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반복되는 '삐-'소리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오가며 아득해져가는 정신 속의 귀를 두드렸다. 눈이 살짝 뜨여 있었지만 마치 물 속에서 눈을 뜬 것 같이 흐릿했다.

현실이 점차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의식이 몽롱해져갔지만, 한 편의 기억이 또렷히 그려졌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한 소녀의 볼에 빗방울이 떨어지자 소녀는 신음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몸은 쉽게 반응해주지 않았다.

고통을 호소하는 소녀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육체의 고통보다는 주변의 상황을 전혀 받아 들이지 못하겠다는 공포감이 그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엄마?”

 그 공포감을 해소시켜줄 대상을 불렀지만, 빗소리만이 그 공허함을 채우고 있었다.

“엄마!” 

 두 번째 외침은 똑같은 결과를 낳았다. 점점 커져가는 공포는 육체가 움직이길 바랬기에 심장을 더 빠르게 움직였고 아드레날린을 내뿜었다.

일어서자 시야가 넓게 보였다. 저 멀리서 자욱한 연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자 소녀는 거기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으며 눈은 주변의 상황을 뇌로 전달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눈이 전달한 정보에 의해 소녀는 점차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을려서 부숴진 짐마차 주변에는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작은 불씨의 불빛을 반사하는 암갈색의 덩어리들과 조각이 온갖 곳에 박혀있었다.

소녀는 그 자리에 멈춰서지 않고 본능적으로 자신이 외쳤던 존재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비로 인해 진흙이 되버린 바닥에서는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고 움직일 때마다 가슴의 고통이 커져갔다. 한 때 짐마차였던 목재들의 타는 냄새는 점차 더욱 강렬히 코를 찌르기 시작했고, 그 진원지에 다가가자 소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처음에는 목에 두른 암청색 스카프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에는 암갈색의 크고 작은 파편들이 박혀있었다.

또한 그것은 상반신만 존재했다. 눈은 하반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구르고 있었다.

허나 그것의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는 꺼멓게 그을린 것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엄마라고 불렀던 자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단순히 얼굴만은 온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녀와 같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비는 연기를 전부 씻어내자 약하게 사그라들었다. 먹구름이 있었지만 만월의 빛을 가리진 않았다.

소녀는 짐마차의 안쪽에 앉아 고개를 다리에 파묻고 있었다. 가슴의 고통은 잠잠해져갔지만, 적은 양의 피를 계속해서 흘린 탓인지 의식이 흐려져갔다.

얇은 빗소리만이 소녀의 귓가를 두드리는 도중, 빗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들렸다곤 해도 소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계소리가 시끄럽게 울렸지만 잠잠해지자 바닥의 진흙을 밟는 찰박 소리가 들렸다. 소녀에게 찰박 소리가 가까워지자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왜 지금 여기에..”


검은 복장에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는 여성은 바닥에 무릎을 처박고 시체의 목마다 손을 대며 살아있는 생명을 찾기 위해 몸부림 쳤다.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쥐어짜내 누군가 응답해주길 바랬으나 빗소리와 메아리만이 퍼져나갔다.


“아무도 없었어야 하는데..”


이미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시체에 맥을 짚으려하자 부질없는 짓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손을 거두려했지만, 혹시나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다시 손을 뻗었다.

희망이 가벼히 산산조각나자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는 것을 자각했다. 만월이 먹구름에 삼켜지고 어둠이 주변을 잠식하자 그녀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오열하며 후회에 몸부림 치는 것 말고는 무엇을 해야할지 전혀 몰랐다. 몇 번이나 다시 일어나 생존자를 찾기 위해 움직였지만 일시적인 자위행위에 불과했다.




비가 그치고 모든 소리가 공허함에 삼켜진, 만월이 조용히 비추는 공간에서 그녀는 자신이 앗아간 생명의 공허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하반신이 없는, 상반신에는 크고 작은 오리지늄이 박힌 자신과 같은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어느 여성을.

“죄..”

사죄의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흐으...”

악의가 있든 없든 자신이 학살을 저질렀다는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한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위해 벼랑에 다가선 순간 뒤에서 덜컹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상태로 자신이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 아님을 자각하기에는 몇 초가 걸렸고, 곧바로 몸을 돌려서 소리가 향한 곳으로 달려갔다. 부숴진 짐마차 안에 쓰러진 어린 카우투스 소녀는 호흡이 가파르고 가슴에는 출혈의 흔적이 보였다. 자신의 후드를 벗어서 소녀의 몸에 두르고 두 팔로 그녀를 들고 뛰쳐 나갔다.



계속해서 비를 맞은 몸은 추위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되려 따뜻함이 낯설었다.

그 낯설음에 눈이 뜨였어도 정신은 혼란했기 때문에 생각이 서로 마찰을 일으켰다.

“엄마 눈이.. 저랑 같아요.. 구해주세요..”

쥐어짜낸 것은 본능에 이끌린 말이었지만, 소녀는 자신의 엄마가 살아있다고 착각했다.

낯설음에 뜨인 눈은 먹구름에 가려진 만월처럼 어둠 속에 잠겼다.





미안해.


몽롱한 기억 속에서 누군가가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해.


이 소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인지, 과거에 들은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날 용서하지마.


익숙했던 '삐-'소리와 함께 의식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