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부엌으로 다가가자 여점원이 다가왔다.
“뭐 부족하신 거라도 있나요?”
“아뇨. 그냥 어떤 주방이기에 이런 맛이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아가씨에게 이것저것 질문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원래 그렇게 아무 여자한테나 질문을 던지시나봐요?”
“아뇨. 아가씨처럼 매력적인 분께만 궁금한 점이 많답니다.”
박사가 점원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 점원도 그의 손을 마주잡으며 쑥스러운 듯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하지만 박사는 그녀의 눈이 순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뀌는 걸 놓치지 않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면 눈치 채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그럼 주방으로 가실까요. 다 설명해드릴게요. 하나하나 친절하게.”
그녀가 말하자 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연인을 향해 유혹하는 것처럼…….
그 때 부엌에서 무언가를 탕탕 내려치는 소리가 끼어들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부엌 안에서 요리사가 그를 바라보며 고기를 썰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두꺼운 푸주칼로 고기를 토막 내면서도 한시도 눈을 떼놓지 않는 것 같았다.
“손님이 보고 싶으시다 잖아요. 그냥 들여보내요.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점원은 부엌 안을 째려보며 말했다.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꽤나 무서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부엌에서는 여전히 심드렁한 칼소리만 돌아왔다. 잠깐의 대치 끝에 결국 의견을 굽힌 건 점원이었다. 점원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주방장님께서 저희 가게에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드는 요리들이라 부엌을 공개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네요. 하지만 대화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니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질문해주세요.”
“그럼 우선 저 분이 진짜 그렇게 많은 말을 했나요?”
“네. 수다쟁이죠? 다른 질문은요?”
“그러면…어떤 일을 하고 계시죠? 왜 이 일을 하시는 겁니까?”
“보시는 그대로죠. 이 곳 사람들의 입과 혀를 즐겁게 해드리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먹고 살려고요.”
“언제부터 이런 일을 하시게 된 거죠?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죄송해요. 위험하다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 아 혹시 저 취조 당하는 건가요? 무서운 분이신가보네요?”
부엌을 향하던 박사의 말을 점원이 검지를 들며 끊어버렸다. 그녀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100킬로짜리 솜에 깔린 것 같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부엌에서 칼질소리가 멈추고 그 자리에 침묵만이 가득 찼다.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잠깐 찾아오는 적막과 같은 불안한 침묵이었다.
“……전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친구죠.”
잠깐의 침묵 뒤 다시 칼질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숨 막히던 침묵이 날아가고 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참던 숨을 내뱉었다.
“죄송해요, 손님. 요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봐요. 그런데 저만 질문을 받자니 뭔가 아쉽네요. 저도 손님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데…저도 질문해도 되죠?”
점원이 소녀처럼 발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를 밀어내려는 것처럼 유독 ‘손님’이라는 말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럼 우선, 여기까진 어떻게 오셨어요? 그렇게 로도스 분들이 입는 복장으로 돌아다니려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이 곳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를 안 좋아하거든요.”
“……안내를 받았죠. 저희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서 무사히 도착한 걸 수도 있고요. 이제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이 일은 언제부터 하신 겁니까. 원래부터 이 곳에서 지낸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저희 가족은 번화가에서 큰 가게를 하고 있었어요. 아마 손님도 한 번 들어 보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큰 가게였는데도 하루 종일 줄을 서도 못 먹는 사람들이 나왔어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했지만 그 때는 정말이지…….”
점원이 눈부신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부엌에서 들리던 칼소리가 가벼운 통통 소리로 바뀌었다. 콧노래라도 부르는 것처럼 경쾌한 소리였다.
“그런데 어쩌다…….”
“광석병이죠.”
점원은 콧노래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듯 부엌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감염됐어요. 손님 중에 감염된 분도 종종 계셨는데 그게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게 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염되셨으면 치료를 받으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요. 로도스에서 환자들의 보호와….”
“돈 없으면 치료 같은 건 꿈도 못 꾸죠. 건물주랑 부조리사가 저희를 신고했거든요. 감염자가 음식점을 하는 건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나? 벌금 내고 건물주한테 돈을 물어내야 하고 은행에서는 감염자라고 예금도 안돌려주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해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 여기로 왔죠. 들은 얘기인데 그 가게는 아직 그 자리에서 똑같은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차례죠? 안내해 준 사람은 어떤 사람?”
“저희 직원은 아닙니다.”
“그렇게 짧게 대답하시면 싫어요. 전 엄청 길게 애기했는데 이러면 저만 불공평하잖아요?”
“죄송합니다. 이 이상은 신상정보 유출될 수 있어서 아무렇게나 말씀드릴 수가 없습……”
점원이 박사의 입에 손가락을 대며 ‘쉬이이이’하고 조용히 시켰다. 그녀의 말은 늘어지는 당밀처럼 길고 끈적거렸다.
“말씀해주세요. 안내해 준 사람에 대해, 손님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요.” 그가 입을 다물자 그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안 해주시면 절 만졌다고 비명 지를 거예요.”
“……뻔뻔하고 고집불통에다 돈도 막 쓰죠. 이번 달도 가챠로 돈을 다 날려 버렸답니다.”
“좋은 점은요?”
“…친절하고, 믿음직스럽고, 붙임성도 좋고, 귀엽습니다. 데리고 다니면 여동생이 하나 생긴 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여동생은 없으신가보네요. 좋아요. 이제 손님차례네요.”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없나요?”
“저흰 이미 일을 하고 있어요.”
“더 좋은 일말입니다. 가게도 밝게 칠하고 간판도 새로 올리고 광고도 하면 지금보다 더 사정이 나아질 겁니다. 돈은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아 혹시 사채하시는 분?”
“안 갚으셔도 됩니다.”
부엌에서 요리사의 머리가 빼꼼 나왔다. 그의 얼굴에서 떨떠름한 표정이 사라지고 신뢰가 가득 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돈이라는 말에, 특히 안 갚아도 된다는 말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이자를 안내셔도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원금은 받을 거예요. 천천히 내셔도 됩니다만.”
요리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눈빛에서 신뢰가 사라지고 대출안내전화를 받을 때에나 지을 법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아직 설득할 여지가 있다고 박사는 생각했다. 아직 그의 말을 들으려한다는 것만 봐도 평소보다 훨씬 좋은 징조였다.
“그 안 갚아도 되는 돈이라는 거. 원하는 게 있을 거 같은데요?”
“이 곳을 나가서 안전한 곳에서 가게를 차리는 겁니다. 이 정도 맛이면 어딜 가시더라도 성공하실 겁니다. 아예 다시 예전 자리로 돌아가서 여봐란 듯이 복수해줄 수도…….”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부엌 안으로 들어가는 요리사의 표정은 다시 떨떠름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당황한 박사의 의문을 점원이 대답했다.
“저흰 감염자에요. 그런데 어떻게 번화가로 돌아가겠어요. 또 무슨 일을 겪자고?”
“괜찮으실 겁니다. 용문엔 아직 믿을만한 사람이 많이 있어요.”
“저흰 친구 외엔 안 믿어요.”
“저희가 친구입니다.”
“힘들 때 도와주는 게 친구죠. 필요할 때 찾아오는 사람은 손님이고요.”
“저희가 필요해서 온 게 아니라 당신들에게 저희가 필요해서 찾아온 겁니다. 리유니온이 이 곳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이 곳이 더 위험해지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가셔야해요. 전 당신들을 돕고 싶어요.”
박사가 리유니온 이야기를 꺼내자 부엌 안에서 불이 치솟고 기름 튀는 소리와 함께 점원이 조용해졌다. 그녀는 한참을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다가 입을 뗐다.
“확실히 리유니온이 들어오고 이 곳은 위험해졌어요. 그런데 이 곳이 위험해지기 전엔 어땠는지 아세요? 밤만 되면, 가끔은 한낮에도 감염자를 끌고 나와서 때려 죽였어요. 별 다른 이유 없이 그냥 심심풀이로. 그럴 때는 집 안에 숨어서 나만 아니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점원이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제일 위험한 사람은 자기를 친구라고 소개하는 사람이에요. 처음엔 그 사람이 정말 친구처럼 느껴져요. 위험한 사람들이랑은 다르게 말도 부드럽고 친절하고 게다가 맛있는 사탕도 주고요.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밤에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지켜주겠다고, 함께 있어주겠다고. 의심 같은 건 생각도 안 나죠.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어요. 매일 같이 공포에 떨면서 울던 어린아이가. 그리고 문을 열면, 지옥이 펼쳐지는 거예요.”
부엌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점원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몸까지 떨고 있었다. 박사는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불처럼 뜨거웠다.
점원은 패닉에 빠진 게 아니었다.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불꽃이 일고 있었다.
“사실이긴 했어요. 그 사람은 실수로 쥐약을 먹고 죽기 전까지 같이 있어줬죠. 자기가 죽인 부모 시체 앞에 아이를 쇠사슬로 묶어놓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가지고 놀면서. 첫째 주에는 배고프고 아파서 울게 되요. 둘째 주에는 더 이상 배고프지도 아프지도 않아요. 먹을 필요가 없다는 착각에 빠져요. 쇠사슬이 헐렁해질 때까지 삐쩍 마를 정도가 되면 나갈 생각에 설레기까지 해요. 그리고 마침내 쇠사슬에서 나올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거예요. 정신을 차려보면 엄마아빠 시체는 온데간데없고 입 안에 썩은 내만 가득…….”
“손님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점원이 박사의 손을 주물럭거리자 꽉 쥔 탓에 피가 통하지 않아 창백해진 손에 점차 살색이 돌아왔다. 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은 채 한참동안이나 그의 손을 주물럭거리며 역으로 위로해주다가 별안간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저희 가게에서 일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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