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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소파에서 새우처럼 휜 채 불편하게 잔 탓인지, 오퍼레이터나 알람시계가 아닌 등뼈의 단말마가 날 잠에서 깨웠다.
형광등이 군데군데 켜져 있었지만 빛이 닿지 않는 곳이 검은색으로 물들여져 있는 천장을 보아하니, 시간이 이미 밤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리고 분명 방엔 나 혼자일 텐데, 근처에서 들이는 자그맣게 종이를 넘기는 소리. 아미야가 처리할 긴급히 서류를 가져온 건가 싶어 급히 일어났다.

“일어나셨나요?”

허나 예상과는 달리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의문을 가진 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광등에서 나오는 빛을 뒤로 한 채,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프라마닉스가 있었다.
잠이 덜 깨서 환각을 보는 건가 싶어 눈을 몇 번 비벼봤다. 혹시나 꿈인가 싶어 볼도 꼬집어 봤다. 하지만 내 시야에 변동 사항이 없는 것을 알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정신이 말끔해졌다.
정신이 멀쩡해지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현재 내 상태였다. 잠에서 막 깬지라 부스스한 머리와 눈곱 낀 얼굴, 이틀째 안 깎은 수염, 그리고 내 앞의 있는 처자의 오라비 되는 사람 덕택에 커피로 그라피티가 되어있는 흰색 와이셔츠. 좀 심하게 말해서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근데 그런 몰골을 그 누구도 아닌 칼란의 성녀님 앞에서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수치심을 필두로 한 온갖 부정적인 사고의 파도가 내 이성을 덮쳐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창을 깨부수고 스카이다이빙을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로도스 수뇌부라는 최후의 자존심을 내세워 그 욕망을 간신히 버텨내고, 최대한 태연한 척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예요? 프라마닉스.”

프라마닉스는 나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책을 향해 시선을 좌우로 움직이며 대답했다.

“한 시간쯤 된 거 같네요. 곤히 주무시고 계셔서 깨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 시간이라는 말을 듣자, 난 황급히 앞에 있는 시계를 봤다. 시침이 이미 내가 자기 시작한 시간보다 2시간가량 전진해 있었다.
꼬르륵, 하며, 템포가 상당히 느린 내 배꼽시계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점심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배고플만하지만, 하필이면 그녀 앞에서 이렇게 크게 울리다니. 눈치가 더럽게도 없는 이 빌어먹을 위장을 향해 속으로 온갖 저주문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했다. 이런 나의 반응이. 후줄근하고 모습을 하면서 돌아다닌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여성 오퍼레이터 앞에서 이보다 더 촌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일상이었는데.
왜. 어째서. 이 여성 앞에선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집념이 날 채찍질하는 거지?
태어나서 처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을 잃어버린 후 처음인, 알 수 없는 이 기분은 내 가슴을 덩굴처럼 옭아매는 것 같았다. 복잡한 기분이면 머리가 아파야 할 텐데, 가슴이 간질간질하니 정말로 기이할 수밖에 없다.

내 잡념을 깨부수고 들어오듯, 프라마닉스가 책을 덮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소파 아래에 둔 것으로 추정되는 바구니를 열어 스테인리스 용기랑 포크를 꺼내 내 앞에 놓아주었다.

“이건...?”
“아미야씨에게 들었어요. 점심부터 안 드셨다고. 시장하실 텐데 뭐라도 드셔야하지 않겠어요?”

난 의아해하며 용기 뚜껑을 열었다. 용기 안에는 고기와 채소를 밀가루 반죽으로 감싸 만든 걸로 추정되는 반달 모양의 음식 6개가 꽃 모양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분명, 쉐라그 전통 음식인 ‘모모(Momo)’다. 예전에 용문에서 쿠리어가 쏜다고 사줬던 걸 먹어 봤으니 확실하다. 물론 먹으면서 시니컬하게 맛없다고 하는 그의 얼굴도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말이다.

“주방 일은 오랜만에 한지라,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프라마닉스가 직접 만든 거예요?”

프라마닉스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맞춰 꼬리가 살랑거리더니 앞으로 구부러지면서 그녀의 하관을 살짝 가렸다.

“맛이 이상하면, 안 드셔도 되니까...”

언제나 듣는 담담한 목소리가 아닌, 부끄러운 듯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에 왜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확실히 모모를 자세히 보면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어떤 건 내용물이 터져 나와 용기를 더럽힌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요리는 실력보단 마음이라 하지 않던가. 다름 아닌 그 칼란의 성녀님이 날 위해 손수 만들어준 요리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눈앞에 있는 이 요리가 그 무엇보다도 맛있는 식사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난 잘 먹겠다고 말한 뒤, 포크로 모모를 집어 내 잎으로 천천히 옮겼다. 은은한 채소의 향이 코를 자극하고, 이윽고 음식이 내 입안이랑 랑데부하고, 이가 반죽을 꿰뚫자, 육즙이 살며시 터져 나와 내 입속을 부드럽게 감쌌다. 육즙이 내 혀를 코팅해주자 이어서 맞이해주는 건 아삭한 채소의 질감. 그 직후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고기. 묘하게 끈적거리는 감각이 있는 걸로 보아 치즈도 섞여있는 듯하다. 적절하게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게, 안 그래도 허기진 내 배를 더 자극시키는 거 같았다.

“목 매이시면 안 되니 이것도.”

프라마닉스는 보온병에서 차를 머그컵에 따라 내게 건넸다. 난 그걸 받아서 바로 입에 댔다. 따뜻하면서 담백한 향기가 내 코랑 혀를 즐겁게 해주었다.
먹기 시작한 지 5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어느새 용기 안에 있던 모모는 이미 내 위장 속으로 사라졌다. 난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있는 내 위장을 쓰다듬으며, 프라마닉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프라마닉스. 잘 먹었어요.”
“간이 이상하지 않았나요? 중간에 조미료를 좀 많이 넣었는데...”
“오히려 차랑 어울려서 좋았어요. 더 먹을 수 있었으면 좋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맛있던데요.”
“그럼 다행이네요.”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방금 전까지 하관을 가리고 있던 프라마닉스의 길고 부드러운 꼬리는 다시 소파에 걸터앉은 채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에게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배운 건가요? 맛이 좋던데.”
“어렸을 때 출장 가신 부모님한테 만들어 드리려고 가정주부에게 배웠던 거예요. 그 완성한 건 영원히 못 드리게 되었지만.”

아차, 하며 나의 경솔함을 탓했다. 기껏 좋아지려 했던 분위기가 어리석은 혓바닥으로 인해 싸해질 위기에 처해버렸다. 등골이 쭈뼛해지는 것을 느끼며, 난 무릎을 양손으로 부여잡은 채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미안해요, 그럴 의도로 물어보려 했던 것이 아닌데...”
“이미 지난 일인 걸요. 신경 쓰지 말아요.”

정말 괜찮은 듯, 프라마닉스의 멍한 눈에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었다. 그녀는 모모가 들어있던 용기를 뚜껑으로 잠그고 보온병이랑 함께 바구니에 담아 손에 든 채로 소파에서 일어섰다.

“잠시 산책하러 갈까요? 언제나의 ‘그곳’으로.”

난 그것에 급하게 책상 옆의 옷장에 있는 여벌용 코트를 입기 위해 일어섰다.



겨울이 된 데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난간 쪽의 온도는 생각보다 낮아, 평소에 입는 코트를 입고 왔으면 이미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의심될 정도였다.
나야 털 코트를 입었으니 괜찮다마는, 내 옆에 있는 프라마닉스가 걱정이었다. 평소의 복장 그대로라 허벅지랑 다리가 그대로 외부에 노출되니 추위를 더 탈 텐데... 그녀 역시 어느 정도 추위를 느끼는 듯, 꼬리를 말아서 허벅지와 다리를 감쌌다.

“안 추워요? 코트 빌려드려요?”
“이 정도는 익숙해요.”

난간을 가로지르는 바람과 함께, 프라마닉스의 동물 귀가 쫑긋거렸다. 역시 설산 지역인 쉐라그 출신이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난간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난간 양옆의 복도랑 앞에 있는 추진기의 전등, 그리고 저 멀리 하늘에서 내려오는 달빛이 합쳐져 쉐라그의 산맥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처음 만났던 때랑은 달리, 산맥 전체가 흰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중간중간 녹색의 삼림이 돌출되어 있는 게, 얼마 전 굼이 스테이크랑 같이 먹으라고 준 파슬리를 얹어 올린 사워크림이 떠올라 버린다.

“역시, 조금은 춥긴 하네요.”

잠시 실례,라는 말과 함께, 왼손에서 묘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왼손으로 본인의 꼬리를 어루만지며 오른손으로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프라마닉스가 보이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며, 주변의 시간이 정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방금 전까지 느껴졌던 추위가 거짓말이라는 듯 사라져 갔다. 마치 감기라도 걸린 것 같으면서도, 고통이 아닌 오히려 전신을 짜릿하게 만드는 것 같은 쾌락이 날 맞이해서, 정말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좀 전에 일어났을 때 그녀랑 마주치면서 느껴진 창피함도 이거랑 연관된 게 아닐까.
...아니, 난 분명히 이 감정을 알고 있다. 실버애쉬가 말했을 때 피하려는 것처럼 지금도 모르는 척하려는 것일 뿐. 그러면 왜 이러는 거지? 실버애쉬가 아닌 프라마닉스 앞에서조차 대체 왜?

앞으로 조금만 더,라고 욕망이 꿈틀거린다. 뇌가 분명 진정하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본능이 그걸 무시하는 것 같이, 난 그런 그녀의 가녀린 손을 꽉 쥐었다. 싫어하지 않을까. 아파하지 않을까. 땀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잡념들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지만, 딱히 싫지 않은 듯 무덤덤하게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런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다만 조금 다르다면, 겨울바람이 차가워서인지, 프라마닉스의 뺨이 평소보다 붉어 보였다.

그렇게 손을 잡으면서 풍경을 바라보기를 몇 분.

“박사.”

프라마닉스는 내게로 고개를 돌리며, 아름다운 회색 눈으로 날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언제나의 은은한 미소와 함께.

“좀 더 멀리, ‘농땡이’를 부리러 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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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는 실제 티베트식 만두 이름. 쉐라그의 모티브가 히말라야쪽이라길래 넣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