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쓰면서, 나는 내가 이미 백 세에 가까운 노인임을 거듭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 다리가 이젠 늙은 필라인을 데리고 사방을 돌아다니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자기들을 돌봐달라고 하고 있으며, 더욱이 내 친구들 뿐 아니라 심지어는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 마저도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다카가와 도모히코(高川知彦) 씨의 미망인 다카가와 하노리코(高川葉紀子) 여사께서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의 빅토리아어 문체는 부드럽고 간결하며 절제되어 고인이 된 남편분과는 정 반대였다.
다카가와 하노리코(高川葉紀子) 여사께서는 내 뒤늦은 조의에 정중히 감사의 뜻을 표하며, 내가 다카가와 도모히코(高川知彦) 씨와 지난 수십 년 간 주고받은 서신을 이 글에 인용하는 데 동의해 주셨다.
내겐 대지 반대편 극동의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설령 내 신념이 젊었을 적과 같이 확고하다 하더라도, 동국으로의 긴 여행은 지병을 재발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며——별 다른 이변이 없다면 염국으로의 방문은 내 최후의 동방 방문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20여년 전 동국에서 온 절친한 친우를 사귈 수 있었던 행운아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부정한 적은 없다.
1072년, 극동의 전운이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전해졌고, 빅토리아 또한 거의 동시에 한바탕의 피바람을 겪였다. 남북 정권을 모두 대표하는 연합 사절단이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 런디니움을 방문했다.
당시 내가 빅토리아 국립 대학에서 다카가와 씨를 만났을 때, 그의 직함은 "문화교류 특사"였다——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역할의, 분노를 참고 있는 피디아 한 사람.
그에 비해 나는 거의 서른 살이나 젊고 두 눈이 빛나며 건장하고 긴 꼬리를 가졌었으며, 우리가 절친한 사이가 되기까지 반의 반 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카가와 씨는 사절단과 런디니움 모두의 관료주의에 지쳐, 가슴 속에 열정을 가득 담은 채 왔음에도 모든 공식 회담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와중에 우리 둘 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다카가와 씨는 나 이외에 그 누구도 자신의 관점에 작은 관심조차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다카가와 도모히코 씨는 자신이 거지가 되기 위해 이 곳에 온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군 출신 작가이자 동국의 남북을 두루 여행한 문화학자였으며 연합 사절단의 주요 호소인 중 한명이었다.
그의 호소는 지지를 받았지만, 미즈쿠에(御机)와 쿠사리가와(鎖川)의 정치인들은 이미 다른 계획이 있었으며, 그가 사절단에 참가하는 걸 허락하며, 약간의 술수를 써 들끓는 여론을 잠재웠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런디니움의 의회가 얼마 전 사자왕을 교수형에 처했고, 아마 빅토리아의 여덟 대공들도 동국의 여덟 가문들과 마찬가지로 제 멋대로 행동하며 도시를 우리 발 밑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엔 없었다.
사절단은 2주간의 방문을 마치고 런디니움을 떠났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의회는 동국에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고, 공작들은 두 거대한 지정학적 실체 사이에 위치한 이 작은 극동의 국가에는 별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공작들이 보기에 회담의 진전을 방해하려는 사절단 내부의 암투가 없었더라도, 우르수스의 갈증을 동방으로 끌어들이는 전쟁에 나쁠 게 뭐가 있었을까?
핏봉우리 전투(从血峰战役)와 그에 따른 우르수스의 "대반란"을 볼 때, 이런 판단이 편파적이라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다카가와는 정계에서 물러나 그에게 익숙한 문학과 역사 분야로 돌아갔다.
듣기로는 동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한 줄기 새로운 바람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정치적 활동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토록 굳건한 요새에 대체 어떤 바람이 불 수 있을까?
내겐 해답이 없다.
그 이후 30여년 간 나는 내가 교직을 그만 둔 뒤에도 다카가와 씨와 서신 왕래를 지속했다.
다카가와 씨는 나를 수 차례 동국으로 초대했으며, 내가 그의 집을 방문해 함께 극동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있기를 바랬다.
끝내 여행을 할 수 없었던 내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동국의 책, 영화 비디오 테이프, 심지어 만화와 게임 소프트웨어에 더해 그의 열정이 넘치는 소개 편지까지 보내왔다.
수잔나는 이런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며 우리가 허세 넘치는 두 인문학자라기 보다는 같은 취미를 찾은 두 고등학생 같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녀가 옳다, 그녀는 항상 옳다. 이런 물건들은 연구 자료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하지만 한 명의 벗에 대한 기념으로, 그리고 또 다른 신비한 동방 국가로 통하는 초대장으로써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국이 그나마 짧아 보여서 한번 해볼까 하고 번역해봤는데 이거 분량이 장난이 아닌데 ㅅㅂ
남은 게 이거의 6~7배 정도는 돼서 나머지 할 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번역한 부분만 올려 봄
좋구나
초대했는데도 지병 때문에 못 간거보니 통행금지는 아니지만 지랄맞게 머나보다 그걸 걸어간 케짱은 무엇
젊다는 건 좋은거지
늙은 이 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