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농후한 페로몬이랑 끈적끈적한 열기로 채워져 있는 어두운 방.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나와 그녀는 서로 땀이 흥건한 신체를 끌어안으며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중간에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서로 가슴이 맞닿은 채로, 입술을 겹친 채, 1초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 강하게 상대를 끌어안았다.
이윽고 잠시간의 이별을 고하듯 입술 간에 거리가 벌어졌고, 그러면서 달빛에 반사되는 머리칼 아래로 눈물을 머금은 채 웃고 있는 새비지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선을 넘더라도 이렇게 한참 멀리까지 넘어버릴 줄은,이라고 생각했다. 슬쩍 시계를 보니 시침이 11에 다다르기 직전인 것이 보였다. 내가 새비지의 방에 들어오고 나서 이리저리 말한 걸 제하더라도 1시간은 넘게, 몸을 겹쳐왔던 것이다.
딥 키스를 한 직후로, 이성이 전부 융해되고 본능만이 남아, 우리 둘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한 것 같이. 관계도, 지위도, 향후도 상관없다는 듯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우린 서로를 탐했다.
입을 맞추고, 어루만지고, 자신의 것이라는 표시를 하듯 살짝 깨물고, 서로의 은밀한 부위를 갈구하며, 이윽고 살을 섞어 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방금 전까지 내 위에 올라타 허리를 들썩이고, 부드럽고 풍만한 흉부 지방을 출렁이며, 눈물과 침으로 더럽혀진 선정적인 얼굴로 날 응시하며, 계속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는 새비지의 모습이, 아지랑이가 지고 있는 내 시야 너머로 유일하게 선명히 보였다. 그 음란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아마 내 인생 중 제일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아.”
새비지는 다시 다가와 근육이라곤 1도 없는 내 얇은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살갗에 닿아서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는데, 설마 박사가 날 원한다고 말해줬을 줄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등 뒤로 그녀의 손의 악력이 세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에 응하듯, 새비지의 매끈한 등을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야말로 네가 고백을 받아줄 줄은 몰랐어. 다른 대원들에게 자주 데이트 신청을 받은 너였으니까.”
“그야, 이미 내 눈엔 좋아하는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는걸,”
새비지는 손을 뻗어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과거의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솔직하게 말할 정도로 반하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어쩌면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상당한 난봉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박사. 예전에 용문에서 돌아오면서 내가 한 말이 인상 깊었다고 했지?”
“응? 어... 그렇지?”
“사실 그거, 누군가를 따라 한 거야. 과거에 좌절하고 있던 날 다시 일으키게 해준, 어떤 상냥한 사람의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격언을...”
살짝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나와 새비지의 눈높이가 맞춰졌다.
“그런데, 이걸 그 사람한테 그대로 돌려주게 될 줄은. 후후.”
몸이 석고상처럼 단단하게 굳어갔다.
설마하니 과거의 내 업보가 뫼비우스의 띠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돌아올 줄은. 이런 아이러니함에 대한 당혹감과 놀라움도 있지만, 무심코 그녀의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에 손을 댄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가세해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죄책감에 눌려 사과하려 하는 내 입술을, 새비지는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며 미소 지었다.
“미안하지 않아도 돼, 박사. 말했잖아? 과거는 한정되어 있지만, 미래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새비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발전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이렇게 서로를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 그만큼 단 몇 분 후의 미래라도 알 수가 없는 법이야. 그렇다는 건 이보다 더한 기쁨이 가득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 렇지?”
“그러니 앞으로, 더욱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가자. 과거랑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과거에 짓눌릴 필요가 없어질 만큼. 크나큰 행복을, 둘이서...”
달빛을 후광삼아 날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울컥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가빠지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내 몸 속 깊이 녹아드는 것만 같았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일까. 무심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런 나를 다독이듯, 새비지의 작은 손이 내 등을 상냥하게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따뜻한 햇살을 감사히 품으며 잠이 드는 어린 양과도 같이, 그녀의 향기를 맡으면서, 서서히 눈을 감았다. 이 포근한 한 순간을, 1초라도 더 느끼기 위해서.
...분위기를 깨려 하는 듯이 잠에서 완전히 깨버린 내 눈치 없는 아랫도리 빼고.
새비지도 감촉을 느꼈는지 잠시 움찔하더니, 이윽고 손을 내 하반신으로 천천히 쓸어내려 갔다. 애태우듯이 천천히 내려갔다가 멈추고, 다시 움직이는 템포가 전신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강렬한 자극을 선사했다.
“박사의 ‘이곳’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나 보네?”
부끄러움을 참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본 새비지는, 여태껏 본 적 없는 요염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일어나서 내 몸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내 몸 침대 삼아 밀착시키며, 서서히 다가와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거절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 왔다.
“한 번, 더 할래?”
아무래도, 오늘 밤은 매우 길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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