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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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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사레들리는 일이 잦군. 몸이라도 안 좋나?”

실버애쉬가 날 보며 묻는다.
네가 원인이잖아,라고 부글부글 끓는 심정을 커피가 묻은 얼굴을 닦으면서 억눌렀다. 저게 진짜 순수한 의도로 물어보는 것이었다면 곧이곧대로 대답을 해주었겠지만, 상대가 그 쉐라그의 통치자라는 걸 감안하면 고차원적인 설계를 통해 내게 원하는 답을 말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아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커피를 너무 묻혀서인지 휴지로도 더 이상 닦이지 않을 거 같아 외투랑 모자를 벗어 의자에 걸어뒀다. 세탁한지 몇 시간 밖에 안 됐는데 또 해야 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침울해진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래서?”

세탁을 또 해야 된다는 침울함, 산더미 같은 업무에 대한 귀찮음, 실버애쉬의 질문에 의한 당혹감, 그리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심리에서 기인한 긴장감 등. 여러 가지 감정이 격렬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무심코 짜증 섞인 질문을 내뱉었다. 바뀐 나의 어조에도 아랑곳 않는 듯, 실버애쉬는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말 그대로다. 너는 엔야를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거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대체 뭔... 오퍼레이터로서의 자질이라던가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실버애쉬는 내가 방금 만들어준 과일차를 입에 머금었다. 잠시 향을 즐기려는 듯, 눈을 감으며 따뜻한 차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맞이하더니, 머그컵을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질문을 좀 바꾸지. 엔야를, 여자로 보고 있냐는 거다.”

좀 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혀가 굳어버렸다.
여자로 보고 있다. 이성적인 호감이 있다.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성적 매력을 느낀다,라는 말로 치환이 가능하겠지. 근데 누구를? 프라마닉스를?
머릿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을 도피시키려는 내 뇌의 촌극을 억누르며, 저 대답하기 심히 곤란한 질문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켈시 같이 이런 쪽에 관심이 없거나 아예 입이 무거운 얘들 앞에서라면 모를까, 내 말 하나하나를 교섭 수단으로 활용하고도 남을 이 남자 앞에서 함부로 말할 주제가 아니다.
게다가 의절했다고는 해도 실버애쉬는 프라마닉스의 형제자매. 일반 오퍼레이터라면 비교적 괜찮았겠지만, 꼴에 로도스의 수뇌부인 내가 잘못 대답하는 순간 실버애쉬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과장해서 쉐라그와의 우호 관계를 깨트릴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실버애쉬 정도의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걸 예측하고 내가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려고 하는 고약한 의도를 가지고 질문한 것일 수도 있겠지.
물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서서히 확산되어 가는 것처럼 저 질문에 대한 답변들의 경우의 수가 증식되어 간다. 과연 어떻게 답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고민하니, 눈썹에 주름이 깊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탓에 업무에 집중을 못 하는 나랑 달리, 실버애쉬는 어느새 자신이 처리해야할 서류를 끝마쳤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듯, 웬만한 패션 모델들을 압도하는 긴 다리를 꼬며, 다시금 과일차의 향을 즐기기 시작했다.

“답이 늦는 걸 보니 부정을 하지는 못 하는 것 같군.”
“넘겨짚지는 말아 줄래?”
“아니면 그냥 아니라고 하면 되지 않나?”
“개인 프라이버시를 이렇게 막 들춰내려 해도 되는 거야?”
“우리 사이에 굳이 감출 필요는 없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게 아니라...”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어쩌면 짜증 난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버애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이겼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웃는 얼굴을 부숴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답해주려 했으나, 저 미소를 보며 순간적으로 내 시야에 그의 여동생의 미소가 겹쳐 보임과 동시에, 이 건에 대해서 뇌랑 혀가 파업선언을 해버렸다.

...아아, 빌어먹을. 하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알고 있다. 이리저리 부정하고 회피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낼 답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일부러 내가 답해주는 것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그가 저 질문을 했을 때 단번에 딱 잘라 말하지 못한 시점에서, 내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느껴지는 막막함이 내 가슴을 쥐어짜기 시작했고, 목이 마르기 시작하며 눈 아래가 부르르 떨릴 것 같았다. 평소라면 모자랑 외투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완전히 얼굴이 노출된 지금으로선 그럴 수가 없다 보니, 손으로 하관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유치하게, 나쁘게 말하면 추할 수도 있는, 어린애가 자신의 감정을 일부러 숨기는 것처럼,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다.

“그런가.”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그였지만, 뭔가 나의 태도가 맘에 든 것인지, 점잖게 있던 실버애쉬의 꼬리가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나? 그 마음을 품기 시작한 게. 말하는 김에 그 이유에 진도가 어디까지 갔는지도 듣고 싶군.”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아?”

강제로 내 속마음을 들춰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거북한데, 확인사살이라고도 하는 것 마냥 실버애쉬는 또다시 맹공을 가해 왔다. 압박 면접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듣자 하니 여자들 사이에선 친구끼리 이성 교제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자주 나눈다고 들었다. 남자라고 하지 말란 법은 없지. 특히 너와 나 정도의 사이면 평범하게 할 수 있지 않겠나?”
“아주 말하는 건 웬만한 달변가 뺨치구먼.”
“칭찬 고맙게 받지. 그래서 답변은?”
“집요하네 진짜...”

그런 그의 질문을 듣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에게도 묻게 되었다. 언제부터 프라마닉스를 이성으로 보게 된 것일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확실히 신비로운 분위기에 둘러싸인 미녀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온갖 미남 미녀가 모이는 로도스에서 그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닭 무리 사이에 학 한 마리는 눈에 띄고 특별해 보이겠지만, 학 무리에서의 학 한 마리는 특별하지 않는 것이랑 같은 이치인 셈이다.
전투 당시 싸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니다. 확실히 종과 주문의 이중주를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성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그때도 아름다운 조각상을 바라보는 느낌 이상을 가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비서업무를 맡기면서? 이것도 아니다. 성스럽고 경건한 성녀의 이미지랑은 다른, 농땡이 부리기를 좋아하는, 나쁘게 말하면 확 깨는 모습에 친근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낄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 아무래도 그때부터다. 부유선의 후미 쪽에서 난간 너머의 풍경을 보고 있는 그녀를 만나고, 달빛 아래에서 둘만의 비밀로 하자는 약속을 한 그 순간.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때 그녀가 지었던 미소가 아른거리고,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이 내 입술을 살포시 누른 감촉조차 무의식적으로 떠올려버렸다.
그걸 시발점으로, 그녀와 같이 하는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 자체에 기대감과 즐거움이 동행한다는걸, 멍청하게도 지금 와서 알아차린 것이다.
제길, 이래서는 기껏 감추려 했던 내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버리잖아,라고 생각해버릴 정도로, 이미 내 입꼬리는 자제심을 잃은지 오래였다.
나 자신이 참 주책이라는 걸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미 앞에 있는 남자는 내 표정을 전부 봐버렸겠지만, 난 정신 차리자는 다짐을 하며 양손으로 뺨을 가볍게 두들겼다. 실버애쉬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도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것 마냥 피식 웃으며, 남은 차를 전부 들이켰다.

“엔야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아서 미인상이긴 하지. 네가 반할 만하다.”
“갑자기 여동생 자랑?”
“누가 뭐라 해도 오라비 되는 자다. 여동생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리가 있겠나.”

그 여동생씨는 그쪽을 죽도록 싫어하는 거 같은데,라고 소심한 복수를 해주고 싶지만, 굳이 상처받을 소리는 안 하는 게 낫겠지.

“다신 보지 못할 거 같았던, 그 아이의 모습을 뒤에서나마 볼 수 있을 줄은...”

그 말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실버애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리 꼬는 방향을 바꾸고, 팔짱을 끼고,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젊은 통치자의 담담한 시선은 이 공간을 초월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눈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어째선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설령 가족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라 하더라도.
향수(鄕愁)라는 이름의 웅덩이에 발만 넣어보고 나온 것처럼, 실버애쉬의 시야는 머지않아 현실로 돌아왔다. 숨을 내쉬고, 옅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는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면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조금 피곤한 거 같군. 할 일도 끝났으니 먼저 일어나겠다.”

실버애쉬는 옆에 비치해둔 자신의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압박이 사라진다는 쾌재에 들뜬 내 속마음을 진정시키며 수고했다고 말하는 내 조그마한 격려에,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선명한 구두 소리를 내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고맙다, 나의 맹우여. 응원하고 있겠다.”

들릴 듯 말 듯 한 애매한 목소리와 함께, 은발 남성의 모습은 문 너머로 사라져 갔다.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찌어찌 서류 정리가 전부 끝나서, 실버애쉬가 분류해둔 서류들이랑 내 걸 합쳐서 아미야에게 건넬 박스에 넣어둔 다음, 문 근처에 비치해두었다. 이걸로 저녁식사시간까진 좀 쉴 수 있겠지.

잠시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했다. 뚜둑, 뚜둑, 하면서 내 전신의 뼈들이 빨리 쉬게 해달라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배에서 울리는 허기의 알람도 중요하지만, 역시 지금 우선시해야 될 건 자동문 마냥 닫히고 있는 내 눈꺼풀인 듯싶다. 그렇게 오늘도 열심히 한 나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는 마음으로, 모포를 덮은 채 소파에 누웠다.

잠의 수렁에 완전히 빠져들기 직전, 실버애쉬가 나가기 전에 했던 말이 뇌리에 스쳤다.

응원하고 있겠다...라니. 어떤 의도로 말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