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괜찮을까요...?"


"물론이에요. 나이팅게일 씨. 저를 믿으세요."


샤이닝이 최근 일주일에 4일은 찾는 로도스의 유일한 바 앞에서, 샤이닝은 드물게도 그녀 혼자가 아니라 동행인을 데리고 있었다.


눈부실 정도로 연한 금발이 무릎까지 내려오고, 전신에 하얀 백의를 걸친 천사와도 같은 여성. 뭔가 분위기가 느껴지는 오크 나무 문에 눌린 듯 그 여성은 샤이닝의 오자락을 잡고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이팅게일. 흔히 백의의 천사라 불리는 로도스의 제일의 의료 오퍼레이트 중 한 명이었다.


"하, 하지만 전 술 같은 거 잘 모르고..."


"저도 아는 건 블랙 벨벳 뿐이에요. 걱정 마세요."


샤이닝을 따라 로도스에 온 그녀는 심각한 광석병의 영향으로 기억 상실을 포함한 여러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로도스의 전선에 나서서 싸우며, 모두를 지키는 그 치료는 드문드문 '성녀'라 불릴 만큼 존경과 감사를 받고 있었다.


본디 해야할 때는 하며, 단호할 때는 단호함을 발휘하는 그녀였지만....


"그 뭔가 들어가기가 무서워요..."


"처음에는 다 그래요. 자, 들어가요."


지금만큼은 격렬하게 후퇴를 주장하고 있었다.


벌써 20분 째 샤이닝과 나이팅게일을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이팅게일이 바의 분위기에 못 이겨 돌아가려 하고, 샤이닝은 그것을 막으며 어떻게든 설득하고 있다. 그 둘의 실랑이가 어찌나 안쓰러웠는지 바를 찾은 다른 오퍼레이터 몇몇이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발길을 돌릴 정도였다.


"그...정말로 잠깐만 있다가 나오는 거예요..."


"물론이에요. 분명 만족스러울 거예요."


장장 30분에 걸친 밀당 끝에 백기를 든 건 나이팅게일이었다. 겁에 질린 표정을 한 그녀는 체념한 듯 샤이닝의 옷자락을 놓고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나이팅게일은 얏! 하고 귀엽게 기합을 넣더니 바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 바로 직전에서 멈춘 그녀는 결심했는지 문고리를 잡으려 했으나, 정교하게 깎인 떡갈나무 현판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현실도피였다.


"어....'말 못할 고민이 있으신'..."


"아, 그냥 4번 두드리면 되요."


"...네."


결국 현판의 글씨를 읽으며 시간을 끈다는 최후의 발버둥까지 깔끔하게 제압된 나이팅게일은 울상을 지으며 문을 두드렸다. 모두 네 번. 정갈한 소리가 복도에 울펴퍼졌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 나이팅게일은 묘한 향이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에잇!"


철커덕. 문고리가 돌아가고, 나이팅게일은 바의 문을 활짝 열었다.




*




"어서와, 샤이닝....어, 나이팅게일도 왔네? 환영해."


"넷, 네....박사님..."


"그리 기죽지 않아도 되요. 지금은 저희 밖에 없네요? 카운터 석에 앉죠."


나이팅게일에게는 정말 다행히도, 바에는 박사를 제외하고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만약 다른 손님이 있었다면 정말 바로 도망치려고 했던 그녀는 그나마 낫다는 표정으로 샤이닝을 따라 박사의 바로 앞 카운터 석에 앉았다.


의자는 매우 푹신했다. 조명은 과하지도 않고 은은했고, 카운터는 깔끔하게 닦여있어 박사가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는지가 엿보였다.


어느 정도 진정된 그녀는 바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여러 술이 장식장에 놓여져 있고. 오래된 램프가 잔잔한 음악을 틀고 있었다. 곳곳에 비치된 장식품은 바의 분위기에 맞게 중후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었고, 추워하는 사람을 대비한 듯 조그만 난로가 구석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모든 요소가 손님을 배려하고 있었으며, 손님이 더더욱 술을 잘 즐길 수 있게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이팅게일은 그제서야 긴장을 조금 풀었다.


"....생각보다, 좋은 곳이네요."


"우리 자랑이지. 언제든 놀러와도 되."


사실 그녀도 진작 바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오히려 로도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 술을 즐길 수 없는 미성년조가 음료수 바를 만들라면서 항의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스스로가 이런 곳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장소에 오는 사람은 그에 걸맞는 품격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단골들의 명단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켈시부터 시작해서 실버애쉬, 마터호른, 헬라그, 쿠리어, 스카이파이어, 텍사스까지. 그 외에도 바를 즐기는 오퍼레이터는 매우 많지만 거의 매일 꼴로 찾아오는 이들은 방금 말한 이들이 유일했다.


모두가 술을 즐기는 나름의 방법을 알았으며, 바 특유의 분위기에 매우 어울리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나이팅게일은 바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스스로와 인연이 없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유일한 오산은, 마찬가지로 연이 없을 거라 생각한 샤이닝이 이 바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전 블랙 벨벳으로 부탁드려요."


"그래. 금방 해줄게. 나이팅게일은 어때? 원하는 게 있어?"


"아, 어, 네.....그....그러니까...."


상념에 빠져 있다가 급작스럽게 박사의 질문을 받은 나이팅게일이 허둥지둥했다. 그녀가 바를 꺼렸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녀는 술에 대해 무지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으니까.


"으....."


나이팅게일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그녀는 박사가 자신을 비웃을 것이며,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않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군. 나이팅게일. 너에게 추천하는 칵테일이 있어. 마셔볼래?"


"네? 아, 네."


"기대해도 좋아."


그녀의 걱정은 전혀 쓸데없는 것이다.


"나이팅게일. 우리 바는 어때? 까놓고 말해서, 들어오기 힘들지?"


"어........그게...."


"대답을 망설여한다는 것부터 이미 대답한 거야. 하지만 나이팅게일, 너의 걱정은 당연한 거야."


"...네?"


박사는 냉장고에서 드라이 진(Dry Gin) 1병과 리큐르의 일종인 코앵트로(Cointreau) 1병을 꺼내 들었다. 나이팅게일을 위한 칵테일을 준비하면서도, 그는 미소를 띈채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의 분위기를 부담스러워 해. 이건 당연한 거야. 아무래도 바에는 여러 이미지가 있지만, 진지하고 중후하다는 이미지가 대다수니까. 여러 칵테일을 즐기고 싶어도 술과 분위기를 잘 모르는 내가 비웃음살까, 방해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건 당연해."


셰이커에 드라이 진을 1온스 가량 따르고, 코앵트로는 그 반만큼 따른다. 선반 아래에서 레몬 주스를 꺼내 코앵트로만큼 넣고, 그대로 셰이커를 맞물린다.


"하지만 네가 알아둬야 하는 건, 바는 술을 즐기는, 혹은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을 환영한다는 거야. 설령 그것이 누구라도 바텐더는 맛있는 술을 원하는 이를 무시하지 않아."


그대로, 셰이커를 양 손으로 잡고, 흔든다.


"....와."


박사가 눈을 감고 셰이커를 흔드는 모습은 정말 그림과도 같았다. 계속해서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박사는 나이팅게일을 바라보았다.


"바텐더는 언제나 손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손님이 술을 잘 못 즐긴다면 그건 바텐더의 탓이야. 손님이 부담스러워 한다면 그것 또한 바텐더의 잘못이야. 손님이 잘못하는 건 단 하나야. 나이팅게일."


셰이크한 진, 코앵트로, 레몬 주스를 얼음을 넣은 유리잔에 따른다. 레몬 등의 뭔가를 더 올려도 좋지만, 여기서 멈추어도 아무 문제 없다.


"그건 뭔가요..?"


"돈을 내지 않았을 때지. 우리 바는 돈을 받지 않으니, 손님의 잘못은 아무 것도 없네. 자, 여기 있어. 너만을 위한 칵테일이야."


"저만을 위한...칵테일..."


박사의 농담에 피식 웃은 나이팅게일은 이윽고 박사가 건네는 흰색 액체를 쳐다보았다. 조금 뿌옇지만 그렇게 생각되기 보다는 마치 보석과도 같다고 생각되는 신비한 액체였다.


"화이트 레이디(White Lady)야. 너의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화이트 레이디를 한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훝어보았다. 정말 아름답다고 무심코 이야기할 정도로 정갈하고 깔끔한 칵테일이었다. 나이팅게일은 어느세 완성된 블랙 벨벳은 받은 샤이닝에게 고개를 돌렸다. 샤이닝은 그녀의 눈길을 느꼈는지 마찬가지로 나이팅게일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미소를 지었다.


"건배."


"...건배."


용기를 내어 한 모금 마신 화이트 레이디는------


"이, 이거....맛있어요."


"다행이네. 너의 입에 맞아서."


드라이 진은 좀 강한 술이지만, 리큐르(코앵트로)의 단맛과 레몬 주스의 신맛이 그 부담감을 깔끔하게 덮었다. 알콜이 느껴지는 건 아주 잠깐 뿐. 그것도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절묘한 것이었다.


이거 음료수 아닌가? 라고 생각될 정도였지만 집중하면 술의 알콜 맛도 분명히 느껴진다. 하지만 시중의 저급 술처엄 그저 쓰기만 한 그것이 아니다. 쓴 맛에도 품격이 있다는 듯 목넘김이 깔끔하고 여운 또한 좋았다.


"이걸로, 조금이나마 바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면 좋겠어."


"그건...그럴 것 같아요."


나이팅게일은 그때서야 바에 들어서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알았다. 바는 특정한 손님만을 받는 까다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술의 천국이라는 것을. 


"모름지기 바텐더라면 처음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 오히려 행복을 느낄 거야. 그 사람이 술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분명 바텐더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 될 테니까."


"네. 그렇네요."


"저도 좋은 술 친구가 생긴 것 같네요. 나이팅게일."


"고마워요, 샤이닝."


"저야말로요."


검은 칵테일을 마시는 검은 여성과, 하얀 칵테일을 마시는 하얀 여성.


그녀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보며, 박사는 조용히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