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인물 설명:
●독타
평행세계긴 하지만 전작들이랑 동일 인물이다. 연애경험이 무한 리셋될 예정이다. 애도해주자.
●스카디
이번 작품의 히로인. 최강의 1저지. 1편 시점에서 1정/신뢰도 100~200 정도의 상태. 신뢰도 서서히 상승 중.
링크는 글 다 올리고 댓글에 달아둘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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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푸른 ‘그곳’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알 필요도 없는 채. 자연의 축복을 받아오며. 때로는 난폭하면서 어쩔 때는 평온한, 사방에서 느껴지는 물결을 느낀 채, 우리는 살고 있었다. 그것이 영원할 거라 믿으면서.
붉은 불꽃이 일렁인다. 핏빛 폭풍이 몰아친다. 새빨간 광석이 흩날린다.
동족이, 친우가, 형제가, 가족이. 소중한 모든 존재가, 한 줌 먼지가 되어,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살아남으라는 그들의 바람뿐. 손에 쥐어진 건 누구의 손길도 아닌 장검 한 자루뿐.
상반되는 두 장면들이 계속 번갈아 오면서 다가온다. 결코 도망칠 수 없다고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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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어두운 시야의 커튼을 걷어냈다.
잠시 멍하니 있기를 1초, 여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타가 공인한 고급 융단과도 같이 매끈한 은색 머리칼이 물줄기와도 같이 부드럽게 자신의 허벅지로 내려오는 걸 보며, 지금 누워있는 곳이 소파인 걸 알아차렸다.
“일어났어?”
여성이 고개를 돌린 곳에 있는 건, 평소에 쓰고 있는 헬멧을 옆에 놔두고, 문서를 정리하고 있는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뻣뻣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은 듬성듬성 탈색된 흰머리, 창백한 피부 너머로 보이는 진한 다크서클이 그의 현재 건강 상태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박사... 나 혹시 자고 있었어?”
“얼추 1시간 정도 됐나? 피곤해 보이길래 그냥 냅뒀지.”
여성이 현재 대원으로서 고용되어 있는 의료 단체, 로도스 아일랜드의 수뇌부 중 하나인, 박사라 불리는 남성은 옆에 있는 찻잔을 입에 대며 답했다.
이윽고 여성의 흐릿했던 정신이 회로가 연결된 전구처럼 번뜩였다.
본디 오늘은 주기적으로 오는 박사의 비서 업무를 맡기로 한 날. 그를 도와 서류 작업을 처리하기로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이 감기더니, 이윽고 그가 말한 대로 1시간의 시간이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잠들고 있는 모습을 보인 미약한 부끄러움, 그리고 자신 때문에 진도가 느려진 것에 대한 미안함이 섞인 채, 여성은 어쩔 줄 모르는 듯 박사와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말했다.
“미안해. 갑자기 졸아버릴 줄은.”
“괜찮아. 어차피 별 할 일도 없었는걸.”
별 할 일 없다는 게 테이블의 절반을 꽉 채우고 있는 저 서류를 말하는 것인가. 여성은 자신이랑 그가 가지고 있는 수량의 개념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저 몸으로 자기가 자고 있는 1시간 동안 계속 서류 작업을 해왔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은 덤이다.
“배고프지? 간단하게 먹을 거 가져왔으니까 먹어둬.”
여성은 박사의 손짓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감싸인 샌드위치와 밀폐된 병안에서 찰랑이고 있는 우유. 최근 구매 센터의 살카즈 여성이 새로 들여온 밀 키트였다.
박사의 배려심에 감사해하며, 여성은 포장지를 벗겨내고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식빵 너머로 부드럽게 입안에서 퍼지는 햄과 계란의 식감과 차가운 우유의 하모니를 소소하게 즐기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먹구름의 옷을 입고 있는 산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는 내내 계속 괴로워 보이던데, 악몽이라도 꾼 거야?”
움찔, 하며 남은 우유를 마시고 있던 여성의 몸이 석고상처럼 단단히 굳었다.
무의식의 너머로 사라져가던 그 기억이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하는 것이 느껴졌다. 엄습해오는 불쾌함에 무심코 눈썹을 찡그릴뻔한 걸 애써 감춘 채, 여성은 검은 가죽바지로 감싸인 다리를 꼬면서 시선을 박사에게 맞추었다.
“박사는 가끔씩 말할 필요가 없는걸 굳이 내뱉는 거 같아.”
“어? 나 혹시 말실수했어...?”
글쎄,라며 당황해하는 박사의 모습을 즐기는 듯 여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장기입원 환자라 해도 믿을 저 연약한 인상과는 달리 이곳 로도스의 수많은 대원들을 전부 품을 정도의 이타적인 마음을 품은 대인. 자신이 전력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한 사람. 떨어지려고 하면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상한 남자.
눈앞에 있는 그를 보며 생각나는 문장들을 마음에 품으며, 여성은 피식 웃었다.
“좀 오래전의 꿈을 꾸었을 뿐이야.”
“오래전?”
“그래. 아득히 먼, 저 너머에 있는 푸르른 평원의 꿈을...”
그 말과 함께 여성은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밖의 흐릿한 풍경을 보고 있는 도중에, 유리창이 반투명하게 박사의 실루엣을 비추는 걸 보고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머그컵을 쥐고 있는 그에게 한 잔 받아와, 헤이즐넛의 향을 음미했다.
“빗소리가 참 듣기 좋네.”
“그러게.”
빗물이 창문이랑 부딪히는 소리.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 가끔씩 들리는 기침 소리. 이 모든 음성이 합주한다.
유리창이 반투명하게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 너머로 보이는, 언제 갤지 모르는 회색 풍경을 바라보며, 둘은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남은 일들도 힘내자, 스카디.”
자신을 부르는 박사의 목소리에, 여성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가에 있는 옅은 조명과 함께, 그녀의 길고 찰랑이는 은색 머리칼과 영롱한 붉은색 눈이 보석과도 같이 반짝였다.
현상금 사냥꾼이자 로도스 아일랜드의 가드 오퍼레이터, 은발 적안의 검사 스카디의 일상은 오늘도 저 빗소리와 함께 잔잔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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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추 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