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니... 뭔...”

곧 죽을 징조인가? 오늘따라 뇌의 활동이 자주 정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뇌졸중이라도 온 건가?
양쪽 뺨을 약하게 때렸다. 손에 묻은 땀이 뺨에 달라붙는 약간의 불쾌함이 느껴졌다.
정신 차리자. 현실도피는 의미가 없다. 면전에서 똑바로 들었는데 잘못 들었다던가 할 리가 없잖은가.

“걔가, 날 좋아한다고? 어떤 면에서?”
“어떤 면에서냐니... 태도부터 딱 보이는구먼 뭘.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만지게 해준다고? 딱 봐도 좋아하지 않고서야 해줄 리가 없잖아.”
“아니 그건, 새비지가 착하니까...”
“박사 너도 누가 네 아랫도리의 소중이를 보여달라고 하면 거리낌 없이 보여줄 거야? 아니잖아?”

상상을 초월하는 호시구마의 언변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털털한 성격이라고 해도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다니, 하마터면 사레들릴 것 같은 내 심정을 대신하듯 헛기침 소리가 주변을 감쌌다.
호시구마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신체를 허락한다는 건 상대에 대한 호감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하물며 성감대라고 할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라면 더더욱, 그 정도의 굳고 커다란 신뢰를 여성에게 받고 있다는 건 남자로서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리라.

“호시구마 네 말이 맞다고 치면... 걔는 뭐가 아까워서 나를...”

다만, 그 상대가 새비지다.
림 빌리턴의 보안 요원이자, 럭비 선수이며, 누구에게나 상냥한 요리 잘하는 미녀.
어떠한 남자더라도 대화하면 ‘얘 혹시 나한테 관심 있는 건가?’라고 착각하게 만들고도 남을 여성.

“아깝긴 뭘 아까워?”
“아니, 그 뭐냐. 더 멋있고 잘생긴 남자들은 널렸잖아. 그런데 왜...”

그만큼 이상적이고 매력적인 이성이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한다.
사실 오늘 일이 내 꿈이나 망상에서 기원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나무뿌리처럼 내 몸을 옭아맬 정도로, 그녀에 대한 내 판단력이 사심으로 가득 채울 거 같으니까.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호시구마의 눈빛이,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반짝였다.

“박사, 너 설마... 자신이 못났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틀린 건 아니잖아.”

당장만 봐도 남성 대원들은 로도스에 널렸다. 거기에 그녀가 소속된 림 빌리턴의 직원들을 생각하면 그 비율은 더욱 늘어나겠지. 허나 그들에 비해 난 딱히 특출난 매력이라 할 만한 게 없다.

“네 외모가 못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외모가 아니라 매력 때문이잖아?”
“솔직히 로도스에 나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 많은데, 나 같은 게 뭐가 좋다고...”

미드나이트 같은 훤칠한 키와 외모는 없다. ‘가면’이더라도 사근사근한 모습을 유지하는 쿠리어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없으며, 수많은 역경을 경험해 온 헬라그의 연륜 같은 건 더더욱 없다. 있는 거라고는 광석병 연구의 권위자라는 과거의 잔재뿐.

“아니, 자신감을 좀 가져. 너무 움츠러들고 있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다고?”
“그래도...”

철제 테이블에 희미하게 비춰지는 탈색된 흰머리, 창백한 피부 위에 쓸데없이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진한 다크써클, 그리고 헐렁한 와이셔츠로 알 수 있는 얇은 몸뚱이. 어떻게 봐도 ‘매력적인 남성’이라는 주제에서 한참 벗어난 것 같은 추한 몰골의 남성. 그게 나다.
그런 나를 새비지 같은, 모든 게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여성이 좋아하고 있다고? 진짜라 해도 듣는 입장에서 신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은가. 아니, 오히려 날 겨냥하는 악질적인 농담으로 밖에 안 들릴 지경이다.

“아 진짜!”

쾅, 하고 호시구마가 들고 있던 알루미늄 캔이 테이블이랑 충돌했다. 부딪힌 것만으로 캔이 종잇장처럼 간단하게 구부러졌고, 남아 있던 음료수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돌발행위으로 인해 전기가 흐른 것처럼 몸이 떨렸고, 이윽고 눈이 제멋대로 몇 번 연속으로 깜빡였다.

“호, 호시구마?”
“매번 두 사람에게 누구씨 관련해서 상담받느라 피곤한데, 문제의 그 누구씨는 아무 생각 없이 ‘난 인기 없어’ 같은 헛소리나 하고 있고! 돌겠네!”

잠시 씩씩거리던 호시구마는 분을 어떻게든 삭인 건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에 걸린 휴지를 몇 장 뽑아서 가져와 테이블에 흐른 음료를 닦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봐. 너 그러는 거 컨셉이야? 아니면 진심이야? 컨셉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데.”
“뭐, 뭔지는 모르겠는데 의도적으로 뭘 한 기억은 없어.”
“...하아.”

뭐라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입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아무리 봐도 *(용문 욕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 것은 분명하다.

잠시 식당 밖에 가서 음료수 하나를 더 가져와서 내 앞에 앉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미안해. 호시구마.”
“갑자기 왜?”
“그, 화난 거 아니야?”
“아니, 뭐... 딱히 화난 거 아냐.”
“그래도 방금 분명...”
“그... 오히려 내가 박사한테 화풀이를 한 거 같아. 요즘 쌓인 게 있어서. 미안.”

대체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성질이 날 정도의 일이면 분명 고되고 막중한 일임이 틀림없겠지. ‘고생이 많구나’라는 내 위로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반응과 함께, 잠시 내 상담은 어색한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먼저 말을 시작하는 건 호시구마였다.

“박사. 가끔씩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부딪히는 것도 좋지 않아?”
“무슨 소리야?”
“요컨대 네가 지금 망설이고 있는 게, 그 대원이 너에게 과분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서잖아?”
“그건... 그렇지.”

이미 내용물을 비운지 오래인 캔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계속 얘기를 하고 있다보니 자판기에 가서 한 캔 더 뽑아오고 싶은 심정이다.

“제발 자신감 1g이라도 좋으니 좀 가져봐. 응? 네 말로는 그 짓을 해버리기 직전까지 갔다고 했잖아? 상황이 그렇다 치더라도 거기까지 갔다는 건 최소한 그 얘도 너랑 하는 걸 기대했다는 뜻 아니겠어?”
“그게... 그렇게 되냐?”
“비유를 하자면 넌 지금 골라인 직전에 다다른 달리기 선수인 거지. 그러니 딱 한 발짝만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거야.”
“그걸 어떻게...”
“뭐긴 뭐야. 깔끔하게 고백해버려.”

너 사실 별생각 없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통쾌한 언변과 태도는 언제나 감사해하고는 있지만, 뒤를 생각하지 않는 저 솔루션에는 약간 불평을 내비치고 싶은 심정이다.

“왜? 쫄려?”
“쫄리고 자시고 간에, 실패하면 어쩔 건데?! 내 인생에 흑역사가 추가되는 거라고!”

호시구마는 그것에 크게 웃으며 호쾌하게 두 번째 캔의 내용물을 들이켰다. 한입에 다 들이킨 후 남은 빈 용기를 양손으로 찌그러트린 채, 농구하듯이 테이블 옆으로 던졌다. 그녀가 던진 캔은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쓰레기통에 무사히 안착했다.

“그땐 내가 술 쏠게. 아니다. 여차하면 내 월급 한 달 치도 걸어볼까?”
“너는 진짜...”

불도저와도 같은 그녀의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내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런 호시구마에 대한 감사가, 가슴속에 응어리지고 있던 가시덤불이 녹아내린 것 같은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가려나 보네?”
“그래. 네 말대로 한 번 부딪혀 보련다.”
“승전보를 기대할게.”

영화 속 사나이들의 인사와도 같이, 우리의 주먹이 가볍게 부딪혔고, 난 곧바로 몸을 돌려 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을 나가는 남자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보인다.
이곳 로도스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주제에 그걸 모르고 있는 바보가, 지금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러 간다.
본디 응원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지만, 결국은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판단해 내린 결과다. 어떻게든 되겠지.
미처 치우고 가지 않은 그가 남긴 캔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해서 추가로 사둔 음료수 캔의 뚜껑을 열었다. 역시 한밤중에 마시는 탄산음료만큼의 청량감도 없다. 맥주를 팔아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린아이들도 있는데 역시 그건 무리라는 게 아쉽다.

그나저나, 한동안 그 호랑이 총경님이나 뿔 달린 팀장님한테 다른 의미로 시달리겠네. 이를 어쩌나.



현재 시각 9시 30분. 모두 취침 시간 직전인 만큼 복도를 채우는 건 내 발걸음 소리뿐이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심장이 2번씩은 뛰는 것 같은 이 긴장감을 억누르며, 내가 가야 할 곳을 향했고, 복도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문패에 ‘새비지’라고 써져 있는 방을 발견하자 발걸음을 멈췄다.
이 앞에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실패하면 그대로 끝장인데 괜찮은 건가?
온갖 불안에 기인한 잡념이 내 발을 묶으려고 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걸 생각해서라도 포기할 수가 없다.
호시구마가 내게 보여준 확신을 믿으며,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문을 약하게 두 번 두드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

피드백 대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