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어는 코가 예민하다.
애초에 몸에서 향이 나는 일족의 특성상 다른 냄새도 맡아야 하니 예민해지는 건 그렇다 쳐도, 폭설이 내리는 설산 속에서 희미한 연기 냄새를 맡고 마을로 돌아오는 그 능력은 자타공인 일류였다.
그런 쿠리어의 코가 두 사람에게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야카 - 그러니까 마터호른에게서는 평소의 진한 수프의 냄새 이외에도 달짝시큼한, 여성의 향이 났다.
'어젯밤에 벌컨 님과... 즐기셨나보네.' 쿠리어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웃어보였다. 언제나 과묵하고 듬직한 마터호른이지만, 이 향기는 그도 역시나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반대쪽 사람인 엔시아 실버애쉬, 즉 클리프하트에게서는...
지금이라도 오류를 정정하자면, 클리프하트에게서는 '너무 익숙한' 향기가 났다. 그건 매일 쿠리어가 맡는 향이었고, 사람들이 그의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쿠리어는 그 익숙한 향기가 어젯밤의 일을 상기시켜줘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클리프하트에게서는 그의 체취가 희미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
산악인들은 언제나 최악에 대비한다. 사람들이 몇 번이고 성공한 길이라도 고립될 때를 대비해 며칠치 보존식을 챙겨두고, 비싼 돈을 주고 마련한 최고급 장비가 허망하게 망가질 걸 대비해 한 벌을 더 지니며,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고 해도 폭풍우를 헤쳐나갈 각오를 한다.
마지막 예시에 있어서 클리프하트는 산악인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아가씨... 이제 슬슬 극복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쿠리어가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보았지만, 엔시아는 바들거리는 몸을 쿠리어의 이불로 감싼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참... 영산도 오르시려던 분이 천둥을 무서워하셔서야..." 쿠리어의 입에서 한 숨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달려왔어야 할 엔시오다스는 급한 업무가 있어 쉐라그에 가버렸고, 엔야 또한 야식이라도 먹으러 갔는지 숙소를 비웠다. 평소라면 마터호른이라도 있었겠지만, '개인사유'로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갈 곳 잃은 새끼 고양이가 된 엔시아는 불쌍한 쿠리어의 숙소를 침략하게 된 것이었다.
오들거리는 클리프하트를 뒤로 한 채 쿠리어는 조용히 물을 끓이고 찻주전자와 잔을 꺼냈다. 18가지 찻잎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사이, 긴장이 풀리고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온 클리프하트가 입을 열었다.
"저기, 쿠리어... 할 말이 있는데..."
"부디." 쿠리어는 이제 6가지로 좁혀진 후보들 각자의 향과 효능을 상기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으응, 그냥. 필요할 때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고." 그 말을 들은 쿠리어는 끓어오르는 사심을 최대한 억누른 채 최종적으로 선발된 찻잎을 찻주전자에 담궜다. 이 얼마나 귀여운 작은아씨인가!
"별 말씀을요. 저의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쿠리어는 애써 일상적인 어조를 유지한 채 차를 잔에 따랐다. 은은하지만 상쾌한 향이 차를 만드는 이마저 편하게 해주었다.
잔을 받아든 클리프하트는 쿠리어에게 싱긋 웃어보이고는 평소의 말괄량이같은 모습과는 다르게 기품있는 모습으로 차를 마셨다.
"처음 맡는 향인걸? 무슨 차야?" 클리프하트가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개박하 차입니다. 신경을 안정시켜 준다고 해서요. 어떠신가요?"
"고마워. 벌써 편해진 거 같아. 흐흐흣♡" 클리프하트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눈에 힘을 푼 채로 히히덕거렸다.
쿠리어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혹시 차에 약물이 들어가 있었나? 박사님을 찾아가야 하나? 아니다. 지금은 의료팀을 불러야---
수화기에 손이 닿기 직전, 갑작스레 당겨진 쿠리어는 중심을 잃고 침대로 던져졌다.
"있자나, 있짜나? 호옥시 꾸리어는 나 싫어애~?" 수 분 전 천둥소리가 무서워 제대로 말도 못하던 클리프하트는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어휘력이 망가져버렸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쿠리어는 그녀의 돌발행동에 몸이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왜 작구 나 피해애? 나는 꾸리어 쪼은데..." 클리프하트는 상기돼 빨간 얼굴을 상대에게 수치심 없이 들이댔다.
"아니 사실 저도 엔시아 님이 좋은데 엔시아 님은 귀족이고 전 그냥 하인이고 어떻게 해도 안 될 거 같고 또... 흡!"
얼떨결에 사랑을 고백받은 쿠리어의 뇌는 순간 마비되어 아무런 검열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잠깐 돌아온 이성이 마지막에 간섭하긴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그 말을 들은 클리프하트는 그 말을 애써 이해하려는 듯 얼굴을 한참 찡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그러엄, 꾸리어도 나 쪼아해?"
이미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마음을 들킨 쿠리어는 반쯤 체념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클리프하트는 입이 귀에 걸리게 웃으며
"그럼 셋수하짜!" 라고 말했다.
*
취하지 않았던 쿠리어에게도 그 이후의 기억은 애매했다. 마치 시각이 차단된 것처럼 단편적인 감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목의 흉터를 정성스레 핥아내는 촉촉한 혀, 생각보다 단단했던 그녀의 등, 놓지 않으려는 듯 그의 허리를 감싼 두 다리...
그리고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던 두 사람의 체취.
눈부신 햇살에 눈을 뜬 쿠리어의 눈에 가장 먼저 든 건 알몸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엔시아였다. 코끝을 스치는 고소한 향이 어릴 때부터 쿠리어가 좋아했던 우유죽이 끓고 있음을 말해줬다.
살짝 뒤를 돌아보더니 그가 깬 걸 확인한 엔시아는 언제나처럼 밝은 미소를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잘 잤어? 아침 먹을래?"
설산에, 꽃이 피는 날이었다.
갑자기 써보고 싶었음
3줄 요약)
쿠리어가 개박하 차로 절벽짱 취하게 함
둘이 야스함
둘이 사귐
갑분섹 오졌고
그치만 핲붕쿤 야스 안 하면 안 봐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