 없었던 것이다. 건의는 해 보겠다. 우리의 적개심이 그들을 용납할지, 그들의 자존심이 우리를 받아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좋나?"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원한다면, 우리와 함께 해도 좋다. 너는 감염자고, 싸울 힘도, 의지도 있으니."


"죄송합니다. 고향에 아직 어머니가 남아 계십니다. 그리고, 찾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찾고 있나?"


"혹시, '헬라그'라는 사람을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 지 아시나요?"


"장군님을? 그 분을, 만나 뵌 적이 있나?"


"아뇨. 그 저격수에게...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저격수가, 장군님의 옛 부하였나?"


"아닐 겁니다. 그냥 부상당한 채로 폐허 속에 숨은 걸 우연히 목격하고, 상처에 응급 처치를 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분이 장군이라는 말도 지금 처음 듣습니다."


"......"


"...지휘관님?"


"......그 분은, 로도스로 가셨다. 나흘 전에 뵈었을 때, 그렇게 말씀하셨다. 로도스는 지금, 용문에 정박해 있다는 첩보를 받았으니, 만나 뵈려면 서두르도록."


"정말 감사합니다. 장군님께 전할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그 분은 이제, 장군이 아니다. 감염으로 인해, 군을 떠나셔야만 했다. 나나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 병사를 죽인 것은, 내 명령이다. 그것을 사실대로, 말씀드리도록.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지휘관님의 성함은 어떻게 전해 드리면 될까요?"


"패트리어트. 분에 넘치지만, 내 코드네임이다. 그렇게 전해드리면, 아실 거다."


"'패트리어트'... 알겠습니다."


"내 용건은 끝났다. 새벽이 오면, 이 주둔지를 나가도 좋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잭 톰슨."


"네, 지휘관님?"


"해피 뉴 이어."




합동 장례 미사가 행해진다고 하는 체르노보그 중앙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2백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껴입은 외투며 머플러를 끌어안다시피 웅크리며 떨고 있었다. 성당 옆면이 운석으로 인해 통째로 날아간 탓에, 바람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 아무 데도 없었다. 원래 거기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의 영원한 사랑과, 선지자가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행한 기적들이 스테인드 글라스로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 기적들은 산산조각나서 내 발치에 쓰레기가 되어 널부러져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가 들어왔다. 십자가도, 성수도, 촛불 하나도 없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화장터의 흙 한 줌만이 들어있는 관짝을 바라보던 신부는 이내 성호를 긋고 예식을 시작했다.



[첨부 영상 7]


"주께서 이와 같이 땅과 세상을 만드시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니 곧 우리의 죽음도 주의 것이매


주의 앞에서는 천 년의 권세가 한낮의 꿈과 같사오며 만 년의 왕국을 먼지 한 톨과 같이 쓸어 가시나이다


하물며 강건해야 백 년을 이기지 못하는 우리의 평생이야 말해 무엇하겠나이까


해 아래에서 수고하며 슬퍼하는 우리의 일생에 어떤 의미가 있겠나이까 오직 주를 따르며 주의 말씀 안에 거함이 합당하나이다


주여 일평생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어리석은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풀은 시들고 육체는 썩으나 영은 멸하지 아니하니 우리가 이로서 하나님 나라에 이름을 얻겠나이다


썩어 없어질 우리가 썩지 아니함을 얻으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겠나이다


오직 주께서만이 이런 은총을 내리실 것을 우리가 믿나니 주여 우리를 깊은 물에서 건져내소서


환난의 가운데에서 태어나 시름 속에서 스러질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흑, 흐흑..."


" ...기도합시다.


주여, 오늘 우리의 곁을 떠나는 74명의 형제들을 주님께서 예비하신 평화의 나라로 부르시어 주님 안에서 성인들과 함께 살게 하소서.


오늘 우리가 형제들을 떠나 보내나 주님의 영원한 사랑 속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오셨군요."


"신부님, 고생하셨습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찍으셨나요?"


"식이 끝나고 새해 인사를 나누고 계시는 신자 분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끌리면 카메라부터 꺼내는 나쁜 습관이 생겨서요."


"직업병 같은 겁니까?"


"그렇죠. 신부님은 직업병이 없으신가요?"


"허허, 제 직업은 신부가 아니에요. 구두닦이입니다."


"네?"


"서품도 받은 적 없어요. 어떤 주교가 감염자에게 서품을 해 주겠습니까. 그냥 우리 신자들끼리 자체적으로 예배를 드리려다 보니 사회자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먹은 거라고는 나이 뿐이다 보니 이렇게 돼 버렸어요."


"감염자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그러면..."


"맞아요. 몸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서 있기도 힘이 듭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라도 괜찮으시면 앉으세요."



"이런 상황이 되어도 사람들은 믿음을 잃지 않네요."


"반대예요, 톰슨 씨. 이런 상황이라서 믿음을 놓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런가요?"


"지금까지 제가 보아 온 신자분들은, 광석병에 걸렸을 때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였어요.


하나는, 나에게 이런 아픔이 닥쳐오는데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냐, 하고 주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난 앞에서 그저 주님의 기적을 바라게 되는 것.


저와 저 분들은 두 번째인 거죠."


"내세의 행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계획이란 걸 볼 길이 없어요. 그냥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나이를 먹고 심성이 고약해지니... 이런 의심하는 마음만 늘어갑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찾지 않더군요. 허, 그 사람들은 탈룰라를 믿고 있습니다."


"리유니온에 대해... 조금 부정적이신 것 같네요."


"아니요, 이해합니다. 그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다만... 허허, 조금만 더...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했으면 좋겠네요."


"누군가에게 매달리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보시나요?"


"톰슨 씨는 신을 믿습니까?"


"아니요. 저는... 죄송합니다. 첫 번째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죄송하다니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건 그런 겁니다."


"......"


"우리가 어떤 아픔을 겪든간에 세상은 돌아갑니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다시 해가 뜨고 또 지고.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압니다. 바뀌기를 바라지요. 때로 정말로 무언가 바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희미하고 어쩐지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톰슨 씨는 '방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저도 교리공부를 받았으니까요. 일곱 해의 대홍수."


"온 세상의 숲을 불태우는 인간에게 진노하시어... 온 세상을 홍수로 뒤덮으셨지요.


일곱 해의 홍수가 끝나고 주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다시 불로 세상을 태우지 아니할진대 나 또한 다시는 물로서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지금 다시 불이 온 세상을 덮었지요. 세상은 이제 바다가 땅을 푸르게 덮어버릴 날만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 다시 방주를 만들어서... 우리를 태워주기만을 바랍니다."


"...이 이야기가 입에 익으신 것 같은데요?"


"하하, 그렇죠? 젊은 친구들이 특히 이 얘기를 좋아해요. 그들은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랍니다. 사실 방주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인데 말이죠."


"누군가가 방주를 만들어주기만을..."


"탈룰라는... 불로 세상을 태웁니다. 믿을 수 있을까요... 허허, 이 얘기는 젊은 친구들 앞에서는 할 수 없죠."


"그렇죠. 조심하시는 편이 좋죠. 리유니온은 관용이란 걸 모르니까...


그래도 아까 '패트리어트' 지휘관님과는 좋은 얘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구호 물자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협상해 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하하,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저도 이미 열두 번은 부탁드렸던 일입니다. 탈룰라에게도."


"그랬나요..."


"리유니온에 관해서는, 더 말하지 맙시다. 누군가는 저 상처입은 사람들을 구해 주어야 합니다. 리유니온은 이미 발을 잘못 디뎠어요."


"저는, 조금 이따 용문으로 갑니다. 피난민들을 취재하고,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를 생각입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 늙은 몸으로 이제 와서 어딜 갈까요. 전 여기 남아야지요. 이 사람들을 데리고 용문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네. 이동 수단도 문제지만 아마 용문 당국에서 막겠죠. 지금 그 쪽도 많이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라서요."


"해가 뜨네요. 지금 출발하시지 않으면 너무 늦기 전에 용문에 도착하기 힘드실 겁니다. 낮이 짧으니까요."


"...가 보겠습니다, 신부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 모로 감사드립니다."


"그래요. 주님의 축복이...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요?"


"하하하, 상관없어요."


"음... 그렇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신부님.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