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에 번역이 아마도 없는 W, 퍼거토리, 그레이 모듈


용병의 자루 (W)

용병의 자루 안쪽엔 주머니가 있는데, 평소 잘 쓰지 않는 것들을 담아두곤 한다.

이곳엔 방랑하는 아이들이 흔하다. 힘겹게 하루하루 연명하는 목숨들이 가득한 땅이다. 그리고 한 소녀가 한 무리의 괴물에게 먹을 걸 구걸하고 있었다.

“제발 좀 도와줘!” 소녀가 말했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야.”

괴물들은 이 황무지의 방랑자를 받아들였고, 그녀에게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너희는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소녀가 작은 보따리를 품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 사냥할 줄도 알아. 그러니까 먹을 걸 더 많이 구해올 수 있어.”

그리고 날이 어두워졌다. 어둠은 불안의 시작이다. 소녀는 자신의 은신처에 틀어박힌 채,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식량이 부족하다. 사냥할 줄 알면 먹을 걸 구해와.” 산발의 괴물 우두머리가 소녀에게 말했다. “많이 구해와.”

소녀는 혼자 어두운 밤길을 나섰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밤 속에 숨어 소녀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때마침, 소녀는 멀리서 피어오르는 모닥불을 발견했고, 족히 며칠은 먹을 수 있는 식량과 맥이 빠진 듯한 용병 한 명을 보았다.

“가져가자.” 이 생각이 소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결국 소녀는 손을 뻗어 그 자루를 낚아챘다. 자루 속에는 소녀가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진정한 음식이 들어있었다.

훔치든 빼앗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걸 가져가야 괴물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거기서 계속 살 수 있다. 소녀는 자루를 꽉 끌어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용병이 뒤에서 쫓아왔다. 소녀는 다급히 괴물 무리에 뛰어들었고, 괴물들은 용병을 향해 시퍼런 발톱을 드러냈다.

그러나 예상했던 울부짖음은 들리지 않았고, 대신 용병이 큰 소리로 무언가 말하는 소리만 들렸다. 소녀는 모닥불 뒤에서 몸을 살짝 내밀어 확인하자 용병은 괴물들을 데리고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지더니, 얼마 안 가 함께 돌아왔다.

괴물들은 매우 기뻐했다. 몇 차의 물자를 끌고 온 괴물들은 축하의 환호성을 질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위는 더 어두워졌고, 이제 쉴 시간이다.

소녀는 안심하고 누웠다. 용병은 불침번을 맡았고, 괴물들은 축하가 끝난 후 모닥불 곁에서 잠이 들었다.

그녀는 새로 온 이 사람을 훑어보았고, 그 사람도 소녀를 보고 있었다. 잠시 시선이 마주친 후, 소녀는 몸을 돌리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괴물들은 이미 잠꼬대하고 있었고, 용병은 모닥불에 장작 몇 개를 던져 넣었다. 그 불빛을 빌어 용병은 이 캠프를 살펴보았다.

모닥불 근처에 평온한 숨소리만 들려올 무렵, 소녀는 눈을 떴다.

모닥불 근처의 소리가 모두 사라질 무렵, 소녀는 은신처에서 몸을 내밀었다.

“잘했다.” 용병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고, 칼에는 끈적하고 새빨간 액체가 묻어있었다. 소녀는 두리번거리며 캠프를 살펴보았다.

용병은 물자를 자신의 캠프로 옮겼고, 소녀는 깨끗한 곳에 앉아 홀로 달을 구경했다.

“……배신자!” 살아남은 괴물이 구석에서 뛰쳐나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괴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녀와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죽는다.” 소녀는 목숨을 걸고 발버둥 쳤다. “이렇게는 죽을 수 없어.”

보따리가 흩어졌고 안에 든 칼날이 보따리를 찢고 나와 소녀의 팔을 베어버렸다. 그 칼날을 움켜쥔 소녀는 어두운 밤을 향해 팔을 뻗었고, 얼마 안 가 괴물은 손에 있던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끈적하고 새빨간 액체가 땅에 흘렀다.

살아남아야 한다.

용병의 자루 안쪽에 넣어둔 칼날은 그녀가 아직 용병이 아니었던 시절 넣어둔 것이다.




살카즈 나이프 (라바 더 퍼거토리)

대장간의 망치 소리가 그쳤다. 무거운 쇠 집게를 건네받은 라바는 벌겋게 달아오른 작은 칼을 차가운 물 속에 담갔다. 물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기포와 수증기가 마구 솟아올라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선반 위에 올려진 차갑게 식은 칼에는 라바가 새긴, 자신의 두 뿔 무늬가 있었다.


“끝내준다……! 누나, 나도 갖고 싶어!”

빈민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좋은 음식을 먹기 힘들다. 라바가 평소 즐겨 먹는 디저트는 애초에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라바가 허리춤에서 걸을 때마다 흔들리며 달콤한 향을 풍기는 작은 주머니를 꺼내, 눈처럼 하얀 별미를 머뭇거리며 내민 작은 손 위에 올려놓자, 아이들은 부모가 말해줬던 '마족'이라는 단어를 이미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심지어 아이들은 이 멋진 누나가 함께 놀아주지 않을까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검은 눈동자에 담긴 경계심이 자신의 호의 때문에 점점 사라진 걸 본 라바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질문을 던졌다.

“아츠에 대해 알고 있니?”

라바는 붉은 화염으로 꽃망울을 계속 만들어 냈고, 꽃망울은 곱게 피면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다가가고 싶었지만 차마 엄두를 못 내는 아이들을 위해, 라바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웅크리고 앉아 아츠의 입문 지식을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종래로 본 적이 없는 것에 흥분한 아이들은 곧장 따라 하기 시작했고, 뜻밖에도 그중 한두 명의 손바닥에서 자그마한 불빛이 피어올랐다. 아직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아츠였지만, 그 빛은 라바의 기쁜 얼굴을 밝게 비추었다.

그리고 라바는 자신이 줄곧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현실적으로 봐도 아츠를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더는 빈민가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래야만 자신을 옭아매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이 땅은 여전히 화와 복, 삶과 죽음을 잉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살카즈의 아츠를 익혔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생활이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미래는 조용히 변하고 있었다.

새로 만든 이 작은 칼은 호기심 어린 작은 손을 통해 계속 전해지고 있다. 라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바꾸고 있다.




새로운 시작(그레이)

그레이는 방금 받은 새 아츠 스태프를 품에 안고 로도스 아일랜드 복도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츠 스태프는 새것 특유의 금속 냄새가 났고, 매끈하고 번들거리는 몸체와 새 부품에는 녹슬거나 닳은 흔적조차 하나 없었다.

이렇게 온전히 자신의 것인,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쩍거리는 물건을 소유해본 게 처음이다. 그레이의 가슴속엔 쏟아내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아까나 지금이나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의료부의 형, 누나들이 싱글거리며 그레이에게 박사 방으로 서류를 전해달라고 했다.

그레이는 서류 한 무더기를 안고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선물의 의미 같은 건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물론 그레이는 자신이 쓰고 있던 아츠 스태프로도 모든 아츠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마음속 한구석엔 능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고 싶은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들뜬 마음에 그레이는 갑판으로 달려갔다. 하늘은 정말 푸르렀고, 바람은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레이는 속으로 자신이 아는 지식을 조용히 되새겼다.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지만, 아츠 스태프를 든 두 손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르쳐 준 아츠, 로도스 아일랜드의 교관들이 가르쳐 준 아츠, 전기 설비를 관리하면서 틈틈이 배운 지식까지,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모든 것에 보답했다……

차가움에서 뜨거움으로.

어두움에서 눈부심으로.

그는 보다 더 먼 곳을 향해, 자기 고향이 있는 쪽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 땅은 이제 윤곽조차 보이지 않지만, 코끝에는 아직도 고향의 냄새가 맴도는 것 같았다. 그는 어린 시절에 만졌던 폐기된 오리지늄 조각의 감촉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그레이의 빛을 발해 더 많은 곳을 밝힐 수 있지만, 그 당시 부모님과 함께 작은 임시 전등 아래 모여 살던 기억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빛나는 빛이었다.

스태프 끝에 달린 아츠 유닛의 전압이 순식간에 상승하며 발생한 전하 간의 충돌과 흐름은 마치 시전자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것들은 무질서한 상태에서 질서를 갖추면서 이윽고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날아가, 결국엔 한곳에 모여 눈 부신 빛을 발했다.

갑판 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그레이의 머리는 헝클어졌지만, 때때로 내성적이고 낯가림을 하는 이 소년의 모습은 한줄기의 눈 부신 빛처럼 보였다. 마치 아츠 스태프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