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hypergryph/113523

2화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hypergryph/113526

3화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hypergryph/113528

4화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hypergryph/113540

5화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hypergryph/113546

6화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hypergryph/113553

7화 링크:
https://m.dcinside.com/board/hypergryph/113557


피드백 대환영!

--------

“그래서, 할 말은 그게 다야?”

눈앞에 있는 악마의 실루엣을 띄고 있는 녹색 머리 여성이 종이를 책상에 떨구며 묻는다. 그녀를 엄호하는 정체불명의 검은 괴수, Mon3ter가 내 몸을 꽁꽁 묶어 천장에 매달고 있는 채로, 난 최대한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피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와 함께 로도스를 만든 동업자이자, 현재의 나, 아미야랑 더불어 로도스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인 켈시다.
예상은 했다마는, 로도스에 돌아오자마자 요 모양 요 꼴이라니. 나의 가엾은 처지에 속으로나마 한숨을 쉬었다.

“죄송합니다. 죽이는 것만은 봐주세요.”
“평소에 날 뭐라 생각하는 거야?”

켈시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걸음 소리가 한 발자국씩 울려 들어오는 게 마치 전장에서의 포탄 소리와도 같아서, 미녀의 형상을 가진 저승사자가 낫을 들고 나에게 접근하는 것만 같았다.
이프리트보다 더 괴팍하고 전투 모드의 마토이마루보다 냉혹한 주제에 속내를 알 수 없는 건 실버애쉬에 비견될 수준의 악마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진짜로 말하다가는 안 그래도 간당간당한 목숨이 먼지가 돼버릴 거 같으니 자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리유니온과의 대치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인데 경호원도 없이 로도스를 나가? 그것도 업무가 밀린 상태로 땡땡이를 쳐?”

손에 쥐고 있는 종이뭉치로 손찌검을 날리듯 내 양쪽 뺨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아프지는 않는데 기분이 점점 나빠진다.

“게다가 그 누구도 아니고 칼란의 성녀를 데려가? 실버애쉬에게 약점 잡히려고 아주 작정을 했나 봐? 미쳤어? 기억을 잃었더니 이성까지 같이 밥 말아먹기라도 한 거야? 이참에 도베르만에게 부탁해서 정신단련이라도 시켜줘?”

언어에 물리력이 있다면 아마 지금쯤 10번쯤 죽지 않았을까 싶다. 날붙이가 가슴을 꿰뚫고 총알이 머리를 난타하는 기분인데,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전부 다 맞는 말이야 반박할 수 있을 수가 없으니 원통할 노릇이다.
그런 반면에, 용문의 그 팀장님이랑 말싸움할 때도 조목조목 따지며 냉철하게 대응하던 그 켈시한테서 이렇게 사막의 모래폭풍을 연상시키는 매서운 언어의 파도가 나올 수 있다는 거에 신선함과 위화감을 동시에 느꼈다.

“저 켈시, 평소보다 신경이 곤두선 것 같은...”
“닥쳐.”

켈시의 폭언과 함께 Mon3ter의 구속이 풀렸다. 2m 가량의 높이에서 매달려 있다가 갑자기 풀려버리니 아무 대처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이랑 강렬한 키스를 해버렸다.
얼굴 전체를 굼의 프라이팬으로 맞은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면서, 양손으로 옷에 먼지를 턴 다음, 오래 압박되어 있었던 허리를 달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런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켈시는 분이 덜 풀린 건지 얼굴을 찡그린 채, 다시 의자에 앉아 산더미같은 서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쌓인 업무들 전부 네 방에다 가져다 놨으니까 빨리 처리해. 6시간 이내에 끝내오지 못하면 30분마다 업무 한 개씩 추가시킬 거야.”
“너무한 거 아냐?”
“무단결근한 벌칙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틀치를 6시간에 끝내라는 건...”
“6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어들고 싶어?”

지금 당장 달려가서 시작해야겠군.



“켈시 선생에게 제법 곤란한 일을 당했나 보군.”

실버애쉬가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내게 물었다.

“놀리러 온 거라면 나가줄래?”
“설마, 나의 맹우가 곤란에 처했길래 도와주러 온 것일 뿐이다.”
“도와주러 왔다면서 지금 10분째 차만 마시고 있잖아.”

그에게 시선을 맞출 여를도 없이, 여러 개의 박스에 쌓인 서류들을 재빨리 정리하고 있다. 다행히도 아미야가 결재해야 할 서류랑 읽어야 하는 서류를 분류시켜 놔줘서 혼동하는 일은 없으니, 이대로면 6시간 이내에 아슬아슬하게 완료할 수 있을 거 같다.
오퍼레이터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보다 빨리 끝나겠지만, 설마 켈시 녀석, 날 아주 제대로 혼낼 생각이었는지 오늘 비서업무를 맡을 오퍼레이터에게 유급휴가를 줘버릴 줄은 몰랐다. 어떤 면에선 리유니온보다 더한 악질이다.

“그래서, 여행은 즐거웠나?”
“누구 덕에 아주 즐겁게 갔다 왔지.”

다 마신 찻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실버애쉬가 질문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손안에서 놀아난 꼴이 됐긴 했지만, 그 덕에 나에게도 여러 진전이 있었으니 나쁘게 생각할 수준은 아니다. 물론 고맙다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즐거웠다니 다행이군. 그럼 이제 슬슬 호칭을 매부라 부르면 되나?”
“무서운 형님을 가지고 싶진 않은데.”

엔야와 관련된 저 곤란한 질문들. 며칠 전까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겠지만, 마음을 다잡은 지금으로선 평범한 유머로 느껴진다. 진작에 이랬으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진 기분이었다.
실버애쉬는 그런 나의 반응에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자리를 옮겨 내 앞쪽의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선 내 오른쪽 상자에서 서류를 한 움큼 쥐어서 꺼내,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굳이 안 도와줘도 되는데. 오늘은 비번이잖아?”
“여동생들을 보살펴주고 있는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 생각해둬라.”

또 이 녀석이 뭔 생각을 가지고 이러는 건가 싶었지만, 지금은 이 종이뭉치의 산을 처리하는 게 급했던지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에게 업무 일부를 맡긴 채, 난 잠시 들었던 고개를 다시 내려 서류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사무실은 다시 침묵을 되찾았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실버애쉬의 도움 덕에 비교적 빨리 업무 처리를 끝내서, 난 곧바로 방을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업무 처리 도중에 엔야로부터 일이 끝나면 잠시 방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아서다.
그녀의 방 앞에 도착하고 나서, 잠시 복장상태를 봤다. 면도도 확실히 했고, 옷도 깔끔한 걸 확인한 후, 문을 약하게 두 번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끝나자마자 자동문의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방 안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목재로 된 벽 쪽에 붙은 흰색 벽돌로 쌓여진 벽난로를 둘러싸고 있는 3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소파. 그 뒤로 보이는 갈색 식탁에 쿠션이 깔린 두 의자. 석양이 지고 있는 것이 보이는 큰 창문 옆에 있는 침대와 서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돌아서 미소를 짓는 채 날 반기는, 사랑스러운 그녀.
뒤에서 자동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켜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난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요, 프라마닉스?”
“둘이만 있을 땐 뭐라고 했죠?”
“미안해요, 엔야. 아직 좀 익숙치 않아서.”

잠시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름을 불러주자 곧바로 미소를 되찾는 그녀의 모습에 무심코 귀엽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처음 만났을 때였다면 상상치도 못할 저 반응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앞에서만 보여주고 있다는 우월감이 섞인 기쁨이 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프라마닉스가 습관처럼 불러왔던 그녀의 코드네임이기도 하고, 아직 공식적으로 우리의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본명을 공공장소에서 부를 수 없는 상태니, 코드네임과 본명을 자유롭게 바꿔 말하도록 적응하기엔 시간이 좀 걸릴 듯싶다.
엔야가 창가를 보고 있어서 나도 시야를 옮겼더니 유리로 된 플라스크가 보였고, 그 위엔 종 모양을 가지고 있는 앙증맞은 흰색 꽃들이 사이좋게 저 하늘의 주황색 물감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분명 예전에 퍼퓨머가 가르쳐줬던...

“은방울꽃이네요?”
“네. 이번에 새로운 취미로 한 번 키워볼까 해서요.”

차 한 잔 마시자는 엔야의 권유를 받아들인 채, 난 벽난로 앞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건네며 바로 내 옆에 딱 달라붙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벽난로의 온기를 같이 느꼈다.

“박사, 은방울꽃의 꽃말을 아나요?”
“아뇨, 뭔가요?”
“비밀이에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은 채, 엔야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먼저 궁금하게 만들어놓곤 답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약간 얄미웠지만, 그것조차 지금의 내게 있어선 그녀의 매력이라 느껴졌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는 옛말이 떠오르면서, 역시 옛말에 틀린 게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나도 살짝 머리를 기울여 엔야의 머리랑 맞대었다. 쫑긋거리는 그녀의 동물 귀가 날 간지럽히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비어있는 내 손을 감싸려 하고 있는 푹신푹신한 꼬리의 감촉. 이 순간 하나하나가, 나에게 있어서 지고의 낙원과도 같이 느껴졌다.

“박사.”
“왜요?”
“저에게 행복아라는 걸 다시 알려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 같았다. 아니, 내 몸이 그러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머리, 어깨, 팔,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 따뜻함이 날 떠나지 않게 붙잡고 싶어서. 언젠가는 떨어져야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 새로운 날이 뜨면 다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훗날에, 이 온기가 식어버리거나, 어쩌면 빼앗기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 시련이 닥쳐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더욱더 강한 열기를 퍼뜨리며 그 눈보라를 헤쳐 나갈 것이고, 그 너머에 있을 ‘행복’이라는 미래를 찾아갈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벽난로의 불씨는, 그치지 않고 활활 타올라간다.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둘만의 여행을 인도하듯이.

--------

※ 은방울꽃의 꽃말은 '순결', '다시 찾은 행복'

※ 다음편은 새비지편! 자고나서 올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