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맹의 기사 살해자는, 5명이면 충분하다."
"블랙골드가 세 명, 라주라이트가 두 명."
"공석이 없거니와, 기사 한 명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네게 자격은 없다."
"……하지만 그 집념과 기술을 높이 평가하여."
"예외적으로, 플래티넘 랭크의 기사 살해자로 임한다."
◆
새롭지 않은 햇볕을 이불 삼아 낮잠을 즐기던 박사는, 자신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집무실의 데스크에 올려둔, 내선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발신 위치는 인력 사무소였다. 오후 시간의 당번이 누구더라. 에이야일까, 아니면 프로방스일까. 삐걱이는 머리를 북북 긁으며 기억을 더듬지만, 영양가 있는 정보는 건질 수 없었다. 아직은 수면 만취 상태지만, 우선은 받아야 한다. 오늘의 근무자가 오키드 씨라면, 전화를 무시한 대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수화기를 집어들어, 건너편에서 전화를 건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예, 받았습니다……."
"박사, 나야. 켈시."
아, 난 또 누구라고. 켈ㅡ
"……어, 켈시 박사님?"
"팔자 좋네, 박사. 잠이나 자고."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켈시의 목소리는 정말 차분했다. 그리고 박사는 이 어조에 담긴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충 해석하면, 이런 "로도스 욕" 같은 "로도스 욕"이 "로도스 욕"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같은, 가시가 잔뜩 돋은 힐난.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박사는 자세를 바르게 취한 채, 두 손으로 수화기를 받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잠을 잔 게 아니라 식곤증이 도져서……."
"너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지."
"예, 그… 야근의 피로가 아직 남아서ㅡ"
"누구는 20시간이나 못 자고 있는데, 그럴 수도 있지."
"…죄송합니다."
여전히 머리가 핑 돌고 있다. 이 사람을 상대로, 자충수나 두고 있는 자신의 주둥이가 그 증거였다. 박사는 이제 데스크에 이마를 맞댄 채로, 쓰러지기 직전의 자세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의 찰칵이는 소음이 몇 번 이어진 후, 수화기 너머에서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그리고 싸늘한 언어가 뒤를 이으면서, 박사의 고막을 연신 두드렸다.
"정신 차려. 넌 더 집중해서,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예… 열심히 할게요."
"잠 깬 다음에, 바로 인력 사무소로 튀어와."
"새로운 사람이 왔어요?"
수화기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뒷맛이 씁쓸한 고요가 유지되고 박사에게 조바심이 싹틀 무렵, 켈시가 그의 질문에 응답했다.
"그래. 그런데 네가 올 필요가 있어."
"대체 누구길래……."
"10분 줄게. 늦으면 죽어."
뚜ㅡ뚜ㅡ뚜ㅡ
수화기가 께름칙한 뱃고동 소리를 연신 울린다. 전화가 끊긴 후에야, 박사는 잔뜩 졸아든 가슴을 풀어두며 안도의 숨결을 내뱉었다. 몇 번이나 들어도, 익숙하지 않은 냉기였다. 테라의 가장 차가운 겨울을 상대로 붙여도, 너끈히 KO승을 받아내지 않을까 싶은, 한파를 닮은 분위기. 이렇게나 무거운 어조를 계속 받았다간, 쥐포처럼 납작하게 눌려 죽을 게 뻔하다. 사인은 스트레스성 위염. 블랙 기업은 아닐지언정, 좋은 회사도 절대 아니라고 박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집무실의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침은 4월 중순의 1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력 사무소까지 부지런히 걷는다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관절만큼 끼익거리는 의자를 박차면서, 박사는 집무실의 문을 향해 걸어갔다. 복도는 더 할 나위 없이 새하얬다.
◆
박사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인력 사무소 앞에 멈춰섰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10분이 지난 상태였다. 꽤 열심히 걸었는데, 타임 오버였다. 최근 들어 체력이 밑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철야, 기절, 야근, 쪽잠을 반복한 결과가 신체 곳곳의 적신호로 나타나고 있었다. 짬짬이 시간을 내서 체력 단련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과로로 명을 달리할 지경이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목을 우득거리며, 인력 사무소의 문을 열어젖혔다. 켈시는 사무실 안에 배치된 소파에 앉은 채, 서류철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흘끗 쳐다보고는, 다시 파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박사, 늦었잖아."
"…늦장 안 부리고 왔는데요."
"됐으니까, 거기 아무데나 앉아."
앉으라는 켈시의 손짓에 이끌려, 박사는 그녀의 건너편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쩐 일인지, 사무실 안은 켈시와 자신 뿐이었다. 오후 당번이 있을텐데, 왜 보이지 않을까. 궁금증에 혹한 나머지, 한참 활자에 몰입하고 있을 그녀에게 물어본다.
"그, 이 시간대 근무자는 어디로ㅡ"
"에이야, 그 아이는 잠시 숙소로 보냈어."
"어, 원래라면 아직 교대 시간이 아닐 텐데요."
"이번에 채용된 사람이, 꽤 중요해서."
켈시는 그 말을 끝으로, 박사에게 서류 파일 하나를 슥 내밀었다. 표면에는 "채용 서류"라는 글귀가 정자로 기재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기밀"이라는 붉은 글자가 찍혀있었다. 대체 누구이길래, 인감까지 묻혀가면서 기밀이라고 표시한 걸까. 어서 안을 들춰보고 싶다는, 야트막한 호기심이 마음 안에서 솟아난다. 그는 파일을 봉하고 있는 실을 풀어서, 안에 든 서류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새로 채용, 아니 고용된 사람을 본 첫 소감은 매우 간결했다. 하얗다. 그것도 무척이나. 설원에 던져둔다면, 다시는 찾지 못할 정도로 투명했다. 우르수스 출신이라면 그만한 코미디도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카시미어 소속이다. 계속해서 서류에 기재된 내용을 읽던 박사는, 낯선 단어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생전 듣지 못한 낱말이다. 무주맹이 뭐야? 그는 여전히 서류를 훑고 있는 켈시에게 질문했다.
"무주맹이 뭐 하는 곳입니까?"
"카시미어 내부에서, 낙오된 기사들을 사냥하는 집단."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여기에 왜 온답니까?"
"그것 때문에 너를 부른 거야."
"예?"
켈시는 쥐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에 던져두고는, 소파 옆의 협탁에 있던 머그잔을 집어 안의 내용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가습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그녀가 홀짝거리는 소음이 사무실 안의 전부였다. 한참이 지나고 잔을 내려둔 켈시가 말문을 열었다.
"사실 우리도, 무주맹에 대해 아는 정보가 거의 없어."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가 제시한 액수에 응하지 않았어."
불안하다, 엄청나게. 말의 아귀가 맞지 않는 모양을 보니, 무진장. 박사는 자신의 앞에 앉은 이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기억을 잃기 전만큼 빠삭하지는 않겠지만, 나름의 분석과 관찰을 통해 그녀의 심리를 대강은 파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손톱을 오독거리며 눈동자를 굴린다면, 그것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러니까, 그 협상에 능하신 켈시 선생이 임금 테이블에서 졌다는 소리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외쳤는데요."
"대충 100. 부족한 건 내 사비로 충당했고."
"켈시 박사님도, 탕진을 할 때가 있네요."
"…박사, 기왕이면 투자라고 말해."
그녀의 으르렁 거리는 눈빛을 애써 무시하면서, 박사는 읽던 서류에 다시 눈독을 들였다. 무주맹이라는 단어도 알았고, 이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켈시 선생이 거금을 들였다는 사실도 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하나 뿐이다. 그는 활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 돈을 들여서 고용한 이유가 뭡니까?"
"당연히 정보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그게?"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싸게 먹힌 거지."
……아니요, 된통 당하신 거 같은데요.
뒤의 말은 곱게 묻어두기로 결심했다. 생명 연장의 꿈은,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그러니까 결론은 말이지, 라고 켈시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괜시리 마른 침이 목 너머로 넘기며,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통보는, 자신의 뒷통수를 매쉬드 포테이토처럼 분쇄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네가 데리고 다니면서, 정보 좀 캐."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반박하려는 찰나, 사무실 안 쪽으로 난 불투명하고 두꺼운 유리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그가 방금 서류에서 보았던 사진과 똑 닮은 얼굴이었다. 아니, 본인이다. 누에 실 같은 머리칼에 쫑긋거리는 귀, 복슬거리며 흔들리는 하얀 꼬리. 그리고 검게 번들거리는 컴파운드 보우. 그녀는 박사가 앉은 소파의 옆으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반쯤 감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카시미어 무주맹의 기사 살해자, 계약에 따라 등장."
"어… 반가워."
"지시를."
"그, 내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
"코드네임?"
그녀는 잠깐의 고민도 하지 않고는, 박사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플래티넘으로 할게.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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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없는 군더더기는 조져야 해요
대충 관짝 흑인 움짤
ㅆㅂ 성능은 개같은년이 비용은 이름값하는거보게 - dc App
박사한테 배빵맞는 플래티넘
켈시 주식하면 안되겠노
실투갤하는 켈시...
두려운가 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