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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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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북받치는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해진 것처럼 보인 프라마닉스는 식사를 준비하겠다며 주방으로 향했고, 난 약간 불편한 기분을 껴안은 채 외투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멀리 여행을 간다는 것을 예상했기에, 시간이 날 때 처리할 서류들을 몇 개 챙겨왔는데,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일 것이다. 배낭 속에서 다음 주에 있을 미팅 및 회의에 관련된 서류를 꺼내 훑어보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점점 쌓이기 시작하는 처리하다가, 용문에서 있을 웨이옌우 장관과의 미팅 참가자 명단에 써져 있는 ‘켈시’와 ‘아미야’라는 문자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서류를 처리해야겠다는 의욕 대신에 당혹감이 내 마음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나 아무 말도 안 하고 로도스를 나왔잖아?
단말기의 시계를 보아하니 시간은 오전 8시 30분. 로도스의 정규 업무 시작 시간으로부터 1시간하고도 30분이 지났다. 일일 비서 담당 오퍼레이터가 찾아오는 시간이 대체적으로 8시니 이미 부유선 내에서는 내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을 상황. 분명히 켈시나 아미야에게 이 사실이 전해졌을 테고, 빠르다면 앞으로 30분 이내에 비상상황이 통보되고 수뇌부랑 현재 로도스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진영의 수뇌부까지 모여 대규모 회의가 벌어질지 모른다.
제기랄. 켈시나 아미야한테 통보라도 했어야 되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곳까지 온 멍청한 나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물론 산더미 같은 업무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쾌감도 공존했지만, 그 후폭풍을 생각하자면 이딴 건 의미가 없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할까 고민했지만, 여긴 전파도 잘 안 잡혀서 통신도 불가능하다. 돌아가면 무진장 갈굼 당하게 생겼네.
여러 걱정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던 중, 뺨에 살짝 뜨거운 것이 닿아서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숟가락이 들어간 머그컵을 들고 있는 프라마닉스가 내 것으로 추정되는 걸 뺨에 툭 치는 것이었다. 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머그컵을 받으며,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자며 숟가락을 잡았다. 프라마닉스 역시 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머그컵 안에는 곡물가루로 추정되는 갈색 입자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채 고소한 냄새를 수증기에 태워서 내 코로 보내고 있었다. 숟가락으로 우선 물을 떠서 후후 분 다음, 한 입 가득 입안에 담았다. 곡물의 내용물로 물든 따뜻한 국물이 목 너머로 넘어가면서, 식도에서 위까지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다음엔 곡물 차례. 이번에도 숟가락 한가득 담아 입안에 넣었다. 바로 삼켜도 괜찮을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것만 같았다.
“담백하고 좋네요. 무슨 음식인가요?”
“참파(Rtsampa)에요. 볶은 보리를 뭉게서 만드는 요리죠. 밥으로도 할 수는 있는데, 아무래도 저나 박사 둘 다 빈속이니 소화하기 쉽게 죽으로 만들었어요.”
섬세한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며, 다시 한번 숟가락을 담았다.
따뜻한 머그컵의 온기. 옆의 그녀랑 비슷한 페이스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유대감과 지금 이 상황 자체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 이 행복한 시간이 멈추지 않고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나중에 있을 업무 때문에 골치인가 보네요?”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의 질문이 잊을 뻔했던 내 문제를 상기시켜줬다. 덕분에 사레들릴 뻔했다.
“네. 생각해 보니 켈시나 아미야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와서... 지금 로도스가 어찌 될지 걱정이네요.”
“그거라면 그 사람이 알아서 해준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 사람...?”
순간 누군가 했지만, 프라마닉스가 그 사람이라고 칭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한 사람뿐이다. 특히 그녀가 말하는 문맥을 파악하면 해당되는 게 더더욱 오라비 되는 자인 ‘그 사람’밖에 없다.
“실버애쉬가 갑자기 왜...?”
“저도 몰라요. 기분 나쁘게 뭔가 좋은 걸 발견했다는 듯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더니 ‘맹우랑 휴가를 갔다 오라’는 말을 하질 않나. ‘오랜만에 부모님 얼굴도 뵙는 게 낫지 않나’라고 하질 않나. ‘야카의 스케줄을 비워둘 테니 가서 부탁해 보라’라고 하질 않나! ‘맹우에 관한 건 나에게 맡겨라’라고 하질 않나! 하여간 옛날 때부터 제멋대로이고 남 생각 안 하는 건 하나도 변하질 않고! 정말! 언젠간 그 성격 때문에 한 번을 화를 당해야 정신을 차리지!”
쌓인 울분이 터지기라도 한 건지, 실버애쉬가 말한 부분은 그를 연기하려는 듯 저음으로 말하면서, 뒤로 갈수록 프라마닉스의 언성이 높아져갔다. 아마도 그녀와 만나고 난 이후로 제일 길고 짜증 섞인 불평임이 틀림없다.
과연, 실버애쉬가 이번 여행을 주도한 건가. 전날에 그가 ‘응원하고 있겠다’라는 수수께끼를 풀 게 되었다. 나랑 프라마닉스를 별장에 보낸 다음, 남녀 간의 그러고 그런 무드를 만들려 한 수작이겠지. 솔직히 말해서 그런 쪽의 욕망은 쌓이고 쌓인지라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겠다는 음흉한 생각이 잠시 지나가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지금은 자제하고 있어야 된다는 걸 안다.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가끔은 의심이 가도 그 쉐라그의 젊은 통치자님이시다. 어떻게든 알아서 잘 설명해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속의 짐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얼마 안 남은 내용물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모으면서, 씩씩거리고 있는 프라마닉스에게 물었다.
“평소처럼 무시하면 되지 않았나요?”
“모처럼 더 멀리 놀러 가는 건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죠. 그 사람의 짜증 나는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종이의 앞면과 뒷면같이, 방금 전의 성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바로 조용해진 어조로 돌아온 그녀는 머그컵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모처럼 당신이랑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인걸요.”
두근, 하며 심장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무 거리낌 없이 남자가 좋아할 말을 에프이터의 펀치처럼 날려대는 이 처자 덕분에 요즘 따라 내 심장에 위험 신호가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꿈틀대는 욕망을 참고 있는데 저런 공격을 걸어오면 나로선 당황할 따름이다.
난 한두 번 헛기침을 하면서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프라마닉스에게 머그컵을 건넸다. 그녀 역시 다 먹었는지 머그컵을 들고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어디, 그럼 난 서류 처리를 마저 시작해 볼까.
◎
차가운 바람이 뺨을 지나간다. 저 멀리까지 펼쳐진 주황색 하늘과 설원을 활주하고 있는 온갖 동물들의 모습이랑 지평선에 걸터앉은 로도스의 부유선을 안주 삼아 프라마닉스가 따뜻하게 데워준 술을 홀짝인다. 보리로 만든 쉐라그 전통주인 ‘창(Chang)’이다.
현재 시각 저녁 5시. 해가 자기 일을 끝내고 땅 아래로 퇴근할 시간이다. 저녁 먹기 전에 잡담이라도 하자며 옥상으로 가자는 프라마닉스의 초대에 응해, 어린아이 3명이, 혹은 성인 2명이 탈 수 있을 것 같은 나무 그네에 앉아 간만의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잔을 입에 대 말라가는 목을 축였다. 그러고서 이어지는 고요함.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은 새들의 울음소리가 저 숲 너머로 들려온다.
술이 비워진 잔을 만지작거리며, 프라마닉스는 입을 열었다.
“박사, 칼란의 성녀가 되는 과정은 예전에 들은 적 있죠?”
갑작스레 분위기가 무거워질 것 같은 주제에 등뼈가 뻣뻣해지면서 기껏 축인 목이 사막처럼 급속도로 말라갔다.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대원 기록에서 본 바에 따르면, 적령기가 된 소녀들을 사당에 가둔 후, 사당의 처음 녹은 눈의 물방울을 가진 아이가 험준한 설산을 세 걸음에 한 번 절하고 다섯 걸음에 한 번 종을 울리며 걸어가야 한다고 들었다. 도중에 걷다가 탈진해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몇 번이고 들었지만 참으로 정신 나간 방법이 아닐 수가 없다.
“성녀가 된 후에도, 이 ‘축복’을 받는 걸 유지하려면, ‘신’이 요구하는 것들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되요. 이걸 어기면 곧바로 ‘축복’을 잃어버리고 성녀의 직위도 사라지게 되죠.”
거기에 더 있다고?라며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기껏 얻게 된 직위조차 한 번의 실수로 잃어버릴 수도 있다니. 너무나도 불합리한 처사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프라마닉스는 무덤덤하게 그 요구 사항들을 읊었다.
주기적으로 경전을 읊는 거라던가 매일 3번 기도를 하는 정도까지는 괜찮다 생각했으나, 후로 갈수록 내 표정이 찡그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카락을 자를 땐 한 달에 한 뼘 길이 정도만 자르라, 손톱과 발톱을 함부로 깎아서 버리지 말라, 식사를 일정량 이상을 넘기면 안 된다, 몸에 흉터를 만들지 말라, 감정을 섣불리 보이지 말라, 사람과 함부로 눈을 마주치지 말라 등. 갈수록 요구 사항에서 상당한 변태성이 느껴졌다. 이게 과연 성녀인지 아니면 ‘신’이라는 작자의 인형인 건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다만 신님이 그리 깐깐하셨던 건 아니었답니다. 일부는 그럭저럭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었고요. 하지만 제일 엄격하게 요구되는 건...”
프라마닉스는 말하기를 망설이듯, 잠시 입을 꾹 다물더니, 짧은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말한 ‘신’의 마지막 요구 사항에, 나는 무심코 입을 다물어버렸다.
순결한 처녀여야 할 것.
타들어갈 것 같은 가슴을 손으로 문질렀다. 목의 근육이 팽팽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심히 터무니없는 요구 조건. 그것이 내가 듣고 난 후의 첫 번째 감상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규정을 낸 ‘신’, 혹은 ‘신’을 빙자한 장로단의 악의적인 농간일지도 모르는 저 성녀 시스템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린 소녀에게 생사가 갈리는 시험에 강제로 들게 해두고 나서는 성공해도 온갖 규정을 붙여놔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도 못하게 해놓곤,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수 있는 감정조차 배제해버리다니. 다른 국가의 전통이라고는 해도 너무 비인도적이고 미개하다는 욕설이 목 끝까지 나올 거 같아 손으로 하관을 틀어막았다.
“박사.”
프라마닉스가 그런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남은 손을 그녀의 가녀린 양손으로 잡았다. 겨울바람으로 차가워진 내 손이 온기를 되찾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더 가까운 거리. 나와 그녀의 얼굴 사이엔 20cm 정도밖에 나지 않았다. 그녀의 투명한 회색 눈 너머로 나의 실루엣이 보인다. 더 가까이서 보이는 백옥 같은 피부와 윤기나는 분홍색 입술이 내 이성을 희미해지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주변에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조차 멈춘 것만 같았다.
“만약에, 지금 여기서 절 안아달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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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나온 참파랑 창도 실제 티베트식 요리 중 하나.
※ 성녀가 된 후의 요구 조건은 글쓴이 오리지널. 네팔의 쿠마리 여신이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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