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쏴아아아아


비가 질척질척하게 내리는 어느 날 밤


나는 로도스의 갑판 위에 서서 비를 맞고 있었다.


머리를 때리는 빗방울을 느끼며 죄책감에 휩싸인다.


내 얼굴에서 흐르고 있는 물이 눈물인지 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나'의 손에서 떨어져 내린 와인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며 산산 조각이 난 유리들의 틈새로


붉은 액체가 흘러내려온다.


내리는 빗물에 곧바로 닦여나가는 액체를 보고 있자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대원중 한 명이겠지.


뒤에서부터 들려오던 발소리는 어느 순간 나의 옆에서 멈춘다.


그칠 줄 모르는 비를 이제는 두 명이서 맞아간다.


비를 맞음으로써 속죄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안될 것이다.


비를 맞아 아파하는 것 따위는 그들의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조심스럽게 아무것도 안 남은 텅 빈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이 느껴진다.


작은 손이지만 결코 부드럽지 않다.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혀있는 것이 칼을 쓰는 대원이겠지.


과연 이 손에는 얼마만큼의 피가 물들어 있을까 수백 아니 수천 인가?


얼마나 지나야 너와 나는 속죄할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 타인의 정의를 짓밟을 권리가 너와 나에게는 있는 걸까


이제 와서 문득 생각이 든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이 비를 맞아주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나의 옆에 서있는 사람을 확인한다.



아아, 역시 너구나



과연 너도 나의 과거를 알고 나서도 계속해서 나의 손을 붙잡고 있을 수 있을까


깨끗했던 너의 몸이 점점 젖어가는 걸 보면서 나는 후회한다.



어째서 나는 나의 과거를 알려고 했을까.


이제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는데.