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간곡히 거절했다.
“부탁이다.”
“...”
곳곳에 붉은 핏자국이 스며든 흰색 가운을 입은 중년의 부탁은 이제 아무 말도 붙이지 않은 채 단순히 부탁한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서있던 그 공간 속의 상황은 그 단순한 말에 거절할 수 없는 힘을 실었다.
병동에 있던 모든 의사들은 마스크를 낀 상태였지만 마스크는 수술용 마스크가 아닌 흡사 방독면의 모습을 띄고 있었으며, 입고 있던 복장 역시 수술복이 아닌 오리지늄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부탁에 힘을 실었던 것은 온 몸에 피칠갑을 한 복장의 의사들, 그리고 바닥, 벽, 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흩뿌려진 선혈이었다.
중년의 말에 묵묵부답으로 서있던 자는 몸을 돌려 유리 너머에서 서서히 눈의 빛을 잃어가며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존재를 보았다.
그 참상을 같이 지켜보던 중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사카즈에서도 극단주의파가 오리지늄 원석 자체를 스스로 흡수시켜서 힘을 키우고 있었어. 문제는 그 말로의 결과가 자신이 불타는 오리지늄 폭탄이 되버린다는 거야.”
유리 너머에서 지켜보던 존재는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다. 중년의 남성은 그 시체를 응시하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이 미친새끼들은 자기가 폭탄이 되버린다는 것을 순례로 여기고 있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그 생각할 찰나의 시간에 이 참상이 또 일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늄을 계속해서 흡수해왔던 몇몇의 사카즈들이 전쟁에서 사용될 군수 물품들을 나르던 보급팀을 몇 시간 전에 습격했다.
해당 보급 루트의 안전성은 사전에 확인되었지만, 그 안전함이 계속될 거라는 안일한 판단을 한 수뇌부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사카즈들은 군수 물품들을 약탈하거나 포로를 확보하기 위해 습격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습격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카즈의 인원은 많지 않았다.
단 두 명이, 오십 명에 달하는 인원을 죽음에, 혹은 죽음보다 더 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후열에 있던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아츠로 추정되는 빙결 현상이 길을 봉쇄하고 전열과 중열에서 증기처럼 나타난 두 존재가 공명하며 폭발을 일으켰다고 진술했다.
그들이 사카즈임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폭발 직후 발생한 무수히 많은 오리지늄 원석 파편들이 뿌려졌기 때문이었다. 폭발의 진원지였던 전열과 중열의 인원 대부분은 즉사하거나 오리지늄 파편이 온 몸에 박혀 광석병이 발병한 상태였다. 차라리 죽었으면 더 나은 상태라고 말 할 정도로, 그들이 흘리는 고통의 신음과 피칠갑을 한 육체를 계속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재미로 전쟁을 원하는 거다.”
“...”
“네 말대로 계속해서 피한 결과가 이 참상을 일으킨 것이고.”
사카즈의 행동들은 선민 종족에게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죽음에서 슬픔을 느낄 때, 그들은 죽음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뒤틀린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선민 종족들은 그들을 기피했지만, 사카즈는 그들이 기피하던 말던 상관 없이 계속해서 사건을 일으켰다. 자기 자신이 폭탄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결과로 생을 끝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선민 종족의 고위층들은 전부 전쟁을 생각하고 있어.”
“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이 곳에 온 거지, 앗아가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네가 살리는 생명의 수 만큼 사카즈들은 두 배를 앗아가고, 끝내 너와 여기에 있는 살리는 자들마저 앗아갈 거다.”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을 겁니다.”
“있으면 이미 찾아갔겠지.”
“한 번 겪었으면 족합니다.”
중년의 남성이 가운에 손을 집어 넣고 한숨을 쉬며 입에서 나온 말은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키메라를 쓸거야.”
온 몸이 경직되고, 동공이 확장됐다.
“네가 지휘를 담당하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는 나에게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켈시 역시 포함이다.”
협박하러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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