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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실 아주 오래 쉬어야 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신체적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말이야.


가치판단을 필요로 하는 모든 행동들은 타인의 정의에 의해 뿌리부터 부정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반대로 말하자면 가치판단이란 타인의 정의를 부정하는 일인 거지.


이건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야.

타인을 부정할 때마다 자신 또한 부정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엄습해오지.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해.


자신만의 공고한 논리를 만들어 나의 정의를 지키고,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주변을 채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한 데 모아 악으로 규정하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면이 병들어가는 걸 피할 수는 없어.


살카즈 전쟁을 마친 로도스는 오래도록 쉬어야 했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그들의 의지로 '판단'했거든.


그런데 로도스는 멈추지 않았지.

박사가 폐인이 되고 나서도 로도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뜻을 꺾었지?

그러면서 몇 번이나 자신을 정당화하기를 반복했을까?


그 결과 지금의 로도스는 미치고 말았어.

아미야와 켈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망가져 있단 말이야.


진작에 시체나 다름 없게 된 박사를 관 속에서 일으켜 세우고,

광석병 치료나 제국 간의 전쟁을 막는다는 헛된 목표를 희구하지.

그 허황된 꿈이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꿈을 짓밟고 있는지 외면해가면서 말이야.


알겠어?

제정신으로 남으려면 악인이 되는 수밖에 없어.

아니면 아미야나 켈시처럼 자신을 선인으로 믿으며 미쳐버리던지.


…그래. 이 정도 했으면 마약 제조에 대한 네 의구심도 좀 풀어졌을까?


어쨌건 로도스는 망가진 후로도 계속해서 꿈을 쫓기로 했고, 이제는 멈출 수 없게 됐어.


우리는 로도스의 다리야.

정의도 당위도 잃어버린 채 그저 달리기만을 바라는 로도스를 달리게 해주는 바로 그 다리.


저기,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거 봤어?

눈은 풀렸고 얼굴은 푸르죽죽한데, 하루 종일 자기 손으로 죽인 이들의 이름만 중얼거리는 대원들.

너는 그 미친놈들한테 약물을 듬뿍 주는 거야.


아직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암페타민이나 코카인 같은 걸 쥐어주고 전장으로 떠밀어.

약빨고 마음껏 죽이고 오면 다시 달라고 할 테니까 예비분도 잔뜩 준비해두라구.

전에 준 분량의 두 배 세 배로 팍팍 줘서 공수부대로 최일선에 투하하라고 지시해.


…아니, 거기선 그러면 안 되지!

너도 아까 흡연실에서 약빨고 있더니 덩달아 미쳐버린 거야?


저 환자는 딱 봐도 가망이 없어 보이잖아.


그런 녀석한테는 알칼로이드계를 주란 말이야.

모르핀, 헤로인, 펜타닐. 몰라?

치사량 직전까지 투여해서 시체 보관소 옆에 던져 놓으라고.


못하겠어요 레나 씨. 이딴 소리는 하지 말아.


내가 널 어떤 사람이라고 했지? 우리가 어떤 일을 한다고 했지?

우리는 로도스의 다리야.

달리는 것 말고는 전부 잊어버린 머저리 로도스를 달리게 해야 한다고.


다른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지?

소명 의식을 가져.

네가 보통 약사라고 생각해? 그냥 월급받고 들어온 로도스 제3 조제실의 약사 보조라고?


아니, 넌 로도스의 조타수나 다름없어.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거라고.

이 미친 로도스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으로 우리를 뛰게 할 수 있는 게 오로지 너 혼자라는 걸 알아둬.


너는 절대적으로 옳아. 내가 보증할게.

마약을 만드는 것도, 그걸 투여해서 전쟁으로 내모는 것도 전부 우리가 목표로 하는 절대선을 위해서란 말이야.



알아들었으면 다시 일 시작해야지.


자, 마지막으로 말할게.


너는 지금도, 앞으로도 로도스의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거야.

너 자신을 믿어.


우리는 선인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