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게...”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흉내 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그렇다.
내 눈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비비적거리고 있는 새비지를 향해 뭐라 말을 꺼내야 이 어색해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내 머릿속의 긴급회의가 개최되었다. 꼴에 박사 학위 딴 두뇌다. 이 정도 역경쯤은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 토의 주제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상황을 최소한의 여파로 끝낼 수 있을 것인가’다.

일단 두 가지의 가능성 중 첫 번째 전제. ‘새비지가 방을 나가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경우’. 저 전제가 통용되는 상태로, 나뭇가지처럼 퍼져나가는 가능성의 수를 예측한다.

아무 변명 없이 사과한다. 제일 무난한 선택지겠지. 새비지 성격상 용서해 줄 가능성이 높지만 그 후부터 있을 어색해질 관계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아니, 사실상 수복 불가능 판정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양심 없는 소리지만 그녀가 매번 만들어주는 버섯 파이와 샐러드를 잃어버리는 걸 원치 않으므로 이 선택지가 과연 옳은 것일지 의심을 해봐야 한다. 일단 보류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 되나? 그것도 아니다. 블러핑을 못 해서 카드 게임도 안 하는 나다. 그런 내가 변명 같은 고난도의 회화를 시도한다고? 차라리 어느 작가의 희곡처럼 이프리트에게 예절교육을 시키라고 해라. 그게 쉬워 보이네. 고로 기각이다.

두 번째 전제는 ‘새비지가 방을 뛰쳐나가는 경우’다. 이 분위기라면 도망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그럴 경우엔 어떠한 대책을 세워야 할까.

쫓아가서 사과하고 해명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정석적인 방법이다. 다만 방금 전에 보류한 사안이랑 같은 여파가 발생한 건 기본이고, 그녀를 쫓아가는 걸 근처에 있던 오퍼레이터들에게 보이는 순간 소문이 안 좋은 방향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갈 것이다. 추격하다가 호시구마나 그 팀장님을 마주치면 더욱더 곤란해지는 거고, 최악의 경우엔 림 빌리턴 측을 비롯한 로도스에 자금지원 중인 단체랑 교섭이 결렬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급속하게 말라가는 것 같다.
쫓아가지 않는다? 분명 이건 해선 안 될 선택지다. 당장의 곤란한 상황은 해결된다 쳐도, 이미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쫓아오지 않아서 그것에 실망감을 느껴 안 그래도 낮아진 신뢰도가 수직 하락 해버려서 쓰레기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날 보는 새비지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절대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사이가 어색해지는 선택지. 실패할 게 뻔한 선택지. 부하 직원 성희롱 의혹이 결정되는 선택지. 쓰레기가 되는 선택지. 전부다 결과적으로 *용문 욕설*의 결말밖에 안 나오는 이 사면초가의 상황.
머리를 싸매고 있는 도중, 천장의 코너에 있는 감시 카메라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 켈시가 얼마 전에 보안용으로 설치해둔 기기인데, 내가 알기로는 녹음 기능까지 있다고 들었다. 즉, 방금 전에 내가 한 정신이 나간 발언들을 감시 카메라 너머로 켈시가 듣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즉, 어찌어찌 이 상황을 타파해도 켈시에게 불려가서 Mon3ter에게 곤죽이 되도록 구타당하는 결말이 기다린다는 것. 이러면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음 좋아, 죽음으로 사죄할 수밖에 없겠군.

“박사?! 갑자기 왜 창가로 뛰어가는 거야?!”
“미안하다. 사죄할 방법이 이거밖에 없는 거 같아.”
“일단 진정해!”

마침 창밖이 평평한 지면으로 보여서 마음 편하게 뛰어가려는 날 뒤에서 새비지가 제지한다. 내 허리를 감싸 안아 제지하는 걸로 인해, 등 뒤로 짜릿하면서 부드러운 두 마시멜로의 감촉이 느껴졌다. 농담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 이런 것부터 생각하는 내 아랫도리를 비난했다.



옥신각신 몸싸움을 얼추 5분쯤 되었을까. 가출했던 이성이 되돌아왔다.
순간적인 자살 충동을 어떻게든 억제한 후, 바닥에 바짝 엎드려 절을 하면서까지 그녀에게 최대한의 사과의 마음을 전달하였다. 새비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나의 사과를 받아주었고, 일련의 자살 미수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이 방을 채우는 어색한 분위기를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청소를 끝낸 새비지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계속 이리저리 몸을 돌리거나, 서늘한 듯 팔을 다른 손으로 문지르기도 하면서, 계속 작은 한숨을 뱉고 있었다. 딱 봐도 ‘나 지금 매우 불편하다’라는 신호를 절실히 내는 모습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일 났다. 서류에 써져 있는 문자가 전혀 눈에 안 들어온다. 집중력이 분산된 것도 한몫하지만, 방금 전에 내가 한 실언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보. 천치. 머저리.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속으로 내뱉었다.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 치더라도 성희롱이 다분한 내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말하다니. 이성의 동물이라 불리는 인간으로서의 수치다. 인간의 자리를 내려두고 짐승으로 격하되어도 할 말 없는 행동이다.
그러면서도 저 소녀가 가진 인품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새비지가 착해서 이 정도로 끝난 거지, 만약 상대가 그 왕의 지팡이의 고고한 필라인 소녀님이었으면 진작에 유성1우와 함께 로도스 아일랜드가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늘 있을 일은 내가 평생 안아들고 가야 할 실책. 아마 오늘 밤은 하루 종일 이불에 발차기를 날려야 할 거 같다.

“그... 박사. 잠시 여기 와볼래?”

쿵, 소리가 나면서 심장에 1톤짜리 추를 달아버린 것 같은 중압감이 느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와버렸구나. 이리로 오라는 새비지의 손짓. 드디어 한 짓에 대한 책임을 물려는 건가 생각해, 있지도 않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옆에 앉으라는 듯 소파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그녀의 제스처에 응해,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심정으로 걸어갔다.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려는 의미 없고 추한 저항 심리는 덤이다.
소파에 앉자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통증이 전신을 덮쳤다. 과연 그녀가 뭘 말하려는 건가 하는 두려움에 무심코 등이 뻣뻣하게 펴졌다.

“그렇게 만지고 싶어? 내... 그... 귀라던가...”

예상외의 질문이 날아온 것으로 인해 잠시 생각이 정지했다.
저기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미 내 세 치 혀가 저질렀는데 감출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놓고 그렇다고 말하면 안 그래도 잠정적 성희롱범인 내 이미지가 더 하락할 거 같다는 유치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긍정을 표했다.
나의 대답을 듣자 새비지는 생각할 게 있는 듯 잠시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했다.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새비지는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맞추며 가까이 다가왔다. 과연 내가 저지른 유사 범죄에 그녀가 어떠한 대가를 요구할지 생각하니 혈관이 너무 빨리 순환하다 못해 온몸이 불타는 것 같이 뜨거워졌다.

“자.”

눈을 지끈 감은 채 있는 나에게 무언가가 닿는 게 느껴졌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귀가 시야에 맞춰지도록 고개를 내 앞으로 숙이고 있던 새비지의 뒷머리였다.
어안이 벙벙한 나를 잠시 곁눈질로 보더니, 붉어진 뺨을 숨기려는 듯 그녀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길쭉한 귀 때문에 감정을 숨기는 건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으려나.
침을 삼키는 작은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새비지는 용기를 쥐어짜낸 것 같이,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라면... 만져도 되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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