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진짜로 우연이다.

“어... 여기에 어떻게 오신 거죠...?”

잠시 휴식시간이라 오늘자 비서 임무를 맡은 대원에게 커피를 권하려 했는데 안 보여서, 뭔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급히 방을 나와 시설을 헤집듯 돌아다니다가 이 부유선의 선미 쪽의 각 추진기의 동력실을 연결하는 짧은 난간에서 어쩌다 마주치게 되어버린 것일 뿐. 결코 미행했다던가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대원은 정말로 놀랐다는 듯, 언제나 손에서 놓을 일이 없는 작은 종을 떨어트렸고, 철로 된 난간에 떨어트린 탓에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주변을 감쌌다.
나 역시 어쩌다 이런 곳에 그녀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예상외의 상황에 의해서인지 뇌의 프로세스가 버그라도 걸린 것인지 말이 나오지 못했다.
그런 우리 둘의 정적을 알리듯, 바람이 난간을 가로질러 지나갔고, 그 바람의 발자취를 따라 대원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파도치듯 흩날렸다.

경계하는 듯 쫑긋 서 있는 동물 귀, 양 볼을 가리는 단정한 땋은 머리, 단정해 보이면서도 허벅지와 다리 쪽은 훤히 드러나 있도록 슬릿이 깊이 파인 전통적인 느낌의 복장. 그런 허벅지를 가리고 있는 부드러워 보이는 긴 꼬리. 오늘자 비서담당을 맡은 대원이자, 쉐라그의 영산(靈山) 칼란의 성녀인 프라마닉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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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길래 찾고 있었다고 말을 하기도 전에, 어렴풋이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화살이 발사된 것 같은 소리가 내 귓가를 지나갔다.
몸이 수건 짜듯이 쫄깃해지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니, 송곳 사이즈의 고드름이 내 옆을 지나 벽면을 꿰뚫고 있었다. 저게 직격했다면 즉사했겠지.
다시 고개를 돌려 프라마닉스에게 향했더니, 그녀는 어느새 떨어트린 종을 잡아들어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쫑긋 올라간 귀에 뻣뻣하게 서있는 꼬리. 진심으로 싸울 기세다.

“당신의 발, 두 번 다시 못 쓰게 얼려...”

너무 극단적인 선택지를 고른 것 아니냐고 묻고 싶지만, 농담할 상황이 아니다. 벌써부터 신발에 얼음이 달라붙기 시작하는 걸 느낀 난, 급히 주머니에 넣어둔 보온병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사정을 설명했다.

“음? 커피? 저한테요?”

멍한 눈 너머로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뻣뻣하게 서있는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고, 쫑긋 올라간 귀도 살짝 접혀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날 죽이려 한 건 그리 진심은 아니었나 보다. 순간적인 당황함과 수치심이 섞인 감정에 휘말린 것이라고 생각하자.
프라마닉스는 종을 그녀의 옆구리에 있는 벨트에 달아둔 다음 내게로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고, 난 그것에 다른 주머니에 넣어뒀던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서 그녀에게 건넸다. 짧은 감사의 말과 함께, 그녀는 난간 쪽으로 걸어가 다시 난간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박사도 여기에서 잠깐 쉬다 가시지 않으실래요?”

뭘 보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내게, 독심술이라도 쓴 것처럼 프라마닉스는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며 권유를 해왔다. 난 그 권유에 응해 그녀의 옆에 다가갔고, 고개를 돌려 난간 너머의 모습을 보았다.
양 옆의 추진기가 시야를 어느 정도 가렸지만, 오히려 그 덕에 시야 한가운데에 있는 풍경을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노을빛으로 물든 구름이 이불 덮듯이 감싸고 있는 험준해 보이는 설산의 무리. 내 옆의 있는 그녀의 고향일 터인 쉐라그 쪽의 산맥이다. 산맥 너머에 유독 눈에 띄게 높아 보이는, 칼란으로 추정되는 산봉우리가 있는 걸 보니 확실하다.
때마침 해가 질 시각이라 그런지, 석양이 쉐라그의 산맥을 향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석양이 발산하는 적색 계통의 그라데이션이 구름과 산맥을 물들이기 시작했고, 햇빛이 닿지 않는 보라색의 하늘은 저 풍경에 데코레이션이라도 하려는 듯 물감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 방의 창문 너머에서도 종종 이 풍경을 봐왔지만, 시야의 각도 차이 때문인지 뭔가 좀 더 웅장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서 보이는 풍경은 정말 특별해요.”

특별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히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무언가에 대한 향수로 인한 것일까. 본디 과거사를 묻지 않는 것이 로도스의 철칙이다마는, 본능적이라고 할 정도의 호기심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떤 의미로 특별한 건가,라고.
프라마닉스는 그런 나의 질문을 무시하듯 침묵을 유지했다. 그저 이 풍경을 계속 보고 싶다는 듯, 그녀의 눈은 저 너머의 경치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 순간을 1초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처럼.
괜한 질문은 그만두기로 하고, 나 역시 그녀처럼 저 멀리의 장관을 바라보았다. 간간이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이 우리 둘을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온기를 지켜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석양이 거의 산맥 너머로 삼켜질 때쯤, 단말기에서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어디에 있냐는 다른 오퍼레이터의 문자였다. 일났군. 생각해 보니 아직 남은 서류가 남았는데 프라마닉스를 찾느라고 급히 나온 거였지.
프라마닉스는 옆에서 내 단말기를 흘끗 보더니, 살랑이는 꼬리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이참에 좀만 더 있다 가죠. 어차피 늦었는데.”

농땡이잖아요.라고 딴죽을 걸었지만, 그녀는 부정을 안 하고 싱긋 웃을 뿐이었다.

“제가 찜해 둔 장소를 박사가 들어왔잖아요? 이렇게 된 이상 공범이 아닐지? 지금 가도 혼나고 늦게 가도 혼날 거면,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는 후자가 이득 아닐까요?”

애초에 그쪽이 농땡이를 안 쳤으면,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예전에 그녀에게 들은 성녀의 책무를 들은 적이 있는지라 함부로 말을 못 하겠다. 그래도 농땡이가 잦으니 한마디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모르겠다. 있다가 잔소리 좀 듣고 말지 뭐.
타들어가는 내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프라마닉스는 다시 난간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양은 어느새 모습을 감췄고, 달빛이 남색과 보라색이 섞인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원래 이곳은 제가 혼자 있고 싶을 때 있는 장소에요.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고, 심신이 지쳤을 때, 이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절 위로해 주죠. 혼자서 즐길 생각이었는데, 박사가 제 농땡이 동료가 되어줬네요.”

어쩌다보니 말이지,라고 대답한 나를 향해 프라마닉스는 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노을빛에 반사되면서 옅은 주황색을 띠었던 그녀의 머리칼과 꼬리는, 달빛에 의해 저 밤하늘의 별 같이 은은한 흰색 빛을 내뿜었다.
그녀는 갑자기 내게로 다가오더니, 커피를 들지 않은 손을 올려, 연약해 보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살포시 눌렀다. 시야가 어두워졌음에도 보이는 매력적인 회색 눈, 곱고 흰 피부, 그리고 미소를 짓고 있는 작고 윤기나는 분홍색 입술.

“...둘만의 비밀이에요?”

분위기도 분위기, 풍경도 풍경이지만, 앞에 있는 그녀의 모습이 빌어먹을 정도로 아름다워 순간적으로 이성을 놓을 뻔했다. 밥공기에 남아 있는 밥풀을 숟가락으로 긁어내듯이 내 남은 이성을 끌어모아 내색하지 않는 척하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고. 내 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프라마닉스의 꼬리가 살랑이는 속도가 좀 빨라졌다.
그녀는 손가락을 치웠지만 나와의 거리는 벌리지 않은 채, 커피 다 마시고 돌아가자고 말하면서 종이컵을 입에 댔다.

“윽, 써...”

커피가 쓴 지 그녀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다음부턴 설탕을 넣어둬야겠군.

...그나저나 돌아가서 어떡하지. 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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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방주 갤러리에서 소설 올리던 사람이야. 이 갤러리에도 올려보라고 권유받아서 이렇게 올려봄 ㅎㅎ 연재한 분량들 한꺼번에 올릴게!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