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7년 11월 19일 9:20 P.M.
[경비원 A] 이쪽이다.
[경비원 A] 앞이야.
[경비원 A] 아직 앞쪽이야, 그녀를 본 것 같아.
[경비원 A] 잠깐, 이 표지판 방금 본 거 아니야?
[경비원 B] 제자리야,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경비원 B] 내가 그랬잖아, 그 필라인 오리지늄 아츠는 무슨 귀신이라도 들린 것 같다고.
[경비원 A] 조급해하지 마, 이 앞은 감염자 동네니까 그 도둑은 분명 거기 숨어있을 거야.
[경비원 A] 그 망할 감염자...... 오늘 여기를 뒤집어서라도 그 도둑을 잡고 말거야, 누가 감히 우리를 막겠어.
[경비원 리더] 됐어, 돌아가자.
[경비원 A] 대장, 그 돈이랑 물건들을 무시하고 그냥 놔주자고......?
[경비원 리더] 됐다 됐어, 다 합쳐도 얼마 안되는데 그까짓거 우리가 메꾸자.
[경비원 리더] 나리께서 일 벌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경비원 리더] 나리한테 불필요한 말썽 일으키면 해고 정도로는 안끝날걸.
[경비원 리더] 일단 철수다.
[헤이즈] 후후~
[헤이즈] 고양이를 잡고싶다면 좀 더 똑똑해져야 할걸~
[헤이즈] 샤오민, 거기 있어?
[감염자 소녀] 마녀 언니!
[헤이즈] 자, 오늘의 밥하고 약이야.
[감염자 소녀] 고마워 언니.
[헤이즈] 그래, 천천히 먹어, 체하지 말고.
마른 빵 한조각으로 한 끼를 떼운다.
나는 언제부터 남에게 베풀기 시작했을까?
자신의 생활은 이미 이어가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헤이즈] 콜록...... 콜록......
[감염자 소녀] 언니...... 안색이 많이 안좋아.
[헤이즈] 그래...... 그렇게 티났어?
[감염자 소녀] 마녀 언니, 나도 언젠가 언니처럼 오리지늄 아츠를 쓸 수 있을까?
[헤이즈] 아직은 안될걸~
[감염자 소녀] 아...... 그래도 나 마녀가 되고싶어, 언니처럼.
[헤이즈] 조금 더 자랄 때까지 기다려, 꼬마 고양이.
[헤이즈] 콜록...... 콜록......
찌르는 듯한 통증.
광석병의 찌르는 듯한 통증은 3개월 전부터 멈추지 않고 있다.
어쩌면 자신도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결정이 분진화될 때 잘못해서 타인을 해쳐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아니, 우아한 고양이라면, 위치 포레스트의 캐스터라면——
세상을 떠날 때 역시 고독하고 우아해야 한다.
[헤이즈] 한 집, 두 집, 세 집......
[헤이즈] 일곱 마리, 여덟 마리, 아홉 마리......
[헤이즈] 맞혀볼래, 이 감염자 구역에 얼마나 많은 술집과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있을까?
[헤이즈] 내가 분명히 셌는데, 총 여덟 곳의 술집과 서른두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있어.
[헤이즈] 술집마다 네 마리의 고양이니까, 고양이마다 신선한 비늘을 나눠가질 수 있지.
[헤이즈] 혹시 자신이 지금까지 몇 개의 도시를 지났고, 몇 곳의 감염자 구역을 지났는지 세본 적 있어?
[헤이즈] 내 기억으로는, 다섯 개의 도시, 여덟 곳의 감염자 구역, 그리고 열일곱 번의 탈옥이야.
[헤이즈] 이렇게 많은 도시들을 걸어보니 칼라돈은 꽤 흥미로운 장소야.
[헤이즈] 모두가 똑같아, 날이 밝으면 돈을 벌고 날이 어두워지면 술을 마시러 가지. 눈을 감을 때는 절대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아.
[헤이즈] 감염자와 일반인, 무엇이 다른 걸까?
[헤이즈] 어느날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칼라돈 항구 일대가 전부 바다에 빠지면서 모든 것이 끝나버릴지도~
[헤이즈] 그래서 만약 묻힐 장소를 하나 고르자면, 여기는 오히려 괜찮은 장소라고 할 수 있지.
[헤이즈] 칼라돈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장소에서, 온몸이 돌덩이가 되고 “펑” 하는거야.
[헤이즈]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거야—— 그래도 좀 먼 장소를 찾아야겠지, 분진이 바람에 날려버리면 안되니까.
[헤이즈] 몸 안의 돌들이 좀 진정됐나보네......
[헤이즈] 아직은 때가 아닌가봐, 적어도 오늘은 말이야.
[헤이즈] 그 날이 오기 전에, 역시 내일은 어디로 놀러갈지부터 고민해야겠어.
[헤이즈] 이야, 어느새 날이 밝았네.
[헤이즈] 굿모닝 빅토리아, 굿모닝 카란돈.
[헤이즈] 그럼 오늘은 어떤 행운의 집이 고양이의 관심을 받을까나?
1097년 11월 23일 10:14 P.M.
[헤이즈] 이쪽 건물에는 아무도 안 사나보네......폐허 구역에 가까워서 그런가?
[헤이즈] 낡은 창고라...... 음......
[헤이즈] 뭔가 쓸만한게 있을까?
[헤이즈] 들어가봐야지~
[헤이즈] 먹을 건...... 이런 곳에 먹을 건 없겠지.
[헤이즈] 뭔가 값진 물건은 있으려나?
[헤이즈] 먼지 투성이에, 기름 냄새도 고약하고, 귀여운 물건도 없고......
[헤이즈] 이 꽃병은 꽤 예쁜데——
[???] 그것들 함부로 건들지 마.
[헤이즈] (?!)
[???] 이해가 안되네, 감염자 몇 명이랑 노인 한명 납치하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건......
[???] 입 다물고 돈 받은 일이나 처리해, 많은 건 묻지 말고.
[헤이즈] (휴......)
[???] ......무기는 잘 점검 했어?
[???] 문제없어, 그 의원녀석 상대하고도 남아.
[헤이즈] (무기? 의원? 재미없네......)
[???] 그래도 방심하지 마, 나는 그 고용된 싸움꾼들 별로 안 믿어.
[???] 폭발물은 어때? 그 오리지늄 폭탄은 신경 쓸 것 없어?
[???] 폭발물은 다른 쪽에서 걱정할 문제고, 우리 둘은 상관 없어.
[???] 우리는 무기랑 아츠유닛만 준비하면 돼, 3시간 후에 누가 와서 작업을 실행할거야.
[???] 그러면 우리는 보일 구역에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면 돼.
(유리 깨지는 소리)
[???] 누구야?!
[검은 옷의 떡대] 들었지?
[검은 옷의 계략가] 이상하네...... 분명 문은 잠궜는데.
[검은 옷의 떡대] 나는 분명히 들었어, 누군가 들어왔어.
[검은 옷의 계략가] 사람이라면 어디 있는거지?
[검은 옷의 계략가] 이렇게 작은 방에 사람이 어떻게 숨겠어, 아마 고양이겠지.
[검은 옷의 떡대] 그 말이 맞아, 정말 죽을지 살지 모르는 고양이지.
(석궁 발사음)
[검은 옷의 떡대] 어디보자, 어떤 고양이가 오면 안 될 곳에 침입했을까?
[헤이즈] 이봐, 떠돌이 고양이가 좀 묵었다고 그렇게 인색할 건 없잖아?
[검은 옷의 떡대] ......
[검은 옷의 계략가] ......
[검은 옷의 떡대] 누구지?
[검은 옷의 계략가] 감염자인가? 타이밍도 참 잘골랐군.
[헤이즈] 말 했잖아, 그냥 지나가던 떠돌이 고양이야. 어쩌다보니 여기 온거고.
[헤이즈] 혹시 꽃병에 대한 배상으로 아무 일 없던 셈 쳐줄 수 있을까?
[검은 옷의 떡대] ......네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물어볼 생각도 없고, 네가 어쩌다 여기 왔는지도 관심 없어. 우리한테 들킨 이상 살아서 나갈 생각 마라.
[검은 옷의 떡대] 죽어라.
(석궁 발사음)
[헤이즈] 너희들 “고양이를 해치면 안 된다, 행운이 달아난다” 라는 말 못 들어봤어?
[검은 옷의 떡대] 빗나간건가?
(아츠 효과음)
(화면 어두워짐)
[검은 옷의 계략가] 반격할 능력도 있다니...... 이 검은 안개는 도대체——
[헤이즈] 후후, 너무 서두르지 마. 너희들 수수께끼나 하나 맞춰보는게 어때.
[헤이즈] “돌덩이와 불꽃놀이는 어떤 점이 같을까?”
[검은 옷의 떡대] 도망갈 생각 마!
[헤이즈] 이쯤 도망쳤으면 잠깐은 피할 수 있겠지......
[헤이즈] 으...... 귀족의 방에서는 항상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난단 말이야.
[헤이즈] 어깨가...... 그 흉악하게 생긴 녀석 제법 잘 쏘네......
[헤이즈] 다행히 뼈는 안 다친 것 같은데......
[헤이즈] (화살대를 잡는다.)
[연로한 귀족] 저기...... 아가씨? 자네는?
[헤이즈] ?!
[헤이즈] 움직이지 마!
[연로한 귀족] 아——
[헤이즈] 쉿! 조용히 해! 죽일 생각은 없어, 그냥 잠시 숨을 곳을 빌리는거야.
[헤이즈] 한가지 협조해주면 더 좋고, 얌전히 있지 않으면 내가 이 화살로——
[연로한 귀족] 진정하게 아가씨, 긴장하지 말고.
[연로한 귀족] 자네...... 자네는 다친 것 같은데, 도움이 필요하진 않나?
[헤이즈] 다가오지 마!
(화면 어두워짐)
오리지늄 아츠로 나타난 검은 안개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노인은 한 걸음 물러서다 바닥에 넘어졌다.
[하인] 어르신? 무슨 일 있나요?
[헤이즈] (긴장)
[연로한 귀족] 별 일 없네.
[연로한 귀족] ......안건을 쓰는 중이니 날이 밝을 때 까지 방해하지 말아주게.
[하인] 알겠습니다 어르신.
[헤이즈] ......
[연로한 귀족] 그, 아가씨는...... 콜록...... 콜록......
[연로한 귀족]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감염자인 것 같은데?
[연로한 귀족] 긴장하지 말게...... 나는 자네를 해치지 않아......
[연로한 귀족] 나는......
늙은 사브라 귀족이 갑자기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헤이즈] ......왜그래? 나는 그냥 오리지늄 아츠로 조금 놀래켰을 뿐인데.
[헤이즈] 아...... 이거 귀찮게 됐네.
[헤이즈] 이리 와!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
[헤이즈] (에이, 이제 가야겠네......)
[하인] 어르신 무슨 일이죠? 방금 그 여자 목소리는......
[하인] 앵스트 어르신! 왜그러세요!!
[검은 옷의 떡대] 이제 어쩔래? 들이닥칠까?
[검은 옷의 계략가] 바보냐? 여기 누가 사는지 못봤어!
[검은 옷의 계략가] 여기는 그 앵스트 의원의 집이라고!
[검은 옷의 떡대] 의원? 그런 귀족 나리의 집이? 이런 곳에?
[검은 옷의 떡대] 감염자 동네 근처에 집을 짓는 의원이 어딨어? 크기도 작네.
[검은 옷의 계략가] 됐으니까 입 다물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검은 옷의 떡대] 저기 있다!
[검은 옷의 계략가] 뛰쳐나왔다고? 일이 쉬워졌네!
[헤이즈] 너네 둘...... 짜증나......
[검은 옷의 계략가] 도망갈 생각 마!
[검은 옷의 떡대] 쫓아가자!
[검은 옷의 떡대] 화살을 맞았으니까 멀리는 못 도망갈거야!
[검은 옷의 떡대] 그래도 오리지늄 아츠는 조심하자고. 살상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감각을 혼란시키니까.
[검은 옷의 떡대] 도대체 무슨 능력인건지——
(화면 어두워짐)
[검은 옷의 떡대] 또 안개인가? 저 녀석이 시전한 거야!
[검은 옷의 떡대] 숨어 들어갔어.
[검은 옷의 계략가] “그린 스파크”...... 술집인가? 그렇게는 안보이는데.
[검은 옷의 떡대] 여기 건물들 구조는 모두 똑같아, 정문 외에는 출구가 없으니까 도망칠 순 없을거야.
[검은 옷의 계략가] 진정하고 있어봐.
[검은 옷의 계략가] 그 필라인의 오리지늄 아츠는 제법이니까 그 검은 연기를 조심해야돼. 그녀를 잡기도 어렵고 공격하기도 어려워.
[검은 옷의 떡대] 우리한텐 이러고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검은 옷의 계략가] 너 그 소이탄 아직 가지고 있지?
[검은 옷의 떡대] 여기를 불태우려고?
[검은 옷의 떡대] 집들이 꽤 몰려있는 곳인데 확실해?
[검은 옷의 계략가] 문제 없어, 아무도 감염자의 생사에는 관심 없거든. 일이 커져도 눈속임이 되니까 우리한텐 이익이야.
[검은 옷의 계략가] 너무 신경쓰지 말고 빨리 움직여.
[검은 옷의 계략가] 착오가 있어서는 안돼, 증인을 남길 수는 없어.
[검은 옷의 떡대] ......알겠어.
(폭발음)
[헤이즈] 콜록...... 콜록콜록......
[검은 옷의 계략가] 다 됐으니 자리를 피하자.
[검은 옷의 떡대] *욕설*, 그 광석병 쓰레기 때문에 하룻밤을 고생하고......
[검은 옷의 떡대] 감염자가 죽으면 재가 돼서 터진댔나? 지금까지 직접 본 적은 없는데.
[검은 옷의 계략가] 신경쓰지 말고 어서 가.
[헤이즈] 고양이를 잡고싶다면...... 좀 더 똑똑해져야 할걸......
[헤이즈] 잘 들어...... 궁지에 몰린 건 너희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라고......
1097년 11월 26일 9:27 A.M.
찌르는 듯한 통증.
폐가 아프고, 위가 아프고, 간도 아프다.
[헤이즈] 보통 진통제는...... 이제 효과가 없나.
병에 시달리는 필라인 소녀가 폐가의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짙은 안개가 칼라돈을 뒤덮어 태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 마운틴부터 토룬 카운티까지, 커셔 카운티에서 칼라돈까지.
도망가는 길, 떠도는 길, 동료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다.
멀리 갈수록 많은 것을 잃는다.
부평초는 늘 연못에 가라앉는다.
고양이는, 이미 지쳤다.
[감염자 소녀] 마녀 언니, 괜찮아?
[헤이즈] 콜록...... 콜록......
[감염자 소녀] 마녀 언니, 그거 피야?
[헤이즈] 역시...... 한계가 온건가.
[헤이즈] 샤오민, 너한테 줄 게 있어......
[헤이즈] 이 동전들이 얼마짜리인지 알아?
[감염자 소녀] 알아......
[헤이즈] 매일 하나씩 가져가면 윌른 할머니한테 먹을거랑 바꿀 수 있을거야.
[헤이즈] 그리고 이것도.
필라인 마녀가 넓은 챙의 검은 모자 하나와 정교한 반지 하나를 꺼냈다.
[헤이즈] (에휴, 마녀 의식이라니...... 이제는 별 의미 없겠지만.)
[헤이즈] 나는 위치 포레스트의 제 113위 마녀, 헤이즈......
[헤이즈] 그레이 마운틴의 선현들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헤이즈] 한 명의 신인이 합류했음을 지켜본다......
[헤이즈] 한 개의 새로운 영혼을 지켜본다......
[감염자 소녀] 응?
[헤이즈] 전에 나한테 물어봤던 거 기억해?
[헤이즈] 이제부터 너는 마녀야.
[감염자 소녀] 정말? 나도 이제 오리지늄 아츠 쓸 수 있는거야?
[헤이즈] 잘 들어, 너는 원래 오리지늄 아츠를 쓸 수 있었어, 아주 재능이 있거든.
[헤이즈] 그런데 앞으로 오리지늄 아츠를 사용할 때는 이 반지를 잘 써야돼, 전에 알려준 것처럼 이 반지 없이는 오리지늄 아츠를 쓰면 안 돼, 알겠지?
[감염자 소녀] 알겠어......
[헤이즈] 그리고 오리지늄 아츠는 나쁜 사람한테만 써야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기억하지?
[감염자 소녀] 기억나!
[헤이즈] 그러면 됐어......
필라인 마녀가 일어나서 문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감염자 소녀] 마녀 언니? 가는거야?
[헤이즈] 그래...... 이제 가야겠어......
1097년 11월 27일 3:47 A.M.
칼라돈의 가장자리에 있는 폐허 구역, 이 도시에서 가장 조용한 지역이다.
수 년 전 재앙이 칼라돈을 휩쓴 뒤 오랫동안 수리되지 않은 이곳은 도시의 가장자리로 옮겨졌다.
무너질듯한 빌딩들과 완전히 망가진 지상 구조물들은 칼라돈의 역사를 보여준다.
폐허 구역의 높이 솟은 빌딩 위에 서면 먼 곳의 끝없는 황무지가 보인다.
[헤이즈] 묻힐 곳을 하나 고르자면 흥미있는 장소는 여기지.
[헤이즈] 이 날이 올 줄은 진작에 예상했으니,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고 말할 수도 없겠네.
필라인 마녀는 벽 모퉁이에 기대 앉아 눈을 감았다.
광석병의 찌르는 듯한 통증은 점점 잦아들고, 몸은 점점 무거워진다.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머릿 속에 떠오른다.
한때의 마녀 동료들, 그 자상하던 대 마녀 그랜트, 빅토리아 군인들의 화포가 위치 포레스트에 불을 붙인 그날 밤.
황무지와 도시를 떠돌며 도둑질으로 살 수 밖에 없던 나날들, 그 부당한 박해들.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런데 그녀의 귓가에 이따금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이즈] 어째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해꾼이 있는걸까......
[헤이즈]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니.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헤이즈는 폐허 구역의 다른 장소를 향했다.
그녀의 눈 앞에는, 버려진 고층 빌딩의 창가에 한 필라인 여인이 떨면서 서있었다.
[헤이즈] ......에휴.
[수지] (훌쩍임)
[수지] 미안해...... 미안해, 엄마...... 미안해......
[수지]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무기력하고 절망한 표정으로 필라인 소녀가 폐건물 가장자리에서 비틀거렸다.
[헤이즈] 너 그러면 위험할걸.
[수지] 아앗!
[수지] 당신은...... 누구세요......?
[헤이즈]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헤이즈] 그런데 네가 뛰어내리기 전에 내가 몇가지 말해줘야 겠거든.
[헤이즈] 뛰어내리면 떨어진 모습이 엄청 보기 흉하니까, 그러는 건 정말 추천 안해.
[헤이즈] 내일 네 친구들이 보면 엄청 고통스러워할걸.
[수지] ......친구...... 퀘르쿠스 언니......
훌쩍이던 소녀는 머뭇거리며 창가에서 물러섰다.
[헤이즈] 바로 그거지!
[헤이즈] 뭐라고 부르면 될까, 젊은 고양아?
[수지] ......수지 ......수지 그리트.
[헤이즈] 듣기 좋은 이름이네.
[헤이즈] 나는 헤이즈라고 부르면 돼.
[수지] 헤이즈...... 씨......
[수지] 헤이즈 씨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여기 있나요?
[헤이즈] 그건 내가 묻고 싶은걸, 여긴 내 비밀 아지트인데 어떻게 찾은거야?
[헤이즈] 뭐, 나도 귀여운 고양이가 놀러오는 건 허락해줄 수 있지만, 투신용으로는 안돼거든.
[수지] 흑...... 흐흑......
[헤이즈] 어어, 왜 울어?
[수지] ......아니요...... 저......
[헤이즈] 아휴...... 됐어, 울고 싶으면 울어, 들을 사람도 없는데 참을 필요는 없지.
[헤이즈] 어차피 여기엔 아무도 없으니까—— 술도 없지만, 술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헤이즈] 그래도 마침 시간은 좀 있으니까, 잡담 좀 하자.
[헤이즈] 왜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한걸까?
[수지] 저......
[수지] 저한테는...... 여러 해 동안 가져온 꿈이 있어요......
[헤이즈] 여러 해 동안 가진 꿈? 그거 듣기 좋네.
[수지] 저는...... 그 꿈을 위해서 여러 해를 노력해 왔는데......
[수지] 저는, 그게 제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수지] 며칠 전까지는 그랬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전부 부숴져버렸어요......
[수지] 저는 왜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수지]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요...... 전부......
[수지] 감염자에게 남은 삶은 얼마나 될지......
[헤이즈] 다른 사람에게 부숴졌다라......
[헤이즈] 그래서 처음으로 생각한게 자신을 파멸시키는 거야?
[헤이즈] 그건 이상하잖아.
[수지] 어......네? 무슨 말이죠?
[헤이즈] 네가 직접 말했잖아. 네 인생의 의미도, 너의 행복한 꿈도 다른 사람에게 모두 부숴졌는데, 그래서 네가 하려는 건 뭐야?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부수려는 거야?
[수지] 아니요...... 그게 아니라......
[헤이즈] 이쪽으로 손을 줘봐, 내가 좀 보게.
[수지] 어, 어어—— 왜그러세요?
[헤이즈] 결정이 안보이는데......감염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나봐?
[헤이즈] 똑똑하지 못한 어린 고양이는 머리를 두드려 정신 차리게 해줘야지.
[수지] ——!
[헤이즈] 꿈을 위해 살아간다...... 감염자에겐 정말 사치스러운 생각이지.
[헤이즈] 많은 사람들은 생각 없이 살다가, 배를 채우며 죽음을 기다려.
[헤이즈] “어차피 얼마 살지도 못하는데, 목표나 이상 같은게 사는데 피곤하게 왜 필요해?”
[헤이즈] 그래도 너는 꿈을 위해 사는 것을 선택했어, 대단한 일이지, 너같은 사람은 흔치 않거든.
[헤이즈] 그런데 봐...... 살아있는 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헤이즈] 너한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있어, 누군가와 다르게...... 이야기가 주제를 벗어났네.
[헤이즈] 만약 이대로 포기한다면 그건 참 유감일거야.
[수지] ......하지만 제가 뭘 할 수 있죠......
[헤이즈] 너처럼 귀여운 고양이에게는 친구가 많겠지.
[헤이즈] 친구들을 찾아가 얘기해보는 게 어때? 여기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혼자 고민해봤자 좋을건 없을걸.
[헤이즈] 뭔가를 잃어버렸다면 찾아내고,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면 다시 되찾는거야.
[헤이즈] 그냥 포기해버리면 결국 아무것도 안 남잖아?
[헤이즈] 나쁜 사람들은 더욱 웃고, 자기 자신에게도 불공평하겠지.
[헤이즈] 네 꿈을 망친 나쁜 놈들이야말로 밑으로 떨어져버려야 할 사람이야, 안 그래?
머뭇거리며 창 밖을 바라보는 젊은 필라인의 얼굴에는 무력감이 가득했다. 이 낡고 어두운 폐건물 속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과 사색 끝에,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피곤한 미소를 지었다.
[수지] ......당신 말이 맞아요......
[헤이즈] 힘든게 더 남았으면 큰 소리로 외쳐, 어차피 여긴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수지] 아니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헤이즈] 그러면 됐어.
[헤이즈] 예전에 대 마녀가 그랬는데,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있는 한 희망은 남아있대.
[헤이즈] 적어도...... 내일도......
(헤이즈 쓰러짐)
[수지] 어, 어어! 헤이즈 씨! 왜 그러세요?
[헤이즈] 조심해...... 가까이 오지 마......
[수지] 헤이즈 씨! 왜 그러세요?
[헤이즈] 어서...... 가......
[수지] 무슨 일이에요, 몸이 왜 이렇게 뜨겁죠?
[수지] 기운을 내요! 정신 차려요!
[수지]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수지] 헤이즈 씨...... 견뎌주세요, 좀 있으면 시내에 도착해요......
[수지] 저...... 더는 못 업겠어요......
[수지] 아, 헤이즈 씨가 무겁다는 뜻은 아니에요, 전혀 안무거워요, 제가 힘이 너무 약해서......
등에 업힌 소녀의 호흡이 점점 약해진다.
그녀는 생기있던 생명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축축하고 따듯한 감촉이 등에 전해지며 퍼져나간다.
[수지] 뭐지...... 이건......
[수지] 이건...... 피?
검붉은 선혈이 소녀의 입과 코에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진다.
그녀는 이것의 의미를 안다, 모든 감염자는 알 것이다.
[수지] 안돼...... 안돼...... 안돼......
[수지] 헤이즈 씨...... 안돼요...... 제발......
5년 전 고향을 떠난 이후로, 그녀가 감염자가 떠나가는 것을 본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잘 알던 주변 사람이 사라져감에 따라, 죽음에 대한 감각도 더 무뎌졌다.
각각의 감염자는 이런 운명을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그녀는 눈앞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수지] 부탁이에요! 헤이즈 씨...... 부탁이니까...... 안돼요......
[수지] 견뎌줘요...... 거의 다 왔어요......
그녀는 등에 없힌 소녀를 바닥에 눕혀 고통을 줄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눈 앞의 소녀의 손을 꽉 붙잡고, 상대의 얼굴에 있는 피를 닦아주려 했다.
그녀는 다가오는 죽음을 막으려 헛된 노력을 했다.
그러나 가까워진 죽음 앞에서,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
[수지] 살려줘...... 살려줘요!!!
[수지]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수지] 도와줘요......
[수지] 도와줘요......
낮은 울부짖음이 텅 빈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아무도 없는 폐허에서 메아리친다.
먼 곳에서, 하나의 느린 발소리가 들려온다.
[란트] ......수지 양? 네가 왜 여기에?
헤이즈 착해
진짜 불겐지 실장밑밥 까는건가
다음편!
애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