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하고 침이 식도 밑으로 떨어졌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꿈인 게 아닐까? 그렇게 착각하게 만드는 것 같이 심장의 엔진 소리가 거세지고, 밟고 있는 바닥이 젤리가 된 것처럼 물렁해져서 점점 나를 현실로부터 떨어트려 놓은 것 같았다.

차려놓은 밥상을 먹지 못하는 건 남자의 수치라는 옛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을 의미하는 거겠지.
빨리 안 만지고 뭐하냐는 본능이 나의 이성을 아이스크림처럼 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 된다. 인간으로서의 최후의 자존심이다. 아무리 당사자가 허락한다 하더라도 이건 성추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무엇보다 저 뒤에서 느껴지는 카메라의 시선. 분명히 켈시가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냉정하게 분석해야 하는 법.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도중 새비지가 난입했다.

“빨리... 만져줘... 부끄러우니까...”

저 부끄러운 듯 새침한 목소리 덕택에 마지막 브레이크마저 고장이 나버렸다. 이윽고 들린 새비지의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이미 그녀의 긴 회색 귀를 한 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미안. 너무 세게 잡았어?”
“응... 조, 조금만, 약하게...”

악력이 셌는지 새비지가 내 옷자락을 움켜쥐는 것이 느껴져 급히 손을 놓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면서 긴장된 손을 진정시키고, 살며시 그녀의 귀에 손을 뻗었다.

부드럽다.
손에 닿자마자 느껴지는 첫 감상이었다. 마치 고급 비단을 떠올리게 만드는 안락함이 내 손을 전율시켰다.

“읏...”

참지 못하듯 새비지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검은색인 끝부분에서 회색인 머리 근처로 손을 움직이자, 방금 전까지의 부드러움이 이번엔 손끝을 간지럽히는 푹신함이 되어 날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아프지 않도록 최대한 힘을 뺀 채,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이 쾌락을 만끽했다. 그와 동시에 움찔, 움찔, 거리며 어떻게든 참으려 하는 새비지의 모습이 내 몸 안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를 각성시키는 것만 같았다.
머리 쪽으로 접근하는 내 손가락이, 이윽고 귀가 접히는 부근까지 다다랐다.

“거... 거긴, 안... 으읏?!”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요염함이 섞인 새비지의 작은 비명이 방에 울려 퍼졌고, 그것을 트리거로 내 머릿속에 어느 순간부터 있던 정체불명의 스위치가 켜졌다.

“자, 잠깐... 박사...!”

옷의 주름을 펴는 것처럼, 새비지의 귀 끝부분에서 정수리까지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어루만졌다. 스윽, 스윽, 하며 기분 좋아지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한다.

“조... 조금만... 천천... 꺄앗...!”

한 번씩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손의 움직임이 빨라져간다. 마찰열로 인해 귀가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그... 그만... 머리가... 이상해져...”

나의 팔을 잡으며 무의미한 저항을 하려는 눈물 맺힌 그녀의 표정은 배덕감과 죄악감이라는 양면성의 과일이 되어 감미로운 쾌락을 내게 선사했다.
이미 이성은 다시 가출을 해버린 지 오래다. 신음 섞인 요염한 목소리를 즐기려는 것처럼, 나의 본능은 새비지의 제지를 무시하고 점차 거대한 해일과도 같이 거칠어졌다.
마치 남성의 자위행위를 연상시킬 것만 같은 양손의 추잡한 손놀림이 새비지의 귀를 유린한다. 요 며칠간 쌓여왔던 나의 모든 욕망을 이곳에 쏟아붓겠다는 심정으로 내 모든 신경이 팔에 집중되었고, 이윽고 방 밖으로도 들릴 정도로 큰 음란한 교성이 들려왔다.



“새, 새비지. 미안! 괜찮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이지만, 내 무릎을 베개 삼아 기절하듯 쓰러져 있는 이 카우투스 소녀에게 물었다.
새비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내가 하도 문지른 탓에 잘 다듬어져 있던 귀와 머리카락은 헝클어졌다. 짧게 묶었던 옆머리도 끈이 풀린지 오래다.
초점을 잃어버린 눈가엔 공허한 이슬이 맺혀 있었고, 넋을 놓은 듯 입에서 침이 새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그녀의 전신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경련을 일으킴과 동시에 옷 너머로 가슴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못된 짓을 당한 직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번뇌와 육욕의 풀코스가 내 뇌를 절여버릴 것 같았다. 이미 뻣뻣해지는 게 느껴지는 내 아랫도리는 덤이다.

“잠깐만 기다려 줘. 뭔가 식힐 거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귀 이외의 부분을 만지고 싶다는 내 욕망을 억누르며, 정수기에서 물을 가져오려 할 때였다.
몸이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후두부에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소파에 눕혀져 있고 눈앞에는 방금 전까지 쓰러져 있을 터였던 새비지가 내 허리를 의자 삼아 올라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격투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운트 기술 중에서도 전신으로 압박하는 풀 마운트(Full Mount)다.

“새, 새비지...?!”

역시 럭비 선수답다고 해야 될까. 스타킹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튼실한 근육이 내 하반신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너무 짓궂게 만져버려 화난 걸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여전히 초점이 풀린 회색 눈 너머로 당황하고 있는 내 표정이 보인다. 마치 그 모습이 먹잇감을 짓누르고 있는 맹수의 모습과도 같아, 무심코 있지도 않은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숨을 헐떡이던 새비지는 양손으로 내 뺨을 잡았다. 아직 상반신이 자유로우니 어떻게든 저항해보려 했지만, 지금 무작정 움직였다간 직접 말하기 껄끄러운 신체 부위를 만지게 될 것만 같아 망설여졌다.

“박사가... 먼저... 시작한 거니까...”

그런 나의 생각은 관심없다는 것처럼, 새비지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고개를 숙이면서 흘러내리는 그녀의 윤기 나는 회색 머리칼이 내 이마에 닿았고, 이윽고 좋은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다.
샴푸의 과일 향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허나 거기에 현재 그녀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인간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본능에 충실하게 만들 것만 같은, 이성(理性)을 붕괴시키는 농후한 이성(異性)의 페로몬이 가세했다.
원심분리기처럼 머리가 휘저어지는 감각과 함께, 마치 안개에 쌓인 것처럼 시야가 흐려진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까워지는 이 소녀의 얼굴에 취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감겨지면서 보이는 긴 속눈썹. 짙은 홍조가 섞인 섬세한 이목구비. 앵두같이 작고 윤기 나는 입술. 몸이 밀착되면서 느껴지는 푹신하면서도 짜릿한 흉부의 감각. 허리를 감싸는 허벅지의 압박. 이 꿀과 설탕이 가득한 진미를 참으라니,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에로스에 의지하며, 손을 새비지의 허리에 살포시 얹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의 입술을 맞이하며, 난 눈을 감았다.

“거기까지.”

육욕의 수렁 자체를 증발시킬 것만 같은 섬뜩한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나랑 새비지 둘 다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났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엔, 팔짱을 끼고 있는 녹색 머리의 악마가 순도 100%의 살기를 내뿜으며 문 앞에 서있었다.
이곳 로도스의 최고 지위자이자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 그리고 잠시 무시하고 있었던 천장의 카메라를 설치한 장본인, 켈시다.

“꽤나 재밌는 짓거리를 하고 있네?”

미소를 짓고 있지만 저게 결코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는 건 쿠오라라도 알 것이다. 쓰레기만도 못 한 물체를 보는 것 같은 시선이 나에게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다.

“박사, 꽤 많이 한가한 거 같은데 잠시 나 좀 볼까?”

켈시는 나를 향해 검지를 까닥이면서 이리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것에 좀 전이랑 같은 생각 한 마디가 내 머리를 지나간다.

아 젠장.

진짜 좆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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