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는 걸 깜빡하고 있었어;; 한꺼번에 올릴게 ㅠ

<신뢰도 300 시리즈 세계관의 독타>
주인공이자 주요 화자. 평행세계긴 하지만 성녀님편의 독타랑 동일인물.
유쾌하고 이타적인 호인.이성이 바닥날 때 언변이 거칠어지는 면이 있지만 그것 빼고는 평범하게 착한 남자.다만 연애에 관련해선 무진장 소극적이고 쑥맥이다.

시리즈가 새로 나올때마다 연애경험 리셋되서 평생 모쏠이 될 기구한 운명이다. 애도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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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투입되는 경우를 빼고, 로도스의 하루는 대개 평온하다. 종종 발생하는 말썽꾸러기 오퍼레이터들에 대한 사항들을 제외하면. 그리고 그 관련 서류를 처리하는 건 대부분 나니까 제발 얌전히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XX 월 XX 일. 디펜더 오퍼레이터 쿠오라 요청. 야구를 할 수 있게 부유선 내에 야구장을 세워 주세요.’
미안하지만 그럴 돈이 없단다. 기각.

‘XX 월 XX 일. 서포터 오퍼레이터 오키드 요청. 포프카가 또 전기톱으로 방을 어질러 놨음. 빠른 시일 내에 방 수리 부탁.’
그쪽도 고생이구나, 오키드. 나중에 위약이라도 사줄게. 접수.

‘XX 월 XX 일, 메딕 오퍼레이터 와파린 요청. 스카디의 몸에 대한 비밀이 궁금하니 해부 시술을 신청함.’
켈시가 기각시키니까 나한테 물어보는 거냐? 될 리가 없잖아. 기각.

‘XX 월 XX 일, 익명 요청. 택사스와 같은 방을 쓰길 희망.’
누군지 대충 감이 온다. 기각.

‘XX 월 XX 일, 익명 요청. 계속 환풍구 쪽에 둔 물건들이 사라짐. 보안 시설 강화를 부탁합니다.’
로프 이 녀석, 나중에 또 설교해야겠군. 접수.

접수와 기각이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한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내가 사람인 건지 서류를 검토하는 기계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수면 부족에 식습관 불량, 과도한 스트레스. 이미 메딕 오퍼레이터에겐 상태가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은 지 오래다. 충분한 휴식과 수면? 그건 어느 지역 음식 이름인가? 한 번 맛 좀 봐보자.
한없이 어두운 감정의 수렁에 빠져들어갈 때쯤, 옆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접시에 담긴 버섯 파이랑 따뜻한 코코아가 올려진 알록달록한 색상의 쟁반. 그리고 그 쟁반을 건네는 손 너머로 시선이 이동했다.

“박사!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먹으면서 해~”

나긋나긋하고 활기찬 목소리. 쫑긋거리는 긴 토끼 귀. 양옆으로 짧게 묶은 투 사이드 업의 긴 은발 아래로 보이는 어려 보이는 인상. 투박해 보일지도 모르는 검은색의 전투복을, 커피색 스타킹으로 감싸인 예쁘고 긴 다리를 부각시켜주는 하이힐 부츠가 커버해 줘 맵시를 살려주었다. 림 빌리톤의 보안 직원이자 현재 로도스의 가드 오퍼레이터, 동시에 오늘의 비서 업무를 맡고 있는 새비지다. 언제나 활발하고 붙임성 좋게 다가와 주는, 믿음직한 동료이며, 예전의 나와도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기억을 잃은 지금에 와서 뭔 의미가 있겠냐만.
짧은 감사 인사와 함께 다시 시선을 서류로 옮겼다. 그러자 새비지가 바로 옆으로 다가와 내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에서 오는 좋은 향기가 입자 단위로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 조금 부담스러운 건 덤이다.

“아직도 많이 남았네. 내가 도와줄 일이 있을까?”
“오, 고마워. 그럼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박스들 좀 봐줄 수 있어? 간단한 것들이니 큰 부담은 안 갈 거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무실 정리도 부탁할게.”
“오케이~”

좀 많은 업무를 떠넘겨버렸음에도, 새비지는 괜찮다는 듯 웃으면서 주어진 업무를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일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쉬는 김에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몇 번 한 다음 그녀가 만든 버섯 파이에 손을 뻗었다. 입에 닿자마다 바삭하며 씹히는 겉표면. 그리고 그 안에서 부드럽게 느껴지는 고소한 버섯의 풍미. 마지막으로 건조해진 목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달콤한 코코아 한 잔.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이런 거겠지.
다만 일상 속의 행복이고 나발이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게 있다면 수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흘 동안 합해서 6시간을 겨우 자고 일했는데 업무량이 줄어들 겨를이 없다니. 사실 이곳은 의료 단체를 가장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납치해 일을 시키는 업무 지옥이 아닐까 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비몽사몽인 상태로 30분. 만약에 내 이성을 수치로 표현하자면 10% 이하로 떨어질 무렵. 서류의 산은 여전히 내 책상을 점령하고 있었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능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모르겠다. 때려치우자는 심정으로 서류를 책상에 내던지고 등을 의자에 밀착시켰다.
피폐해진 내 눈에 들어온 건 어느새 서류 작업이 끝나고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는 새비지였다. 도중에 더웠던 탓인지 전투복을 벗은 상태로, 사무실 바닥을 청소기로 이리저리 닦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검은색 민소매 옷 너머로 흔들리는 게 보이는 저 거대한 두 구체라던가 짧은 치마 너머로 보이는 매력적인 곡선도 매우 신경 쓰이지만, 더욱더 내 시선을 집중시키는 건 저 쫑긋거리고 있는 그녀의 긴 귀였다.

아미야랑 같은 카우투스 종족의 특징인 저 길고 부드러워 보이는 귀. 흥얼거리는 새비지의 콧노래의 장단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 모습을 보고 두근거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만져볼 수 있다면 어떤 감촉일까. 비단결같이 매끈하려나? 아니면 의외로 거친 느낌일지도 모른다. 혹은 털이 부슬부슬 손을 지나가서 묘하게 간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무진장 만져보고 싶지만 이걸 말하다간 켈시한테 설교로 안 끝날 거 같으니 관두자.

귀에서 내려와 그녀의 상반신을 보았다. 아까 가볍게 넘어갔지만, 역시 저 민소매 복장은 남자들의 심장에 참 해롭다. 저 거대한 흉부를 완전히 압박하지 못해 흔들리는 저 작용-반작용의 법칙도 만만찮지만, 팔을 뻗을 때 보이는 옆 가슴의 라인과 새하얗고 반들반들해 보이는 겨드랑이의 라인이 랑데부하는 저 궁극의 zone. 만지면 어떤 쾌락이 날 맞이할지 상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직접 말하다간 부하 직원 성희롱이라는 죄목으로 호시구마에게 연행될 거 같으니 자제하자.

마지막으로 앙증맞은 구 형태의 흰색 꼬리 아래로 보이는 저 허벅지. 럭비 선수를 하고 있다는 게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은 튼실해 보이면서도 부드러워 보이는 저 살집. 한입 살짝 깨물으면 육즙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저 탄탄함은 언제나 봐도 매력적이다. 볼 때마다 웬만한 자양강장제를 압도하는 원기를 부여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 원기가 위쪽 뇌가 아니라 아랫뇌에 줘버린다는 게 문제지만. 이걸 직접 말했다가는 분명 내 인생이 완전히 작살날 거 같으니 얌전히 마음속에 묻어두자.

오케이. 추잡한 망상은 여기까지. 어찌 되었든 간에 기운이 좀 나기 시작했다. 이 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일하면 1시간 안엔 끝나겠지. 빨리 끝내고 한숨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류에 다시 손을 대려 할 때였다.

“저... 박사...”

일이 끝났는지 새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했다고 말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렸더니, 어째서인지 얼굴이 붉어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라서 그런 건 알겠는데...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몸을 비비적거리면서, 깍지를 낀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채, 새비지는 어째서인지 나의 시선을 회피했다. 내가 뭐라 했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르겠다는 의사를 표하자, 그녀는 망설이는 듯 잠시 눈을 꽉 감았다가, 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 내 귀...라던가... 가... 가슴이라던가... 그... 만지고 싶다고...”

가슴이 철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번뇌와 육욕으로 점철되어 있는 나의 마음속 주저리를 들었다고?
그녀가 독심술을 배운 건가? 같은 현실을 도피하는 결론을 도출하려 하는 내 이성을 바로잡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전후 사정을 생각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만든 요인은 불행하게도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설마 나, 생각하고 있는 거 큰 소리로 말했어?”

제발 아니길 바라며 던진 나에 질문에, 새비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사무실에 정적이 발생한지 대략 몇 초. 단편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아 젠장. 좆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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