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에스타 이벤트 종료 시점
사람들의 함성이 꽃불처럼 타오르던, 유난히도 무더웠던 시에스타의 여름. 한번 시작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고, 섬 전체를 천천히 갉아먹었다. 아주 조용히, 누구도 눈치챌 수 없도록 세심하게 밑바닥부터. 로도스의 대처가 있었지만, 고작 하루라는 시간만 얻어낼 정도로 화마의 손길은 은밀했다. 현장 요원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조간 신문의 1면은 "시에스타 대참사"라는 타이틀이 따놓은 당상이었다.
축제의 섬을 찾은 관광객들은, 절대로 모를 뒷면의 이야기. 그러니까, 당사자들의 후일담.
흑요석 축제가 피날레를 향해 달리던, 어느 날의 밤이었다.
여름 축제의 불꽃은 어느덧 식어 잔불로 변했지만, 해안가의 한 연회장은 날짜를 착각한 마냥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시에스타의 사건을 마무리한 로도스의 직원들이 모인 파티였다. 흑요석 축제를 놓친 대원들은 저마다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조촐하게 열린 연회를 있는 힘껏 즐기는 중이었다. 건물을 통으로 빌린 꽤 거창한 파티였지만, 시에스타 측의 지원 덕분에 부담은 없었다.
기포가 끓어넘치는 샴페인과 형형색색의 논알콜 칵테일, 음료와 궁합이 잘 맞는 케이터링,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는 음악.
일렉 기타를 수족마냥 능숙하게 연주하는 비그나. 자작곡을 들고 와서 비트를 타기 시작한 프로스트 리프. 불쇼를 하다가 사리아에게 혼나는 이프리트. 술에 진탕 취한 채 열띤 설전을 펼치는 프로방스와 슈바르츠. 해변 산책을 한답시고 슬쩍 사라지는 마터호른과 불칸.
모두들 지나간 축제의 파편이라도 붙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만큼 흑요석 축제는 테라 내에서도 손꼽히는, 성대한 볼거리다. 게다가 시에스타의 아름다운 해변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로도스가 화산 폭발을 멈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섬의 침몰을 잠시 멈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침몰이 코 앞으로 다가온 테라 최대 규모의 관광지가, 남은 기운을 모아 세차게 불타고 있다. 그러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자세가, 시에스타에게 보내는 가장 알맞은 경의일 것이다.
한 사람만 빼고.
아미야는 활활 타오르는 연회장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건물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등을 오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쫓아나갔지만, 이내 굳게 닫힌 문이 톡톡 튀는 음색을 잘라먹는다. 여전히 앰프 소리 때문에 귀가 웅웅거린다. 아미야는 혼란의 도가니가 느껴지는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들, 켈시 선생님한테… 혼날 각오는 하는 거겠죠?"
아미야는 걱정스런 얼굴을 한 채,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류 작성이 미숙하다는 사실은 스스로 알고 있다. 조금 능숙하다고 느낄 때쯤, 어김없이 켈시에게 지적이 들어온다. 아주 가끔은, 박사도 잔소리를 했다. 그녀의 야단에 비하면, 정말 사랑스러울 정도로 맥아리가 없었지만. 두 사람의 조언이 없었다면, 아미야는 아직까지도 공채 서류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요점부터 말하면, 시에스타의 사건 보고서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다. 시에스타의 축제는 마침표를 찍기 일촉즉발의 상황인데, 작성할 서류는 진도가 반절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물론 자신이 레포트와는 거리가 멀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 짬짬이 시간을 내긴 했지만……. 다른 대원들이 서류를 신경 쓰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레포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로도스 아일랜드에 인원들이 복귀하기까지 남은 기한은 이틀, 정확히는 47시간 정도다. 만약 여기저기 나사가 빠진 레포트를 켈시 선생님이 받게 된다면, 그 날 로도스는 여러 개의 해골을 받게 될 것이다.
아미야는 목덜미를 스치는 밤공기에 흠칫 몸을 떨었다. 안돼, 그 상황만은 막아야 해. 죽기 싫어. 분명 간식 금지 형벌을 받을 거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배드 엔딩을 피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입술의 끝에 옅은 미소가 번지며, 그녀의 입이 달달한 어조로 혼잣말을 내뱉는다.
"헤헤, 그래도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박사님이 잔뜩 칭찬해주지 않을까……."
아미야는 문득 미소를 지으며 콧김을 거세게 내쉬었다. 토끼 소녀의 기분 좋은 망상에 맞춰, 그녀의 귀가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발끝은 사뿐거리며 녹아내린다. 기대에 부응하듯이, 심장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카페인을 과하게 섭취해서 그렇다고, 가슴이 진정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고 싶지는 않다. 그 사람이 좋다고, 자신의 센서가 마구 요동치는 꼴을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아미야는 이번 흑요석 축제에서 박사와 같이 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나이 치고는 심지가 굳은 편이었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이 왕성한 소녀였다. 로도스 아일랜드에는 없던 길거리 음식들,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불꽃놀이, 가슴을 쿵쿵 울리는 강렬한 비트.
시에스타에는 일상을 이탈한, 아미야의 눈을 번쩍이게 하는 놀거리가 너무나도 많았다.
아미야가 축제의 도가니에 휩쓸려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무렵, 박사는 이미 시에스타의 사건에 휘말린 후였다. 덕분에 그녀는 축제 한복판에 덩그라니 남은 채, 홀로 시에스타를 배회할 수 밖에 없었다. 박사님과 해보고 싶었던 거 엄청 많았는데……. 아미야는 시에스타에 오기 전에 파악했던 축제 코스를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보았다. 잔뜩 점수 딸 수 있는 기회였지만, 모두 놓쳐버린 것만 같아 아쉬운 그녀였다.
그래도 지금은 업무가 중요했다. 사심은 접어둬야 할 시기다.
아미야는 어느덧 도착한 객실 앞에 서서 뺨을 팡팡 치며 기합을 불어넣고는, 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발견한, 꽤나 기이한 장면에 그녀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로도스의 토끼 대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어? 박사님, 여기 계셨어요?"
그녀는 컴컴한 객실 안에서 무언가를 우적거리며, 랩탑을 노려보고 있던 박사를 발견했다.
"박사님…… 켈시 선생님이 그거, 씹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미야는 자판을 두들기던 손을 멈추고는, 박사의 손에 든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이 쇠사슬이라도 되는 마냥, 손짓의 끝에 머물러 있던 그의 손이 움찔거리며 허공에 멈추었다. 그래도 잠깐 주저하기는 하시네. 무시하고 먹었으면, 정말 골머리가 아팠을 텐데. 눈두덩이가 욱신거리며 피로감을 토로한다. 아미야가 마른 세수를 하면서, 그에게 잔소리를 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 귀한 걸 고작 피로회복제로 써요?"
박사는 아미야의 말에 무언가 대꾸하는 시늉을 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그녀에게 통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그 모습을 본 아미야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앞에 놓인 테이블을 탕탕 내리치며 한층 강하게 그를 꾸짖었다.
"안 그래도 직원들 월급 챙겨주랴, 시설에 투자하랴 힘들어요."
"아니 그래도, 이거 아직 많잖아……."
"박사님… 그거 하나 얻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요?"
"…모르는데."
"대충 이 정도는 들어갈걸요."
"어, 3천 용문화?"
"3만은 그냥 넘는데요."
아미야가 공중에 내뱉은 단어들은 주먹이 되어 박사의 뒤통수에 박혔다. 이윽고 그의 고개가 잘 익은 벼처럼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완벽한 테이크 다운. 그녀는 걸터앉은 소파에서 몸을 박차고 일어나서는, 서류로 엉망인 바닥을 헤치면서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전히 백기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박사의 뒤에 선 채, 아미야는 목소리를 다듬으며 말했다.
"아무리 제가 박사님을 좋아… 음음, 어쨌든 그것 좀 그만 씹어요!"
아미야는 반쯤 접혀버린 박사를 지나치고는, 테이블에 흩뿌려진 포장지의 갯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아홉? 상상하기도 싫은, 오싹한 결말이 뒷목을 날카롭게 쓸고 지나간다. 그의 손이 시선에 들어온다. 무언가, 둥글한 무언가가 손에 숨겨져 있다. 아미야는 다급하게 그에게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손에 쥐고 있는 그거, 빨리 이리……!"
쏙.
아미야의 여린 손이 박사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그는 이미 포장지를 뜯어서 내용물을 입에 집어넣은 후였다. 로도스 아일랜드 내에서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비헌터 씨의 주먹을 상회하는 속도였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아미야의 시야에는 오물거리는 박사의 입과,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포장지가 들어왔다. 스탠딩 등 하나와 랩탑 두 개의 스크린만 있어서 어둑한 실내였지만, 그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은 구분할 수 있었다.
와 미친. 저 귀한 걸 10개나 먹어버렸어. 저거면 돈이 얼만데.
아미야는 몰려오는 두통을 애써 참으며,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새어 나온다. 솔직하게 말하면, 돌은 많다. 박사가 매일마다 씹으면서 피로 회복을 해도, 나중에는 치아가 아프다면서 오히려 손사래칠 정도로. 하지만 자원 비축은 로도스에게 있어서, 항상 중요한 과제로 직면했다. 그러니 이 사람에게 재산의 중요함을 각인해야 하는 판국인데, 그것도 모르고 낭비벽을 몸소 실천하는 꼴이라니.
"내가 못 살아."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었어."
"…박사님, 미쳤어요?"
"아니, 말이 심하잖아……."
"커피도 있고, 에너지 음료도 있는데, 왜 돌을 씹어요?"
"…어째 켈시 박사랑, 하는 말이 비슷하다?"
"예? 제가, 켈시 선생님이랑… 닮았다고요?"
박사님. 아미야는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박사의 허벅지에 올라타고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와 가까워질수록, 그는 아미야가 다가온 만큼 머리를 뒤로 빼며 도망쳤다. 이윽고 박사의 뒤통수가 막다른 길에 부딪혔다. 그는 자신에게 부딪히려는 아미야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한 뼘 정도의 거리가 중지 길이만큼 짧아졌고, 그 다음은 엄지만큼 깎여나간다.
마침내 서로의 숨결이 뒤섞이는 간격까지 좁혀졌을 즈음, 아미야는 자신의 머리를 박사의 이마에 콩 하고 박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박사를 향해, 그녀는 느슨한 미소를 내보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잘했어요, 박사님."
"응, 어?"
"덕분에 일이 거의 끝났으니, 이번만 봐드릴게요."
아미야는 그에게서 내려와 객실의 발코니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열자, 시에스타의 짭짤한 밤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면서, 박사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 축제, 이렇게 놓치실 거 아니죠?"
고층의 객실에 불어오는 여름의 새벽은, 의외로 선선했다. 바다와 가까워서 소금기가 바람에 섞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런 공기였다.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아미야는 뒤를 돌아봤다. 박사가 자신에게 머그컵을 건네고 있었다. 그가 건네주는 머그컵을 조심스레 받으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 박사님. 고마워요."
"핫초코 맞지? 제일 좋아하는 거."
"어…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걸 모를까, 너 커피는 입도 못 대잖아."
"……기억해주니, 기쁘네요."
잔 안에서 희뿌연 김과 들큼한 향내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그녀는 머그잔 안에서 올라오는 유백색 연기를 입으로 훅 불고는, 컵을 약간 기울였다. 입 안에 달달함 한 모금이 맴돌다가, 끝에는 씁쓸한 여운만이 남았다. 아미야는 무릎을 가슴팍으로 그러모은 채,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느긋하게 음미했다. 그러다 문득, 박사가 마시고 있는 머그잔으로 시선이 향한다. 그에게서 굉장히 쓴 향기가 밀려왔다. 그리고 땀 냄새가 섞인 머스크 향도 함께.
"저랑 다른 걸 마시는 거예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박사를 본 아미야는 잔뜩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가 컵을 내려놓는 틈을 타, 박사의 잔을 가로채고는 안에 든 내용물을 마셔보았다. 자신의 음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하지만, 시에스타의 밤하늘을 구경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강배전으로 볶았는지, 그녀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쓴 맛. 역시 커피와는, 상성이 별로다. 아미야는 미간을 잠시 찌푸리고는, 박사에게 머그컵을 돌려주었다.
"너무 씁쓸해요. 그래도… 축제가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이렇게 둘만 있는 것도 곧 있으면……. 그녀는 마저 하고 싶었던 말을 간신히 가슴 속에 눌러두었다.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도 없었다. 아미야는 컵에 담긴 코코아를 착잡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눈은 초점이 잡히지를 않았다. 아미야의 말을 끝으로, 좁은 발코니에 다시금 서늘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먼저 운을 뗀 쪽은 박사였다.
"고생했어, 아미야."
"…네, 예?"
"너 없었으면, 로도스 쪽이랑 정보 교류가 힘들었을 거야."
"어, 저는 뭐……."
"그랬다면, 이 도시에게 하루의 여유도 없었겠지. 네 덕분이야."
박사의 말을 들은 아미야는 잠시 할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청소할 필요가 있었다.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무언가 말했다가, 이 사람의 속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가슴 구석구석에 멍울진, 못난 생각들을 대강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아미야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아니, 아니요. 저는 고생한 게 없어요."
"…아미야?"
"오히려 바보같이, 박사님이 고생했다는 사실도 몰랐는걸요……."
하하하. 소리내어 웃으면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쉐라그의 설산만큼이나 어색해졌다. 아, 바보. 잘못 말했어. 아미야는 공벌레마냥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녀의 갈색 귀도 아래로 푹 수그러졌다. 기껏 무슨 말을 할지 정했는데, 모두 쓸모없게 되었다. 아미야의 목을 타고 올라오던 말들이 형태를 잃고 흩어져간다.
가라앉는다.
점점, 깊은 곳으로.
떨
어
진
다
갑작스레 머리를 쓰담거리는 감촉. 아미야는 깊게 가라앉던 마음에 갈고리가 걸렸음을 가까스로 눈치챌 수 있었다. 박사의 손이었다. 아미야는 늘어진 눈썹에 맺힌 방울을 손으로 훔쳐내고는, 잔뜩 일그러진 입술을 억지로 굽히며 박사를 향해 슬쩍 웃었다.
"미안해요, 박사님."
"미안할 것까지야."
"제가 박사님 곁에 없어서, 그랬나 봐요."
"아니, 잘했어. 괜찮아, 아미야."
"고마워요… 박사님."
그래도 쓰다듬어 주시니 기분은 좋네요. 아미야는 잠깐 박사에게 응석을 부리자고 다짐했다. 그의 손바닥이 고운 머리카락을 헝클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부드러운 스킨십을 만끽하며, 옆에 앉은 이 사람의 어깨에 기댄다. 따스한 체온을 뺨으로 나눠 받으며, 아미야는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박사님."
"응, 아미야."
"저는… 이 곳에서의 휴가가, 끝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기껏 놀러왔는데, 허무하긴 했지."
"아, 물론 박사님은 좀 그러긴 하시겠네요."
같은 단어에 담긴, 두 가지의 의미. 이 사람은 즐기지 못한 축제에 대한 아쉬움을, 나는 당신과 함께 있지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고백하고 있다. 저의 이런 속내를, 박사님은 언제쯤 알아챌까요. 얼마나 많은 시계 바늘이 찰칵거려야, 제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까요.
아미야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무릎을 가볍게 누르고는, 허벅지의 능선을 타고 천천히 선을 그어 내리기 시작했다. 손이 이따금 멈출 때마다, 청아한 목소리 한 움큼이 짭쪼름한 공기 중을 둥둥 떠다녔다.
"갑판 위에서 보던, 하늘보다 더 파랗고."
"휴게실의 실내등보다 훨씬 밝고."
"마음껏 불꽃놀이를 즐겨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시에스타의 자유로움이 너무 좋았어요……."
박사님이랑 뭐하고 놀지도 정해놨을 정도니까요. 아미야는 배시시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박사의 얼굴은 아마 활짝 피어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을 뿐이었다. 말을 마친 아미야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손을 붙잡은 후에 끌어당긴다.
마치 체르노보그의 그 날처럼.
"그거 아세요? 조금 있으면 흑요석 축제의 마지막 불꽃놀이가 시작된대요."
"……마지막이라고?"
그는 그녀에게 전혀 몰랐다는 어조로 말했다. 아미야는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는, 한 손으로 승리의 제스처를 만들었다. 박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짜둔, 시에스타 플랜이 마지막이 되어서야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뭐하고 놀지 다 정했다니까요? 이제 2분도 채 안 남았을걸요."
아미야의 눈에는 박사가 마냥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불꽃놀이를 한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박사의 발이 동동 구르기 시작했으니까. 자신보다 한참이나 커다란 사람이, 어찌나 이렇게 작아보일까. 그녀의 속에 있던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은 무의식에 가까운 행위였다.
"어쩌면, 이렇게 귀여우실까……."
"응, 아미야 뭐라고?"
"예, 예? 그냥 박사님 하는 짓이 애 같아서요."
아미야는 괜시리 끓어오른 수줍음를 환기하기 위해, 박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그는 간지럼을 참지 못하는 듯, 허리를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소리내어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탁한 청색으로 물든 하늘이 아주 환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꽃불이, 시에스타의 새벽을 여러 색으로 수놓고 있었다.
굉장한 소음과 눈을 부시게 하는 폭죽의 향연이었다. 흑요석 축제가 끝났다고 세상에 알리려는 기세로, 시에스타의 마지막 밤하늘은 지평선 너머까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미야는 불꽃놀이에 시선을 둘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박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끝도 없이 터지는 불꽃에 물든 그의 얼굴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섬광으로 눈이 부신 하늘을 바라보는 그를 바라보며, 아미야는 입을 열었다.
"박사님, 이번 겨울에는 분명 좋은 곳으로 여행갈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 여름도, 그리고 그 다음 겨울도……."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그리고 이 모든 일에 종지부가 찍히는 날이 온다면.
"박사님하고 단 둘이서, 시에스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꽃불의 요람이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점멸한다. 그리고 천천히, 점멸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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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쓴다고 썼는데 괴랄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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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다
돌하나에 3만? 다갖고와
3만에 돌 한 개면 ㅆㄱ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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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휴가 마렵다?
휴학 마렵다
다른 단편이랑 세계관 공유 안하지?
켈시랑 당나귀 나오는 시리즈는 다 이어진다고 보시는 게 좋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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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탱이에 박아뒀던 거 다시 깎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