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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비가 자주 오네.’
박사가 복도를 걸으며 창밖을 바라보며 꺼낸 감상이었다. 로도스의 부유선이 현재 정박 중인 장소는 대체로 맑은 날이 지속되는 지역이다 보니, 저 회색 구름이 거의 매일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우천으로 인해 짙어질 습기를 우려하며, 그는 방금 펭귄 로지스틱스의 빨간 머리 총잡이씨에게 받은 애플파이가 눅눅해지기 전에 빨리 방에 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해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방에 다다를 때쯤, 박사는 반대편에서 대원 한 명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정돈을 제대로 안 했는지 평소와는 달리 듬성듬성 삐져나온 머리카락과 주름진 복장. 빛이 느껴지지 않은 멍한 붉은 눈. 지친 듯이 벽을 짚으며 오는 발걸음. 평소와는 많이 다르지만, 분명 가드 오퍼레이터인 스카디였다.

“스카디? 무슨 일이야?”

예상외의 모습에 놀란 박사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한 템포 느리게, 스카디는 시선을 그에게 맞추었다.

“박사구나. 안녕.”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혹시 열이 있는 건가 싶어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지만, 뜨겁긴커녕 얼음장과도 같은 냉기가 박사의 피부를 맞이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깜짝 놀란 듯, 스카디의 몸이 용수철처럼 미약하게 튀어 올랐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녀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박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잠을 잘 못 잔 거뿐이야.”

그 한 마디에, 이윽고 박사의 뇌리에 얼마 전 그녀가 비서 업무를 맡았을 때의 모습이 비쳤다. 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일그러지는 그녀의 안쓰러운 표정을 떠올리며, 박사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눈높이를 그녀와 맞추며 물었다.

“혹시 또 악몽을 꾼 거야?”

평정심을 유지하던 스카디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건드렸다는 듯, 보인 적이 없는 째려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박사의 주변을 감쌌다. 전신에 미세한 바늘을 동시에 꽂는 것 같은 섬뜩함에, 박사는 무심코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신경 써주는 건 고마운데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마, 박사.”

박사의 손을 떨친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마사지하며, 스카디는 멈춰있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부축해 주겠다는 박사의 말에 필요 없다며 일축한 채, 그녀는 오늘자 의료 오퍼레이터인 와파린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스카디의 뒷모습을 보며, 박사는 착잡한 심정으로 바닥으로부터 떨어지려 하지 않는 발을 움직였다.



왜 그랬을까. 평범하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였으면 될 것을.
그런 생각이 몽롱한 정신 너머를 헤엄친다.
손을 내쳤을 때 당황해하는 그의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화났을까? 어이없어 했을까? 미워졌을까? 아니, 그 사람이라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다가오려 하겠지. 곤란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깝게.
만에 하나, 나에게서 멀어진다고 해도 바라던 바다. 그러면 내게 가까워질 일도 없어질 테고, 불행이 그를 덮칠 일도 없겠지.

그렇게 되더라도, 괜찮다.

혼자인 건 익숙하니까.



“앗, 박사. 잘 갔다 왔어?”
“응. 서류 작업 잘 하고 있었어?”

문을 열자 박사의 눈에 보이는 건 서류작업을 하는 오늘의 비서 담당이었다.
길고 뾰족한 귀 뒤로 살랑이는 포니테일이 조명에 의해 반짝인다. 어깨, 팔, 무릎에서 발까지 감싸는 제련된 라이트 아머. 남색 코트 위로 왼팔에 차고 있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오렌지색 경장. 자그마한 체구에서도 느껴지는 늠름한 기백. 빅토리아의 기마경찰인 쿠란타족 소녀, 그라니다.

“응? 박사한테서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잖아? 뭔가 숨기고 있지! 그렇지?”
“고생하고 있는 그라니랑 같이 먹으려고 깜짝 선물을 가져왔지.”

그녀의 후각에 내심 감탄하면서, 박사는 봉지 안에 포장되어 있는 애플파이를 꺼냈다. 그렇게 많이 식지 않아서 음식의 온기가 그의 손에서 느껴졌다.

“와, 애플파이다! 날 위해 준비한 거야? 고마워!”

1시간 동안 서류작업을 해왔던지라 당분 섭취가 필요했던 그녀에게 박사가 가져온 선물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서류와 기마경찰로서의 위엄을 전부 소파에 내려놓은 채, 좋아하는 걸 발견한 어린 여자아이와도 같이 그라니는 박사의 앞으로 달려왔다.

“조금만 기다려, 홍차랑 같이 먹자.”
“난 따뜻한 우유로 할래!”
“우유 먹는다고 키 크는 건 아닌데.”
“그런 이유로 마시는 거 아니거든!”

볼을 부풀리는 그라니의 모습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박사는 애플파이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리고 선반으로 향해서 홍차 티백을 꺼내, 주전자로 끓인 물이랑 같이 찻잔에 살포시 담갔다.
그러고 나서 잠시간의 티타임이 시작됐다. 그라니가 해주는 빅토리아에 있었던 일들을 들어주면서 소소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박사의 마음 한 칸에 방금 전에 봤던 스카디의 모습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기마경찰의 소녀의 감이 놓칠 리가 없다.

“박사, 뭔 일 있었어?”
“아니, 딱히? 왜?”
“뭔가 걱정하고 있는 표정인데?”
“그렇게 티 나?”
“박사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표정으로 바로 드러나잖아!”

포커페이스에 관련된 책자라도 찾아봐야 되나,라며 박사는 머쓱해하면서 볼을 긁적였다. 빨리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는 듯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라니의 꼬리를 보아하니 어물쩍 넘어가긴 글렀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는 방금 전 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상황을 듣는 한 편, 따뜻한 우유를 작은 입으로 홀짝홀짝 마시는 그라니였다.

“스카디가 그랬다... 음...”

잠시 고민하더니, 이윽고 모르겠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그라니는 눈앞에 있는 애플파이를 집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아마 박사가 잘못한 건 아닐걸?”

한 입. 두 입. 그라니에게 주어진 접시 위의 애플파이의 개수가 빠르게 줄어든다. 반면에 박사의 애플파이의 개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다지 편하지 않은 좀 전의 일 때문에 괜히 먹다가 체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었다.

“적어도 스카디는 박사가 걱정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걸 거야.”
“날...?”
“응. 표현이 서툴거나 거칠긴 하지만, 그건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거니까.”
“그런가... 그럼 대체...”

수염이 살짝 자란 거친 턱을 쓰다듬으며, 박사는 망설이며 말을 흐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그라니는 의아하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박사, 혹시 스카디가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니, 그건 아니야.”

예전에 카시미어에 파병 나간 그라니 본인에게 들은 것도 있고 로도스에 온 이후 스카디랑 대화하면서 느낀 것이 있는 그였기에, 박사는 딱히 그녀에 대해 편견이나 악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번에도 스카디가 한 말이 그저 그녀가 평소처럼 언어 선택을 잘못한 것일 뿐이라 믿고 싶었지만, 기억을 잃기 이전부터 여러 경험을 해온 그의 몸이 그것이 아니라는 직감의 신호를 강렬히 보내왔다. 그 감각이 계속 박사를 자극해서, 마치 벌레라도 물린 듯 전신이 가려운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스카디는 정말 상냥한 사람이야. 진짜로.”

그런 그의 생각을 읽지 못한 그라니의 말에, 박사는 그저 티타임을 망치지 않는 걸 생각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기우라고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면서, 박사는 식은 홍차가 들어있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창밖의 비는, 여전히 잔잔하게 온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