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그건 또 웬 주문이냐."


"유학갔을 때 본 과거의 영화 중에서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하더군. 맹우에게도 한 번 말해보고 싶었네."


"거 재밌네. 젓지 말고 흔들라고? 그냥 마티니가 아닌가 보네."


엔시디오스 실버애쉬는 로도스 바의 단골 중 한 명이면서, 바의 설립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한 오퍼레이터다.


쉐라그의 군벌이자 국영기업의 사장인 그는 박사가 바를 연다고 전하자마자 '그렇군 맹우! 바의 장식은 내게 맡겨주게! 탁자도 최고로 준비하지!' 란 말과 함께 말릴 새도 없이 큰 돈을 들여 바를 장식했다.


그런 빚도 있고, 애초에 돈을 받지 않는 바이기도 하니 실버애쉬에게는 로도스 바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 특권이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실버애쉬 쪽에서 이 특권을 제안했다고 보는 게 옳겠지. 이것을 제안할 때의 실버애쉬는 그 답지 않게 꼬리와 귀를 살랑살랑 흔들었고, 정말 기대된다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고 한다.


그 특권이란, 일주일에 한 번 바를 독점할 수 있는 것.


요컨데, 그저 맛있는 술을 즐기기 위해 다른 손님 없이, 오직 박사와의 술자리를 원했다는 뜻이다.


"그냥 마티니가 아니라니? 그건 무슨 소리지, 맹우?"


"원래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를 섞어서 만드는 거야. 진과 베르무트는 향을 중요시 여기는 술이지. 그리고 칵테일은 기본적으로 재료의 개성을 중요시해. 재료들이 마구 섞여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면 그건 그냥 폭탄주야. 칵테일이 아니지."


"흔드는 것과 개성이 상관있나?"

"물론. 젓지 말고 흔들라. 아마 셰이커에 넣고 흔들라는 말 같은데, 이러면 진과 베르무트에 공기가 들어가서 맛이 부드러워지지. 즉 개성이 죽는거야. 원래 부드러운 술이라면 모르겠지만 진과 베르무트 둘 다 개성 맛에 먹는 거니까. 아까 향이 중요하다고 했지? 그 향이 날아가는 건 덤이지."


"호오, 그렇다면 마티니가 아닌 건가?"


"아니, 마티니라고 주문했으니 마티니의 파생품이겠지. 그럼 진과 베르무트 중에 최소 하나는 유지된 채로 술이 바뀌거나, 아니면 그냥 마티니에 뭔가가 첨가된 형태일 거야."


"흐음, 그렇군."


또한 실버애쉬는 술에 대해 조예가 매우 깊고, 지식이 풍부한 박사에게 매우 관심이 컸다. 본래 지휘능력만으로도 자신과 대등하다 여겨 맹우라 불렀던 그였지만, 박사의 술 취미를 알게된 후 표면적인 맹우에서 진짜 절친한 술친구가 되어 있었다.


아마 박사가 쉐라그의 주식을 요구해도 선뜻 넘기지 않을까? 라고 생각될 정도로 실버애쉬와 박사의 관계는 돈독했다. 실버애쉬가 박사를 믿고, 박사 또한 실버애쉬를 믿으니 실버애쉬 가문과 로도스가 의형제를 맺을 정도였다. 유일하게 켈시가 혹시 꿍꿍이가 아닐까 경계한다만, 그녀도 바에서 실버애쉬와 박사의 독대를 보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야, 그녀가 아는 영악하고 지략적인 실버애쉬는 박사와의 주량 대결에서 졌다고 분해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딱밤을 맞지는 않을 거니까.


"그럼 뭘까? 첨가 형태를 아닐 것 같네. 마티니는 단맛이 적을수록 좋지. 리큐르나 포도주 같은 건 아닐거야. 진이랑 베르무트에 쓴 맛이 나는 다른 술을 섞어봤자 결과는 더더욱 쓴 물건이 나온다는 것으로 정해져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실버애쉬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자신이 맹우라 부르는, 불릴 자격이 충분한 저 박사가 바텐더로써 카운터에 서서, 그가 정말 좋아하는 술에 대해 고민에 빠져있을 때.


그 때 박사라는 인간 자체가 빛나는 것 같았다. 사람의 영혼이, 마음이, 그 신체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를 독점하는 권리는, 이 빛남을 혼자서만 보고 싶다는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 이상으로 박사와 조용히 술을 마시고 싶을 뿐이었지만.


"그렇다면 진과 베르무트 중에 하나를 빼야겠네. 어떤 걸 뺄까? 보통 마티니는 진과 베르무트의 비율이 3 : 1이지. 그렇다면 기본 바탕인 진이 빠지고 다른 바탕이 들어간다는 뜻이겠군. 이제 어떤 걸 넣어야 할까?"


"샴페인은 어떤가?"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샴페인은 포도주의 한 종류야. 단맛이 충분하지."


박사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찬장을 쭉 둘러보더니, 마르티니 엑스트라 드라이 베르무트를 1병 꺼냈다. 그리고 조금 고민하는 듯 하더니, 스미노프(Smirnoff) 1병까지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이건?"


"스미노프(Smirnoff). 보드카 브랜드로는 세계 최고지."


"보드카라?"


"그래, 보드카는 기본적으로 향이 거의 없지. 개성도 별로 없고. 하지만 그만큼 칵테일에서 다른 재료를 잘 살려줘서, 베르무트의 맛과 향을 부각시킬 수 있지."


"하지만 이래도 마티니라 할 수 있나? 맹우?"


"칭할 수야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난 보드카를 좋아하거든.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 때도 보드카를 주로 써. 그래서 그냥 고른거야."


"훗, 기대하지."


"실망시키지 않을테니 걱정 마."


카운터 아래의 싱크대에서 셰이커를 집어 들었다. 진과 베르무트가 3 : 1이었으니, 이것도 마찬가지로 보드카 45ml, 베르무트 15ml를 셰이커에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셰이킹.


찰랑거리는 술의 소리,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셰이커의 움직임.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은 정장의 박사까지. 어느 하나 그림이 되지 않는 게 없어 실버애쉬는 무심코 감탄사를 날렸다.


"꽤나 멋지군."


"바텐더의 기본이니까. 이것만 있으면 심심하겠지? 마티니에는 역시 올리브지."


셰이킹이 끝났는지 박사는 셰이커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그 후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힌 잔에 얼음을 넣고, 스피노프와 베르무트.....이제는 마티니라 불릴 만한 물건을 따랐다.


그리고는 올리브 2개를 꺼내 이쑤시개에 끼우고 그대로 마티니에 손잡이 부분이 튀어나오게 집어넣었다.


"마티니....아니, 보드카가 들어갔으니 이름도 살짝 바꿔야겠네. 보드카티니(Vodkatini)야."


"고맙네."


실버애쉬는 보드카티니를 들어 자신의 눈높이에 맞췄다.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리고, 보드카티니 안의 올리브가 먹음직스럽게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올리브를 씹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찰 정도였다.


이내 눈으로 충분히 즐겼는지 실버애쉬가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건....꽤 훌륭한 물건이군."


"별 말씀을."


보드카 특유의 짜릿한 느낌과 베르무트의 향이 조금씩 자신을 과시하며 입 안을 감돈다. 분명 쓰다. 오로지 알콜 맛 밖에 없는 보드카와 베르무트로 만들었으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실버애쉬는 단 맛이나 신 맛 보다는 알콜 특유의 쓴 맛을 즐기는 애주가였다.


평범한 마티니도 수없이 많이 마셔보았지만, 이 보드카티니는 꽤 특별했다. 단순한 보드카의 맛이지만 그만큼 당기고, 단순한 베르무트의 향이지만 그만큼 유혹적이다. 역시 맹우로군. 실버애쉬는 벌써 100번을 넘게 말했을 찬사를 중얼거리며 올리브가 꿰어진 이쑤시개를 들어올렸다.


보드카티니에 담겨져 그 맛을 듬뿍 흡수한 올리브는 그 자체만으로도 술꾼들에게는 과일에 가까웠다. 두 개 끼워진 올리브 중에서 하나를 물고, 이쑤시개에서 빼어 씹었다. 소금에 절여 짭짤한 올리브의 맛이 쓴 보드카티니와 기가 막히게 어울려, 이 조합만으로도 완벽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보드카티니 한 모금, 올리브 한 입. 보드카티니 한 모금, 올리브 한 입.


"정말 멋지군, 맹우."


실버애쉬는 정말 행복하겠지.


여동생들이 있는 로도스에서, 그가 알기로 최고로 멋진 바에서, 최고로 훌륭한 바텐더이자 가장 절친한 친우와 함께,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술을 마시는 것이다.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내가 다 배부르네."


그리고, 박사 또한 매우 행복하다.


바텐더로써 손님이 자신이 만든 칵테일을 이만큼이나 즐겨준다면, 그 이상의 보상은 없을 테니까.


"두 잔 더 부탁하지. 한 잔은 네 것이다."


"영광이야."


두 친우는 웃었다.


언제까지나, 이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



"오라버니, 몸에서 술냄새 나요."


"오빠, 아무리 나라도 이건 쉴드 못 쳐줘..."


"미안하군..."


"박사님, 술냄새가 심해요."


"박사, 너무 마셔댄 거 아냐?"


"미안..."


물론, 실버애쉬도 박사도 꽉 잡혀 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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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실버애쉬 삼남매는 로도스에서 친하게 잘 지낸다. 얘네는 행복해져야 함.


다음 편은 8시나 넘어서 올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