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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빛과 그림자"

08:00:00

"지금은 7월 29일 8시 정각, 헤르쿨라네움 시민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날 공기 순환 시스템의 유속은 다음과 같이 설정됩니다: 미풍
광열 제어 시스템의 밝기는 다음과 같이 설정됩니다: 맑음
설레는 마음으로 시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환경관리소는 헤르쿨라네움이 오늘 10시를 전후해 금세기 첫 자연 화산 분화를 경험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헤르쿨라네움 화산은 바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에너지 저장고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에기르 도시들이 수소에너지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지열에너지는 에기르인들이 최초로 배운 에너지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도시——헤르쿨라네움——는 자연적인 지리적 이점으로 오늘날 에기르에서 지열에너지를 주 에너지로 하는 몇 안 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분화구를 중심으로 반경 5 해리 이내에 300개가 넘는 에너지 터널을 굴착했고, 각각의 터널 아래에 부스터 펌프를 설치해 화산이 휴면 중일 때에도 미세 화산 폭발에 준하는 용암 폭발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에너지 터널에는 특수 액체 매질이 저장되며 3000만 단위의 압력 하에서 분출구의 액체 매질은 고온 상에서 초임계 유체로 전환됩니다.
초임계 유체에서 생산된 전기에너지는 헤르쿨라네움 에너지 소비량의 70%를 공급합니다."


09:00:00

"환경관리소 공식 채널에서 실시간 중계방송을 할 예정이니 오늘 쉬는 시민분들 께서는 집 밖으로 나와 화산 폭발을 직접 두 눈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보호안경은 광케이블을 통해 모든 노드에 배포되었으며, 필요한 시민분들 께서는 자택이나 직장의 터미널에서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보호안경은 음성, 제스처, 생체 전기 등 다양한 제어 모드를 지원하며 사진, 비디오, 모델링 생성, 데이터 측정 등 다양한 실용적인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분화가 일어나는 동안 화산 분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해 도시의 광열 제어 시스템은 일시적으로 차단될 예정입니다.
이 경우 주양거기(铸阳巨械, 아마 인공 태양 같은 물건인 듯)는 가동이 중지되고 개방이 중단되니, 관람을 예약한 시민분들 께서는 예약을 변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화산 분화를 감상하면서 위대한 불카누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그가 주도해 설계한 단열 돔은 규모 4 이하의 화산 폭발을 완벽하게 견딜 수 있고, 헤르쿨라네움은 수억 세제곱미터의 화산 분출물 세례를 무사히 견뎌낼 수 있습니다.
분화 기간 중 돔의 발색 유닛도 일시 차단돼 시민분들께서는 단열층 본연의 색상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09:47:25

"시민 여러분, 주의하십시오.
알 수 없는 데이터 간섭으로 인해 이전에 보고된 측정 결과가 부정확할 수 있으며, 이번 화산 폭발의 강도 지수는 규모 4를 초과할 수 있으며 최대 규모 7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민 여러분은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규모 7의 화산 폭발에도 단열 돔은 충분한 시간을 버틸 수 있습니다.
헤르쿨라네움의 이동 프로그램은 2시간 안에 긴급 가동되며 도시 전체가 화산 폭발의 영향권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됩니다.


"헤르쿨네움은 속도를 희생하여 최대의 안정성을 달성하기 위해 다리와 추진기를 결합한 복합 이동 모드를 채택합니다.
현재 에기르의 도시 중 약 5분의 1이 이 모델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리로 도시의 기반을 지탱한 후, 하부의 추진체는 도시를 부유 상태로 유지합니다.
도시 이동의 핵심 동력은 주 추진체가, 변속·조향·지형횡단 등 복잡한 동작은 다리가 보조합니다.

"일반적으로 도시 측면의 보조 추진체는 주거층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사용됩니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일부 보조 추진체가 추가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도시 거주층이 흔들리고 덜컹거릴 수 있습니다.
공공 피난시설은 개방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급속 충전 보호 필름은 광케이블을 통해 모든 노드에 배포되었으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가능한 한 빨리 자택이나 직장 내 터미널에서 수령해 주시기 바랍니다.
급속 충전 보호 필름을 사용할 때 무거운 옷을 벗고 보호 필름 생성기를 가슴에 고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접촉을 막기 위해 보호막 생성기의 작동 모드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0:02:37

"주의하십시오, 주의하십시오.
용암에서 알 수 없는 가지 모양의 생물학적 조직이 자라났으며 많은 수의 시본 유충도 동반되었습니다.
3번과 4번 다리와 하부 추진체가 다양한 정도로 손상되었고 주 추진체의 연소실이 시본에 의해 막혔습니다.
현재 모든 시본은 공격성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모바일 모듈에 대한 긴급 수리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관계기관들은 시본을 제거하고 도시의 이동 능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주의하십시오.
인원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민 여러분을 도시 외곽의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민분들은 즉시 지정된 대피 장소로 이동하여 질서 있게 함정에 탑승하여 대피하십시오.
대피 과정은 전 과정에 걸쳐 해양 경비대가 호위할 예정이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적극적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의하십시오, 주의하십시오.
모든 도시 문이 이미 개방되어 대피 함대가 출항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관계기관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본 채널에서도 방송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계속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0:55:48

"3번 다리의 수리 완료, 주 추진체 작동 재개.”

"시본의 수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1번 다리는 펼쳐진 가지에 걸려 죽었습니다.”

"에너지 터널 대규모 붕괴. 당장 이동 절차를 시작해 남은 다리로 도시를 지탱하십시오.”

"아직 대피하지 않은 시민 여러분은 즉시 지정된 대피 장소로 대피해 주십시오!”


12:03:46

"아직 대피하지 못한 동포 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청소와 긴급 수리 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며, 헤르쿨라네움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선현께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에기르가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서커스의 에기르인

11세기 초엽, 이베리아 최초의 에기르인이 상륙한 지 거의 100년이 지났다. 이베리아 왕국의 눈부신 전성기를 맞이한 이때, 사람들의 진기한 것에 대한 추구는 탐험 그 자체에 대한 열정을 능가했다.
피난을 떠나 뭍으로 올라온 에기르인들은 대부분 무리를 떠나 고립된 채 살았지만, 해저 문명의 진보적인 성과는 여전히 이베리아 사회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이 시대의 이베리아 인들에게 체계적인 지식과 기술은 소화하기 너무나 어려웠고, 대신 사물의 겉을 대충 벗겨 기이한 정신적 패스트푸드를 만드는 것을 더 선호했다.

이 노트의 주인은 이른바 "에기르 서커스"에서 일했다.
동물 공연과 기괴한 전시가 유행하던 이베리아에서 사람들은 이미 물구나무서기를 타는 버든비스트와 시소를 밟는 투스비스트에 질려 버렸고, 기형 맹글러와 쌍두 글룸핀서가 싸우는 공연도 인기를 끌지 못할 정도로 심해에서 온 기이한 보물들이 주목의 대상이 됐다.


#04 저자의 잡다한 기록

뭍에 오른 후에 우리는 곧 육상인을 만났다.
이베리아의 어촌 마을이었는데, 마을은 부유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낚시와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도 우리를 따뜻하게 수용해 주었다.
식사 후 마을 노인과 아이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퉁명스럽게 말을 걸기도 하고, 때론 아무 말도 없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한 동포가 감사의 표시로 금박 회중시계를 꺼내 선물하면서 이런 이상한 구경은 끝이 났다.

이틀도 안 되어 누군가가 우리 집에 찾아와 자신이 현지 귀족의 대표라며 우리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출신을 알 수 없는 몇몇 육상인들의 안내를 받기보다는 이전에 상륙한 에기르인들과 연락이 닿기를 희망하며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나와 같이 영문도 모른 채 차에 탄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육지의 나라들은 생각보다 시끌벅적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시장을 지나갈 때 공기 중에는 죽은 물체의 비린내가 가득했다.
노점 천막 뒤, 널빤지 상자 안, 처마 밑에서 헐벗은 아이들 무리가 나와 우리를 뒤쫓아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는데, 마치 굶주린 시본 유충 같았다.
그들은 현지 훈제 햄, 육상의 증류주, 심지어 시본 모양의 수공예품까지 들고 다니며 우리 수중의 값나가는 물건과 바꾸려는 듯했다.
키가 큰 네발 동물이 우리 차를 기웃거리며 냄새를 맡은 후 돌아서서 바퀴에 악취가 진동하는 대소변을 한 무더기 남겼고 주인은 웃음을 터트리곤 술 트림을 했다.
차를 이끄는 '귀족 대표'가 검을 뽑아 들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자 그는 맥없이 가버렸다.

나지막한 단층집으로 이뤄진 미로를 벗어나 비교적 깔끔한 도심으로 향했다.
공기는 또 다른 냄새로 바뀌었는데, 담배 타는 냄새와 새로 칠한 벽 페인트 냄새는 코를 찡그리게 했다.
차가 웅장한 저택 앞에 멈추었고, 우리는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요청을 받았다.
며칠간의 여행으로 한순간도 쉬지 못한 우리 일행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옆에 누가 급히 다가와 끈적끈적한 청록색 액체가 담긴 병을 하나 꺼내 자랑스러운 듯 우리에게 소개했다.
"아고르 집정관이 매일 마시는 귀한 음료로, 한 병은 기운을 북돋우고, 두 병은 사람의 힘을 짐승처럼 강하게 만들고, 세 병은 세상 어디를 가든 두려울 것이 없어집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거절을 표시했지만, 그는 여전히 들어주지 않았다.
"손님께선 바다에서 오신 것 같은데, 오랜 여행에 피곤하실 텐데 한 번 해보시지 않으시겠어요?"
내가 에기르 사람인 줄 알면서도 에기르에 이런 기괴한 "음료"가 없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놀라웠다. 그것은 생물연구소에서 식물에 쓰는 영양액에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의 고용인이 우리를 들여보냈다.
이베리아 귀족이라는 여성이 우리를 맞이했고, 그 뒤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에기르 출신 노인이 따라다녔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귀족은 이빨을 계속 드러내는 긴 털의 동물을 조용히 쓰다듬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에기르 노인이 대부분의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 귀족의 끔찍하게 긴 이름을 소개하곤 혼잣말을 하듯 한 차례 인사말을 나눈 뒤 노인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기품 있는 저택을 나서자 노인은 나를 혼란 속으로 이끌었다.
공터에는 수십 개의 천막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그 사이에는 동물을 묶은 나무 수레가 흩어져 있었다.
나는 머리에 검은 것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키가 거의 3미터는 되는 우람한 거인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뒤틀린 자세로 작은 나무칼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유리 항아리 속엔 말라빠진 사람과 짐승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고, 시커먼 결정체가 둘의 피부를 찔러 하나로 묶어 마치 샴쌍둥이처럼 보였다.
그들은 내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눈가 구멍의 젤라틴 구체만 나를 향하고 있을 뿐 그 속에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뭣 때문에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서 노인은 꽤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내가 이베리아에서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바다에서 가져온 지식과 기술로 산업에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만 해준다면 밝은 길로 안내해 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잘 다듬어진 물푸레나무 진열대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생활용품부터 장식품까지 없는 것이 없었고, 모양은 에기르의 제품과 비슷하면서도 가장 추하고 쨍한 색깔이 아무렇게나 칠해져 있었다.
잠시 뒤적거리다가 그는 동물의 피부가 둘러지고 반짝이는 금칠이 된 괴상한 갑각 하나를 꺼냈다.
윤곽으로 판단하건대 갑각은 해저에 서식하는 시본의 일종인 것으로 보였지만 갑각에 둘러진 방추형 가시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시본에서 온 것으로 보였다.
나는 나중에야 이 갑각이 정말로 몇 가지 시본의 뼈를 이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요즘 육상에서 보는 다른 것들에 비하면 그건 거의 평범해 보일 지경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처음 왔으니 간단한 것부터 해야 해. 서커스의 이상한 전시회에서 우리를 도와 이걸 소개해 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문자학자로서 시본에 대한 나의 지식은 일반적인 교육 수준에 그쳤다.
내가 의구심을 다 표현하기도 전에, 노인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알다시피 모두가 에기르식 학술 보고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네가 말해야 할 건 시본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야.
이 물건은 수집품으로 파는 건데, 충분히 신기한 내력이 있어야만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어.”

내가 떠나는 날까지 에기르는 시본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명명하는 방법을 구상하지 못했다. 이런 생물의 다변성으로 인해 전통적인 방법은 낡아빠진 게 되어 버렸고, 나는 눈앞의 이 기이한 갑각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노인은 다시 한번 내 걱정을 가볍게 넘겨 버렸다:
"과학적 분류법은 잊어버려. 이베리아에서는 '빛나는 스파이크 아머비스트'라고 불러야 해."

나는 노인이 진짜 에기르 사람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마 모자 밑에 육지 종족의 털 달린 귀가 숨겨져 있을 것이며, 단지 내가 볼 수 없을 뿐일 것이다.
나는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에기르의 이야기는 존재의 의미, 행위의 가치, 인간 본성의 경계에 대해 논한다.
알 수 없는 해사의 갑각에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과 기괴한 사연을 꾸며내는 것은 언어와 글의 낭비일 뿐이다.
그날 오후 나는 시내에서 물건과 돈을 바꿀 수 있는 "전당포"를 찾아 들고 다니던 수맥 측정기를 육상의 화폐로 바꿔 에기르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찾았다.
육상인들이 언어를 망치는 헛소리만 듣고 싶어 한다면, 적어도 에기르인들에겐 고향에서 온 이야기가 필요하다.

동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상인은 여러 에기르인들의 거주지의 위치를 자세히 알고 있었다.
피난하여 뭍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충분한 설비와 도구를 가지고 갈 겨를이 없었고, 이곳엔 선진적이고 원시적인 생활 방식이 공존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마을에는 해저와 다시 연락을 취하기 위한 광케이블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동물의 힘으로 윈치를 당기고, 거친 나무 그루터기에 섬세한 광케이블을 감는 것을 보고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마을 관리인인 젊은 에기르 여성이 키가 큰 네발 동물의 등에서 나를 훑어보았다.
그녀가 탄 안장은 버려진 '조력자'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보였는데, 야외 생활 유닛의 도르래는 발안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들어가라고 고개를 흔들었는데, 그녀가 웃는 모습이 내겐 낯설었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양육되며 배운 정확하고 우아한 미소가 아니라 어수룩하고 호방한 미소, 육상인의 미소였다.
그때 나는 관리인 여성이 육상에서 태어난 에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곳의 사람들이 모두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 했다.
저녁 식사 후 사람들이 하나둘 해변으로 와서 모닥불을 피웠고 나는 사람들에게 내 창작물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고, 육지에서 태어난 에기르인들은 내가 탐구하는 의미와 가치, 인간 본성을 알아듣지 못했고, 거대한 조개껍데기와 멋진 함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노인들은 여전히 나와 대화하고 싶어 했지만, 내 가장 큰 문제인 생계를 해결해 주진 못했다.
에기르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서도 글쓰기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수 없었다.
관대한 이웃들이 사정을 듣고 가끔 물건을 나눠 주었지만, 생활은 늘 힘들었다.
나는 매일 밤에 복강을 비우는 펌프가 있는 것처럼 속이 텅 빈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다.
나는 인생 전반에 걸쳐 "배고픔"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 사고를 교란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점차 사치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마을 대부분의 사람은 경작이나 수공업과 같은 반복적인 기계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베리아 왕가의 지원을 받아 과학 연구를 할 수 있는 에기르인이 일부 있다고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했다.

한 달 만에 나는 그 지역 귀족들이 차린 서커스로 돌아가 그 언어를 낭비하는 일을 맡게 됐다.
나는 나 자신에게 밥을 먹여야 한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에기르에서 가져온 자료를 정리해서 이야기로 쓰고 있다.
누가 이걸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써 나가야 한다.




이번 이야기는 좀 더 처참한 내용임.


세번째 이야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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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이름 헤르쿨라네움은 폼페이로 유명한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멸명한 고대 로마의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따왔음.

일반적인 인식과는 좀 다르게,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인근 지역 사람들 대부분이 산 채로 화살쇄설류에 파묻힌 건 아님.

도시에 거주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해안가로 도망가 배를 타고 도시를 탈출할 수 있었지만, 일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나 해안에서 배를 타려 기다리다 고열과 화산쇄설류에 덮쳐져 사망한 주민들의 흔적이 뼈와 공동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게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석고상들임.


헤르쿨라네움에선 해안가에서 수백 구의 시체가 발견됐는데, 역시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화산에 휩쓸린 흔적으로 보임.

특히 폼페이보다 헤르쿨라네움에 쇄설류가 더 많이 유입됐는데, 폼페이는 4~6m 가량인 데 반해 헤르쿨라네움은 20m에 가까운 쇄설류가 퇴적된 곳도 있을 정도임.


에기르에선 헤르쿨라네움 화산 분화 규모를 4 정도로 추정했는데, 실제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 규모는 5 정도였음.


또 에기르의 단열 돔을 설계한 불카누스가 언급되는데 잘 알다시피 불카누스는 그리스 신화의 헤파이스토스가 로마 신화로 유입되면서 바뀐 이름으로, 불의 신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79년 베수비오 화산 분화 당시 불카누스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고 함.



이번 설정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에서 에기르가 고대 로마식 이름과 지명을 사용하고 베수비오 화산 분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을 볼 때 전설 속 물에 잠긴 도시 아틀란티스와 고대 로마에서 모티브를 딴 지역임을 알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