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바에 오는 대부분의 손님은 문을 1번 혹은 4번 두드린다. 전자는 고민에 대해 털어놓기를 원하는 이들이고, 후자는 그저 맛있는 술이 고픈 이들이다. 기본적으로 칼 끝에 서는 업계인 만큼 오퍼레이터들이 가지는 고민이나 스트레스도 대단했지만, 박사는 그것을 맛있는 칵테일로 능수능란에게 풀어놓고 있었다.


한 번 고민을 털어놓은 이들은 다른 친한 오퍼레이터에게도 권하고, 그 오퍼레이터는 또 다른 오퍼레이터에게 말하고....이른바 스트레스 해소의 선순환이 로도스 바 하나 덕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입소문은 단지 로도스 내부에 그치지 않고, 로도스와 긴밀한 협력을 맺고 있는 용문에게까지 흘러갔다. 얼마 전에는 회담차 로도스를 찾은 웨이옌우 장관과 그의 아내 후미즈키가 이곳을 찾아 각각 갓파더와 잭콕을 즐기고 갈 정도였다.


나 참, 박사가 취미로 하는 칵테일이 이 정도라면 용문 내의 모든 칵테일 바는 아마추어 이하겠군.


웨이옌우 장관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이런 감상평까지 남길 정도였으니, 로도스의 술 좀 한다는 오퍼레이터는 이미 박사가 만드는 칵테일에 빠져든 지 오래였다.


하지만 2번, 3번 두드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스트레스가 과도하여 미쳐버리는 건 대다수의 성년 오퍼레이터 들이 바를 찾는 이상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고, 남모를 사정이라는 건 과거의 트라우마나 마음의 상처 같은 경우였기에 쉽사리 타인에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가 바를 연지도 꽤 지났지만 3번 두드리는 손님은 극소수가 있을 지언정 2번 두드리는 경우는 단 1명 뿐이었다.


똑. 똑.


"들어와."


"여, 박사."


"어서와, 라플란드."


라플란드. 오직 그녀만이 지금까지 문을 2번 두드린 유일한 손님이었다.



*



"주문은?"


"늘 마시는 거."


"2번째 버전으로?"


"물론. 알면서 묻는거야? 성격 나쁘네~"


"저번에 다른 걸 주문한 건 누구였더라. 뭐, 결국 입에 안 맞는다면서 마시던 거나 마셨지만."


"박사는 항상 구구절절 정론인게 나빠."


라플란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지었다. 박사가 그에 회답하듯 미소지으며 손수건을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


"이건?"


"텍사스랑 한 판 한거지? 얼굴이랑 손이 먼지 투성이야. 술을 즐기기 전에 한 번 닦아."


"...고마워."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받아든 라플란드는 이내 자신의 손과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그녀가 잠시 채비를 하는 동안, 박사는 주문받은 칵테일을 위해 찬장을 열었다. 음, 다시 보고 또 봐도 아주 배불러지는 찬장이야. 실없는 말을 지껄인 박사는 이내 화이트 럼(White Rum)과 오버프루프 럼(Over Proof Rum), 크렘 드 카시스((Creme de casis)를 꺼냈다.


화이트 럼은 색깔이 엷고 원만한 향기를 가진, 가장 대중적인 럼이다. 브랜드는 바카디. 럼을 만드는 곳 중 가장 유명하며, 구하기도 쉬운 브랜드이다. 하지만 맛 또한 그만큼 보장되어 있어 즐기기 매우 좋은 럼이다.


오버프루프 럼은 럼의 일반적인 도수인 40도 내외보다 훨씬 높은 도수인 럼이다. 마찬가지로 브랜드는 바카디의 바카디 151. 75.5도의 괴악한 도수를 자랑하는 명실상부 최강의 럼 중 하나이기에, 보통 스트레이트로 마시지 않고 칵테일에 강렬한 맛을 더해주는 용도가 주이다. 불이 잘 붙으며 임시로나마 소독제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럼의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겠지.


크렘 드 카시스는 리큐르의 일종이다. 복분자주와 많이 꽤 비슷한데, 이건 맛이 좀 진득해서 자체로만 마시는 경우는 드물고 칵테일에 자주 사용된다.


차갑게 식힌 유리잔을 꺼낸 뒤, 손수 둥글게 깍아낸 얼음을 넣는다. 술이 시원해지는 것도 있지만, 얼음이 녹으며 점점 칵테일의 도수를 낮춰 마시기 쉽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언제 봐도 박사가 칵테일을 만드는 건 퍽이나 예술적이네. 서두르지도 않고, 느긋하다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수려하게 만들어내잖아."


"바텐더가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손님은 바텐더만을 볼 수 있으니까. 손님이 지루해하지 않게 바텐더는 그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아름다워야 하는 거야."


"하긴, 박사가 만드는 걸 지켜보면 시간이 금방 가니까."


얼음이 담긴 유리잔에 준비해둔 화이트 럼과 오버프루프 럼, 크렘 드 카시스를 넣는다. 각자 30ml, 30ml, 15ml. 크렘 드 카시스는 많이 넣었다간 너무 달고, 적게 넣으면 럼의 맛에 가려지기 때문에 양 조절에 주의가 필요하다.


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투명한 액체와, 황갈색의 중후한 분위기를 내는 액체, 검붉은 빛의 달콤함을 자랑하는 액체가 유리잔 안에서 섞인다. 하얀 도화지에 물감을 뿌리듯 얼음이 여러 색으로 물들고, 유리잔이 검은빛으로 채워진다.


마지막은 스터. 얼음이 잔에 닿지 않게 저어준다면 완벽하다.


"주문한 파우스트(Faust) 나왔다."


"오호! 그래, 자고로 술은 이게 최고지!"


그 이름과 같이 악마의 칵테일이라 불리는 파우스트를 라플란드가 신나는 얼굴로 받았다. 50도에 달하는 괴물같은 칵테일이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한없는 기대감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대로 한 모금. 본래 그녀의 성정이라면 웬만한 술은 원샷해도 문제가 없겠지만 제아무리 그녀라도 파우스트를 원 샷하는 건 무리다. 가볍게 파우스트를 들이킨 라플란드가 맛을 음미하듯 입 안에서 굴리더니 이내 삼켰다.


"역시 최고야!"


입에 머금으면 은은한 카시스의 달콤함이 입을 감돈다. 언제까지라도 즐기고 싶은 달콤함이지만 이내 삼키면 알싸한 알콜이 목을 쿡쿡 찌르고, 단번에 올라오는 취기에 알딸딸해진다.


칵테일 자체가 술인 만큼 보통 세네 잔만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파우스트 처럼 도수가 높은 칵테일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한 잔도 힘들다. 하지만 라플란드는 로도스 내에서도 꽤나 알려진 술꾼이었다.


"진짜 악마 그 자체란 말야. 이걸 마시면 즐거운 것도, 힘든 것도,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전부 잊어버릴 것만 같아."


"여기서만큼은 잊는 게 어때?"


"하! 아무리 그래도 텍사스만은 못 잊지!"


어느세 취기에 붉어진 얼굴로 가슴을 팡팡 치던 라플란드는 텍사스...텍사스....라며 중얼거리더니 곧 축 쳐졌다.


"그래...텍사스....난 그녀석이랑....어...."


"싸워야 한다고?"


"그래! 맞아! 싸우는 거야! 막아서는 건 무엇이든 분쇄하고! 부수고! 죽이고! 넘어서서!"


챙. 갑자기 허리춤에 패용한 쌍검을 뽑은 라플란드는 취기인지 광기인지 모를 것에 휩싸여 허공을 검을 마구 베어댔다. 카운터 석에 깊은 흠집이 생기고, 유리잔이 살짝 깨져나가고, 박사의 한 쪽 팔에 상처가 생긴다.


그녀는 외톨이 늑대이다. 루포족에게 루포족이라 인정받지 못하고 부정당했으며, 광석병으로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이다. 평소에는 진중하고 냉철함을 풍기다가도 갑작스레 광기를 터트리며, 무언가를 난도질하며 웃고, 피를 묻히며 웃고, 광석병으로 인한 고통에도 웃는 속칭 '위험인물'이다.


그 위험 탓에 로도스 내에서 크고 작은 많은 소란을 일으켰으며, 켈시와 아미야가 라플란드의 유용성과 강함을 알면서도 퇴출을 고려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박사는 달랐다.


"야야, 라플란드. 너 또 흥분했어. 봐봐, 주변이 만신창이잖아."


"죽이고! 찌르고! 베고! 그리....고..............아."


눈앞에서 그를 당장이라도 찔러 죽일 수 있는 광인이 날뛰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다. 의식적으로 '이상적인 박사'를 연기했다면, 라플란드의 날카로운 감을 그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니다. 박사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그, 망가진 건 내가 고칠게...아, 박사의 팔에도 상처가..."


"이건 신경쓰지 마. 어차피 지휘 나가면 다치는 게 일상다반사인데 뭐. 옛날처럼 한 쪽 팔이 날아가진 않았잖아?"


"하하, 그건 그렇지...만...."


처음 라플란드가 박사의 앞에서 광증을 터트렸을 때.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는 박사의 집무실은 이미 난장판이었으며,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박사도 포함이었다.


한쪽 팔이 베어져 구석에 처박힌 채로, 이제야 진정했네. 너 괜찮냐? 라고 눈 앞에서 물어보는 박사를 라플란드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생을 부정당하며 살았고, 광석병으로 인해 시도 때도 없이 광기를 표출하는 그녀를 정면에서 바라본 건 박사 뿐이었다.


"......"


"뭘 그렇게 침울해하냐. 자, 이거 받아."


"...어?"


박사가 거낸 건 파우스트 한 잔이었다. 그제서야 라플란드는 자신이 마시던 파우스트 잔을 깨트려 버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얼떨떨해 하면서도 잔을 받아들고, 박사도 잔을 하나 잡더니 찬장에서 호박색 액체 하나를 꺼내 부었다.


"한 잔 하자고. 건배."


"....건배."


그래, 결국 박사는 그런 사람이야.


무언가가 복받쳐 파우스트를 들이켰다.


맛은 이상하게도 썼다. 정말 썼다. 제아무리 그녀라도 뱉고 싶을 정도로 썼다.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그래도."


"응?"


"박사가 만든 칵테일, 정말 맛있어."


"하, 당연한 소리를."


호박색 액체를 홀짝이는 박사를 보면서.


라플란드는, 오늘도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



"아, 박사가 마시는 그건 뭐야? 영어네, 에....버...클리...어?"


"그냥저냥한 술이야. 내꺼니까 안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