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바다의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고소한 빵 냄새가 섞여있었다.

그는 조금은 선선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을 똑 닮은 아이가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면서 아이는 마치 산새처럼 맑은 웃음을 터뜨린다.

세상 모르고 마냥 즐거운,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소리를.

마구간을 벗어나 초원에 첫 발을 내딛은 망아지처럼, 아이는 밀이 꺾이어도 상관 않고 그에게 내달려온다.

마치 동화 속의 천마天馬와도 같이, 언제 날아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가벼운 뜀박질로.

그의 바로 앞에서 아이는 힘껏 뛰어올라 그의 품속에 안긴다.

그도 화답하여 세상에서 가장 굳센 팔로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의 이마에 입술을 맞춘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은 찢겨나간 그림처럼 텅 비어,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같았다.

그는 그런 아이의 모습에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그의 품에 안겨 웃는 아이의 얼굴은 분명히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텐데.

저 멀리서는 그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깃발처럼 원피스를 나부끼며, 황금빛 머리카락과 풍성한 꼬리를 늘어뜨린 그 사람.

그 사람도, 자신의 품에 안긴 아이처럼 텅 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 집 마당인 것 마냥 밭을 헤집던 아이는 그 사람에게 달려갔다.

그 사람은 몸을 숙이고 팔을 벌려 달려오는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는 그제서야,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렀다.

그토록 바라왔던 모습에 너무나도 마음 한 켠이 아파 눈물이 났다.

주먹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그에게 아이와 함께 그 사람이 다가왔다.

아이도, 그 사람도 그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여전히 두 사람 다, 얼굴이 텅 비어 있었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가공의 위로와 거짓 온기도 잠시, 저 편에서 바람이 불어와, 마치 먼지를 쓸어내듯 그의 소망을 지워냈다.

밀밭은 그 광채를 잃고, 그만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스산한 소리를 낼 뿐이다.

그는 이제 소리내어 울며 그 사람의 이름을 애타게 찾았다.

대답 없는 외침에, 더욱 서러이 울며 그는 밀밭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저 둘만 있어도 좋으니 평화로운 곳에, 얼기설기 지은 통나무집에서 너를 닮은 아이를 품에 안고, 너와 함께 예쁘게 시들어가는 미래를. 네가 나의 머리카락을 빗어주고, 내가 너의 꼬리를 다듬어주는, 그런 자연스럽고 행복한 웃음만이 남은 날을.

그는 눈물에 젖은 입술을 작게 달싹이며, 바람에 자신의 소망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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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치료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니어는, 한참 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응급수술의 예후가 나빴다.

이어지는 격전에서 몸이 크게 축나 상처가 아무는 것도 느렸다.

출혈이 너무 심했고, 그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개인실의 욕실에서, 다리 사이가 피범벅이 된 채로 쓰러져 코마에 빠지기 직전이었던 그녀를 발견한 것은 닥터였다.

통합운동의 압도적인 물량에 밀려, 피로 피를 씻는 철퇴전.

그 마지막 단계에서 니어는 행동예비조 A6의 누군가에게 날아가던 투석을 자신의 몸으로 대신 맞았다.

닥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PRTS로 지켜보고 있었고, 복귀한 지 한참이 지나고서도 나타나지 않자 불안감에 온몸을 떨었다.

결국 강제로 마스터키를 써서 니어를 방에서 업고 나와, 긴급수술을 집도, 두어 달째 이 지경이다.

영양죽 레토르트로 끼니를 떼우고, 샤워는 5분 내로, 서류는 모조리 본부팀에 위임하고 24시간을 온전히 니어의 간호에 집중했다.

그 사이 니어는 세 번의 추가수술과 다섯 번의 심실세동을 겪었다.

그리고 닥터는 켈시에게 뺨을 다섯 대 맞았고, 니어가 회복한 이후 스무 대를 더 맞기로 약속했다.

니어가 수술방에 들어간 이후, 피범벅이 된 니어의 방을 청소하던 수수루가 욕실 바닥에서 피에 섞인 미성숙한 살점을 발견했고, 이를 켈시에게 보고한 것이다.

" 닥터, 당신이 누구하고 깊은 관계를 맺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든 상관 안 해. 하지만 그 관계의 결과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면, 도대체 당신은 뭘 위해 그런 짓을..... "

닥터는 말 그대로 격노한 켈시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나가서는, 병실 복도에서 세차게 뺨을 얻어맞았다.

소리내어 울지도 않고, 부르튼 입술을 꽉 깨물며 눈물만 흘리는 닥터의 모습에, 켈시도 한켠으론 딱했던 건지, 그를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 내 권한으로 닥터에게 즉결처분을 내리겠어. 니어 씨가 깨어날 때까지 로도스의 모든 의사결정 활동에서 당신은 배제야. 그리고 설령 니어 씨가 잘못되면, 그때는 응당 책임을 묻겠어. "

닥터는 고개만 한번 끄덕이고는 다시 병실로 비척비척 들어갔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닥터는 그동안 묵묵히 더운 물수건으로 니어의 흉터투성이 몸을 닦고, 튜브와 수액을 갈고, 빈 시간에는 그녀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첫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니어는 눈을 떴다.

몇달만에 그녀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꾸벅꾸벅 조는 닥터.

몇달간의 자리보전 탓에 수척해진 그녀 자신의 손만큼, 그의 얼굴도 많이 축나 있었다.

니어는 다른 손으로 그의 거칠어진 뺨을 쓰다듬으며 그를 깨웠다.

" 잘 있었나, 닥터. 좋은.....아침이구나. "

움푹 들어간 눈을 꿈벅거리며, 자신을 향해 웃는 니어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닥터.

이것이 꿈이 아님을 깨닫고, 소리내어 서러이 울기 시작한다.

양손으로 그녀의 왼손을 꼭 붙들고, 산더미처럼 쌓인 말을 횡설수설 뱉어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니어는 다 이해한다는 듯,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의 귓전에 얼굴을 들이민다.

" 닥터, 체취가 심각하다. 먼저 씻고 오지 않겠나. "



니어누나 애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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