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산을 보았다
그림을 거울 삼아 천지를 바라보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울이 깨지고 그림이 망가지는 날, 그림 속의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파트 1
종이 위에 내려오는 순간.
근원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 그 의식은 아직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근원이 깊은 잠에 빠지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온 대지에 퍼진 전쟁의 연기와 신의 몸을 꿰뚫는 인간의 증오였다. 그리고 이 무덤은 분쟁과는 거리가 먼 장소가 되었다. 그녀는 이곳에 숨었으며, 자신이 어째서 생겨났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할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다른 파편들은 대부분 이미 답을 얻었거나, 호기심을 가지고 먼저 이곳을 떠났다. 그녀는 이곳에서 혼란한 수일, 수개월을 보냈고...... 돌아오는 답은 침묵뿐이었다. 그녀의 귀는 바깥의 소리를 탐색했다. 더 이상 땅이 선혈에 물들어 있지 않은 것일까? 증오의 목소리는 이미 멀어졌을까? 너무 긴 고요함에 그녀는 탐색의 갈망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빛. 천지에 무서운 빛이 가득했고, 어둠에 익숙해진 그녀는 눈을 뜨기 어려웠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참았다. 빛이 그녀의 눈을 태우는 순간, 그녀는 색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눈이 점차 빛에 적응되자 그녀는 눈물을 닦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색채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햇빛이 들지 않는 무덤의 흑백과는 달랐고, 기억 속의 피에 물든 모래벌판과도 달랐다. 그 금빛은 태양을 감싸는 구름이었고, 그 붉은빛은 노을에 물든 단풍이었다. 무덤 밖의 세상은 이런 모습이 되어있었다.
산을 뒤덮는 끝없는 단풍은 얼핏 똑같은 붉은색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그 깊이에 차이가 있었고, 장난치는 인간 아이가 잎과 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해가 지고, 멀리서 밥 짓는 연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며, 길가의 사람들은 서둘러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느낀 것에 놀랐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더욱 잘 보기 위해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해가 지며 어두운 밤이 찾아오고, 세상의 생생한 색들이 사라져갔다. 조급한 마음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광경을 어두워지는 세상으로부터 떼어내서 그 노을빛을 소매에 담고 싶었다.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광풍이 휘몰아치며 초목을 흔들었으나, 산과 바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낙담하며 손을 늘어뜨렸다. 지금의 그녀는 너무 허약하여 그것을 거둘 수 없다.
지는 해가 산에 반쯤 삼켜졌다. 그녀는 또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신과 같이 자신의 색채로 세상을 비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눈을 감고 또다시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변화가 느껴졌다. 그녀는 기뻐하며 눈을 떴지만, 곧 실망의 기색을 보였다. 짙은 푸른색이 산등성이를 올라 단풍을 물들였다. 눈앞의 광경은 원래의 생기를 완전히 잃었고, 그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쉐이'의 색이 사라지고, 산천은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석양이 지면서 마지막 노을빛이 곧 사라질 것이다.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속 열정을 붙잡아 둘 수는 없을까?
......그렇다, 그녀가 아쉬워한 것은 이 열정이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그 열정이 주는 느낌을 떠올렸다. 산천에 가득하고, 활기가 넘치며, 기쁨을 참을 수 없는......
그것을 남기기 위한 방법이 아직 하나 남았다. 어느샌가 그녀의 손에는 붓이 들려 있었다.
뜻이 붓보다 앞서고, 내리는 붓은 뜻대로 움직이니, 먹빛이 스스로 생겨난다. 해가 산 너머로 진 후에도 한줄기 노을빛은 종이 위에 남아 있다.
파트 2
그림 속의 너는, 그림 속의 나.
매년 3월 3일, 수많은 작가들이 모이는 사교 모임이 열린다. 올해의 주최자는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인 루 선생을 초청했다. 조정부터 길거리까지 루 선생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의 그림을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도 없다. 그가 모임에 도착한 직후, 그는 자신과 어울려 보려는 문인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시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칭찬 사이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그의 그림을 아쉬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그저 일개 화가야."
"이 그림에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으신듯 한데, 고견을 청하여도 괜찮겠습니까?"
'화가'는 또 한숨을 쉬었다. 루 선생은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고, 그 모습은 가르침을 청하기보다는 그녀의 우스운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루 선생의 초기 그림은 정교한 의도를 지니고 생동감 있는 장면을 담고 있었지. 지금은 점점 재미 없어지고 있어."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낯선 손님을 보고는 원만히 수습하려고 다가갔다. 루 선생은 오히려 흥이 나서 말했다. "재미가 없다고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선생님께서 손수 가르쳐 주시는 편이 재밌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평가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모습을 통해 루 선생이 오랫동안 비판의 목소리를 들은 적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화가'가 단번에 수락하자 모여든 사람들은 이 임시 대결에 관심을 가지게 됐으며, 앞다투어 자리를 깔고 먹과 종이를 준비했다.
첫째, 물을 그릴 것. 둘째, 파울비스트를 그릴 것. 셋째, 노을을 그릴 것.
사람들이 둘러앉아 수군거리는 가운데, 루 선생은 능숙한 솜씨로 산을 그리고, 여백을 물으로 삼으며, 매우 적은 획으로 생동감 있는 파울비스트를 묘사해 흠을 잡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이름 없는 '화가'가 그린 물은 물결이 이는 것 같았고, 파울비스트는 풀잎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니,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화가'가 그린 노을은 생명에 대한 감동조차 불러일으켰으며, 동요한 마음이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구경꾼들의 의견이 갈렸고, 두 사람은 아직 승부를 내지 못했다.
'화가'가 말했다. "마지막 주제는 내가 내겠어. 사람을 그리자."
"누구를 그리죠?"
"너, 그리고 나. 서로의 눈에 비치는 상대방을 그리는 거야."
루 선생에게 웃음기가 돌더니 곧이어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뭐가 어렵단 말입니까? 그게 마지막 주제라면 실망하시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사람을 그리는 것에는 경험이 좀 있어서 말입니다."
종이를 깔고 먹을 간다. 루 선생은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비록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그녀는 매우 재능 있었다. 이 점은 그녀와 겨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 놀라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림을 겨루도록 부추겼다는 것은, 그 의도가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이렇게 문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그를 이긴다면, 그 무명의 화가가 염국 제일이 되는 것이겠지!
하하,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나를 밟아 명성을 얻으려 하다니, 세상 일이 그렇게 잘 풀릴까?!
루 선생은 평생을 배운 전력으로 붓을 놀렸고, 그 화려함에 구경꾼들은 모두 감탄했다. 숨죽이는 사이에 한 폭의 인물화가 완성되었다. 그림 속 여성은 '화가'와 9할이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1할이 달랐다. 그녀의 옷차림과 장신구는 모두 원래보다 화려하고 비쌌다.
루 선생이 웃으며 물었다. "시간이 더 필요하진 않으신지요?"
'화가'는 말 없이 붓을 놓았다. 사람들은 구경하러 다가왔다가 잠시 조용해졌고, 이어서 서로 마주보며 조용히 감탄했다. 루 선생은 급히 군중을 헤치고 그 그림을 보았고, 한참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시 고개를 들자 '화가'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림 속 사람은 확실히 루 선생이었고, 9할은 비슷했지만 1할이 달랐다. 그림 속의 루 선생은 신선과 비견되는 재능을 지녔으면서 속세에 물들지 않은 소탈한 화가였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 자유롭게 붓을 휘두르던 모습이었다.
루 선생은 입술을 떨면서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내가 그린 것은 그녀가 아닌...... 나 자신이었던 건가."
그는 말을 마친 뒤 그림을 찢고 쓸쓸히 떠났다.
파트 3
그녀는 흥이 식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 점토 인형 상인이 인기를 끌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시원스럽게 구매하면 상인은 기뻐하며 짚으로 만든 메뚜기를 덤으로 얹어주고, 상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구입할 수 없다. 상인은 귓가에서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을 싫어했지만, 파는 물건은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장난감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 그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노점을 열 때마다 신기한 물건을 준비해두면, 아이들은 그것에 몰두하여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아이들은 '그녀를 귀찮게 하면 신기한 장난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 같았고, 그렇게 그녀의 노점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그림 속의 번화한 장터와 점토 인형 노점이 점점 흐려졌다. 다른 그림의 깊은 산 속에서 요새가 나타났다.
버든 비스트가 끄는 호송차가 산기슭을 천천히 가고 있었다. "워—워—" 장애물을 마주치자 리더가 일행을 멈춰세웠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들자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맹글러보다 건장해 보이는 수염 거한이었다. 그는 구리 방울처럼 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주먹은 사발만했으며, 근육은 고목처럼 튼튼하여, 천년에 한번 나올 인물임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호적이지는 않아 보이니, 리더는 어쩔 수 없이 교섭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부정한 재물은 빼앗겨 마땅하다." 그 거한은 교섭의 가치가 없다 여기고 주먹을 휘둘렀다. 모두가 놀랐지만, 그는 나아가며 왼발이 바퀴에 걸리고, 오른발로 바짓자락을 밟으며 넘어졌다.
"에휴." 이런 장면에 익숙한 거한의 동료들은 고개를 저으며 각자 검을 꺼내고 다가왔다.
요새가 사라지고, 어두운 지하 감옥이 그려진 그림이 펼쳐졌다. 그림 속에는 침묵하는 죄수가 앉아 있었으며, 그녀는 자신을 이곳에 보낸 원고가 발표되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지하가 사라지고, 다른 그림에는 넓은 전장이 있었다. 한 늙은 장군이 사절 앞에서 밥을 삼켰다.
전장이 사라지고, 그 다음 그림에서는 입관 담당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떠나버린 친구의 모습을 정돈하고 있었다.
다음 그림, 그리고 그 다음 그림...... 그렇게 어느 무대의 그림에 이르렀고, 작가는 적절한 가사를 쓰기 위해 직접 그 작품 속의 인물을 맡았다. '진실이며 또한 거짓이니, 거짓은 진실이 되기 어렵다' 한 마디를 남긴채 그림을 찢고 빠져나왔다.
재미없다. 지겹다. 재미없다. 이 그림도 재미없다. 두루마리 조각이 휘날리며 화로에 떨어졌다. 마침내 시는 더 이상 그림을 찢을 힘도 없어서 피곤하게 책상에 몸을 기댔다. 그림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세상 속에서 그녀는 다양한 삶을 맛볼 수 있었다. 이렇게 진심이 담긴 수백 년의 삶에서 얻은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진짜일까? 그림 속 사람이 나였다면, 그림 속의 나는 분명 진짜고, 내가 겪은 것과 느낀 것도 진짜다. 하지만 그 신이 깨어날 때, 자신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자신도 결국 그림 속 사람일 뿐인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허상인지 실재인지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에휴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