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우린 너무나 무지했다.
누군가는 미지에 대한 공포가 제일 두렵다고 하지만, 그 당시 우리에겐 밝혀지지 않은 미지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 미지가 생명에 연관되어있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과실이나 다름 없었다.
그 아이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그 아이를 죽음의 곁에 두었다.
지금의 나에겐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가슴에 오리지늄을 박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 오리지늄을 박았으며,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존재는 절대 행할 수 없는 온갖 역겨운 행위를 저질렀다.
그 아이를 처음 수술실에서 보았을 때 나에게 다행이라고 느껴진 점은 그 아이가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이 아닌 비명만 내질렀을 뿐.
미지의 밝혀내기 위한 결과는 우리에게 지식을 가져다주었으나 그 여파는 우리에게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에게서 단 한 번도 단어를 들어 본 적도 없었고, 눈을 뜨고 있어도 그 아이는 죽어버린 생선의 눈 마냥 공허함만이 가득했었으며, 입은 언제나 굳게 닫은 채로 있어 감정을 표출한 적이 없었다. 다 끝난 수술대에서 혼자 남아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요.”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는 미지의 공포로 다가와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웠다.
“뜨거워...”
뇌는 정지되었지만 몸은 수술실을 나가기 위해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침착함은 사라졌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으며 심장박동이 치솟아 식은땀이 났다.
“전...”
세 번째 말을 입에서 꺼내려는 아이는 수술대에서 고꾸라지며 조용해졌다. 그 때 나의 행동은 역겹기 그지 없었다. 요동쳤던 심장박동은 정상으로 돌아갔으며 그 상황을 기회로 삼아 수술실을 나갔다. 내가 밖으로 나서자 나와 같은 오리지늄 방호복을 입은 두 명이 들어와 기절한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목과 손, 발에 구속구를 채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켈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듯한 표정으로 켈시는 말했다.
“스스로 해결해.”
“알아.”
“안다고 하기에는 도망치기 급급한 걸로 밖에 보이지 않던데.”
의표를 찌른 그녀는 말을 이어 나갔다.
“어짜피 수술실에 들어가면 얼굴을 알아챌 방법은 없어. 해왔던 대로 행동해.”
“안다고.”
대화를 피하기 위해 짜증이 섞인 어투로 대답하고 자리를 뒤로했다.
“이 짓거리를 시작한 건 너란 걸 잊지마. 시작했으면 마무리도 지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내 방으로 걸어갔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시작은 광석병을 고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알아가기 위해서 선택했다. 재앙이 흩뿌린 파편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재앙의 파편이 지금 이 세상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물건이다. 하늘에서 내린 재앙의 파편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했으며,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었기에 누군가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고작 몇 십 년 사이에 급격한 문명의 발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본질은 재앙이었으며 그것을 악이용하는 자들도 속출했다.
감염자들이 사회에서 받는 핍박은 무조건 죽음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 자도 있었지만, 보복하기 위해 이를 가는 자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사카즈들은 그들을 이용했다. 자신들의 아츠로 그들을 세뇌하고, 이동도시 속에 숨어들게 하여 감염되지 않은 자들의 몸에 오리지늄을 박아서 자신들과 똑같이 감염자로 만들어버렸다.
처음에는 용문이었다. 핍박받던 자들이 치를 떨며 ‘살인국’이라고 외칠 정도로 감염자들을 곧바로 살해하거나 이동도시에서 가차없이 추방시켰기에 내분을 조장시키기 위한 장소로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의 인사를 노린 결과, 그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 용문은 해왔던 것 처럼 곧바로 죽이거나 추방시키지도 않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행동했다. 신분의 차이가 죽음과 삶을 저울질하기에는 충분했다.
핍박받았던, 복수로 이를 갈던 자들만이 아닌 살기 위해 조용히 발버둥 치던 자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보복심이 죽는다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집어 삼켰다.
그렇게 용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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