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네스] 흥, 후회되기 시작하는걸.


[이네스] 여기 잠입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나봐.


[이네스]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온전하고 거대한 그림자를 찾을 수 있지.


[이네스] 그런데 여긴...... 너무 높지 않아?




(이네스가 파프리카를 붙잡고 있음)


[파프리카] ......나 좀 놓아줄래?


[이네스] 안 돼, 아가씨.


[이네스] 자신한테 문제될 일은 하지 말라고.


[이네스] 이 배는 정말 넓지, 만약 귀여운 소녀가 나를 도와 망을 보면서, 어떤 복도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병사들을 지켜봐주면 정말 기쁘겠는데.


[파프리카] ......


[파프리카] 너도 자신이 빅토리아인 살카즈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네스] 아니, 나는 카즈델의 살카즈야.


[파프리카] 이해가 안 돼...... 카즈델의 살카즈라고? 그런데 왜......


[파프리카] 왜 맨프레드 장군이랑 군사 위원회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 거야?


[이네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만 일해.


[이네스] 이 배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지?


[파프리카] ......


[이네스] 나는 애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파프리카] 나...... 나는 몰라......


[파프리카] 정말로 몰라!


[이네스] ......이 배에서 네 역할은 뭔데?


[파프리카] 어...... 살카즈 용병?


[이네스] 흠, 사람 한 번 안 죽여본 살카즈 용병이라.


[이네스] 심지어 누군가한테 납치당했을 때 몰래 무기를 꺼낼줄도 모르지.


(이네스가 파프리카를 놓아줌)


[이네스] 맨프레드는 여기서 뭘 할 생각이래? 유치원이라도 차릴 생각인가?


[파프리카] 맨프레드 장군은 나한테 전쟁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했어.


[이네스] 그래서 너는 배웠고?


[파프리카] ......그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거야.


[이네스] 축하해, 우리의 의견이 일치했어.


[이네스] ......이 배는 정말 높이 나네.


[파프리카] 장군은 이 배가 죽은 영혼의 몸이라고 그랬어.


[이네스] 쳇, 죽은 영혼인가, 어쩐지.


[이네스] 어쩐지 아스카론이 그때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더라. 그들이 관심을 끌어줘서 다행이야.


[이네스] ......이 배는 아직도 높아지고 있잖아.


[이네스] 이동 방향은...... 전장이 아니라 런디니움을 향하고 있어.


[이네스] 너희의 배는 런디니움에서 출발해, 공작의 전함을 향해 포를 쏘고, 노버트 구에서 며칠간 정박했지.


[이네스] 이제 곧 공작들의 전함이 도착하는데, 너희들은 다시 돌아가려 한다고?


[이네스] 맨프레드에 대한 인상을 바꿔야겠어. 아이를 키우는 데 열중할 뿐만 아니라, 소풍까지 좋아하게 됐잖아?


[파프리카] 나는......


[이네스] 됐어, 너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이네스] 네 이름은 뭐야?


[파프리카] 파프리카.


[이네스] 네가 파프리카였나, 보고서에서 네 이름을 봤어. 그 11호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풀어주다가 맨프레드한테 체포당했지.


[파프리카] ......


[파프리카] 그건 살카즈 용병에게...... 별로 영광스럽지 않은 걸까?


[이네스] 살카즈 용병에게 영광은 가장 수치스러운 거야.


[파프리카] 그래.


[파프리카] 카즈델에 가 본 적 있지? 카즈델은 어떻게 생겼어?


[파프리카] 나의 예전 대장은 그곳이 살카즈의 집이라고 했어.


[이네스] 너는 어디서 자랐는데?


[파프리카] 컬럼비아.


[이네스] 어쩐지.


[이네스] 카즈델에 가본 적 없는 모든 살카즈는 그곳이 아마 귀엽고 달콤한 보금자리일 것이라 생각하지.


[이네스] 그건 너희의 일방적인 희망일 뿐이야.


[이네스] 네가 아는 가장 더럽고, 역겹고, 초라한 형용사를 찾아서 100배로 증폭시켜봐. 그게 바로 카즈델이야.


[파프리카] ......사람들이 좋아하긴 어려울 것 같네.


[파프리카]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살카즈가 그곳을 집이라고 부르는데?


[이네스] 그들에게는 집이 필요하거든.


[이네스] 그들은 집만 있으면 모든 일이 잘 되고, 살카즈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살카즈들이 다시 가슴을 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이네스] 흥, 바보같은 순진함이야.


[파프리카] 혹시 그건...... 네가 살카즈가 아니라서 그런 거야?


[이네스] ......


[이네스] 의문을 가지기를 좋아하나봐, 아가씨, 그건 전장에서 좋은 습관이 아니야.


[파프리카] 나...... 나는 그냥 아무렇게나 추측해본 거야! 화내지 마!


[파프리카] ......아무렇게나 추측해봤을 뿐이야.


[파프리카] 여기서는 나랑 이야기할 사람이 별로 없고, 맨프레드 장군도 많이 바빠.


[파프리카] 그들은 모두 흥분해 있어. 자신들이 위대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하는데...... 왜 나는 느껴지지 않는 걸까?


[파프리카] 내가 본 것은 오래된 얼굴들이 하나둘씩 죽고, 곧 새로운 얼굴들로 교체되는 것 뿐이야. 새로운 얼굴이 오래된 얼굴이 되면......


[파프리카]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파프리카] 나는 종종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네스] ......


[이네스] 살카즈인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이네스] 만약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살카즈라고 여긴다면, 최선의 선택은 뿔을 갈아서 정말 살카즈인 척하는 것이지.


[이네스] 살카즈의 삶을 살게 될 뿐이야.


[이네스] 살아가는 것 앞에서 기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파프리카] 그래서 너는 살카즈의 전쟁에 참여한 거야?


[이네스] 너는 맨프레드 곁에 더 오래 있어야겠네. 그는 아직 전쟁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지식을 너에게 가르치지 않았어.


[파프리카] 맨프레드 장군은 나한테 《살카즈 전쟁사》를 빌려줬어.


[이네스] ......


[이네스] 그 작가는 내가 아는 사람이야, 외드레르라고 하는데, 바보같은 녀석이지.


[이네스] “살카즈의 전쟁”, “빅토리아의 전쟁”, “공작의 전쟁”, “왕정의 전쟁”,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바보같은 녀석들이야.


[이네스] 전쟁이 자신에게 있다고 선언할 정도로 오만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야.


[이네스] 전쟁은 전쟁, 그 뿐이야.


[파프리카] 그 전쟁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너는 뭘 믿어?


[이네스] 굶주리면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 목마르면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 팔을 오래 휘두르면 지친 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는다는 것을 믿지.


[이네스] 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것만을 믿어.


[이네스] 의미를 가지고 노는 것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지.



[맨프레드] 마찬가지로, 나는 이익이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든다는 것, 공포는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는 것, 타오르는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생겨난 싸움은 간단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맨프레드] 이네스, 손님으로서 왔다면 먼저 나에게 인사해야 됐을 텐데.


[이네스] 맨프레드, 오랜만이야.


[맨프레드] 오랜만이군.


[맨프레드] 그러면, 너는 그대로 남아서 우리와 함께 감상해도 무방하다.


[맨프레드] 곧 폭풍이 올 거다.


이네스와 맨프레드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봤다.


멀리서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고속전함 편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높이 날아오른 이 비행정은 일찍이 주변에 정박해 있던 공작 부대의 모든 관심을 끌었다.


비행정의 그늘 속에서 곤충처럼 쫓아오는 전함을 보며, 이네스의 마음 속에 문득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네스] ......너희가 원하는 건 불꽃이야.


[이네스] 아니, 불꽃은 이미 붙었어. 너희든 그저...... 이 비행정을 타오르는 땔감으로 삼을 생각이지.


[이네스] 캐스터, 웰링턴, 윈더미어, 그리고 노르망디......


[이네스] 그 탐욕스러운 공작들의 대변자들은 이미 이 땅에 모였고, 그들의 주인은 다른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이곳으로 오고 있어.


[이네스] 이 비행정의 속도는 아주 느려. 너희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 그들을 유혹하고 있는 거야.


[이네스] 대공작들은 비행정이 견고한 런디니움 성벽 뒤로 피신하는 것을 원치 않을 테고, 그들은 이곳에 모이겠지......


[이네스] 그리고 너희가 기다리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야.


[이네스] 정말 훌륭한...... 더 샤드 빌딩의 사격장이네.


[맨프레드] 외드레르에게 예리하고 훌륭한 파트너가 있다는 것에 내가 기뻐해야 하나?


[맨프레드] 안타깝게도, 너는 조금 늦게 눈치챘다.


[맨프레드] 병사들, 그녀를 붙잡아라.





(이네스가 병사들을 떨쳐내고 도망침)


[맨프레드] 파프리카, 그녀가 너에게 뭐라고 말했지?


[파프리카] ......


[파프리카] 전쟁은 전쟁, 그뿐이라고 했어요.


[맨프레드] 흠......


[맨프레드] 그래, 그뿐이지.


[맨프레드] 하지만 시야를 조금 넓힐 수도 있을 거다. 전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 정보를 반드시 내보내야 한다.


이네스는 군사위원회가 훌륭한 계획을 세웠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다.


공작들의 힘은 더 샤드 빌딩이 불러온 재앙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더욱이 그 빚을 살카즈뿐만 아니라 각자의 상대방에게도 남겨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 빅토리아의 힘이 일단 정말로 드러난다면, 이 대지의 어느 국가도 공포와 분노를 느낄 것이다.


모든 세력을 그 힘을 부숴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그 힘을 차지하려 할 것이다.


만약 지금 국경을 지키는 공작들이 또 서로 싸우면서 힘을 잃는다면?


라이타니엔, 우르수스, 카시미어, 심지어 옛 가울 지역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불덩이다.


곧이어 막을 수 없는 불길이 빠르게 온 대지를 휩쓸 것이다.


이네스는 아직 너무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이 정보를 내보낼 수만 있다면......


복도 끝에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다. 그것은 이 몸체의 주인이다.


이네스는 그녀의 오랜 파트너에게서 죽은 영혼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 있는데,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진짜 살카즈가 아니라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네스] ......그래, 그림자도 있네.


아침해가 떠오르고, 길었던 밤이 끝나며, 발밑의 움직이는 땅덩어리에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네스] ......좋아.


[이네스] 충분히 높은 곳을 찾은 자신에게 감사해야겠어.


[이네스] ......아마 떨어지면 정말 죽겠지.


[이네스] ......


[이네스] 하, 언제나 죽음에서 돌아오던 이네스가, 어느날 마침내 죽음을 완전히 껴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네스] 외드레르와 W가 나를 엄청 비웃겠지.


[이네스] 내 끔찍할 꼴을 볼 기회가 그 녀석들한테 없으면 좋겠는데.


[이네스] ......후우.






그녀의 몸이 아래로 떨어진다, 광풍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눈을 거의 뜰 수 없다.


하지만, 노버트 구의 모든 그림자를 자신의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이 높이 뿐이다.


오직 이 높이에서만 그녀는 눈에 보이는 이 거대한 그림자를 직접 조종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몇 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눈앞의 그늘 속으로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바로 지금이다.


죽음은 이미 문 밖을 배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