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의 종족
1060년대에 나는 빅토리아 국립 대학에서 매우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일련의 강의를 진행했다——"복잡한 사회 속의 테라 사람들".
그때 어떤 학생이 나를 찾아와 그 중 일부를 나중에 연구하고 읽을 수 있도록 글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정리한 강연 원고들이 바로 이 장의 전신이다.
만일 우리가 200년 전으로 돌아가 당시 인종 연구를 담당했던 학자들에게 이 장을 넘겨준다면, 아마 그들의 얼굴에서 불신과 당혹의 표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인류'에 대한 인식과 연구는 단순해서 당시 연구자들은 각 종족의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는 데 열중했고, '남성 포르테의 최대 완력' 같은 문제에나 관심을 가졌다.
다양한 종족의 생활 조건과 사회문화적 위치 등의 주제는 최근 100여 년 동안에 등장한 새로운 연구다.
여기서 나는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전임자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 분야의 탐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게 바뀌는가?
우리의 시야는 어떻게 넓어지는가?
우리는 언제 "테라인"이 생물학적 존재이자 사회적 신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이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식 그 자체와 이를 위해 헌신했던 선구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즉 인지적, 이념적 발전의 역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어야만 현재 사회의 현주소에 대해 논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 독자들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먼저 보고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나는 지루한 학문적 토론을 간소화하고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내 연구를 소개했다.
강의 내용 외에도, 최근 몇 년간 생각했던 바 또한 추가하였다.
지금 이 부분을 쓰면서 30년 전 남긴 원고들과 최근 몇 년간의 여정과 생각들이 함께 이 장에서 '인류'에 관한 모든 것을 구성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때 젊은이들의 제안을 따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고 시대의 테라 사회와 사람들
솔직히 말해 현대인의 고대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상상에 기초하고 있다.
재앙과 오리지늄 광맥의 느린 확장은 현실에서의 우리의 행동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탐구의 경계를 제한하기도 한다.
테라인들이 의식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과거에 대한 지식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분석하거나 땅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을 연구함으로써만 구축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차량 기술 덕분에 고대인들이 남긴 흔적을 탐색하기 위해 인간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황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현장 작업은 여전히 재앙의 위협 때문에 위험하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새로 발견된 정보를 기존 정보에 취합하는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런 연구 방식에서 진실에 대한 인식과 해석은 점진적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오늘의 성과는 내일이면 갱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끊임없는 수정은 우리가 과거에 존재했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켈시의 주석: 끊임없이 확장되는 오리지늄 광맥은 상고 시대의 잔재를 삼켜버렸다. 고고학자들은 조상의 진짜 최초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외모로 볼 때 현재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고대 인류는 기본적으로 현대 인류와 동일하다.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증거가 있다.
하나는 사르곤에서 발굴된 고대 인류의 뼈이고, 다른 하나는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회화이다.
분석에 따르면 고대인의 뼈 구조는 현대인과 거의 동일하며 차이점은 키 뿐이다.
그리고 고대 회화는——가장 원시적이고 초보적인 작품에서도 묘사된 인류의 신체적 특징은 현대인의 특징과 구별할 수 없다.
지금의 사미의 남쪽 국경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벽화는 인간의 모습을 현대인과 거의 다르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벽화의 내용이 테라 고대에 존재했던 오리지늄 숭배를 나타낸다는 견해도 있다.
현재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우리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인류는 이미 조직화된 사회에 살고 있었다.
각지의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지의 가장 원시적인 사회조직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공통점을 보인다: 비슷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가능한 한 함께 모여 서로를 도우며 사는 방식이 생존할 확률을 높인다.
또한 일부 정착지에서는 집터의 분포에서 규칙적인 차이를 관찰할 수 있다.
큰 집에는 대개 간단한 생필품만 들어 있는 반면, 작은 집에는 집의 크기와 맞지 않는 정교한 공예품과 과다한 생필품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주류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당시의 사회적 관계를 대표한다고 믿는다: 고대 사회에는 사회적 지위가 크게 다른 두 집단이 사회 집단 내에 존재했다——하나는 일상 생활을 유지할 기본적인 자원만을 소유하며 거대한 집단 공간에서 생활한다; 두 번째는 호화로운 생활자원을 누리며 개인 주택에 거주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문서 기록이나 기타 신뢰할 수 있는 보조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사회집단 밖에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
사실, 모든 테라인들이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특정 사회 조직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사미 지역의 "사이클롭스"라는 살카즈 집단에는 혼자 사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사이클롭스는 강력하고 고독한 사람들로, 인간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데, 이러한 독거 행위는 그들이 카즈델에서 사미로 이주한 이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들의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전 민족 집단에 걸쳐 이러한 사고는 그들의 긴 수명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보편적인 사회적 관계는 기본적으로 "공급자-보호자" 관계로 단순히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그 당시 극도로 위험한 자연환경 속에서 테라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두 가지 역할을 말한다:
하나는 생산과 채집에 종사하는 "공급자"로, 그들은 일상 생활에서 음식을 얻고 주거지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비교적 안전한 일을 담당한다.
다른 하나는 주거지의 안정을 유지하는 책임을 지는 "보호자"로, 이들은 종종 주거지에서 개인의 힘이 강한 사람들이며, 일상 생활에서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원을 분배받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계속해 보면, 개인 능력이 강한 신민은 선민보다 더 많은 자원을 얻게 되었고, 이는 이후 신민이 선민을 통치하던 시대의 기초를 닦게 된다.
내가 보기에 이 이론은 실질적으로 매우 합리적이다.
이 사회 모델에 따라 계속 전개해 나가다 보면 이 이론이 실제로 "사회에서 소수자와 다수자"의 사상적 기초, 즉 개인의 힘의 차이가 크게 다른 사회에서 가장 간단하고 실용적인 조직 실천 계획임을 알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민족이 이동함에 따라 이러한 먼 옛날의 사회 관계는 점차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발전했다.
부족 시대와 아슬란의 정복
그러다가 점차 문자가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이때 사르곤 제국과 염국(이 두 나라는 역사를 논할 때 항상 반복적으로 언급된다)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었다. 당시에는 오늘날 테라에서 통용되는 역볍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학문적으로 이 기간을 "부족 시대"로 분류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역사적 시기는 특정한 사회적 개념과 사회 조직의 형태에 따라 구분된다.
우리는 일부 조직 형태를 막연하게 "부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누구도 이 용어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일종의 상상의 조직을 나타내 줄 뿐만 아니라 조용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사회 속의 강력한 개체들, 즉 연구자들에 의해 "보호자"로 정의되는 사람들은 점차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큰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주거지를 지키기보다는 자신의 막강한 무력을 활용해 약자들을 모아 자신을 지키게 억압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이득이 되는 행위였다.
이런 기념비적인 사고 변화 속에서 사회구조는 충격적으로 격변했고,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신분은 단시간에 빠르게 교체됐다.
이런 아이러니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는 "통치"와 "피통치"의 개념이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개인의 힘이 강한 신민은 통치자의 지위를 차지하는 종족 집단인 경우가 많은 반면, 모든 유형의 선민은 대부분 통치를 받는 상태에 놓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켈시의 주석: 비록 많은 국가가 발전하는 동안 신민을 통치자로 두었지만, 이베리아나 라이타니엔과 같이 신민 통치의 전통이 없었던 국가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시기에도 부족은 언제 어떤 재앙으로 파괴될지 모른다는 위협 아래 있었고, 사람들은 짧은 시간만에 떠났다가 피난한 뒤 돌아와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면서 부족 통치자들은 부족민을 다스리기 위해 종종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부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자적으로 생존하던 부족들이 점차 부족의 경계를 넘어 공격하고 합쳐지기 시작했다.
이는 많은 새로운 현상을 가져왔다:
대지에 거대한 규모의 부족이 출현하였고, 사람들의 사상에도 새로운 자기 정체성 관념이 출현하였다──"아슬란"이라는 개념은 이런 변화 속에서 새로 탄생했다.
어느 날, 아마도 화창한 오후였을 것이다.
오늘날 사르곤 지역의 한 부족의 필라인 통치자는 문득 통치자가 통치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들이 정말로 남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 다른 생각이 뒤따른다;
남다른 이들은 그 차이를 더욱 부각시켜야 한다.
"아슬란"은 그렇게 태어났다.
켈시의 주석: 강하다는 것은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아슬란 부족은 아슬란 짐승 군주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후대에 빅토리아로 간 아슬란도 이 부족의 직계 후손 중 일부이다.
처음에는 이 단어가 강력한 필라인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나중에 그들은 곳곳에서 싸우고 싸울수록 점점 더 용감해졌으며, "아슬란"이라는 이름이 온 대지에 울려 퍼졌다. 이 과정을 후세는 '아슬란의 정복'이라고 불렀다.
인구가 늘어나고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결국 "아슬란"이라는 이름은 필라인족의 특정 주요 집단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고, 동일한 신체 구조를 가진 다른 사람들도 필라인족에서 아슬란족으로 별도로 분리되었다.
켈시의 주석: 우리는 여전히 테라인의 출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람들은 출산의 법칙이 많은 것의 전제 조건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간단히 말하면, 부모가 같은 종족이면 아이도 부모와 같은 인종이다; 부모의 종족이 다르면 아이는 둘 중 하나가 된다.
이 점을 덧붙이면, 새로운 종족으로서의 "아슬란"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뒤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기까지는 단기적인 과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주: 여기서 켈시가 하는 말은 "아슬란"으로 분류된 사람이 다른 종족 사람과 결혼해 출산을 한다 하더라도 "아슬란"의 특징을 가진 자손과 그렇지 않은 자손이 함께 나왔을 테니, 어떤 신체적 특징이 "아슬란"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라는 뜻인 듯?)
아슬란 정복의 영향은 매우 광범위했으며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이 대사건은 당시 인류의 자기인식을 완전히 뒤바꿔놨다.
과거에는 부족 생활을 하며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인간들끼리 서로를 같은 부족민으로 인식했다.
예를 들어, 같은 부족 내 피지배자 페로와 리프로바(역주: 하이에나. 빈스토크와 스팟이 해당됨)는 굳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고, 모두가 자신을 평범한 부족민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슬란의 정복 기간 동안 사람들은 신체적 차이에 따라 조심스럽게 종족을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현대인이 인식하는 종족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슬란은 신민이 선민을 다스리는 전통적인 사회 모델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머릿속 불변의 진리가 아슬란에 의해 흔들렸다.
그러나 아슬란의 정복은 이러한 이원론적 사회 모델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이런 고대의 관념을 진정으로 뒤흔들고 파괴한 것은 천여 년이 지난 뒤의 쿠란타와 우르수스였다.
전통적인 사회 질서의 붕괴
그러다 국가의 시대가 왔다.
이 대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탄생에 대한 전설과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이런 이야기들에선 항상 과거의 집단끼리 서로를 공격해 결국 강자가 약자를 짓밟게 된다.
이런 패턴의 논리는 고대사회의 급속한 집단적 확장기의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부족의 규모는 점점 더 커졌고, 고대부터 이어져 온 지배 모델은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 내에 다양한 조직이 등장했다.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직업이 여러 집단에 할당되었고, 전문적인 업무 분업도 나타났다.
즉, "직업"이라는 개념은 이때 탄생한 것이다.
국가는 탄생하고 소멸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수천 년 동안 지속되며 오늘날 테라의 구조는 비로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테라력 11년부터 광활한 초원에서 온 쿠란타들은 나이츠모라 카간의 지휘 아래 온 대지를 누비며 돌고 도는 듯한 역사의 순환을 깨뜨렸다.
카간이 이끄는 부대는 지나간 자리의 나라와 질서를 박살내 버렸고, 후세에 "나이츠모라의 원정"이라 불리게 되는 역사적 사건은 불과 4년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전 테라에는 천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대격변을 가져왔다.
각지의 신민 통치자들은 이 과정에서 큰 타격을 입어 간신히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이츠모라의 부대는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했다.
비록 그들이 고대의 통치 패턴을 효과적으로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나이츠모라의 원정이 끝난 지 12년이 지난 테라력 27년, 고통을 겪던 우르수스인들은 오만한 히포그리프 통치자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이 대규모 저항은 곧 전쟁으로 이어졌다.
31년 반란군의 지도자 이고르가 우르수스 제국을 건국하고 즉위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테라 역사상 처음으로 선민 종족이 신민의 통치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저항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선민을 다스리는 신민의 전통이 근본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러한 생각은 점점 널리 보급되고 대중화되었으며, 점차 종족 평등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졌다.
사상사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사회의 인지적 기반은 이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켈시의 주석: 광석병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토론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광석병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테라인의 삶의 일부였으며 사람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 종족 간 평등이 현대사회의 인지적 기반이라고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사회의 인지적 기반의 이면에는 일반인과 감염자 간의 불평등이 있다.
새로운 시대
전통적으로 우리는 이동도시가 출현한 797년을 현대 도시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는 데 익숙하다.
대략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이동도시 밖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동도시 기술의 등장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사실이다.
이동도시는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재앙의 영향으로부터 상당 부분 해방시켰다.
도시 거주자들에게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거주지를 바꾸는 테라인의 전통은 완전히 사라졌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생활 전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동도시가 등장한 지 300년 동안 생활습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는 속도는 이전의 모든 시대를 뛰어넘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어떻게 따라가느냐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종족 문화
테라 전반에 걸쳐 공통되는 내용를 소개했으니,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지역별로 차이가 큰 사회적 특성이다.
나는 각 지역 주민들의 종족과 문화적 전통 간의 관계가 주목할 만한 시작점이며, 여기서부터 문화라는 주제를 전개하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절대 다수의 거주지에서 인종 간에는 적든 많든 항상 인구 수의 차이가 있다.
학계에서는 인구가 많은 쪽을 '주류 종족'이라고 부르며, 각지의 사회 풍습과 문화적 관습은 주류 종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오랜 시간에 걸친 침전과 형성에서 비롯된다.
고고학적 발굴 자료에 따르면, 초기 부족 시대에는 부족이 주로 단일 종족 단위로 나뉘어 있었으며, 같은 부족 내에서의 높은 친밀감과 정체성은 동시대의 다른 것들로 잘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갖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우리와 적의 차이"에 대한 최초의 개념은 종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인들은 외모를 구별함으로써 처음으로 "우리"와 "그들"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종족이 함께 사는 일은 부족 간의 전쟁과 정복으로 인해 혼합 국가가 탄생한 부족 시대 말기까지는 흔하지 않았다.
처음에 다민족이 함께 살게 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현대인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길고 끊임없는 충돌의 과정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는 단일 종족 사회가 오히려 극히 드문 상황이 되었다.
"인류"
현대인에게 "인류"는 자명한 개념이며 여러 종족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현대인은 생리적 조건이 천차만별인 다양한 종족이 모두 인류의 구성원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인들이 다른 종족을 만났을 때 눈앞의 낯선 생물을 일종의 짐승으로 여기진 않았을까.
고대인들이 다른 종족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인간에 대해 선천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되며, 이는 오리지늄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켈시의 주석: 이는 사실이다.)
인종 간의 차이는 결코 테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생김새는 제각각이지만 인류는 가능한 한 단결해야 재앙에 대처할 수 있다.
게다가 광석병이 인류에 미치는 위협도 날로 커지고 있다.
광석병 감염자에 대한 인간의 차별은 이제 외국인과의 장벽을 완전히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켈시의 주석: 어떤 시기에는 살카즈가 여러 차례 세계의 공공의 적이 되었지만, 종족 간의 상호 박해는 몇 마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중하고 전통적인 주제다.
현대 여행 기술이 인류가 이곳저곳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는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잘 알고, 자기를 잘 아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하다.
이러한 전 테라적 생활 습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각 지역의 주요 종족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으며, 평화로운 문화 간의 교류는 교류 수준에 그칠 뿐 일종의 조화 상태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테라의 다양한 인종, 뚜렷한 지리적 환경, 오랜 역사가 결합되어 오늘날의 다양한 문화를 형성했다.
사회 전체가 테라 전역의 문화를 전달하는 전달자라고 할 수 있으며, 독자들은 다음 글에서 각 종족의 독특한 문화를 볼 수 있다.
이번 시간은 켈시와 함께하는 테라사 통사였음... 다양한 테라의 종족에 대한 내용을 보고 싶었던 핲붕이들한테는 미안함
각 종족에 대한 내용은 다른 사람이 번역한다고 해서 그거 보면 될 듯
교수가 자기가 생각하고 학계에서 연구한 내용을 줄줄 읊는데 얘기하는 중간중간 켈시가 한 두마디 툭툭 던지는 부분이 이번 설정집의 감상 포인트인 듯
켈시의 주석 : 팩트)다
난 다 안다는 듯이 평가하고 있는 게 존나 웃기면서 꼴받음ㅋㅋ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인간에 대해 선천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되며, 이는 오리지늄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켈시의 주석: 이는 사실이다.) ㄷㄷㄷ
그래그래 그건 사실이야 어케 아냐고?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설정집 표지보면 공동작업하는 느낌이던데 평생을 학문에 바친 학자가 앳된 필라인이 옆에서 몇마디씩 던지는거 듣고 있으면 기분 이상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