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갤에 번역 없는 아이리스, 블레미샤인, 훔, 굼, 패신저(2차)


꿈의 성 팝업북

 “아이리스 씨, 저…… 저는 당신이 하는 일을 믿지 않아요.”

아이리스를 도와 아이들이 맡긴 물건을 숙소로 옮기는 중에, 호아킨은 끝내 자기 입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내 후회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화내지 않고 오히려 진지하게 되물었다. “어째서죠?”

“저는 빅토리아에서 어린 시절부터 비슷한 동화를 들어왔습니다. 마녀 할멈이 세상을 떠돌면서,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훔쳐 가 숲속에 있는 성에 감춰둔다는 내용이죠…… 물론 돌려주지 않아요. 그 보물은 마녀 할멈의 텅 빈 마음을 채워줬지만, 아이들은 후회와 분노를 안고 자랐죠.”

“저는 너무 긴장해서 매일 밤 가슴 앞에 걸린 이 목걸이를 꽉 쥐고 잠들었어요.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직접 만들어 주신 거예요. 정말 멋진 오망성입니다. 마녀 할멈은 제 목걸이를 훔쳐 가진 않았지만,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마을 전체를 앗아갔어요…… 갑작스러운 재앙, 끊이지 않는 전쟁…… 아이리스 씨, 빅토리아에는 당신이 말하는 성이 없어요. 심지어 동화 속에서도요.”

마지막으로 호아킨은 물었다. “아이리스 씨, 당신도 어렸을 때 성에 물건을 맡겼었나요?”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는 것을 호아킨도 알고 있다. 그건 마치 마술사에게 몸과 머리가 정말 분리될 수 있는지, 중절모 속에서 정말 작은 동물이 나오는지 묻는 것과 같았다. 꿈을 만드는 사람은 꿈의 경계를 초월하지, 꿈 자체를 믿지는 않는다.

물론, 그녀는 믿는다고 하면서 속일 수도 있다.

“그 성 말이군요.” 아이리스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아주 어릴 적에 꿈에서 본 적 있어요. 성은 굉장히 컸고, 안에는 많은 방이 있었죠. 그리고 방마다 커다란 수납장이 가득했답니다. 그건 특별한 수납장이라 시간을 멈출 수 있기에, 그 안에서 물건이 썩거나 망가지는 일은 없었어요…… 이렇게 하면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도 잃어버리는 일이 없겠죠. 꿈에서 깨어난 후, 외할머니께서 꿈속에서 본 성을 팝업북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요. 나중에 외할머니께서 저를 그 성으로 데려가 주셨는데, 꿈속에서 본 것과 팝업책에 나온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어요. 그 책은 첫 번째 방의 첫 번째 칸에 놓여있었어요. 그때 외할머니가 제게 성의 주인이 되어 다른 모든 아이들을 돕고 싶냐고 물어보셨어요.”

호아킨은 아이리스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걸 확신했다.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 정도의 관찰력은 있었다. 비록 그녀의 말이 너무…… 불가사의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마술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마술에 나오는 작은 동물로, 동화 속 진실 안에 있다. 그래서 섬의 아이들이 그녀를 믿는 것이라고 호아킨은 생각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아이리스를 도와 캔디 상자와 장난감 모형을 크기에 따라 분류했다.

“죄송합니다, 아이리스 씨.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요.”

“그 목걸이……”

호아킨은 고개를 숙여 가슴 앞에 있는 은색 별을 보았다. 너무 오래 차고 다닌 탓에 목걸이는 이미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호아킨 씨, 당신이 바로 당신 자신의 성이랍니다.”


장인들의 메아리

사실 코발에겐 꿈이 하나 있었다, 그가 이미 아이에게 준 꿈이.

마리아는 언니 마가렛과 조모 조피아 곁에 앉아 선조들의 초상화를 보며 그들이 들려주는 카시미어의 오랜 기사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마리아가 고개를 들어 언니에게 물었다. “기사들이 입는 갑옷은 언니 거랑 같은 거야?”

마가렛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리아가 또 물었다. “그러면 검은?”

조피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 날씨도 좋은데 일행은 코발의 기사 공방에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그날 오후 마리아는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간혹 시끄러운 코발 스승님이 공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기사의 명예가 정말 면류관으로 결정되는 거라면, 그 면류관은 분명 장인들이 만들었을 거다.” 코발은 웃으며 마리아를 안아주었다.

철의 냄새. 마리아는 그게 싫지 않았다. 그녀는 언니와 고모가 무기를 살필 때 보이는 기쁜 표정을 바라보면서 눈이 반짝였다.

다행인 것은 마리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잘했고, 자신도 그걸 위해 분발했다.

“마리아는 그야말로 만능이야.” 코발은 입가에 묻은 술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평원에서 그 외딴 성채를 지킬 때 기억나? 그때 그 이름 없는 외눈박이 늙은 대장장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데. 그가 없었으면 우린 애초에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지도 못했을걸!”

“기억나지! 영원히 기억나고말고!” 옛일을 꺼내자 나이 든 기사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이 취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다 지나간 일인데 뭐. 마리아는 물론 대단하지!”

코발은 습관처럼 친구를 반박하려 했으나 과거의 일과 떠나간 옛 친구들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침묵 역시 일종의 표현이다. 포는 술을 한 입 들이키곤 목소리를 낮췄다. “마리아를 어떻게 생각해?”

“나?” 코발이 정신을 차리고는 잠시 얼떨떨해 있다가 크게 웃어댔다. “그때 마리아가 있었다면 수성은 물론이고 반격도 문제없었을걸.”

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마가렛이 쫓겨났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며칠 내내 울고는 언니를 찾아가겠다며 야단법석을 피웠다. 조피아는 그런 마리아를 재우고는 집에서 돌봐주었다.

코발은 자신이 니어 가문을 지키지 못해서, 하늘에 계신 키릴 어르신을 볼 면목이 없다면서 원통해 했다. 최근 들어 그가 직접 뚝딱거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녹슨 흔적이 이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 위에 만연했지만, 늙은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한번 망치 두드리는 소릴 듣고 싶네…… 마리아가 씩씩하게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를.” 코발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노친네가…… 취했냐?”

“아니, 이렇게.”

코발은 망치로 내리치는 동작을 그렸다. 밖에는 푸른 초원이 저 멀리서 하얀 구름과 맞닿았고, 목재와 석재는 서로 부딪히며 웅장한 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탕……

맑은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8시 시트콤 녹화 비디오

매일 저녁 여섯 시 반이면 훔은 언제나 티브이를 켜고 무협 드라마를 들으며 그날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은 시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일곱 시를 훌쩍 넘었고, 드라마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티브이를 켜고 주방에 들어갔다.

고기는 붉고 부드러웠고, 훔은 파와 함께 다져 고기만두를 빚어 찌기로 했다. 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은 훔은 양손에 부엌칼을 잡고 고기 다질 자세를 취했다. 순간, 거실의 티브이 속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대박, 나한테 잡힌 이상 오늘에야말로 이 피의 원한을 갚겠소!”

'쾅'하는 소리와 함께 칼은 고기가 아닌 도마에 박혀버렸다. 훔은 귀를 쫑긋거렸지만, 간간이 탄식과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얼마 후 훔은 만두소를 그릇에 담고는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잠깐, 갑부! 그를 죽여선 안 된다! 사실 그는 네 형이다!”

“에엥?”

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급히 고개를 들었다. 훔의 눈에는 의혹이 가득했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드라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친, 그럴 리가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 내가 네 부친과 이혼하면서 각자 아이를 한 명씩 데려갔는데, 그게 오늘날 이토록 큰 잘못이 될 줄은 몰랐구나.”

훔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에 든 참기름병을 꽉 움켜쥐었고, 손이 떨리면서 참기름을 잔뜩 붓고 말았다. 다짐육에서 짙은 참기름 향이 풍겼다. 그는 한숨을 내쉬곤 미리 준비했던 만두피를 손바닥에 펼쳐 만두를 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두 귀는 쫑긋 세우곤 드라마를 계속 들으려고 애썼다.

“흥, 주갑부. 망설일 필요 없소, 어서 나를 죽이게.”

“모친, 어떡합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빚고 있던 만두의 주름이 순식간에 삐뚤어져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하던 일을 멈춰 드라마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널이 바뀌었는지 갑자기 게임 배경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와이후와 아가 다투는 소리, 리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훔은 고개를 저으며 웃고는, 독특한 모양의 이 만두를 김이 나고 있는 찜통에 넣었다.

시계바늘이 여덟 시를 가리킨지 한참이 지났다. 훔이 살며시 찜통 뚜껑을 열어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고, 하얗고 둥근 고기만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기소에서 나는 파 향이 주방에서 거실까지 퍼져나가자, 사람들이 넋을 잃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저녁 8시의 용문은 티브이를 시청하는 시간이라 하지만, 저녁 8시의 용문은 사실 가족들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라는 걸 훔은 잘 알고 있다.


허니 파이 선물 세트

다양한 향신료에 곡물 향이 나는 검은 밀가루까지 준비했다. 라다는 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소매를 걷어붙이곤 할머니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디저트인 향기롭고 달콤한 허니 파이 만드는 법을 배웠다.

라다는 파이에 향기롭고 달콤한 벌꿀을 아주아주 많이 넣고, 과일잼과 신선하고 바삭한 견과류를 더 넣기로 했다. 허니 파이도 더 크게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러면 다들 만족하며 먹을 수 있고, 한입 한입이 굉장히 달콤하겠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딨을까?

……

“라다, 짐 챙겨. 상황이 좋지 않아 더는 학교에 머물 수 없어.”

교실에 들어온 대장 소냐 언니의 말을 들은 라다는 바로 순순히 대답했다.

“응, 라다가 가서 정리할게.”

“잠깐만, 라다.” 한쪽에 있던 안나 언니가 그녀를 부르며 허니 파이 반쪽을 건네주었다. “너도 뭣 좀 먹어야지. 학교의 식량이 거의 다 타버렸는데도 네 덕분에 허니 파이를 숨겨둘 수 있었어.”

“게다가 이렇게 크고 달콤하단 말이지!”

소냐 언니 뒤에 있던 로잘린드 언니가 크게 웃었고, 나탈리야 언니가 그녀를 칭찬했다. “한 입만 먹어도 배부르니까. 다 네 덕분이야, 라다.”

“맞아.” 소냐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데 라다, 너 아무것도 먹지 않았잖아. 우리 몫을 나눠주고는 네 과자까지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았어?”

언니들이 먹을 것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허니 파이 반쪽을 든 라다는 급히 돌아서서 언니들을 등졌다.

곰돌이는 최대한 작은 소리로 코를 훌쩍이며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는 갈라진 입술을 오므리고는 파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빨로 조심스럽게 파이를 조금씩 긁어내면서 피와 속 재료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너무 달콤했다.

어떻게 이렇게 달 수가 있지. 이렇게 맛있는 파이는 처음 먹어봤다.

“됐어! 라다는 이미 한입 가득 먹었어!”

라다는 몸을 돌려 손에 든 파이를 가방 속에 넣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언니들에게 웃음으로 답했다.

“정말이야! 라다가 파이를 만들 때 벌꿀을 정말정말 많이 넣었거든! 라다 이제 기운 났어, 하나도 배고프지 않아!”

언니들과 함께라면 무얼 해도 힘들지 않고, 무엇도 두렵지 않다고 곰돌이는 생각했다.


왕권의 금화

리프스팁 암시장, 내가 새롭게 태어난 곳.

회랑의 서쪽 끝에 가면 하늘을 볼 수 있는 공터가 있는데, 과거 한 무기상의 아지트였던 곳이다. 처음 이곳에 오고 몇 년 동안 나는 그의 밑에서 일했다. 그는 타고난 폭군이었다. 그가 내 등에 몇 가닥의 채찍 자국을 남기긴 했지만, 나는 그를 원망하진 않는다. 술에 취한 그가 분노한 부하 손에 목이 잘려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진 것처럼 당연한 일이니까. 나는 첫 번째 금화를 반역자들 손에 쥐여 주었다. 금화는 따뜻했다.

북쪽의 오아시스, 리프스팁의 가장자리. 그곳은 오랫동안 용병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었다. 병사들은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대장은 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가장 큰 고객으로, 내게 술 마시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한 겨울날 내 창고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죽었다. 그는 내가 만든 물건을 노렸고, 내가 구축한 방어 시설에 죽었다. 용병에겐 충성이란 없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부하에게 상을 줬다. 그의 목숨으로는 변변한 술 한 병조차 살 수 없었으니, 참 슬픈 일이다.

남쪽, 마을이 있는 곳. 전달자와 상인들이 빈번히 드나드는 이 마을에는 가치가 떠돌고 있다. 영주는 이 점을 잘 알았고, 이는 이버트의 아미르가 이 땅에 특별히 애정을 가진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사르곤의 혼란스럽고 야만적인 정치에 대해 그다지 관심은 없었으나, 내겐 영주의 지지가 필요했다. 리프스팁의 세력 구분은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시시하지만, 영주에 대해서라면 우리 모두 할 말이 있었다. 나는 이 연약한 관계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어쩌면 그 영주의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존경에 대한 표시로 나는 그 반란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그저 영주의 가문이 꼭두각시가 된 후, 직접 그 불쌍한 소년을 찾아갔을 뿐이다. 마치 엘리엇과 같은, 나와 같은 소년을.

리프스팁의 중심부. 그곳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다. 오래된 파디샤의 무덤이다. 매일 밤이면 이신은 별빛 아래에서 그의 기억을 꼼꼼히 닦았다. 아주 오래전 나는 그의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 나중에 몇 배로 갚았지만, 정작 그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나날이 늙어갔고,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을 묻는 것을 제외하면 나와 별다른 교류를 하지도 않았다.

그날 이신은 다른 사람이 어째서 나를 '샌드솔저'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샌드솔저'.

허무한 모래, 가여운 병사. 내 고통의 상징과도 같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이것을 받아들였다. 다음에 있을 무법의 심판을 위해 대가를 미리 지불한 것이다. 리프스팁 암시장과 그 마을들은 모두 준비된 장작이다.

나는 이버트의 아미르가 이곳에 오길 기다리고 있다. 할 수 있다면 이 황사까지 깨끗하게 불살라버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불을 붙이는 그 순간……

……나는 젊은 엘리엇 글로버가 과학 기술관에 끌려가 참관하고 온 그날 오후를 떠올렸다. 그는 신형 오리지늄 엔진이 점화되는 걸 보았고,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것을 본 그 감동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